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1
정성국이 그렇게 통신국장에게 적당히 부담을 주어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누군가가 집무실의 문을 두드리며 열었고.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돌려 집무실로 들어오려다 티테이블에 앉아 있는 정성국과 통신국장을 보고 움찔하며 동작을 멈춘 조용한 곰을 보고 말했다.
“어라? 자네는 또 웬일인가?”
“저야 보고드릴 것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만...밖에서 기다릴까요?”
“아니야. 들어오게. 통신국장도 막 일어날 참이었으니까.”
어차피 보고할 것은 다 보고했기에 통신국장 역시 정성국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바로 일어나 조용한 곰에게 눈인사를 건넨 후 집무실을 나갔고, 통신국장을 대신해 자리에 앉은 조용한 곰은 정성국이 건네주는 커피잔을 받아들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전하. 헌데 통신국장이 전하를 알현한 것은...”
보고할 내용이 많아 걸핏하면 집무실을 드나드는 청장들과는 달리, 국장들은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정성국을 찾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리고 지금 시기에 통신국장이 직접 정성국을 방문해 보고할 만한 내용은 하나뿐이라 조용한 곰은 잔뜩 기대 어린 눈빛으로 정성국을 바라보며 말을 흐리자, 정성국이 네 예상이 맞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포로나이까지 통신망이 구축되었다더군.”
“오오! 그렇습니까? 그거 정말 잘 되었군요!”
이번에 구축된 통신망을 가장 유용하게 사용하게 될 조직이 외무청이었기에 조용한 곰이 탄성을 내지르자 정성국이 피식 웃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지. 이젠 실시간으로 포로나이의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통신국은 2년 내로 태평양 방면은 개항장과 오아후 섬까지, 대서양 방면은 페로 제도와 아마존 항까지, 5년 내로는 동남아시아 지역과 남태평양 지역, 아프리카 지역, 그리고 유럽 지역까지, 7년 내로는 남은 인도 지역과 남미 지역까지 통신망을 구축할 예정이라고 하더군.”
통신국의 요청으로 조선과 협상했었던 외무청이었기에, 조용한 곰도 통신국이 더 많은 해저 통신선을 가설할 예정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빠르게 일을 진행할 거라곤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에 조용한 곰은 조금 당혹스러운 얼굴로 웃었다.
“...허허허. 포부가 놀랍긴 한데 7년 만에 정말 전 세계에 통신망을 구축할 수 있을까요?”
포로나이까지 통신망을 구축하는 데 걸렸던 시간을 생각해보면, 조용한 곰은 통신국의 목표가 너무 허황한 것 아니냐고 보는 것 같았다.
해서 영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중얼거리자, 정성국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쉽지는 않겠지. 하지만 통신국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서 가능하게끔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
“아. 그건 그렇군요.”
“그러니 외무청에서도 통신국을 최대한 돕도록 하게. 해저 통신선의 관리 문제 때문에 구간을 잘게 쪼개 해저 통신선을 가설할 계획이라, 이를 위해 정말 여러 나라와 협상해야 할 것 같으니까.”
통신국의 계획처럼 전 세계에 통신망을 구축하려면, 각국과 협상을 해야 했고, 그러니 외무청의 협조는 필수였다.
해서 정성국은 나중에 따로 이를 이야기할 생각이었고.
그러니 조용한 곰을 만난 김에 이를 거론하며 협조를 당부하자 조용한 곰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얼굴로 즉각 대답했다.
“아. 그야 물론이지요. 전 세계에 통신망이 구축되면 저희가 가장 혜택을 볼 테니 적극적으로 돕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그보다 무슨 일을 보고하기 위해 온 건가?”
정성국의 물음에 조용한 곰이 답했다.
“아. 마침내 청나라와 준가르의 화친 협상이 마무리되었다고 합니다.”
“어? 그래? 청나라와 준가르 사이에 의견 차이가 커서 협상의 진전이 거의 없다고 하지 않았나?”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서 조금 당황했다.
이번 협상으로 중국 대륙의 분할이 확정되는 만큼, 정성국은 투로시노가 보내오는 보고서를 틈틈이 확인했었고, 그렇기에 청나라와 준가르의 협상이나, 청나라와 동녕국, 주나라 간의 협상이 모두 지지부진하다고 알고 있었기에.
해서 정성국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바로 질문을 던지자 조용한 곰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예. 분명 그랬지요. 해서 청나라와 준가르의 협상장에 나가 있는 아국의 외무청 관리가 개입했고, 아국의 중재에 따라 자신들의 의견만 내세우던 청나라와 준가르 모두 한 발짝씩 물러나 차분히 협상을 진행하면서, 결국 평화조약을 체결했다고 합니다.”
“한 발짝씩 물러났다면,..?”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자세히 이야기해보라는 듯 재촉하자 조용한 곰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입을 열었다.
“일단 청나라는 이미 준가르가 장악하고 있는 할하부의 영역을 완전히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그야 당연하지. 청나라가 당장 준가르를 물리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만큼, 할하부의 영역인 몽골 지역은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헌데 문제는 그게 아니잖나. 청나라 밑으로 들어간 할하부 좌익과 차하르부를 비롯한 몽골 부족들이지.”
준가르의 갈단 칸이 원한 것은 몽골 제국의 재건이었고, 그렇기에 갈단 칸은 과거 몽골 제국의 일원이었지만, 지금은 청나라에 완전히 복속된 할하부 좌익과 차하르부를 복속시키길 원했다.
몽골 부족을 모두 복속시켜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 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준가르의 요청을 청나라는 들어줄 수 없다는 점이었고.
“예. 허나 청나라로서는 자신의 품 안으로 들어온 휘하 부족을 준가르에 넘겨줄 수는 없었습니다. 휘하 부족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만방에 알리는 꼴이니까요. 더불어 차하르부를 포기하면 내몽골 지역마저 준가르에 넘겨주는 셈이기도 하고요.”
할하부의 영역이 몽골 지역이라면, 차하르부의 영역은 내몽골 지역이었다.
그러니 준가르가 원하는 대로 차하르부를 준가르로 보내면, 자연히 차하르부의 영역인 내몽골 지역 역시 준가르의 영역이 되는데, 그렇게 되면 양국의 국경은 남하하게 되니 북경을 수도로 두고 있는 청나라로서는 여러모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번 평화조약은 북미왕국이 중재하는 만큼, 준가르가 이 평화조약을 깨고 청나라를 기습 공격할 가능성은 무척 적지만, 또 모르는 일 아닌가.
그러니 협상장의 청나라 관리들은 절대 불가를 외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청나라와 준가르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대립하며 협상이 길어지자 이대로 지켜보면 안 되겠다 싶었는지 중재를 맡은 외무청 관리가 개입했고, 결국 준가르는 청나라에 복속된 할하부 좌익과 차하르부를 비롯한 몽골 부족들의 종주권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대가는?”
조용한 곰의 말에 잠깐 고개를 갸웃하던 정성국이 무언가를 눈치채고 바로 묻자 조용한 곰이 빙긋 웃으며 답했다.
“청나라 황제가 몽골 제국의 대칸이라는 칭호를 포기하고, 보유하고 있던 원나라의 옥쇄를 넘겨주기로 했습니다.”
“헉! 원나라의 옥쇄를? 그게 정말인가?”
북미왕국의 중재로 협상이 시작되면서 전투는 멈췄지만, 그 전까지 불리했던 것은 분명 청나라였다.
그러니 협상에서도 청나라는 준가르에 밀릴 수밖에 없었고.
헌데도 준가르가 청나라에 복속된 몽골 부족들의 종주권을 포기했다는 것은, 그만큼 청나라가 대단한 조건을 걸었다는 것을 눈치챈 정성국이었지만, 청나라에서 원나라의 옥쇄마저 포기할 줄은 미처 몰랐기에 정성국은 기겁했다.
원나라의 옥쇄는 몽골 제국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물건이었기에.
그렇기에 청나라는 차하르부를 완전히 복속시켜 옥쇄를 얻은 후 몽골 제국의 계승자를 자처하고, 스스로를 몽골 제국의 대칸이라고 칭할 수 있었고, 다른 몽골 부족들도 이를 인정했다.
그렇기에 정성국이나 외무청에서는 청나라가 준가르와의 협상에서 몽골 제국의 대칸이라는 칭호를 포기할지언정 이 원나라의 옥쇄는 넘겨주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원나라의 옥쇄를 준가르에 넘겨주는 순간, 청나라는 더는 몽골 제국의 계승자라고 칭할 수도 없었고, 준가르가 몽골 제국의 정당한 계승자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셈이니까.
해서 정성국이 기겁하며 되묻자 조용한 곰이 말했다.
“예. 솔직히 청나라를 압박한 외무청 관리도 청나라에서 원나라의 옥쇄마저 포기할 줄은 몰랐답니다. 다만, 준가르가 청나라 휘하의 몽골 부족들을 포기하도록 만들고, 현재 준가르가 장악하고 있는 내몽골 지역에서도 철수하게 설득하려면 몽골 제국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원나라의 옥쇄만큼 좋은 패가 없지 않습니까. 해서 청나라 황제는 어차피 몽골 제국의 대칸 칭호를 포기하는 김에 원나라의 옥쇄도 넘길 테니, 이를 좋은 조건에 넘기라고 한 모양입니다.”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은 강희제가 명분을 버린 대신 실리를 취했음을 깨닫고 역시 만만치 않은 인물이라고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거 참...원나라의 옥쇄로 청나라 휘하의 몽골 부족을 사들인 셈인가.”
“어떻게 보면 그렇지요. 그리고 청나라에서 준가르에 전쟁 배상금도 지급하기로 했고요.”
“전쟁 배상금?”
일단 이번 전쟁은 시종일관 준가르가 우세했다.
청나라는 저 몽골 지역부터 북경 인근까지 밀린 셈이었고.
그러니 두 나라가 화친을 맺게 되면, 청나라가 준가르에 재물을 내어 줄 수밖에 없었고.
다만 보통 동양에서는 전쟁 배상금이라는 단어보다 예물, 공물, 조공 등의 단어를 사용했기에 정성국이 고개를 갸웃하자 조용한 곰이 설명했다.
“아. 물론 준가르야 청나라에 조공을 받고 싶어 했습니다. 더불어 청나라의 입조도 원했고요. 허나 그걸 청나라가 허용하겠습니까.”
“준가르에 입조하고 조공을 바친다면 준가르가 청나라의 상국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리는 셈이니 절대로 허용하지 않겠지.”
정성국의 대꾸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렇습니다. 해서 청나라는 그런 조건이라면 아예 협상을 깨겠다며 강하게 나왔고, 이미 남쪽에서 동녕국, 주나라와도 화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준가르로서는 청나라의 협상이 깨지는 것이 내심 부담스러웠던 모양입니다. 해서 준가르가 한 발짝 물러나면서, 입조는 없던 일로, 그리고 조공은 전쟁 배상금이라는 단어로 대체되었지요.”
“어...단어를 바꿔 최소한의 체면은 지켰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전하.”
보통 전쟁 배상금은 패전국이 승전국에 배상하기에, 청나라가 준가르에 전쟁 배상금을 내어준다는 뜻은, 청나라가 패전국이라는 것을 널리 알리는 것과도 같다고 생각되기에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다만, 청나라의 입장에선 조공, 공물, 예물 같은 단어보다야 전쟁 배상금이 나아 보일 수 있겠구나 싶었던 정성국은 애써 고개를 끄덕인 후 중얼거렸다.
“아무튼, 준가르와 평화조약을 체결했으니 청나라는 한숨 돌린 셈이군.”
“그렇지요. 그리고 준가르와 화친을 맺었으니, 동녕국, 주나라와의 협상에서 더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되었고요.”
그동안 청나라는 여러 방면의 전선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해야 했기에, 그만큼 병력과 신경을 분산시켜야만 했고, 그렇기에 전쟁은 불리해져만 갔으며, 이번 협상에서도 어떻게든 화친을 맺어야 했기에 협상에서도 어느 정도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허나 준가르와의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북쪽의 전선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으니, 청나라로서는 동녕국, 주나라와의 협상에서 조금 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청나라와 동녕국, 주나라와의 협상은 더욱 길어질 것 같다고 조용한 곰이 이야기하자 정성국이 상황을 알만 하다는 듯 웃었다.
“아. 그쪽은 여전한가 보군?”
“그렇습니다. 동녕국의 욕심이 워낙 커서 말입니다.”
북미왕국과 유럽 국가들이 중재에 나섰기에 청나라나 주나라, 동녕국 모두 평화조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영토.
그리고 주나라는 지금의 영토에 나름 만족했다.
물론 호북성 전체를 확보하면 더 좋겠지만, 장강을 경계로 영토를 나누는 것도 나쁠 것은 없었고.
문제는 동녕국이었다.
동녕국은 영토가 제일 작았기에, 그리고 이번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나면, 더는 영토를 확장하기 어렵다는 것을 직감했기에, 어떻게든 더 많은 영토를 확보하고자 했다.
해서 동녕국은 장강을 경계로 청나라와 국경을 나누고 싶어했는데, 그렇게 되면 청나라
는 어차피 포기하려고 했던 광동성 뿐만 아니라, 절강성 전체, 강소성과 안휘성의 일부마저 떼어줘야 했고, 이 지역에 소주와 항주, 남경 같은 중요한 경제 도시들이 몰려 있었으니, 절대로 이를 허락할 수 없었고.
해서 협상이 꽤 오랫동안 지지부진할 것 같다는 조용한 곰의 이야기에 정성국이 혀를 찼다.
“쯧. 상황을 보아하니 욕심을 부리다 더 안 좋은 조건으로 조약을 체결할 것 같은데...아무튼, 알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