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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743화 (743/850)

743화

정성국은 자신의 집무실을 방문한 연금 복지국 국장의 얼굴을 보고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

“쯧쯧. 이번 일로 마음고생이 심했나 보군. 얼굴이 영 안 좋은데?”

정성국의 말에 연금 복지국 국장이 쓴웃음을 머금고 답했다.

“소신이 연금 복지국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났는데 어찌 얼굴이 좋겠습니까.”

이 말에 정성국은 자신의 명령으로 진행되던 연금 복지국의 전체 감사가 끝났다는 것과 이 감사에서 새로운 부정이 발견되었음을 직감하고 눈을 빛내며 흥미를 보였다.

“드디어 감사가 다 끝난 건가?”

“그렇습니다. 전하.”

연금 복지국 국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이 물었다.

“그래. 결과는? 표정을 보아하니 짐작은 되는데...”

이에 연금 복지국 국장은 다시 한번 쓰게 웃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대규 말고도 서류를 조작해 연금을 빼돌린 연금 복지국 관리들이 일부 있더군요.”

“쯧. 역시나인가.”

정성국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연금 복지국의 직원만 약 1만 명 정도였는데 부정을 저지른 이가 어찌 전대규 한 명뿐이겠는가.

물론 정성국은 교육을 통해, 그리고 언론을 이용해 끊임없이 관리의 청렴함을 강조하고, 또 부패한 관리들은 반역자라는 프레임을 씌워버림으로써 북미왕국의 관리들은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북미왕국의 관리들이 비교적 청렴한 편이기는 했지만, 모든 관리가 물욕을 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니 말이다.

다만 정성국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해도, 실제로 부정을 저지른 부패한 관리가 추가로 발견된 것은 씁쓸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 정성국이 혀를 차자 연금 복지국 국장은 할말이 없는지 그저 고개를 떨굴 뿐이었고.

이에 정성국은 일단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물었다.

“감사 보고서는?”

“여기 있습니다. 전하.”

연금 복지국 국장은 들고 온 두툼한 보고서를 정성국에게 건넸고, 정성국은 앞장에 적혀 있는 요약 보고서를 확인 후 자신도 모르게 탄식했다.

“허. 이거 생각보다 많은데? 부정을 저지른 관리가 100명 가까이 된다고?”

“그게...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전하.”

정성국이 탄식하자 연금 복지국 국장은 면목이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고, 정성국은 그런 연금 복지국 국장을 바라보며 이러한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기색을 팍팍 내보이며 말했다.

“아. 물론 부정을 저지를 수는 있어. 특히 연금 복지국은 집행하는 예산 규모가 어마어마하니, 이를 다루다 보면 자연스레 욕심이 날 수는 있지. 그래. 그건 이해해. 헌데...”

“...”

“연금 부서가 연금 복지국으로 독립하고 2년간 감사실에서 부정을 적발한 건수가 딱 3건에 불과했잖아? 헌데 이번에 작정하고 연금 복지국 전체를 감사하니 102건의 부정을 찾아냈다? 그럼 나로서는 이걸 연금 복지국의 감사실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나? 아니면 연금 복지국의 체계에 문제가 있다고 받아들이거나?”

정성국은 관리가 부패하면 어떤 강대한 제국이라도 쉽게 망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교육과 언론을 통해 관리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더라도, 한계는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각 청과 국마다 감사실을 두어 관리들을 감사했고.

헌데 다른 청과는 달리 연금 복지국의 경우는 이 감사실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것 같았고, 이는 명백히 연금 복지국 국장의 잘못이라 할 수 있어 정성국이 이를 지적하자 연금 복지국 국장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로 대답했다.

“...송구합니다. 전하. 아무래도 연금 복지국의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겨우 60명 정도에 불과한 감사실 직원들이 연금 복지국을 철저히 감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음? 잠깐만. 그것 밖에 안 돼?”

예상보다 적은 인원에 정성국이 당황하자 연금 복지국 국장이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연금 복지국의 업무가 워낙 많고, 덕분에 일손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그러다 보니 새로 관리를 뽑더라도 감사실보다는 다른 부서나 지부에 우선적으로 배치할 수밖에 없었지요.”

연금을 받는 이들은 많았다.

특히, 다자녀 가구 연금이나 출산 지원금을 받는 이들이 많았고.

여기에 나라에서 계속 출산을 독려하고, 또 지원을 아끼지 않다 보니 북미왕국의 백성들은 아이를 갖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자연히 연금을 받는 이들은 늘어났다.

그리고 연금을 받는 이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연금 복지국의 업무는 폭증했고.

헌데 이렇게 늘어나는 업무를 감당할 정도의 사람을 구하는 것은 현 북미왕국의 사정에서 불가능하다 보니, 일단 감사실보다는 다른 부서나 지부에 우선 사람을 배치할 수밖에 없다는 연금 복지국 국장의 말에 정성국은 차마 그를 질책하지 못했다.

물론 일손이 부족한 것은 다른 청, 국도 비슷한 상황이기는 한데, 연금 복지국의 경우는 미친 듯이 업무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기에.

해서 정성국을 한숨을 내쉬었다가 급히 질문을 던졌다.

“휴우...아. 그럼 평소엔 감사도 손을 완전히 놨던 건가?”

“그럴 수야 있겠습니까. 무작위로 지부를 정해서 감사하는 방식을 사용했었지요. 헌데 감사실의 규모가 작아 지부 하나를 감사하는데도 시간이 꽤 걸리다 보니...”

“제대로 잡아내기 어려웠다?”

“그렇습니다.”

연금 복지국 국장의 대답에 상황을 이해한 정성국은 다시 한숨을 내쉬다 손안에 있는 보고서를 확인하고 급히 물었다.

“어? 그럼 이번 전체 감사는 어떻게 진행한 건가?”

“이번에야 감사실 직원 말고도 다른 부서의 관리들을 추가로 투입하고, 또 이번에 설립된 감찰국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준 덕분에 모든 지부의 감사가 가능했습니다.”

정성국은 이번 일로 정보기관을 쪼개 새로이 감찰국을 설립했는데, 이 감찰국 전체가 나섰기에 가능했다는 연금 복지국 국장의 말에 잠깐 생각에 잠겼다 말했다.

“허나 감찰국이 계속 연금 복지국만 신경 쓸 수는 없으니 결국 연금 복지국의 감사실 규모를 대폭 키워야겠는데?”

“후우. 그래야지요. 다만, 아무나 감사실로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라 문제지요.”

“아...”

생각해보니 업무에 정통하지 않다면 관리들의 부정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러니 감사실 직원은 업무에 정통해야 했는데, 그런 인재를 감사실로 보내는 것이 아깝긴 했고.

허나 관리들이 부패하고, 부패한 관리들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그 자리를 유지한다면, 다른 관리들도 부패할 수 있는 터라 정성국은 연금 복지국뿐만 아니라 다른 청, 국들의 감사실 규모도 대폭 늘려야겠다고 여기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계속해서 감사실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게. 인구가 증가할수록 연금을 받는 백성들도 증가할 테고, 자연히 연금 복지국의 규모도, 그리고 집행하는 예산도 계속해서 커질 텐데, 감시의 눈길이 별로 없다면 일부는 흔들릴 수 있으니까.”

정성국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기에 연금 복지국 국장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알겠습니다. 전하.”

“그리고 부정을 저지른 이 102명의 관리들은...”

정성국이 이번에 연금 복지국의 예산에 손을 댄 102명의 관리를 거론하자 연금 복지국 국장의 눈이 서늘해졌다.

“바로 법무청에 넘겼습니다. 아마 이들도 전대규처럼 부정을 저질러 빼돌린 돈을 모두 토해내고, 탄광에서 수십 년간 일해야 할 테지요.”

법무청장은 서류를 위조해 부정한 방법으로 연금을 받아온 전대규와 그 친척들을 모두 체포해 조사했고, 재판을 통해 전대규와 친척들을 탄광형에 처했기에 정성국은 연금 복지국 국장의 말에 씩 웃었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 * *

“오. 벌써 30만 명이나 고용했다고? 엄청 빠르네?”

올 초, 정성국의 명령으로 외무청에서는 잉글랜드, 프랑스, 에스파냐 삼국과 협상해 결국 50만 명에 달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모집하기 합의했고.

이 합의 후 삼국은 각 도시에 북미왕국에서 일할 외국인 노동자를 모집해 지정된 항구들로 보냈고, 지정된 항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북미왕국의 관리들은 본인의 의사를 확인 후 고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고용된 외국인 노동자들의 수가 벌써 30만 명에 달한다는 보고에 정성국이 너무 빠른 것이 아닌가 싶어 놀란 얼굴을 하자 조용한 곰이 빙긋 웃으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아국이 약속한 급여가 무척 후하다 보니 너도나도 몰려드는 모양입니다. 이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가 되려면 모집관들에게 돈을 줘야 한다는 소리까지 들려오고 있고요.”

조용한 곰은 마치 소문인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소문이 아닌 사실일 것이 분명했기에 정성국은 저들의 행동에 혀를 찼다.

“쯧. 뭐 저들에게 외국인 노동자들을 모집을 맡길 때부터 중간에서 적당히 빨대를 꼽으리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이건 뭐 대놓고 빨대를 꼽는구만.”

“뭐 어쩌겠습니까. 당장 급한 것은 저희니 그저 모른 척하는 수밖에는요.”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대답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확실히 아쉬운 쪽은 이쪽이라 괜히 신경 써봐야 기분만 나쁘기에 주제를 슬쩍 돌렸다.

“씁. 그래. 어쩔 수 없지. 그보다 외국인 노동자가 벌써 30만 명이나 모집되었다면, 이들을 데려오기도 쉽지 않겠는데?”

“아닙니다. 운수국이 보유한 대형 수송선, 여객선을 대부분 투입했고, 유럽을 오가는 왕실 상단, 국영 상단에도 도움을 요청했거든요. 해서 겨울이 오기 전에 다 데려올 수 있을 겁니다.”

그동안 북미왕국은 거대한 선박을 많이 건조해두었기에, 30만 명에 달하는 인원을 수송하는 것쯤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 그래? 그건 다행이네. 아무래도 겨울에 바닷바람을 맞아가면서 아국의 배를 기다리려면 몸이 상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야.”

“그렇죠. 그리고 이미 아국의 땅을 밟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약간의 교육을 받고 바로 개발청과 도로국에 배치되고 있습니다.”

이에 정성국은 흐뭇하게 웃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동력 덕분에 북미왕국의 발전은 더욱 가속화될 테니까.

“잘 생각했네. 당장 급한 것은 기반 시설들의 건설이니. 아. 그러고 보면 철도국은?”

“그게...철도국장과 이야기해보니 비축된 선로가 많은 편이 아니라 공사 일정을 앞당기거나, 혹은 당장 새로운 노선을 부설하는 것을 무리라고 하더군요.”

“아...”

유럽에서 철광석을 수입하면서 강철 생산량은 꾸준히 증가했지만, 북미왕국이 발전하고 곳곳에 새로운 도시가 들어서면서 강철 소모량도 꾸준히 증가했기에 상황을 이해한 정성국이 탄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자 조용한 곰이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동차가 생산되어 배치되고 있기에, 당장은 철도보다는 각 지역 내 도로 건설이 우선이라 도로국에 집중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배치할 예정이고요.”

개발청장, 도로국장, 철도국장은 정성국이 자동차를 대량 생산할 거라는 사실을 잘 알기에, 그리고 이 자동차를 제대로 써먹으려면 도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각 도시와 주변 마을을 잇는 도로의 건설에 힘을 실어주기로 합의했고, 그래서 도로국에 집중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배치할 예정이라는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이 나쁘지 않다는 얼굴로 말했다.

“흠. 그렇긴 하지. 알겠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잘 알고 있지?”

“그럼요. 그 부분은 일전에 보고드린 대로 군사청에서 개발청과 도로국을 전폭적으로 돕기로 했습니다. 만약 외국인 노동자들이 사고를 치거나, 혹은 도망친다면 배상을 약속했기에 손해가 크니까요.”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이 매끈한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뭐 돈이야 충분하고 아국은 노동력이 부족하니 손해가 클 것까지야 아니지만...우리가 배상금을 지급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정착시키면 분명 저들은 우리를 경계할 거야. 그럼 외국인 노동자들을 계속 고용하긴 불가능할 테니, 최대한 잘 관리하게.”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외국인 노동자들의 대우에도 조금은 신경 쓰게. 저들이 북미왕국을 우호적으로 바라보게. 그래서 저들이 훗날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북미왕국을 찬양하게끔.”

처음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던 조용한 곰은 정성국의 말에 무슨 뜻인지를 파악하고 씩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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