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4화
크리스티안 5세가 북미왕국을 방문한다는 사실을 접한 유럽 나라들은 하나둘 친선 사절단을 파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크리스티안 5세가 북미왕국을 방문해 정성국과 더 깊은 친분을 쌓고, 이 친분을 이용해 이득을 챙길 것을 우려한 것이다.
해서 북미왕국에서는 이 친선 사절단의 방문을 허락했고.
헌데 덴마크에서는 국왕인 크리스티안 5세가 직접 움직이다 보니, 다른 나라에서도 최소한 왕실 인사나 고위 귀족을 친선 사절단의 대표로 임명했기에, 이를 알게 된 조용한 곰은 정성국을 찾았다.
“아. 친선 사절단이 확정되었다고?”
“그렇습니다. 전하.”
한창 각종 보고서에 파묻혀 살던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방문에 한숨을 돌릴 겸,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내리며 물었다.
“헌데 자네가 이렇게 갑작스레 방문한 이유가 뭔가? 바쁜 자네가 고작 친선 사절단이 확정되었다는 보고를 하기 위해 온 것 같지는 않은데?”
“그게...예상외의 인물이 북미왕국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말입니다.”
“예상외의 인물? 누군데?”
커피를 내리던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말에 흥미를 보이자 조용한 곰이 입을 열었다.
“일단 네덜란드에서는 빌럼 3세가 직접 방문할 예정입니다.”
“뭐? 빌럼 3세가?”
네덜란드의 총독인 빌럼 3세가 북미왕국을 방문한다는 말에 정성국은 놀랐다.
빌럼 3세는 한창 네덜란드를 재건하느라 무척 바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이에 조용한 곰이 입을 열었다.
“물론 네덜란드의 상황이 상황이라, 빌럼 3세가 바쁘긴 하지요. 허나 빌럼 3세의 입장에선 전하와 친분을 더욱 두텁게 하고, 북미왕국과의 동맹 관계를 더욱 튼튼히 하는 것도 무척 중요합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잠깐 시간을 내서 새한성을 방문하려는 거지요.”
“아. 프랑스 때문에?”
“그렇습니다. 일단 네덜란드는 아국과의 동맹을 믿고, 군을 대폭 축소한 상황이니까요.”
대프랑스 전쟁에서 네덜란드 남부 지역의 피해가 무척 컸다.
특히 잉글랜드와 북미왕국이 중재할 뜻을 밝히면서, 점령하고 있던 네덜란드 남부 지역을 지키기 어렵다고 판단한 프랑스는 종전 조약을 체결하기 전에 점령하고 있던 네덜란드 남부 지역을 철저히 약탈했기에.
해서 네덜란드는 이렇게 초토화된 네덜란드 남부 지역을 재건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소모해야 했고, 이 때문에 빌럼 3세는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은 후에는 군을 대폭 축소하기까지 했다.
그러니 네덜란드는 북미왕국과의 동맹이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었고, 이 동맹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잠깐 수도를 비우는 것이 의외는 아니라는 조용한 곰의 이야기에 정성국이 다 내린 커피를 조용한 곰에게 건네며 대꾸했다.
“빌럼 3세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네덜란드와의 동맹을 파기할 수도 있다고 보는 걸까?”
“그보다는, 그만큼 프랑스가 위협적이기에 북미왕국의 동맹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해석하시는 것이 맞을 겁니다.”
“아.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군.”
정성국은 북미왕국을 믿지 못해 빌럼 3세가 방문한다고 해석하고 조금 뾰로통했지만, 조용한 곰의 해석에도 일리가 있었기에 바로 수긍했고.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조용한 곰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빌럼 3세는 예전부터 사석에서 종종 새한성을 한번 방문해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더군요. 네덜란드에 주재하는 북미왕국 대사를 만났을 때, 새한성에 관해 묻기도 했고요. 그러니 크리스티안 5세가 방문하기로 하면서 방문할 기회가 생긴 김에 겸사겸사 방문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새한성에 대사관을 설립하고, 각국의 외교관들이 새한성에 주재하면서 보내오는 정보 덕분에 북미왕국의 수도인 새한성의 이름값은 점차 높아졌다.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일단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여겨지는 나라의 수도이기도 했고, 전기가 공급되면서 빛의 도시라는 별명도 생겼을뿐더러, 유럽의 다른 대도시들과는 달리 상하수도가 완비되어 있어 악취가 없는 깨끗한 도시로 알려져 있었기에.
해서 유럽의 상류층들이 한 번쯤 새한성을 방문하고 싶어한다는 사실과 마찬가지로 빌럼 3세도 페로 제도에서 정성국을 만났을 때, 크리스티안 5세처럼 새한성을 방문하고 싶어 했었다는 것을 떠올린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참. 그랬었지.”
“그리고...빌럼 3세뿐만 아니라 스웨덴의 국왕인 칼 11세도 방문할 예정입니다.”
“응? 칼 11세가?”
조용한 곰의 이야기에 정성국은 다시 당황했다.
스웨덴의 국왕인 칼 11세의 방문은 정말 예상외였기에.
이에 조용한 곰이 당황한 정성국을 보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칼 11세는 크리스티안 5세 때문에 아국을 방문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덴마크도, 스웨덴도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은 이상 더는 충돌할 일이 없긴 했다.
다만, 그동안 잦은 국경 분쟁을 겪으면서 쌓인 것이 많았기에, 크리스티안 5세가 정성국을 만나 친분을 쌓는 것을 칼 11세가 반길 수야 없었고.
특히, 같은 동맹국이라 하더라도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쯤은 칼 11세도 잘 알고 있었기에.
여기에 북미왕국의 또 다른 동맹국인 빌럼 3세마저 직접 새한성을 방문해 정성국과의 친분을 쌓으려 한다는 소식을 접하자 칼 11세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북미왕국의 동맹국인 덴마크, 네덜란드, 스웨덴 모두 북미왕국과의 무역과 왕실 상단의 투자 덕분에 경제가 살아났기에, 크리스티안 5세나 빌럼 3세는 정성국을 만나 무역의 확대와 더 많은 투자를 요청할 것이 뻔한데, 덴마크와 네덜란드와는 달리 스웨덴에서 일반 귀족을 사절단의 대표로 보낸다면, 다른 두 나라보다 협상에서 불리할 것은 뻔해 보였으니 말이다.
이러한 칼 11세의 속내를 스웨덴에 주재하는 북미왕국 대사를 통해 파악한 조용한 곰은 정성국에게 자세히 설명했고, 이를 듣고 정성국이 상황을 알겠다는 듯 피식 웃었다.
“확실히 크리스티안 5세와 빌럼 3세가 직접 움직였는데, 스웨덴에서는 일반 귀족을 보낸다면 아무래도 무게감이 떨어지긴 하지. 헌데 이렇게 되면 선물 보따리를 많이 준비해야겠는데? 아. 설마 국왕이 직접 방문하는 나라가 더 있나?”
“그건 아닙니다. 아국의 동맹국들을 제외하면 다 고위 귀족을 친선 사절단의 대표로 내세웠습니다.”
아무래도 덴마크, 네덜란드, 스웨덴은 북미왕국과의 무역, 그리고 왕실 상단의 투자가 절실했기에 군주가 직접 움직일 정도였지만, 그 외의 나라들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더불어 비교적 젊은 세 나라의 군주들과는 달리 잉글랜드, 프랑스의 경우는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이를 알고 있는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한 곰에게 말했다.
“아무튼, 예상외로 거물들이 움직이니 외무청에서 조금 더 신경을 쓰도록 하게. 저들이 방문해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말이야.”
“물론입니다. 전하께서 신경 쓰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하겠습니다.”
* * *
크리스티안 5세는 자신이 잠시 수도를 비우더라도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최대한 많은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고.
그때 보좌관이 서류 더미와 함께 집무실을 방문하자 크리스티안 5세가 이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거 북미왕국을 괜히 방문한다고 했나? 무슨 일이 끝도 없는 것 같지?”
이에 보좌관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다행이라면 이게 마지막 보고서라는 점입니다.”
“오. 그래?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크리스티안 5세는 보좌관의 말에 잠깐 반색했지만, 곧 그가 내려놓은 서류 더미와, 그 옆에 아직 처리하지 못한 서류 더미들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이걸 내일까지 처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크리스티안 5세의 투덜거림에 보좌관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고.
이에 크리스티안 5세는 푸념을 그만두고 손으로 한쪽의 서류 더미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들은 확인하고 결재한 서류들이니 가져가게.”
“알겠습니다. 국왕 전하. 헌데...”
“음? 무슨 보고할 사항이라도 있나?”
업무를 처리하려던 크리스티안 5세가 보좌관을 바라보자 보좌관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번 북미왕국의 방문 일정이 조금 변경되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일정이 변경되었다고?”
“그렇습니다. 국왕 전하.”
크리스티안 5세는 보좌관의 대답에 인상을 찌푸렸다.
크리스티안 5세는 이번 북미왕국 방문을 무척 기대했는데, 모래면 떠나야 하는 시점에서 갑작스레 방문 일정이 변경되었다고 하니,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해서 빨리 말하라는 눈빛으로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변경된 거지?”
“원래 이번 북미왕국 방문 일정은 총 40일로 잡지 않았습니까? 헌데 이 일정을 28일로 줄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좌관의 이야기에 크리스티안 5세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하는 얼굴로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일정이 줄어든 것은 좋을 것이 없었다.
코펜하겐에서 새한성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그만큼 새한성에서의 체류 기간이 줄어든다는 소리였으니까.
이는 이번에 새한성을 방문해 최대한 많은 곳을 둘러보려는 크리스티안 5세의 의중과 배치되고.
헌데 이런 자신의 의중을 잘 아는 보좌관이 일정이 줄어든 것을 반기는 기색으로 이야기하니 크리스티안 5세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수밖에.
이러한 반응에 보좌관이 급히 설명을 시작했다.
“아. 원래 새한성까지 오가는 데 18일을 잡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이곳에서 페로 제도까지 가는 데 하루. 페로 제도에서 비행기를 이용해 새한성까지 이동하는 데 8일이 걸린다고 했으니까.”
북미왕국 대사를 만났을 때, 이러한 설명을 들었던 크리스티안 5세가 대꾸하자 보좌관이 말했다.
“헌데 북미왕국 대사가 이야기하기를 국왕 전하께서 타고 가실 비행기가 바뀌었답니다.”
“응? 비행기가 바뀌었다고?”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크리스티안 5세가 보좌관을 멍하니 바라보자 보좌관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황새급 비행기가 아니라 최근 개발해 배치한 새로운 비행기들이라더군요. 헌데 이 새로운 비행기들은 황새급 비행기보다 훨씬 빠르답니다.”
북미왕국에서 새롭게 기러기급, 두루미급 비행기를 개발해 배치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이것이 널리 알려진 것은 아니었기에 크리스티안 5세가 고개를 갸웃하며 질문을 던졌다.
“빠르다면 얼마나?”
이러한 질문에 보좌관은 새삼 놀랍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게...페로 제도에서 새한성까지 이동하는 데 2일이면 충분하다고 합니다.”
“뭐?! 2일?!”
크리스티안 5세가 보좌관의 말에 경악하자 보좌관이 자신도 잘 믿기진 않는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렇답니다. 해서 원래 일정보다 12일 빠르게 복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별다른 기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때를 가정한 것이기는 합니다만...”
물론 황새급 비행기와 기러기급, 두루미급 비행기의 속도는 2배 차이일 뿐이다.
다만, 기러기급, 두루미급 비행기는 야간 비행이 가능했기에 밤에도 비행할 수 있었고, 덕분에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극단적으로 줄어들었고.
그러나 이를 모르는 크리스티안 5세와 보좌관은 북미왕국의 비행기가 기존의 황새급 비행기보다 4배나 빠르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크리스티안 5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정말 북미왕국의 발전은 무섭군.”
그런 크리스티안 5세의 말에 보좌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좌관도 북미왕국 대사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황새급 비행기를 개발한 지 몇 년이나 되었다고 벌써 비행기의 성능이 이렇게 발전하나 싶었으니까.
동시에 비행기가 발전 속도를 보면 다른 기술들의 발전 속도가 뻔히 보여 보좌관은 새삼 북미왕국의 발전이 두려워질 정도였고.
해서 보좌관이 슬쩍 이를 털어놓자 크리스티안 5세가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
“그렇지. 솔직히 북미왕국의 발전은 두려울 정도야. 그러나 그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어떻게든 따라가야지. 그러니 이번 새한성 방문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군.”
“예. 분명 그리될 겁니다. 국왕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