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758화 (758/850)

#758

슬슬 찬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라 정성국은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고, 화로를 꺼내야 하나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조용한 곰이 집무실을 방문했고.

정성국은 조용한 곰이 건네준 보고서를 받아들며 물었다.

“이건 무슨 보고선가? 아프리카 투자 계획 보고서?”

“예. 아프리카 지역의 투자를 위해 외무청, 개발청, 관리청의 고위 관리들이 모여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이전 청장 회의에서 아프리카 해적들의 발호를 줄이기 위해 아프리카 지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한 투자 계획을 세워보라고 명령했던 정성국은, 이 보고서가 바로 그와 관련된 보고서라는 것을 깨닫고 보고서를 펼쳐 빠르게 훑으며 중얼거렸다.

“어디보자...일단 골드코스트와 앙골라 지역에 집중적으로 투자한다?”

보고서에는 서아프리카 해안 전체가 아닌, 아프리카 중부에 위치한 골드코스트 지역과 앙골라 지역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것을 권하고 있었기에 정성국이 의아한 기색으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자, 조용한 곰이 설명을 시작했다.

“예. 서아프리카 노예무역의 중심지가 바로 그 두 지역이었고, 노예무역이 금지된 이후로 경제적 피해가 큰 지역도 바로 그 두 지역이니까요. 그리고, 군사청을 통해 확인한 바론 서아프리카 해적들도 대부분 두 지역 출신이기에, 이 두 지역에 집중투자하기만 해도 해적들의 발호를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조용한 곰의 설명처럼 골드코스트 지역과 앙골라 지역은 서아프리카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다.

골드코스트 지역은 잉글랜드, 네덜란드, 덴마크 등 유럽 세력이 장악하고 있었고, 이들은 카리브 해, 북미 동해안에도 식민지를 확보하고 있었으며, 이들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선 노동력이 필요했기에 골드코스트 지역에서 노예를 조달했으니까.

그리고 마찬가지로 앙골라 지역은 포르투갈이 장악하고 있었고, 포르투갈은 브라질 식민지의 개척을 위해 앙골라 지역에서 노예를 조달했고.

이런 상황이라 두 지역은 노예 산업이 발달했고, 북미왕국의 개입으로 노예무역이 금지되면서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이기에 정성국은 조용한 곰이 이를 언급하자 바로 상황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걸리는 점이 있었기에 물었다.

“헌데 이 두 지역에 투자하려면, 최소한 잉글랜드, 네덜란드, 덴마크, 포르투갈과는 협상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북미왕국은 골드코스트 지역에 황금해안 항이라는 항구를 소유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북미왕국은 아프리카 지역을 개발할 생각은 없었기에, 기껏해야 항구 주변의 조그마한 땅을 확보한 것이 전부였기에 고작 황금해안 항에 투자한다고 해서 골드코스트 지역의 경제를 살리는 것은 불가능해 다른 나라의 식민지에도 투자할 필요가 있었고, 앙골라 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였기에 정성국이 묻자 조용한 곰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아.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네덜란드, 덴마크, 포르투갈과는 협상을 마친 상황이니까요.”

“어? 그래?”

어쩐지 아프리카 투자 계획을 짜는데 너무 시간이 걸린다 했더니, 아프리카 지역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나라들과 협상하느라 늦어졌다는 것을 깨달은 정성국이었고.

이에 조용한 곰은 저들이 북미왕국의 투자 요청을 받아주지 않으면,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했기에 계획을 짜는 것과 동시에 유럽 나라들과 협상을 진행했다고 대답하며 덧붙였다.

“다만 괜한 걱정이기는 했습니다. 뭐 네덜란드나 덴마크는 아국의 동맹국이기도 하고, 아국의 투자로 커다란 이익을 본 기억이 있으니. 네덜란드령 골드코스트나 덴마크령 골드코스트에 투자한다는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해서 두 나라와의 협상은 비교적 빠르게 끝난 편이지요.”

“하하하. 그렇긴 하지. 우리의 투자로 골드코스트 지역이 발전하면, 이 지역을 식민지로 두고 있는 두 나라 역시 꽤 이득을 볼 테니까.”

식민지의 경제가 살아난다는 것은 더 많은 세금을 거둘 수 있다는 뜻과도 같았으니, 두 나라로서는 북미왕국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이해한 정성국이 웃으며 대꾸하자 조용한 곰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포르투갈 역시, 아국의 투자 제의를 반겼습니다. 노예무역이 금지된 이후, 앙골라 지역의 경제가 엉망이 되고, 그동안 노예 산업에 종사했던 이들이 앙골라 지역의 치안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사실은 포르투갈도 인지하고 있었으니까요.”

“어? 인지하고 있었다고?”

그걸 인지하고 있었는데도 그냥 방치한 거냐는 시선을 보내는 정성국을 보고 조용한 곰이 어깨를 으쓱했다.

“예. 다만 앙골라 지역의 치안을 안정시키려면, 더 많은 포르투갈 병력을 파견하거나,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자금을 투자해야 했는데,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 말에 정성국은 포르투갈의 생각을 눈치채고 혀를 찼다.

“쯧. 그동안 단물을 쪽쪽 빨아먹었으니 이제 버리겠다 이거지?”

“하하하. 뭐 그렇기도 하고, 최근 포르투갈은 남미 식민지인 브라질 북부 해안 지역의 개발에 집중하고 있기에, 앙골라 지역까지 동시에 개발하고 관리할 여력이 없어 앙골라 지역을 포기한 것 같습니다.”

포르투갈은 한때 강력한 해상 제국이었지만, 네덜란드에 밀려 동남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잃었고, 북미왕국의 개입으로 앙골라 장가가 독립하면서 브라질 식민지 태반을 잃었으며, 잉글랜드, 프랑스, 네덜란드 같은 유럽 국가들로 인해 인도와의 무역으로 얻는 이득도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포르투갈은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했고, 포르투갈의 국왕인 페드루 2세는 포르투갈의 식민지 중에 가장 가치 있어 보이는 브라질 북부 해안 식민지에 집중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다른 식민지들에 비해 본토와 비교적 가깝고, 유럽에서 비싸게 팔리는 각종 신대륙 작물들을 재배하기에 적합한 기후였기에, 이 브라질 북부 해안 식민지만 잘 개발해 관리하기만 해도, 포르투갈은 충분한 부를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해서 최근에 포르투갈은 이 브라질 북부 해안 식민지의 개발에 집중하고 있었고, 이를 모르지 않았던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대답에 포르투갈의 상황을 이해하고 중얼거렸다.

“하긴. 포르투갈은 인구가 적어 여러 지역의 식민지를 동시에 개발하고 관리하기는 조금 어렵겠지.”

“예. 그래서 포르투갈은 인도 무역을 위해 앙골라 지역의 몇몇 항구만 관리할 예정이었기에, 아국의 투자 제의를 반겼고, 덕분에 좋은 조건으로 협상할 수 있었습니다.”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그거 잘 되었다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물었다.

“흠. 그럼 잉글랜드는?”

미리 협상했다는 나라에서 잉글랜드는 빠져 있기에 정성국이 묻자 조용한 곰이 답했다.

“아. 잉글랜드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잉글랜드 대사에게 슬쩍 말을 꺼내봤는데, 네덜란드, 덴마크, 포르투갈과는 달리 재정이 풍부한 편이라, 아국의 투자 요청을 받아들여 이익을 나누기보다는, 자신들이 직접 투자해 이익을 독점하길 원하더군요.”

잉글랜드 대사는 북미왕국이 잉글랜드령 골드코스트에 투자할 의사를 내비치자, 북미왕국에서는 잉글랜드령 골드코스트에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는 것을 깨닫고, 그동안 북미왕국이 투자로 손해 본 일이 없다는 것까지 떠올리자, 굳이 북미왕국의 투자를 받아들여야 하나 싶었다.

특히, 조용한 곰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북미왕국은 광산업 분야에 투자하려는 기색이었는데, 광산 개발은 잉글랜드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던가.

해서 잉글랜드 대사는 자신은 잉글랜드령 골드코스트 지역의 상황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협상에서 발을 뺐고, 조용한 곰은 그런 잉글랜드 대사의 속셈을 눈치채 아예 투자 의사를 철회했다고 설명하자 정성국이 피식 웃었다.

“그래? 뭐 충분히 이해는 가고, 또 우리 입장에선 나쁠 것은 없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프리카 지역에 투자하려는 것은 투자를 통한 이익 때문이라기보다는 아프리카 경제를 살려 치안을 안정시키는 것이니 우리가 투자하든, 잉글랜드가 투자하든 상관없지요.”

“상관없기는. 솔직히 말하면 잉글랜드령 골드코스트 지역의 개발을 위해 파견해야 할 인력을 아낄 수 있으니 우리 입장에선 더 좋지.”

“하하하. 맞습니다. 솔직히 더 좋지요.”

정성국의 말마따나, 잉글랜드의 욕심 덕분에 아프리카 지역에 파견해야 할 인력을 줄일 수 있어 나쁠 것은 없었기에 조용한 곰이 폭소했고.

조용한 곰이 웃는 동안 정성국은 다시 보고서를 빠르게 훑기 시작했고, 보고서의 내용을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 광산 개발에 투자하는 것은 그렇다고 치고, 농업에도 직접 투자하겠다고? 땅을 구매해 직접 농장을 경영하겠다는 뜻인가?”

정성국은 당연히 광산 개발에 주로 투자할 거라 생각했었다.

광산을 개발하려면 막대한 인력이 필요했고, 당연히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더불어 유럽에서 기니만 일대를 골드코스트라고 이름 붙인 것은, 그만큼 이 지역에 많은 금이 묻혀 있다는 뜻이었기에, 계속해서 규모가 커지고 있는 북미왕국의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금이 필요한 북미왕국으로서는 금광 개발을 가장 우선할 수밖에 없기도 했고.

헌데 이 보고서에는 투자금의 절반을 농업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적혀 있었기에 정성국이 묻자 조용한 곰이 대답했다.

“예. 농업 연구소의 보고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도 여러 상품 작물을 재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말입니다.”

“아. 그래?”

“그리고, 꼭 상품 작물을 재배하지 않더라도, 광산을 대대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하면, 막대한 식량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헌데 이 식량을 본국에서 직접 수송하기엔...”

조용한 곰이 말을 흐리자 정성국은 그건 그렇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광산을 개발하고 좋은 조건으로 광부들을 모집하면, 자연히 광산 인근에 도시가 들어설 테고, 이 도시가 유지되려면 식량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다.

헌데 이 식량을 북미왕국에서 직접 수송하기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새진주에서 그나마 가까운 덴마크령 골드코스트까지 거리만 해도 1만km가 넘었으니.

해서 필요한 식량을 현지에서 생산할 필요가 있었고.

더불어 농업 역시 광업처럼 많은 인력을 흡수할 수 있는 산업이기도 했기에 조용한 곰의 설명을 듣자 정성국이 나쁘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기에 입을 열었다.

“나쁘진 않은데...현재 골드코스트의 치안이 개판이라는 것이 조금 걸려.”

먹고살 게 없어서 목숨을 걸고 해적질에 나서는 판국이었다.

그러니 내륙의 치안도 개판일 수밖에 없었고.

헌데 내륙에 땅을 사서 농장을 경영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싶은 정성국이었고, 그렇다고 농장을 지키기 위해 병력을 파견했다간, 일이 너무 커지는 느낌이라 정성국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조용한 곰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덜란드와 덴마크 측에서 아국이 투자한 지역의 치안을 책임지기로 했으니까요.”

“오! 그게 정말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라 정성국이 놀라 되묻자 조용한 곰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희가 치안 유지를 빌미로 네덜란드령 골드코스트, 덴마크령 골드코스트에 병력을 대거 주둔시키면, 해당 지역에서 아국의 영향력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아무리 동맹국이라 하더라도 부담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인지, 제가 이 문제를 거론하자 자신들이 책임지겠다고 나섰습니다.”

“하하하. 잘했네. 그 먼 지역까지 병력을 대거 파병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야.”

가뜩이나 병력이 적은 만큼 정성국은 두 나라의 보호를 끌어낸 조용한 곰의 수완을 칭찬하자 조용한 곰이 입을 열었다.

“다만, 당장은 병력을 일부 파견하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음?”

“네덜란드령 골드코스트, 덴마크령 골드코스트, 앙골라 지역에서 자원을 탐사할 개발청 관리들을 보호할 정예 병력이 필요하니까요.”

“아...”

물론 네덜란드, 덴마크, 포르투갈에 병력을 요청할 수도 있겠지만, 개발청 관리들의 안전을 생각하면, 이쪽에서 정예 병력을 일부 파견하는 것이 더 안전했기에 정성국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조용한 곰이 덧붙였다.

“더불어, 포르투갈의 경우는 항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벅차, 아국이 투자한 지역의 치안까지 확보해주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치안 유지도 알아서 하라고 하던데, 군사청장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아국에서 병력을 파견하기보다는 현지인들을 경비 병력으로 고용하는 방향으로 가려는데, 당분간 이들을 제대로 훈련시킬 교관도 필요한 상황이라서 말입니다.”

“그래? 흠...”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잠깐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그럼 탐사대를 일부 파견하도록 하지.”

“오. 탐사대라면 환영이지요.”

탐사대의 화력은 강력해 적은 수를 파견해도 개발청 관리들의 안전을 충분히 지킬 수 있을 거래 생각한 조용한 곰이 정성국의 말에 반색했고.

그때 정성국이 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앙골라 지역에서 현지인들을 경비 병력으로 고용한다고 했지? 그들을 제대로 교육시키도록 하게.”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말 그대로네. 그저 무기를 다루는 법만 가르치지 말고, 글도 가르치고, 여러 지식도 가르치란 말일세. 예전에 외국인 학교에서 족장들의 후계자들을 가르친 것처럼 말이지.”

이에 조용한 곰은 설마 하는 얼굴로 정성국을 바라보다 겨우 입을 열어 질문을 던졌다.

“...설마 전하께서는 앙골라 지역도 독립시킬 생각이십니까?”

앙골라 지역이 포르투갈의 영역이긴 하지만, 엄밀히 말해 포르투갈은 앙골라 지역의 몇 개의 항구만 통치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앙골라 지역의 현지인들을 가르쳐 군사적 지식을 비롯한 각종 지식을 가르쳐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그리고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인재를 여럿 키워낸다면, 이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는 뻔했기에 조용한 곰이 정성국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질문을 던지자 정성국이 어깨를 으쓱했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다만...이대로라면 아프리카 지역 전체가 유럽의 식민지가 될 수도 있으니, 변화의 씨앗을 뿌려보겠다는 거지.”

그 말에 조용한 곰은 예전에 정성국이 아프리카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면서, 이를 바꾸기 위해 손을 잡을 현지 세력을 물색했지만, 딱히 마땅한 세력이 없어 관심을 접었던 것을 떠올리며 물었다.

“...그리고 앙골라 지역의 원주민들이 스스로 세력을 이루고, 포르투갈에 독립하려 한다면 도와주실 생각이시고요?”

이에 정성국은 별다른 대답 없이 조용한 곰을 바라보고 빙긋 미소를 지을 뿐이었고.

결국, 조용한 곰은 정성국의 복심을 듣는 것을 포기하고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교육청과 논의해 제대로 가르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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