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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746화 (746/850)

746화

두루미급 비행기의 커다란 좌석에 파묻혀 잠을 자고 있던 크리스티안 5세는 누군가가 자신을 흔드는 것 같았기에 어렴풋이 잠에서 깼고.

“오라버니! 오라버니!”

잔뜩 들뜬 여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어휴. 울리카. 안 피곤하냐?”

크리스티안 5세에게는 동생들이 여럿 있었다.

다만 대부분은 이미 결혼해 출가했지만, 막내인 울리카는 아직 결혼하지 않고 크리스티안 5세와 함께 궁에서 살고 있었고.

그렇기에 크리스티안 5세가 새한성을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자 울리카는 즉각 움직였다.

울리카 역시 북미왕국에서 출간한 수많은 서적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북미왕국을 동경하게 되었고, 한 번쯤 북미왕국을 방문하고 싶어했으니까.

문제라면 북미왕국은 여행 목적으로는 입국을 불허했기에 아무리 덴마크의 공주인 울리카라 하더라도 북미왕국을 방문할 수는 없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생긴 것 아닌가.

해서 울리카는 크리스티안 5세에게 달려가 자신도 이번 방문에 참여하고 싶다고 졸랐고, 크리스티안 5세는 잠깐 고민하다 이를 승낙했다.

울리카도 나이가 꽤 많았기에, 크리스티안 5세는 더 늦기 전에 울리카를 결혼시킬 생각이었기에 마지막으로 자유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울리카는 크리스티안 5세의 수행원 자격으로 비행기에 올랐고, 처음 이륙할 때만 하더라도 조금 무서워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몇 차례 비행기를 옮겨 타며 이착륙하자 어느덧 익숙해졌고, 또 하늘에서 바라보는 풍경에 완전히 빠져 비행기의 창문에 얼굴을 고정하고 걸핏하면 크리스티안 5세를 불러댔던 것이다.

덕분에 계속해서 비행기를 타느라 피곤한 크리스티안 5세는 걸핏하면 잠에서 깨야만 했고.

해서 크리스티안 5세가 한숨을 내쉬며 좀 자라는 듯한 시선으로 질문을 던졌지만, 울리카는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시선으로 크리스티안 5세를 바라보며 말했다.

“틈틈이 잤는데 왜 피곤해요. 그보다 빨리 커튼을 걷고 창밖의 풍경을 보세요! 오라버니가 그렇게 말씀하셨던 새한성이 보여요!”

“음? 아. 벌써 새한성에 도착한 건가?”

울리카의 말에 뒤로 젖힌 커다란 좌석에서 등을 뗀 크리스티안 5세가 기지개를 켜며 잠을 쫓으려 하자 울리카가 크리스티안 5세를 재촉했다.

“빨리요!”

“알겠다. 알겠어.”

크리스티안 5세는 괜히 울리카를 수행원으로 데려온 것 같다는 생각과, 이번 방문 기간에 꽤나 시달릴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며, 잠을 자기 위해 쳤던 창문에 달린 자그마한 커튼을 걷고 창문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고.

“허. 저게 바로...”

“예. 저게 바로 북미왕국의 수도인 새한성이래요. 지금까지 봐왔던 도시와는 규모가 완전히 다르지 않아요?”

이곳까지 오는 동안 여러 번 비행기를 갈아탔고, 그때마다 크리스티안 5세는 북미왕국의 도시들을 하늘에서 구경할 수 있었다.

헌데 지금 보이는 새한성은 그동안 구경했었던 도시들과는 그 규모 자체가 달랐기에 크리스티안 5세는 울리카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 웃었다.

“음. 확실히 그러네. 이거 기대되는데?”

* * *

타고 있던 비행기가 착륙하자 크리스티안 5세를 비롯한 덴마크인들은 익숙하게 안전띠를 풀고 내릴 준비를 했고.

“어?”

문이 열리고 처음으로 비행기에서 내리던 크리스티안 5세는 활주로에서 자신을 보고 빙긋 웃고 있는 정성국을 보고 헛웃음을 지었고.

그런 크리스티안 5세의 반응에 정성국이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여. 오랜만이다.”

여전한 정성국의 모습에 크리스티안 5세는 웃음을 터트리며 자그마한 계단을 내려 정성국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하하하. 그래. 오랜만이네. 2년 만이지?”

“아. 그쯤 됐지. 그보다 얼굴이 꽤 피곤해 보이네.”

이에 크리스티안 5세는 손으로 목덜미를 잠깐 주무르며 투덜거렸다.

“끙. 계속해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이동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

“쯧쯧. 그러니까 중간중간에 적당히 휴식을 취하면서 올 것이지. 뭐가 그리 급하다고...”

페로 제도에서 2일 만에 이곳 새한성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공항마다 미리 준비되어있는 비행기를 갈아타고 계속해서 비행했던 탓이다.

그러니 여러모로 피곤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짐작한 정성국이 혀를 차며 크리스티안 5세를 타박하자 크리스티안 5세는 히죽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도 기러기급, 두루미급 비행기를 탈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 만약 황새급 비행기를 탔었다면 훨씬 피곤했을 테니까.”

“어. 타봤으니 아는구나. 그렇긴 하지. 다만 황새급 비행기는 야간 비행이 위험해서 한 번 비행하면 숙소에서 잠을 잘 수 있으니 오히려 덜 피곤할 수도 있을걸?”

“아. 그런가...”

정성국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기에 크리스티안 5세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크리스티안 5세 뒤에 있던 울리카가 자신을 무시하지 말라는 듯 헛기침을 하자 정성국이 슬쩍 뒤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뒤에 분은...”

이에 크리스티안 5세는 아차 하는 얼굴로 급히 정성국에게 여동생인 울리카를 소개했다.

“아. 소개하지. 울리카 앨레오노라야. 내 귀여운 막냇동생이지.”

“처음 뵙겠습니다. 울리카에요.”

크리스티안 5세의 소개에 울리카는 정성국에게 무릎을 굽히며 유창하게 북미왕국말로 인사했고, 정성국은 그런 울리카를 보고 크리스티안 5세에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여동생이 하나 있었다는 것과 이 울리카가 전생에서는 스웨덴의 칼 11세와 결혼했었다는 것을 떠올리고, 어차피 내일 칼 11세가 방문하니 슬쩍 울리카와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며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정성국입니다.”

“뭐 내 동생이니 너도 편하게 말해. 무슨 존댓말이야.”

“예. 그러세요.”

생각해보니 크리스티안 5세와는 나름대로 통하는 게 있어 친구로 지내는 만큼, 그 동생인 울리카에게 계속 존대하는 것도 웃기긴 하다는 생각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슬쩍 돌려 비행기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물었다.

“어...음. 알았어. 그럴게. 헌데 울리카만 온 거야? 다른 왕실 가족은?”

“아. 왕실 가족 전체가 움직이는 건 측근들의 반대가 워낙 심하더라고. 만약의 사고를 대비해야 한다고. 그리고 막내가 아직 어리다 보니 장거리 여행은 좀 아닌 것 같기도 해서 말이야.”

정성국은 크리스티안 5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여름이라 더워 죽겠는데 강렬한 햇볕 때문에 아스팔트가 이글거리는 활주로 위에서 계속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활주로 앞에 놓인 자동차에 탑승하라는 듯 손짓하며 말했다.

“그래. 그건 그렇지. 아무튼, 피곤해 보이는데 일단 숙소에서 좀 쉬고, 저녁이나 같이한 다음에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돌아다니면 될 거야.”

“알았어.”

“아. 그리고 너도 알지? 니가 움직이면서 다른 나라에서도 친선 사절단을 파견하는 거?”

정성국이 자동차에 탑승하다 문득 생각난 듯한 얼굴로 묻자 정성국과 같은 차에 탑승하던 크리스티안 5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들었지. 헌데 왜?”

“그것 때문에 매번 너랑 같이 움직일 수는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크리스티안 5세는 왠지 모르게 미안해하는 듯한 얼굴을 하는 정성국을 보고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기대도 안 했다. 니가 바쁘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으니까. 아. 그래도 오늘 이후로 내가 갈 때쯤 얼굴 보게 되는 건 아니지?”

만약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인다면 서운할 거라는 얼굴을 하고 있는 크리스티안 5세를 보고 정성국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야 물론이지. 얼굴이야 매일 볼 수 있을 거야. 친선 사절단의 환영을 위해 매일같이 연회를 열 테니까. 그리고 일부 일정은 함께 움직일 생각이고.”

“그러면 됐지 뭐. 근데...”

그렇게 정성국과 크리스티안 5세는 자동차 안에서 잡담을 나누며 회포를 풀었다.

* * *

밤늦게까지 정성국과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신 크리스티안 5세는 다음날 바로 외무청의 안내를 받아 공방들을 방문하며 일정대로 새한성을 둘러보기 시작했고.

크리스티안 5세의 안내를 외무청과 덴마크 대사에게 일임한 정성국은 매일같이 아침에는 북미왕국을 방문하는 친선 사절단을 맞이하기 위해 공항에 나가고, 점심에는 궁에서 친선 사절단과 회담을 나누고, 저녁에는 연회에 참석했다.

덕분에 정성국은 스웨덴의 칼 11세, 네덜란드의 빌럼 3세, 잉글랜드의 요크 공작, 프랑스의 앙주 공작, 에스파냐의 안토니오 후작, 포르투갈의 기마랑이스 공작과 어느 정도 친분을 쌓았고.

친선 사절단이 모두 방문했기에, 더는 공항에 나갈 필요가 없어진 정성국은 새한성에 온 친선 사절단들이 함께 새한성 대학교에 방문할 예정인데, 이 방문 일정에 참석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조용한 곰의 의견에 따라 다시 집무실을 나섰고, 친선 사절단의 대표들과 함께 방학이라 비교적 한가한 새한성 대학교를 걸어 다니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와...엄청 크네?”

“조금 크게 짓긴 했지.”

크리스티안 5세가 주위를 둘러보며 감탄에 정성국이 대답하자, 칼 11세가 끼어들었다.

“이건 조금 큰 수준이 아닌 것 같습니다. 건물도 많고 사람도 많군요. 거의 작은 소도시 수준인 것 같습니다만...”

“소도시라...뭐 비슷할 겁니다. 학생과 교직원들까지 모두 포함하면 2만 명 가까이는 될 테고, 이들은 대부분 대학교 안에서 생활하니까요.”

정성국의 대답에 귀를 기울이던 친선 사절단의 대표들은 생각보다 많은 인원에 다들 놀랐다.

“예? 2만 명이요?”

“맙소사...”

“대학교 부지가 넓기에 예상은 했지만...”

그때 정성국의 옆에 있던 크리스티안 5세가 정성국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잠깐만. 북미왕국에 대학교가 이거 하나 뿐은 아니잖아?”

“그럼. 종합 대학교만 해도 이곳 새한성 대학교를 포함해 총 7개의 종합 대학교가 있고, 또 지금 짓고 있는 대학교만 해도 8개는 되니까.”

“그것도 다 이 정도 규모입니까?”

뒤따르던 빌럼 3세의 질문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 새한성 대학교가 제일 큰 편이긴 합니다. 다만 다른 대학교들도 대부분은 학생과 교직원을 포함하면 1만 명은 넘을 거예요.”

정성국의 대답에 친선 사절단의 대표들은 새삼 놀랍다는 얼굴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 나라에도 대학교가 여럿 있지만, 북미왕국처럼 규모가 크지는 않았기에.

물론 상황이 조금 다르기는 했다.

북미왕국의 종합 대학교는 다양한 학문을 가르치지만, 아직 유럽의 대학교들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거기에 북미왕국의 종합 대학교처럼 기숙사 등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다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놀라운 것은 사실이었고, 대사나 유럽 지식인들의 이야기처럼 이러한 교육 시스템이 북미왕국 발전의 원동력이 확실해 보여 친선 사절단의 대표들은 한마디씩 했다.

“허허허. 아국의 대사가 새한성 대학교는 꼭 방문해보라고 한 이유가 있었습니다그려.”

“그러게 말입니다. 그리고 대학교를 직접 방문해보니 북미왕국의 기술 발전이 왜 이렇게 빠른 것인지 확실히 알겠군요.”

“맞습니다. 북미왕국에 대학교가 그렇게 많다면, 그만큼 많은 지식인을 키워낼 수 있고, 이 지식인들이 북미왕국의 기술을 더욱 발전시키는 거겠지요.”

북미왕국 발전의 원동력이 북미왕국 특유의 교육체계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유럽의 지식인들 사이에선 잘 알려져 있었다.

다만, 유럽의 군주나 고위 귀족들은 굳이 막대한 돈을 들여가며 자국의 교육체계를 북미왕국처럼 바꾸는 것을 꺼렸고.

이를 파악하고 처음에는 정성국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직 북미왕국은 기반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황이라, 유럽이 북미왕국처럼 교육에 신경을 써서 빠르게 발전할 기반을 다지는 것은 조금 부담스러웠으니까.

허나 지금은 달랐다.

이미 북미왕국의 기반은 어느 정도 잡혔고, 북미왕국에 완전히 정착된 특유의 교육체계 덕분에 제대로 교육받은 뛰어난 인재들이 계속 증가해 북미왕국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기에 유럽에서 북미왕국처럼 교육체계를 바꿔 전 백성을 가르친다 하더라도 충분히 지금의 격차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으니까.

더불어 유럽의 백성들이 교육을 통해 지식수준이 높아지면, 그만큼 생각이 많아질 테고, 지금까지는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불합리한 전통이나 구습 등을 바꾸거나 부당한 처사에도 목소리를 높일 테니, 자연스럽게 이들의 삶이 조금은 나아질 거라 여겼기에, 유럽 각국이 북미왕국처럼 교육체계를 완전히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을 바꾼 것이다.

해서 정성국은 외무청에 이야기해 친선 사절단의 일정 중에 꼭 대학교의 방문을 포함하라고 당부하기도 했었고.

그리고 이 자리에는 각국의 군주나 그 측근들이 친선 사절단의 대표로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기에, 정성국이 슬쩍 입을 열었다.

“뭐 다들 아시는 것 같으니 말하자면...그렇습니다. 졸업생 상당수가 각 청의 산하 연구소나 대학 연구소, 공방 연구소, 상단 연구소 같은 곳에 들어가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 아국의 기술 발전 속도가 무척이나 빠르지요.”

정성국의 대답에 일부는 결정을 내린 듯 눈빛이 변하자 정성국은 자신의 의도가 먹혔음을 인지하고 속으로 히죽거리고 있을 때 옆에 있던 크리스티안 5세가 장난스레 물었다.

“타국이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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