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752화 (752/850)

#752

친선 사절단의 대표로 북미왕국을 방문했었던 요크 공작은 런던으로 복귀하자마자 형인 찰스 2세의 집무실을 찾았고.

찰스 2세는 자신을 대신해 친선 사절단의 대표로 북미왕국을 방문한 자신의 동생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래. 잘 다녀 왔느냐.”

“그렇습니다. 국왕 폐하.”

요크 공작이 집무실 안의 보좌관들을 슬쩍 바라보고 격식을 차려 대답하자 찰스 2세는 피식 웃으며 집무실에 있던 보좌관들에게 나가라는 듯 손짓했고, 보좌관들이 다 나가자 찰스 2세가 동생을 보고 말했다.

“이제 너와 나 단 둘뿐이니 말 편히 해라.”

“알겠습니다. 형님. 헌데 여전히 컨디션이 좋지 않으십니까? 어째 안색이...”

친선 사절단의 대표로 런던을 떠나기 전 찰스 2세를 알현했었던 요크 공작은 고작 3주 만에 눈에 띄게 수척해진 형의 얼굴을 확인하고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말을 흐리자, 찰스 2세가 씁쓸히 미소지으며 말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요새 컨디션이 영 엉망이구나. 잠을 자도 여전히 피곤하고.”

찰스 2세의 대답에 요크 공작은 눈을 찌푸리며 바로 물었다.

“그래요? 왕실 주치의는 뭐라던가요.”

“딱히 이상은 없다더구나. 다만 늘 그렇듯 건강을 위해서 술과 고기를 줄이고 채소를 많이 섭취하라는 잔소리만 할 뿐이지.”

찰스 2세는 작년부터 예전과는 달리 몸이 무거워지고, 쉽게 피곤해졌기에 혹시 무슨 병이라고 걸렸나 싶어 왕실 주치의에게 주기적으로 진찰을 받았지만, 왕실 주치의는 매번 별다른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렇기에 찰스 2세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요크 공작은 이건 조금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미왕국을 방문하기 전의 찰스 2세의 모습과 지금 찰스 2세의 모습은 눈에 띌 정도로 달랐으니까.

해서 잠깐 고민하던 요크 공작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흐음...그럼 북미왕국에 도움을 요청해 볼까요?”

“도움?”

“예. 북미왕국의 의술이 뛰어나니 북미왕국의 의원을 초청해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요크 공작의 대답에 찰스 2세는 순간 움찔했다.

요크 공작의 말은 왕실 주치의를 믿지 못하겠다는 말이기에.

다만 찰스 2세는 동생이 왕실 주치의가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했다기보다는, 의술 실력이 부족해 자신의 건강 상태를 제대로 진찰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해 북미왕국의 의원을 초대하자고 이야기했음을 깨닫고 희의적인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글쎄다...크게 의미는 없어 보이는구나. 지금 왕실 주치의도 북미왕국에서 북미왕국의 의학을 배워 온 사람이잖느냐.”

찰스 2세 역시 작년부터 계속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 왕실 주치의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자 조금 이상해서 요크 공작처럼 북미왕국 대사를 통해 북미왕국의 의원을 초청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다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북미왕국의 의원이라고 뭐가 다를까 싶었다.

북미왕국은 의술 만큼은 인도적인 이유로 다른 나라에 적극적으로 전수했었고, 또 유학생도 허용했기에, 그리고 지금 자신의 왕실 주치의는 북미왕국에서 직접 의술을 배운 이였기에 북미왕국의 의원이나 왕실 주치의나 실력은 비슷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해서 이를 언급하자 요크 공작은 고개를 저었다.

“으음...그렇긴 합니다만, 왕실 주치의가 북미왕국에서 의학을 배운 것도 오래전 일 아닙니까.”

“음? 아. 네 말은 그사이 북미왕국의 의학이 더욱 발전했을 거라는 뜻이냐?”

“그렇습니다. 형님. 북미왕국의 발전이 빠르다는 것은 형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물론 북미왕국의 발전 속도가 기이할 정도로 빠르다는 것은 찰스 2세 역시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북미왕국이 빠르게 발전한다고 해서 의학의 발전마저 빠를 수는 없다고 생각한 찰스 2세가 헛웃음을 지었다.

“허허허. 그렇기야 하지. 허나 의학은 일반적인 학문이나 기술과는 조금 다르지 않으냐. 그리고 우리 잉글랜드의 의사들도 북미왕국의 의학을 받아들여 자체적으로 의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별반 차이가 없지 않을까 싶은데?”

“아닙니다. 형님. 물론 의학이 일반적인 학문이나 기술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긴 합니다만, 북미왕국이 의학 발전을 위해 투자하는 규모를 생각해보면, 발전 속도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

자신의 말에도 의견을 굽히지 않고 북미왕국의 의술이 훨씬 뛰어날 것이라고 확신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요크 공작을 보고, 찰스 2세가 정말 그런가 하는 표정으로 반문하자 요크 공작이 이번에 새한성을 둘러보며 방문한 곳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예. 북미왕국은 대학마다 의학 연구소를 설립해 의학 발전을 위해 연구하고 있으니까요.”

“의학 연구소라...”

북미왕국의 연구소들은 유명했지만, 베일에 싸여 있기에 찰스 2세가 급 관심을 보이자 요크 공작은 새한성 대학교를 방문했다 들렀던 의학 연구소와 그곳에서 개발 중인 의료기기나 신약 등을 설명했고.

그러한 설명에 찰스 2세가 감탄하자 요크 공작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북미왕국은 대부분의 병원을 나라에서 운영하기에 치료비가 무척 저렴합니다. 여기에 북미왕국의 백성들은 부유한 편이지요. 그러니 북미왕국의 백성들은 병원을 방문하는 데 거리낌이 없고,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원들은 수많은 환자들을 진료하고 치료하면서 자연스레 의료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고요. 그러니...”

“왕실 주치의보다 북미왕국의 의원이 훨씬 실력이 좋을 거다?”

“그렇습니다. 형님.”

요크 공작이 단호히 대답하자 찰스 2세가 잠깐 고민하다 동생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흐음...알겠다. 그러도록 하마. 그보다 이번 방문이 퍽 인상적이긴 했나 보구나. 방금 네가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말이다.”

이에 요크 공작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물론 저도 그렇고 형님도 그렇고, 북미신문이나 새한성에 주재하는 대사를 통해 계속해서 북미왕국의 정보를 받아왔기에 나름대로 북미왕국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래서 지금 네 반응이 조금 놀라운데...”

찰스 2세도, 그리고 요크 공작도 다른 잉글랜드의 귀족들과 마찬가지로 북미신문의 숨은 애독자였다.

그러니 북미왕국에 대해선 나름 잘 알고 있었고.

헌데 찰스 2세가 요크 공작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요크 공작은 마치 평생 시골에만 살다가 처음으로 수도를 방문한 촌뜨기처럼 잔뜩 흥분한 얼굴이었으니 찰스 2세는 그런 동생의 반응이 새삼 놀라워 이를 지적하자 요크 공작은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오히려 당연하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저희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북미왕국의 모습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으니까요.”

“허. 그래?”

동생의 대답에 찰스 2세가 호기심을 보이자 요크 공작은 기다렸다는 듯 품에서 이번에 북미왕국을 방문했을 때 찍었던 수많은 사진들을 꺼내며, 하나하나 설명하며 찰스 2세에게 북미왕국의 실상을 전달하기 위해 애를 썼고.

찰스 2세는 요크 공작이 찍어온 사진들을 보며 계속해서 감탄사를 토해내다 요크 공작의 설명이 끝나자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허. 북미왕국의 기술 수준이 높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공방들의 사진을 보니 새삼 경악스럽군. 아까 설명했던 이 방직 공방만 해도 그래. 사람이 일일이 목화씨를 빼는 게 아니라 기계에 넣기만 하면 목화와 씨가 분리되고, 또 이걸 기계에 넣으면 실을 뽑고, 이 실로 천을 짜낸다고? 기계 혼자서?”

“저도 처음 이 방직 공방을 둘러보았을 때는 정말 놀랐습니다. 물론 북미왕국에서 기계를 이용해 면직물을 비롯한 여러 직물을 생산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 정도일 줄은...”

북미왕국에서는 공방들이 모여 있는 산업단지의 외국인 출입을 엄금하고 있지만, 공방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입을 완전히 틀어막을 수는 없었다.

식당, 커피점, 술집 등에서 자기들끼리 떠드는 것을 무슨 수로 막겠는가.

해서 보안이 중요한 공방들은 아예 외국인들이 방문하지 못하는 새양주로 옮겨버린 것이고.

아무튼, 상황이 그러다 보니 잉글랜드에서도 북미왕국의 공방에서는 사람 손을 이용해 물건을 만들기보다는, 기계의 힘을 이용해 물건을 만든다는 사실 정도는 짐작하고 있긴 했다.

다만, 찰스 2세나 요크 공작은 당연히 기계의 도움을 받아 사람이 물건을 만든다고 생각했지, 저렇게 생산 과정에서 기계의 비중이 높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고.

특히 찰스 2세는 북미왕국이 등장하기 전부터 직물 산업을 주요 산업으로 생각하며 집중적으로 육성해왔었기에, 지금 이 사진들은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해서 찰스 2세는 조금 어두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 사진들을 보아하니 확실히 인정할 수밖에 없구나. 우리 잉글랜드와 북미왕국의 격차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이에 요크 공작 역시 형과 비슷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그래서 이번에 많이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인재들을 키울 필요가 있겠구나 싶었구요.”

북미왕국의 기술력이 자신들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은, 처음 북미왕국과 교류할 때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찰스 2세는 자국의 기술 발전을 위해 런던 왕립 학회를 설립하고, 왕립 학회에 속한 회원들을 계속 후원해왔고, 유럽의 여러 나라 가운데 가장 먼저 증기기관을 활용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왕립 학회에 속한 회원들 덕분이었다.

하지만 북미왕국을 직접 방문했던 요크 공작은,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북미왕국은 모든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되, 경쟁을 통해 학생들을 거르고 걸러, 정말 특출난 학생들만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면, 잉글랜드는 귀족이나 부유해 개인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이만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으니, 북미왕국과 비교하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물론 이런 상황은 다른 유럽 국가들도 비슷한 상황이었고, 그렇기에 크리스티안 5세나 칼 11세, 빌럼 3세 등은 아예 북미왕국 교육청과 연계해 북미왕국의 교육 체계를 자국에 이식하려 들었고.

그러니 요크 공작은 잉글랜드도 변하지 않으면, 북미왕국을 따라잡기는커녕, 북미왕국의 동맹국인 덴마크, 스웨덴, 네덜란드 따위에 뒤처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찰스 2세에게 이를 자세히 이야기하자, 찰스 2세 역시 동생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여기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도 북미왕국처럼 교육의 기회를 더 넓힐 필요가 있겠구나. 북미왕국처럼 모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어려울 테니 나라에서 운영하는 학교를 설립하는 것이 괜찮겠군.”

“그리고 그 공립 학교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아이들을 후원한다면, 우리 잉글랜드는 더욱 발전하게 될 겁니다.”

“그렇겠지. 이 건은 바로 진행해야겠구나.”

자신의 의견에 요크 공작이 동의하자 찰스 2세는 밝게 웃으며 바로 공립 학교의 설립을 진행하겠다고 이야기했고, 이에 요크 공작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리고...북미왕국과의 동맹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북미왕국의 동맹이라...”

요크 공작의 말에 찰스 2세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일단 그의 말을 듣겠다는 눈빛을 보내자 요크 공작이 말했다.

“형님께서도 아시겠지만, 북미왕국은 동맹국과 비동맹국을 대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더불어 북미왕국은 기술 유출에 무척 민감하지만, 동맹국들에 한해선 일부 기술을 넘겨주기도 하고요.”

“흐음. 그건 그렇지.”

“물론 아직은 대단한 기술을 넘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북미왕국은 더 많은 기술을 허용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북미왕국과는 동맹을 맺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형님.”

요크 공작의 말에 찰스 2세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겠지. 하지만 당장은 아니야.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는다면, 확장이 불가능해질 테니까.”

“아. 아프리카와 인도 지역에 더 많은 식민지를 확보한 후에 동맹을 맺으시려는 겁니까?”

요크 공작의 질문에 찰스 2세가 빙긋 웃었다.

“그렇지. 우리에겐 안정적인 시장이 필요하니까.”

북미왕국이 유럽에 진출하면서 잉글랜드의 대유럽무역 규모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북미왕국의 물건들의 품질이 더 좋고, 가격은 비슷하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해서 찰스 2세는 북미왕국이 다른 지역에 진출하기 전에 더 많은 안정적인 시장을 확보하고자 했고.

헌데 지금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는다면, 타국을 침공할 수 없고, 아프리카 동해안 지역이나 인도 지역은 기존 세력이 존재하는 만큼, 식민지 건설이 불가능해지는 터라, 일단 동맹은 최대한 미루겠다는 찰스 2세의 의중에 요크 공작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조금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말했다.

“헌데 북미왕국은 식민지도 부정적으로 보니 조금 걱정스럽습니다만...”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당장 북미왕국과 무역 경쟁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찰스 2세의 말도 일리가 있었기에 요크 공작은 잠깐 고민하다 말했다.

“그건 그렇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북미왕국이 아프리카 동해안과 인도 지역에 진출하기 전에 식민지를 건설할 수 있도록 저도 돕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고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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