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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747화 (747/850)

747화

“호오.”

시종이 건네준 와인을 마시던 정성국이 묘한 감탄사를 터트리자,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크리스티안 5세가 고개를 갸웃했다.

“음? 왜 그래?”

이에 정성국은 만찬장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 좀 봐.”

“응? 어라?”

크리스티안 5세가 정성국이 가리킨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동생인 울리카와 스웨덴의 국왕인 칼 11세가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이 보여 순간 움찔했고.

그런 크리스티안 5세의 반응을 보고 정성국이 히죽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묘하게 분위기 좋아 보이지?”

“그...그렇네? 흐음...”

크리스티안 5세는 물끄러미 칼 11세와 대화하는 동생을 바라보며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고, 정성국은 그런 크리스티안 5세를 보며 슬쩍 물었다.

“표정이 왜 그래? 좋지 않아?”

그 말에 크리스티안 5세는 정성국에게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고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뭐랄까. 너 저번부터 은근히 울리카를 저 녀석이랑 엮는 것 같은 느낌인데?”

“맞아.”

“응?”

“네가 그랬잖아. 울리카를 슬슬 결혼시켜야겠다고. 그리고 칼 11세 정도면 괜찮은 신랑감 아닌가? 둘이 나이도 엇비슷하고, 이야기해보니 성격도 괜찮고.”

정성국이 처음 칼 11세를 울리카의 신랑감으로 괜찮은 것 아니냐고 이야기할 때는 그동안의 악연 때문에 인상을 찌푸렸던 크리스티안 5세였지만, 정성국의 말을 듣고 보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특히, 칼 11세는 자신이 북미왕국에 도착한 다음 날 북미왕국에 도착했기에 자주 마주쳤었고, 만찬장이나 연회장에서 몇 번 이야기를 나눠보니 스웨덴의 국왕으로서 자신을 간혹 견제하긴 했지만, 사람 자체는 괜찮았고.

해서 크리스티안 5세는 뭐라고 반박하려다가 입을 닫고 생각에 잠겼고, 그런 크리스티안 5세를 보고 정성국이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덴마크나 스웨덴 둘 다 우리와 동맹을 맺었으니 더는 싸울 일 없겠지만...그동안 싸워왔던 것 때문에 어느 정도 앙금은 남아 있을 것 아니야?”

“...흠. 울리카와 칼 11세의 결혼을 통해 양국의 앙금을 털어내라?”

“응. 인근 국가와는 우호적으로 지내는 것이 낫잖아?”

“그렇긴 한데...”

“그리고 하얀 들꽃이 울리카와 친해진 것 알지?”

울리카가 첫날 만찬장에서 만난 하얀 들꽃과 친해져 매일같이 궁을 드나든다는 것 정도는 크리스티안 5세도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이 말했다.

“해서 하얀 들꽃이 이것저것 물어본 모양인데...울리카는 딱히 좋아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더라고. 그리고 신랑감으로 자신과 비슷한 연배의 사람이면 좋겠다고 이야기했고.”

“그래?”

칼 11세는 울리카보다 1살 연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크리스티안 5세가 다시 고개를 돌려 한쪽에서 화기애애하게 대화하고 있는 울리카와 칼 11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정성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그래서 내가 슬쩍 울리카와 칼 11세를 엮은건데...지금보니 둘 다 서로에게 호감은 있어 보이는 것 같은데?”

크리스티안 5세는 울리카를 잘 알았고, 그렇기에 지금 울리카가 칼 11세를 보고 웃는 저 모습이 예의상 웃는 것이 아니라 정말 좋아서 웃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크리스티안 5세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휴우. 네 말이 맞네. 저렇게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확실히 울리카는 저 녀석에게 호감이 있는 것 같아. 그리고...”

“칼 11세도 울리카에게 호감이 있어 보여. 그제부터 연회 때마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면 말이야.”

정성국은 전생에서 칼 11세와 울리카가 결혼했다는 것과 금슬이 좋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다시 한번 슬쩍 둘을 엮었고.

이에 크리스티안 5세는 뚱한 표정으로 칼 11세를 바라보다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쯧. 뭐 저 녀석 정도면 울리카의 남편감으로 적당하긴 한데...울리카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보고 결정해야겠어.”

“그래. 그러라고.”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자 크리스티안 5세는 들고 있던 와인잔을 들어 단숨에 와인을 비우곤 이야기의 주제를 돌렸다.

“그보다 오늘 새한성 대학교를 방문해보고 결심했어.”

“뭘?”

“우리도 북미왕국처럼 교육체계를 바꿔야겠다고. 처음엔 그저 더 많은 학자를 키우기 위해 대학교를 추가로 건설하면 충분할 것 같았는데, 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거론 안 될 것 같아.”

크리스티안 5세의 대답은 정성국이 원하는 바였기에 정성국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내가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 북미왕국의 대학생들은 수많은 학생 중에서 고르고 고른 최고의 인재들이야. 그러니 배움도 빠르고 적응도 빠르지. 그에 반면 유럽의 경우는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계층이 조금 한정되어 있으니 아무래도...”

“그래. 대학교를 추가로 건설해 지식인의 수를 늘린다 하더라도 질적 향상이 될 것 같지는 않아 보여서 말이지. 문제는 북미왕국처럼 의무교육을 하려면 엄청나게 돈이 깨질 것 같아 엄두를 못 내겠다는 건데...”

크리스티안 5세가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으로 말을 흐리자, 정성국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 그렇겠지. 학교를 짓고, 선생들을 고용하는 데만 해도 엄청난 돈이 들어갈 테니까. 다만 지금의 덴마크라면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지 않아? 우리와 동맹을 맺은 덕분에 군비를 대폭 감축할 수 있었고, 농업 연구소의 도움으로 세인트토마스 섬에서 카카오 재배에도 성공해 제법 짭짤하게 벌고 있잖아?”

정성국의 말대로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은 덕분에, 타국의 침공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 덴마크는 가장 먼저 군비를 축소했다.

용병들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병력 외엔 대부분 전역시켜 군비를 극단적으로 줄인 것이다.

여기에 정성국이 보내준 농업 연구소 연구원들의 조언으로 덴마크의 카리브해 영토인 세인트토마스 섬에 카카오 재배에 성공하고, 플랜테이션 농업을 통해 대량으로 카카오를 수확할 수 있게 되면서, 충분한 이득을 얻게 되었고.

그뿐만 아니라, 페로 제도에 있을 때 정성국의 조언을 받아 토지를 개혁하고, 축산 연구소의 조언을 통해 축산업을 더욱 발전시키면서 베이컨, 소시지, 치즈, 버터의 생산량을 대량으로 늘릴 수 있었고, 이를 주변국에 팔아 제법 큰 이득을 거두었다.

그러니 정성국은 크리스티안 5세의 말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끙...그렇긴 한데...이번에 덴마크 왕실 함대를 재건할 생각이거든.”

“덴마크 왕실 함대?”

“그래. 대프랑스 전쟁 당시 프랑스 해군과의 몇 차례 해전에서 꽤 큰 피해를 입었으니까.”

“아...”

북미왕국 해군에 거하게 깨졌던 프랑스 해군은, 루이 14세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잃었던 함대를 복구할 수 있었는데, 뉴펀들랜드 해전에서 북미왕국 해군을 상대하며 깨달은 바가 있었기에, 기존의 전열함보다 더 강력한 방어력과 작열탄으로 무장한 함대를 만들었고.

덕분에 네덜란드, 덴마크 해군은 된통 당했다.

그나마 네덜란드 해군은 프랑스 해군과 한 번 상대해보고 안 되겠다 싶었는지 바로 도망쳤지만, 덴마크 해군의 경우 수도를 지켜야 했기에 끝까지 맞서 싸웠기에 더더욱.

이를 떠올린 정성국이 기억났다는 듯 탄성을 지르자 크리스티안 5세가 계속 설명했다.

“왕실 함대는 전쟁이 끝난 이후부터 재건하려 했어. 다만, 전쟁이 끝난 직후에는 왕실 함대를 재건할 정도로 자금 사정이 여유롭지도 않았고, 또, 기존의 전열함을 건조해봐야 의미 없다는 것을 프랑스 해군과의 해전에서 확실하게 깨달았기에, 북미왕국의 전선을 참고해 새로운 군함을 연구해왔었고 나름대로 성과도 있었거든. 해서 슬슬 왕실 함대를 재건하려고 했었는데...”

“흠. 굳이 지금 함대를 재건할 필요가 있어?”

덴마크 왕실 함대를 재건하고 싶어하는 크리스티안 5세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일단 덴마크의 수도는 해안가에 자리 잡고 있어 바다로의 공격이 취약한 편이었고, 외레순 해협을 통해 매년 엄청난 숫자의 배가 드나들었기에 불안하기도 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덴마크가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은 이상, 그리고 페로 제도에 분함대가 배치되어 있고, 페로 제도에서 덴마크의 셀란 섬까지 하루면 이동할 수 있기에, 덴마크를 선제공격하는 나라는 없을 거라 보았고.

그러니 정성국은 돈이 어마하게 들 것이 분명한 왕실 함대의 재건은 나중으로 미루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시선을 보내자 크리스티안 5세는 나도 그러고 싶다는 눈빛을 보내며 설명했다.

“아. 물론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었으니, 타국에 침공받을 일은 없긴 해. 문제는 해적이지.”

“해적?”

정성국이 뜬금없다는 얼굴로 크리스티안 5세를 바라보았을 때, 크리스티안 5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최근에 대서양을 횡단하는 배들을 노리는 해적들이 꽤 설치고 있거든. 그리고 이놈들은 건드려도 뒤탈 없을 나라들을 주로 공격하는데 우리 덴마크도 그중 하나야. 대프랑스 전쟁으로 왕실 해군이 거의 박살났다는 것이 널리 알려졌으니까.”

“아. 그래?”

일부 해적이 북아프리카 해안으로 이동해 지중해에도 해적이 득실거린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들이 대서양을 횡단하는 배마저 노릴 줄은 몰랐기에 정성국이 의외란 표정을 짓자 크리스티안 5세가 말했다.

“응. 지금까지 덴마크 서인도회사의 상선도 몇 번 털렸어. 그것 때문에 왕실 해군을 재건할 수밖에 없어. 아니면...”

“...아니면?”

“북미왕국 해안가를 따라 이동하는 항로를 이용할 수 있게 허락해줬으면 좋겠어.”

해적이나 사략선들은 아프리카 북서 해안가에 자리 잡고 대서양을 횡단하는 배를 노리는 만큼, 덴마크의 배들이 세인트토마스 섬에서 북미왕국 동해안을 따라 아카디아까지 이동한 후, 뉴펀들란드 섬, 아이슬란드, 페로 제도를 거쳐 덴마크로 이동하는 항로를 이용할 수 있다면 해적이나 사략선들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아카디아에서 페로 제도까지는 4함대가 주변 해역을 순찰하기에, 그리고 페로 제도에서 덴마크까지는, 북미왕국의 수송선, 상선들이 자주 이용하는 항로이다 보니 해적들이 얼씬도 하지 못하니 말이다.

문제라면 북미왕국은 본토 방어를 위해 북미 서해안, 동해안에 타국의 배가 접근하는 것을 막아왔었기에 이 항로를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점이었고.

해서 크리스티안 5세는 정성국에게 이를 슬쩍 풀어달라고 요청하자 정성국은 잠깐 생각해보고 크게 어려울 것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뭐 동맹이니 그 정도야 허용해 줄게. 중간에 정박하고 잠시 쉴 수 있도록 항구도 두세 개 개방해주지.”

“오! 정말?”

“대신 상거래는 불가.”

“에이. 어차피 팔 것도 없는데 뭐.”

세인트토마스 섬에서 수확하는 카카오는 전량 덴마크로 가져와, 초콜릿을 만들어 판매하고, 그 외의 작물들 역시 덴마크에 가져와 파는 것이 더 이득인 만큼, 전혀 상관없다는 얼굴을 한 크리스티안 5세가 정성국의 말에 활짝 웃자 정성국이 덧붙였다.

“그리고 내가 교육청에 따로 이야기해둘 테니까, 덴마크의 교육체계를 개편할 때 도움 좀 받도록 하고.”

“오! 그것도 부탁하려 했는데...정말 고맙다. 근데 교육과 관련해서 하나만 더 부탁해도 될까?”

“무슨 부탁?”

정성국이 말해보라는 눈빛을 보내자 크리스티안 5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코펜하겐 대학교를 새한성 대학교처럼 개편하려면, 북미왕국의 학문을 제대로 익힌 학자들이 필요해. 그러니...”

“야. 대학생을 가르칠 수준의 선생은 우리도 부족해.”

정성국은 크리스티안 5세의 말을 끊고 미리 선을 긋자 크리스티안 5세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정도까진 바라지도 않았어.”

“그럼?”

“유학생 좀 받아줘.”

“유학생?”

“그래. 똑똑한 인재들을 유학생으로 보내고, 그들이 북미왕국의 여러 학문을 익혀 복귀하면 그들을 대학교수로 삼아 대학교를 운영하려고 말이야.”

그 말에 정성국은 조금 고민한 후 말했다.

“흠. 당장은 어려워. 우리도 제대로 교육받은 인재들이 워낙 부족하거든. 다만, 지금 건설 중인 대학교들이 완공되면, 입학생의 정원이 배로 늘어나니 그때 덴마크 유학생을 허락하지. 단 일부 학부는 불가하고.”

어차피 북미왕국에서 모든 학문을 개방할 거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고, 1년 정도는 충분히 기다릴 수 있었기에 크리스티안 5세는 정성국의 대답에 활짝 웃었다.

“하하하. 정말 고마워. 역시 내가 친구는 잘 뒀네.”

“퍽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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