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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742화 (742/850)

742화

정성국은 집무실을 찾아온 조용한 곰이 투로시노가 보내온 보고서를 건네며 중국 대륙의 상황을 보고하기 시작하자 이를 주의 깊게 듣기 시작했고.

“어디? 하구진?”

이번 화친 협상이 하구진에서 진행될 예정이라는 조용한 곰의 보고에 조금 생소한 지명이라 정성국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하자, 조용한 곰이 설명했다.

“그렇습니다. 호북성의 중심 도시인 무창 인근의 상업 도시인데, 그곳에서 화친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답니다.”

이러한 설명에 정성국은 하구진이 훗날의 우한시의 일부임을 깨닫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아. 그래? 여러모로 의외네. 청나라의 영토에서 협상하는 것도 그렇고, 청나라와 동녕국, 주나라가 함께 협상하는 것도 그렇고.”

원래 이번 중재에 나선 북미왕국과 유럽 나라들은 삼국의 전권 대사들을 한자리에 불러 협상을 진행하려 한 것이 아니라, 청나라와 동녕국, 그리고 청나라와 주나라 간의 협상을 중재하려 했다.

아무래도 두 나라 사이를 중재하는 것이 세 나라 사이를 중재하는 것보다는 쉬울 것 같았기에.

헌데 갑자기 상황이 바뀌며 청나라와 동녕국, 주나라, 이렇게 삼국 협상이 시작되었으니 정성국으로서는 의외라는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고.

거기에 하구진의 위치는 장강 북쪽이었고, 장강 북쪽은 청나라의 영역인데 이곳에서 협상하는 것도 예상 밖이었다.

정성국은 당연히 동녕국이나 주나라의 영역에서 협상을 진행하리라 판단했기에.

아무래도 협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선 자신의 영역에서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유리했기에, 협상 장소는 보통 유리한 쪽의 의견대로 흘러가기 마련인데, 이번 전쟁에서 유리한 쪽은 명백히 동녕국과 주나라였으니까.

이에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설명에 해괴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이를 파악한 조용한 곰이 빙긋 웃으며 협상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게 동녕국과 주나라의 강력한 요청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응?”

“아국이나 유럽 각국은 이번 화친 협상에서 중재를 맡고 있으니 당연히 중립인데, 동녕국이나 주나라는 이러한 시점에서 화친을 제의한 것 때문인지 중재에 나선 저희들을 중립으로 생각하지 않더군요. 내심 청나라의 편을 들어줄 거라고 여겼달까요?”

“허...”

정성국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혀를 찼을 때, 조용한 곰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 때문인지 따로따로 청나라와 협상을 하면 결국 청나라에 무척 유리한 쪽으로 협상이 진행될 거라 여겨 이번 전쟁은 삼국이 모두 참여했으니, 화친 협상 역시 삼국 모두 한자리에 모여 협상해야 한다고 동녕국과 주나라에서 강력히 주장했고, 결국 청나라는 저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대신, 청나라의 영토에 협상장을 차린 겁니다.”

그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물론 동녕국이나 주나라의 생각도 이해는 하지만, 착각이 너무 심했다.

동녕국이나 주나라의 생각대로 한창 청나라가 밀리는 와중에 중재를 제의한 것 자체가 청나라를 위한 일이었기에, 이번 협상에서는 중립을 유지하되, 내심으로는 동녕국, 그리고 주나라에 유리한 쪽으로 협상을 진행할 생각이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는 청나라의 국력이 완전히 고갈된 상태라 빌빌대는 것일 뿐이지, 나라를 안정시킨 이후라면, 동녕국과 주나라가 연합해도 청나라를 상대하긴 쉽지 않을 것이 뻔했기에.

물론,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무척 피폐해지고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청나라였기에, 외무청에서는 과연 청나라가 안정될 수 있을지 의문을 품고 있었지만, 정성국은 현 청나라의 황제가 강희제라는 것, 그리고 전생에서 강희제의 뒤를 이은 옹정제, 건륭제 모두 걸출한 인물들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을 거라 보았고.

헌데 동녕국이나 주나라는 여러모로 애매했다.

전생에서 동녕국이 멸망한 것은 현 동녕국의 국왕인 정경이 죽은 이후 후계 문제 때문이기에.

그나마 전생에서는 옛 명나라 땅의 회복에 실패한 정경이 실의에 빠져 일찍 사망하지만, 지금은 정력적으로 나랏일에 매진하고 있기에 상황이 조금 다르긴 한데, 과연 정경이 죽은 이후에 동녕국이 어찌 될지 모르니 아무래도 불안한 정성국이었고.

또한, 주나라 역시 당장은 강력한 외부의 적이라 할 수 있는 청나라 때문에 주나라 군벌들이 결국 오세번에게 숙였지만, 청나라와 화친 이후에도 계속해서 오세번에게 숙이고 있을지는 아무래도 의문이었기에.

해서 정성국은 은근슬쩍 투로시노에게 동녕국, 그리고 주나라에 유리한 쪽으로 협상을 진행하라고 언질은 해 두었었고, 그랬기에 동녕국, 주나라의 반응에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쯧쯧. 우리를 그렇게 경계할 필요는 없는데...”

“뭐 어쩌겠습니까. 저들은 충분히 저희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보니...”

“하긴...그러면 준가르와의 협상은?”

조용한 곰의 말에 쓰게 웃은 정성국이 준가르의 일을 묻자 조용한 곰이 바로 대답했다.

“내몽골 지역에서 협상하기로 한 모양입니다.”

일종의 국경지대인 내몽골 지역에 협상이 진행될 거라는 이야기에 정성국이 역시나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럼 준가르와의 협상이 오히려 빠르게 끝날 수도 있겠는데?”

“예. 투로시노도 그렇게 예측하더군요.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바로 청나라 황제가 몽골 제국의 대칸의 지위를 포기하는 것인데...청나라 황제는 이미 준가르가 몽골 지역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고, 당장은 청나라의 내부를 안정시키는 것이 우선인데, 대칸의 지위를 포기하지 않으면 준가르가 물러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기꺼이 몽골 제국의 대칸 지위를 포기하기로 했다니까요.”

조용한 곰의 설명에 정성국은 속으로 생각했다.

‘확실히 강희제가...인물은 인물이네. 뭐가 중요한지를 알아. 진짜 나중에는 동녕국과 주나라가 청나라를 상대하지 못할 것 같은데...그렇다고 언제까지 중국 대륙의 일에 개입할 수는 없고...쯧. 결국, 유럽이 중국 대륙에 개입하는 것을 어느 정도는 용인해야 하나.’

정성국은 그렇게 생각하며 조용한 곰에게 말했다.

“그런가. 아무튼, 준가르와의 협상이든, 동녕국, 주나라와의 협상이든 협상이 진행되면 진행되는 데로 계속 보고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헌데 전하.”

“음? 무슨 일인가.”

보고가 다 끝난 줄 알았던 정성국이 되묻자 조용한 곰이 말했다.

“그게...전하께서 결정해주셔야 할 사안이 하나 있어서 말입니다.”

“그래? 무슨 사안인데?”

“이겁니다.”

조용한 곰은 다른 보고서를 정성국에게 건넸고, 정성국은 보고서를 읽어보고 황당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디 보자...응? 크리스티안 5세가 북미왕국을 방문할 때 이용할 이동 수단으로 비행기를 원한다?”

“그렇습니다. 전하.”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황당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비행기는 페로 제도에서 타봤는데 뭐하러 비행기를? 왕실 여객선이 더 편할 텐데?”

크리스티안 5세의 북미왕국 방문을 허락하며, 정성국은 크리스티안 5세를 위해 왕실 여객선을 덴마크로 보내라고 이야기했었다.

헌데 크리스티안 5세는 이 왕실 여객선보다 비행기를 타고 북미왕국으로 오고 싶다고 하니 정성국은 황당해했고.

“그게...왕실 여객선을 이용하는 것이 쾌적하긴 할 테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더 걸리잖습니까.”

그건 그랬다.

왕실 여객선을 이용해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새진주까지 도착하는데 넉넉잡고 15일 정도 소요되지만, 비행기의 경우, 황새급 비행기를 이용하더라도 페로 제도에서 새한성까지 8일이면 충분했으니까.

그리고 크리스티안 5세가 덴마크의 귀족 세력을 완전히 제압했다고 해도, 수도를 오래 비우기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것이니만큼, 최대한 빠르게 움직일 수단을 선택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싶었던 정성국이 조용한 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흠. 어쨌건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기는 뭐하니까,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행기를 원한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헌데...아국과 덴마크는 동맹 관계이기에 크리스티안 5세를 호위할 인력은 필요 없다 해도, 수행할 인원들은 필요하지 않습니까. 헌데 덴마크 측에서 수행원들을 최소화해도 이들을 황새급 비행기로 수송하려면...”

아직은 황새급 비행기가 주력 비행기였는데, 황새급 비행기는 승객을 많이 태울 수 없다는 것이 단점이었기에 조용한 곰이 이를 언급하며 말을 흐리자 정성국이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황새급 비행기를 추가로 배치해야겠네? 특히 페로 제도에서 아이슬란드, 그린란드를 거쳐 뉴펀들란드 섬까지 이동할 때는 바다를 횡단해야 하니 항법사도 태워야 하니까?”

“그렇습니다. 물론 대열을 이루어 비행한다면, 항법사들을 많이 태울 필요야 없긴 합니다만...항법사를 뺀다 해도 황새급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는 승객은 3명에 불과하잖습니까.”

“그렇긴 하지. 그리고 크리스티안 5세는 측근들을 모두 대동하고 방문하고 싶어하는 눈치였으니 수행원들의 숫자가 꽤 될 테고...”

크리스티안 5세는 단순히 휴양차 북미왕국을 방문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휴양을 빌미로 북미왕국의 발전상을 확인하고 이를 따라하기 위함이었지.

그러니 측근들을 대동하는 것은 당연했고.

더불어 크리스티안 5세는 꼭 공방이나 대학교 같은 시설을 방문하게 도와달라고 이야기까지 했었으니.

이를 기억한 정성국이 말을 흐리자 조용한 곰이 그 말을 받았다.

“예. 호위나 시종은 모두 제외했는데도 수행원의 숫자가 30명에 가깝더군요. 거기에...”

“거기에?”

“이번에 크리스티안 5세가 직접 북미왕국을 방문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른 나라에서도 아국에 사절을 파견할 분위기거든요. 그러니 최대한 많은 비행기를 배치했으면 합니다.”

“잠깐. 크리스티안 5세가 새한성을 방문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고?”

그 말에 정성국 조금 당황하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예. 이번 방문 일정을 상의하기 위해 덴마크 대사와 자주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려졌습니다. 물론 이번 크리스티안 5세의 북미왕국 방문이 딱히 기밀 사항은 아니라 빠르게 알려진 감이 없진 않습니다만...”

생각해보니 크리스티안 5세의 방문이 극비 정보는 아니었기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아하. 헌데...다른 나라에서도 사절을 파견할 분위기라고?”

“예. 이전까지 유럽 나라들과 우호적으로는 지내도 동맹은 거부했던 아국의 대유럽 외교 정책이 180도 뒤바뀐 것이 바로 전하께서 크리스티안 5세, 빌럼 3세를 페로 제도에서 만나신 이후잖습니까. 헌데 크리스티안 5세가 다시 북미왕국을 방문한다고 하니, 다른 나라들은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지요.”

조용한 곰의 설명에 정성국은 대충 상황을 짐작하고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크리스티안 5세와 직접 만나 중요한 약속이라도 할까 봐?”

“하하하. 그렇습니다. 해서 일부 나라에서는 사절단의 파견을 위해 논의 중이라는 보고가 올라왔으니, 가능한 한 많은 비행기를 배치했으면 합니다. 아마 다른 나라의 사절단은 어떻게든 비행기를 타려고 할 테니까요.”

비행기를 타본 사람이 적다 보니 유럽인들은 비행기에 무척 관심을 두었고, 그런 상황에서 크리스티안 5세가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다는 사실을 알면 다른 나라의 사절단도 비행기를 이용하겠다고 할 것이 분명했기에 정성국은 괜히 크리스티안 5세의 방문을 허락했다고 속으로 후회했고.

다만 일이 이미 벌어진 이상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정성국은 잠깐 고민하다 말했다.

“흠...그러면 이렇게 하지. 지금까지 생산된 기러기급, 두루미급 비행기를 모두 동원하자고.”

“기러기급, 두루미급 비행기를요?”

새로 개발된 기러기급, 두루미급 비행기들은 모두 새한성에서 포로나이까지의 항공 항로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이걸 동원하겠다는 말에 조용한 곰이 놀라 되묻자 정성국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동아시아의 상황이 상황이라, 빠르게 연락을 주고받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서 포로나이 방면에 집중적으로 배치했던 건데, 이쪽에서 딱히 개입하지 않더라도 투로시노가 알아서 잘 하고 있잖아?”

“그건...그렇지요.”

“그러니 소식의 전달이 조금 늦어져도 크게 문제는 없을 거야. 그리고 황새급 비행기보다는 기러기급, 두루미급 비행기를 동원하는 것이 유럽 사절들에게 우리의 국력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을 테고.”

이왕 일이 벌어진 것, 북미왕국의 국력을 다시 한번 과시하겠다는 정성국의 이야기에 조용한 곰이 정성국의 뜻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흠...그야 그렇지요. 알겠습니다. 허면 그렇게 알고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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