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750화 (750/850)

750화

요크 공작을 마지막으로 새한성을 방문했던 친선 사절단의 대표들을 모두 배웅한 정성국은 그날로 곧바로 집무실에 처박혀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보고서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느라 새한성을 완전히 비웠을 때와는 달리, 계속 새한성에서 머물렀기에 틈틈이 중요한 보고는 받아 왔기에, 정성국이 시급히 처리해야 할 보고서는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해서 처음엔 비교적 여유로운 얼굴로 보고서를 처리했던 정성국이었지만, 열심히 보고서를 처리해도 줄어든 티가 안 나는 보고서 더미에 점차 지치기 시작했고.

그때 통신국장이 집무실을 방문하자, 정성국은 한숨을 돌릴 겸 자리에서 일어나 통신국장을 환영하며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고, 정성국이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던 통신국장은 조심스럽게 정성국에게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피곤해 보이십니다. 전하.”

이에 잠깐 커피 향에 취해있던 정성국은 걱정이 가득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통신국장을 보고 피식 웃고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 괜찮네. 이 정도야 뭐...익숙하니까. 그보다 갑자기 자네가 무슨 일인가. 아니지. 자네가 방문했다는 건...”

통신국장이 예정도 없이 정성국의 집무실을 직접 방문할만한 일은 하나뿐이었기에 정성국은 기대가 가득한 시선으로 통신국장을 바라보았고,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통신국장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예. 전하께서 예상하신 것처럼 해저 통신선 가설 공사가 모두 완료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방문했습니다.”

“오! 드디어 해저 통신선의 가설이 완전히 끝났단 말이지?”

통신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역시나 하는 얼굴로 탄성을 질렀지만, 오히려 통신국장은 정성국의 말에 움찔한 후 면목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공사 일정을 맞추지 못해 송구합니다. 전하.”

“응? 아...”

그런 통신국장의 반응에 잠깐 고개를 갸웃한 정성국은 곧 통신국장이 왜 저렇게 저자세인지 이해했다.

작년 겨울에 새남포-하이다 섬 구간을 해저 통신선을 가설해 하이다 섬까지 성공적으로 통신망을 구축한 이후, 연구청에서 해저 통신선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인계받은 통신국은 의욕적으로 포로나이까지 해저 통신선 가설 공사를 준비했다.

그리고 해가 바뀌고 날씨가 풀리기 시작하자 통신국장은 포로나이까지 해저 통신선을 가설하는 데는 3개월이면 충분하다는 호언장담과 함께 공사를 시작했고.

헌데 순조롭게 공사가 진행되었던 새남포-하이다 섬 구간 해저 통신선 가설 공사와는 달리, 통신국에서 맡은 포로나이까지의 해저 통신선 가설 공사는 각종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해저 통신선을 가설하던 배가 파도 때문에 밀려 암초에 걸리기도 하고, 기껏 가설한 해저 통신선이 불량이거나 혹은 끊어져 있기도 했고.

이 때문에 통신국장의 장담과는 달리 공사 기간이 무척 지연되었으니, 통신국장은 정성국의 말을 질책으로 받아들이고 쭈그러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이해한 정성국은 괜찮다는 듯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 오해하지 말게. 난 딱히 자네를 질책할 생각 없으니.”

“예?”

“뭐 공사를 진행하다 보면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공사 일정이 늦춰질 수도 있는 거지. 오히려 공사 일정을 어떻게든 맞추겠다고 무리했다가 사고가 나는 것보다는 낫네.”

그러나 통신국장은 여전히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긴 합니다만, 봉길 섬-카무이 반도 구간의 해저 통신선 불량을 미리 파악하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저희의 잘못인지라...”

“됐네. 물론 검사 단계에서 불량을 찾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긴 한데...연구청장의 보고를 들어보니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범위였으니. 그보다 해저 통신선 가설 공사가 끝났으니, 포로나이까지 통신망 구축이 끝난 건가?”

전생처럼 검사 도구들이 완벽한 것도 아니다 보니, 통신국에서 해저 통신선의 품질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였다.

특히, 보고서에 따르면 검사 단계에서 확인을 위해 전기를 흘려보냈을 때는 별문제가 없었다고 했으니.

해서 정성국은 이를 미리 파악하지 못한 통신국을 질책하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며 넘긴 후 바로 질문을 던졌고.

“그렇습니다. 포로나이까지 통신망 구축이 끝나 이제부터 본토에서도 포로나이에 연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통신국장의 대답에 다시 한번 탄성을 지르며 바로 질문을 던져대기 시작했다.

“오오. 그래? 그럼 시험 통화도 해봤고?”

“물론입니다. 해저 통신망 구축이 끝났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포로나이의 통신국 지부장과 통화를 했지요.”

“어떻던가?”

“음. 거리가 거리라 감도가 조금 떨어지는 것 같기는 했습니다만, 말을 주고받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포로나이의 외무청에서 대아시아 외교를 총괄했기에 포로나이와의 통신은 무척 중요했고, 이 때문에 그동안 북미왕국에서는 쾌속선도 개발하고, 또 비행기를 개발하고 성능을 개량하며 더욱 빠르게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처음에만 하더라도 소식을 전하기까지 두 달 가까이 걸렸던 포로나이의 소식을 어느덧 하루 만에 전달받을 수 있게 되었고.

헌데 해저 통신선을 이용해 포로나이까지 통신망이 구축되면서, 이젠 실시간으로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하니, 정성국은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해서 정성국은 자리에서 번쩍 일어나 그동안 공사가 지연되어 내심 마음고생을 했을 통신국장의 어깨를 다독이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하하하. 수고했네. 수고했어.”

“아닙니다. 전하.”

정성국은 겸양하는 통신국장의 어깨를 다시 한번 다독여준 후, 어느덧 다 내려진 커피를 따라 통신국장에게 건넸고, 통신국장은 황송한 얼굴로 이를 받아든 후 정성국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앞으로의 일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호오. 선박을 늘려 태평양과 대서양에서 동시에 해저 통신선을 가설하겠다고?”

“그렇습니다. 아국의 해외 영토가 계속해서 증가하면서, 그만큼 해저 통신선을 가설해야 할 영역은 늘어나는 데, 고작 8척만으로는 어느 세월에 해저 통신선을 가설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서 말입니다.”

이에 정성국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북미왕국의 해외 영토가 늘어나고,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인도 지역까지 진출하거나 혹은 진출할 예정이었으니, 빠르게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이 지역들에도 해저 통신선을 가설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 정성국은 해저 통신선의 가설을 위해 개조한 선박을 늘려야 한다는 통신국장의 주장에 동의했고.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어 정성국이 바로 질문을 던졌다.

“근데 해저 통신선 가설을 위한 선박만 늘린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지 않나. 그 선박에 실을 해저 통신선을 생산하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닌가?”

1년 전만 하더라도 구리가 부족해 연구청에서 해저 통신선을 이용한 통신망 구축 기술을 개발하고도, 바로 통신망을 구축하지 못했었던 만큼, 정성국은 이 부분이 걱정되어 지적하자 통신국장은 슬쩍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작년에 해저 통신선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연구청에서 넘겨받은 후 통신국장과 통신국 관리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해저 통신선을 생산하는 공방의 규모를 대폭 키워 해저 통신선의 생산량을 늘린 것이기에.

북미왕국이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인도 지역까지 진출할 계획이라는 것을 통신국장이나 통신국 관리들도 잘 알기에, 그리고 이 지역까지 해저 통신선을 가설해 통신망을 구축할 나라는 북미왕국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미리 이를 대비한 것이다.

해서 통신국장은 커피를 마시며 이를 자세히 설명하자 정성국은 통신국의 행보에 만족한 표정을 지었고,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통신국장이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더불어 전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왕실 상단의 투자로 스웨덴의 구리 생산량도 꽤 늘었습니다.”

“아. 이번에 칼 11세에게 듣긴 했지. 새로운 구리 광산을 개발했고, 증기기관을 이용해 기존의 구리 광산의 채굴량도 대폭 늘어났다고 하던데...”

왕실 상단은 스웨덴의 광산에 투자해 여러 광산을 새로 개발했는데 그중에는 구리 광산도 있었다.

여기에 스웨덴은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으며 증기기관 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고, 덕분에 기존의 광산에서도 더 깊은 곳까지 채굴할 수 있게 되어 광물 수출량은 대폭 늘어났다.

그러니 망가졌던 스웨덴 경제가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하고, 동시에 고갈되었던 스웨덴의 재정도 조금씩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고.

해서 이번에 새한성을 방문한 칼 11세는 정성국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와 함께, 북미왕국의 왕실 상단이 스웨덴 지역에 더 많은 투자를 해주기를 바라며 투자를 요청했고, 정성국은 스웨덴 지역에 양질의 광물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기에, 기꺼이 추가로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니 앞으로는 스웨덴에서 더 많은 광물을 수입할 수 있게 되고, 구리 부족 문제를 겪지도 않을 것이라고 짐작한 정성국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흠. 헌데 바로 모든 지역에 해저 통신망을 구축할 수야 없을 테고...”

“그렇지요. 해서 일단 태평양 방면의 경우는 포로나이-삿포로-해삼위-개항장 구간에 해저 통신선을 가설해 개항장까지 통신망을 구축하고, 동시에 새김포-오하우 섬 구간에도 해저 통신선을 가설할 생각입니다.”

통신국장의 말에 정성국은 일단 반색했다.

하와이 제도는 북미왕국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기에 비행기도 배치하지 못했고, 덕분에 다른 지역과는 달리 소식을 주고받는 것이 느린 만큼, 해저 통신선을 깔아 하와이 제도의 중심지인 오하우 섬과 통신망이 연결된다면, 하와이 제도의 통치와 호주 연합과 남태평양의 여러 군소부족을 관리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또한, 조선은 아직 북미왕국에 전권 대사를 파견하고 있지 않기에,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개항장까지 해저 통신선을 까는 것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다만 개항장까지 통신망을 구축하는 데, 홋카이도의 거점 항구인 삿포로는 몰라도, 굳이 해삼위를 거칠 필요가 있나 싶어 정성국이 이를 묻자 통신국장이 빙긋 웃으며 답했다.

“아. 가능한 구간을 쪼개는 것이 해저 통신선의 관리하기 쉬워서 말입니다. 물론 외무청의 도움을 받아 조선 사절단과는 협상을 끝냈습니다.”

해삼위는 명백히 조선의 도시이니만큼, 북미왕국이 이곳에 해저 통신선을 가설하려면 당연히 조선과 협의할 필요가 있었다.

더불어, 나중에 동남아시아 지역까지 통신망을 구축하려면 개항장에서 동남아시아의 거점 항구 중 하나인 필리핀 북부의 일로카노 항까지 해저 통신선을 가설해야 하는데, 거리가 꽤 멀어 나중에 해저 통신선의 관리를 생각하면 부산, 제주도 같은 곳을 거치는 것이 나아 보였고.

해서 외무청에서 나서서 조선 사절단과 해저 통신선 가설 문제에 대해 협의했고, 결국 협상을 체결했다는 통신국장의 자세한 설명에 정성국이 피식 웃었다.

“뭐 조선 사절단에서야 좋아했겠지. 아국의 통신망을 빌려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을 테니.”

정성국의 말처럼 북미왕국이 예정대로 통신망을 구축하면, 한양에서 기차를 이용해 부산으로 소식을 전하고, 부산에서 바로 해삼위까지 소식을 전달할 수 있게 되니, 조선 사절단으로서는 북미왕국의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이 사실이었기에 통신국장이 웃으며 그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래. 태평양 방면은 그렇다 치고, 대서양 방면은?”

이에 통신국장은 품에서 대서양 방면의 지도를 꺼내 티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손으로 한 곳씩 가리키며 설명했다.

“대서양 방면의 경우 일단은 아카디아-뉴펀들란드 섬-그린란드-아이슬란드-페로 제도 구간, 그리고 마이애미-히스파니올라 섬-푸에르토리코 섬-생크루아 섬-아마존 구간에 해저 통신망을 구축할 생각입니다.”

통신국장의 설명에 정성국은 커피를 마시며 지도를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나쁘진 않아. 헌데 생각보다 통신망 구축 범위가 넓어서 시간은 꽤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지금 통신국장의 계획대로 태평양 방면은 새한성과 하와이 제도까지, 대서양 방면은 페로 제도와 카리브 해까지 통신망을 구축하려면 대략 계산해봐도 약 15000km 정도의 해저 통신선을 깔아야 한다.

그러니 만만치 않은 시간이 걸릴 것 같고, 그렇게 통신망을 구축하면 다시 태평양 방면은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지역까지, 대서양 방면은 유럽과 아프리카 지역까지 해저 통신선을 또 깔아야 하니 어느 세월에 통신망을 구축할 수 있을지 막막해 정성국이 조금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고.

이에 통신국장이 씩 웃으며 자신만만하게 말하려다가, 문득 이번에 호언장담했다가 마음고생 했던 것을 떠올리고 자신감은 던져버리고 조심스레 말했다.

“전하께서 생각하시는 것처럼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실무진과 논의해 본 결과, 늦어도 2년이면 충분하다는 계산이 나왔으니까요. 물론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을 때의 이야깁니다만...”

“호오. 그래? 알겠네. 전폭적인 지원을 해줄 터이니, 기대하지.”

정성국이 빙긋 웃으며 통신국장을 바라보자, 통신국장은 속으로 기간을 더 늘릴 것을 잘못했다고 한탄하며 대답했다.

“아...알겠습니다. 전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