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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741화 (741/850)

741화

동녕국과 주나라는 결국 북미왕국과 유럽 각국의 중재를 받아들였다.

중재를 통해 이득을 챙기려는 유럽 국가의 압박도 부담스러웠고, 아닌 척하지만, 청나라와의 화친을 은근히 원하는 듯한 북미왕국은 더욱 부담스러웠으니까.

물론 북미왕국의 외무청 관리들은 투로시노가 명령한 대로 훗날의 관계를 생각해 유럽 외교관들이 떠들어대는 동안 최대한 침묵하며 존재감을 애써 죽이려 했고, 이를 통해 동녕국과 주나라가 받는 압박감을 최소화하려 했지만, 북미왕국의 국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동녕국이나 주나라의 예부 관리들은 유럽 외교관들보다 북미왕국의 외무청 관리들에 더욱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기에, 자연히 북미왕국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이에 동녕국이나 주나라의 일부 신하들은 청나라를 멸망시킬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면서 이를 무시하고 계속 청나라를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하긴 했지만, 동녕국의 국왕인 정경이나, 주나라의 황제인 오세번은 북미왕국의 강력함을 잘 알고 있었고, 북미왕국이 내심 청나라의 멸망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전쟁을 계속하기를 꺼렸다.

북미왕국이 직접 움직이지 않고 뒤에서 물자만 지원하더라도 청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에.

여기에 그동안 유용하게 써왔던 작열탄의 보급마저 끊긴 상황이라, 지금처럼 청나라군의 진영을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했고.

다만, 정경이나 오세번은 화친을 맺은 이후를 조금 걱정하긴 했다.

지금이야 청나라가 계속된 각지의 전쟁으로 빌빌대고 있지만, 화친 이후 나라를 안정시키고 다시 중원을 통일하겠다고 나선다면 상대하기 버거울 것 같았기에.

허나 이번 화친의 경우 북미왕국과 유럽 각국이 나서 중재하는 만큼, 나중에 청나라의 상황이 좋아지더라도 섣불리 화친을 깨고 동녕국과 주나라를 공격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외무청 관리의 말에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고.

해서 두 나라는 결국 북미왕국과 유럽 각국의 중재를 받아들여 청나라와 화친을 위한 협상을 시작하기로 결정했고, 이 소식이 북경에 전해지자 청나라의 황제 강희제와 청나라의 대신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있을 협상을 위해 논의를 시작했다.

“알겠나? 협상을 통해 어떻게든 저들을 설득해 절강성에서 완전히 물러나게 하게.”

북미왕국과 유럽 외교관들이 동녕국의 수도인 승천부를 방문한 후로 동녕국의 군사 행동이 멈추긴 했지만, 그 전까지 동녕국은 이번이 청나라를 압박할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병력을 절강성에 투입했고, 이러한 동녕국의 거센 공세에 절강성에 주둔해 있던 청나라군은 계속해서 밀렸었다.

그렇기에 청나라는 동녕국에게 절강성의 4할 가까이를 내줘야만 했었고.

헌데 강희제는 어떻게든 동녕국을 설득해 절강성에서 물러나게 하라고 명령하니, 이번 협상의 책임자인 예부 상서 연목은 식은땀을 흘리며 조심스럽게 반박했다.

“하...하오나 황상 폐하. 저들은 이미 절강성의 4할 가까이 차지하고 있사옵니다. 과연 저들이 순순히 물러나겠사옵니까.”

“그렇사옵니다. 특히 저들의 영토는 작은 편이라 쉬이 물러나지 않을 거라 여겨지옵니다.”

내각 대학사 역시 강희제의 요구는 현실적으로 무리라고 판단했기에 슬쩍 끼어들었고, 이에 강희제는 자신이 그것도 모르겠느냐는 얼굴로 내각 대학사와 연목을 바라본 후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렇겠지. 어떻게든 눌러앉으려 할 테니 어지간한 조건에는 물러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우리가 광동성을 포기하겠다고 약조한다면?”

강희제가 강서성이 적에게 넘어간 이후로 연락이 끊긴 광동성을 언급하자 내각 대학사가 움찔했다.

“...광동성을 말이옵니까?”

“그래. 내가 알기로 아직 광동성은 동녕국이나 주나라가 점령하지 못한 것으로 아는데?”

이전까지 강희제나 청나라 대신들은 동녕국은 명나라 잔당으로, 주나라는 반란군, 혹은 오삼계의 사병으로 부르며 이들을 인정하지 않고 비하했지만, 지금은 자존심을 내세울 때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했기에 저들이 주장하는 대로 부른 강희제의 말에 병부 상서가 대답했다.

“그렇사옵니다. 주나라는 광동성에 관심이 없는 듯하고, 동녕국은 광동성에 관심이 있는 듯하나, 당장은 강서성의 장악과 절강성의 공격이 우선이라 내버려 두고 있는 상황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지. 그러니 광동성은 아직 우리 대청의 영토네. 물론 연락이 끊긴 상태이긴 하지만 말이지.”

주나라는 동녕국과 미리 영토 협상을 마쳤고, 이때 주나라가 동녕국에 약속한 땅 중의 하나가 바로 광동성이었다.

그렇기에 주나라는 강서성이 함락된 후 북경과의 연락과 보급이 끊긴 광동성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동녕국은 주나라가 철수하면서 공백이 생긴 강서성의 장악과 절강성에 주둔한 청나라군의 남하를 우려해 이미 확고히 장악한 복건성의 방어에 신경을 써야 했기에 광동성에 관심을 보였지만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일단 광동성에는 청나라 병력도 존재했고, 이들에 반기를 든 반란군이나 도적들도 있었기에 광동성을 완전히 장악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병력을 투입해야 했기에 동녕국은 광동성의 장악을 뒤로 미룬 것이다.

그러다 상황이 변하면서 청나라의 시선을 끌기 위해 광동성보단 절강성을 공격해야 했기에 내버려 두었고.

그러니 공식적으로 광동성은 아직 청나라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강희제였고, 그런 강희제의 주장에 광동성을 하나의 패로 이용하라는 뜻임을 깨달은 연목이 다시 한번 강희제의 뜻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입을 열었다.

“하옵시면 황상 폐하께서는...”

“그래. 어차피 동녕국이 점령한 강서성을 되돌려받을 수는 없을 테고, 그러면 광동성과는 바닷길로만 연결되어 있는 상태이니 동녕국, 주나라와 화친을 맺은 이후라도 제대로 통치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거야. 그러니 광동성을 저들에게 넘겨주는 대신, 동녕국을 절강성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이 최선인 듯싶네.”

물론 온전히 광동성을 청나라가 통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삼번의 난이 오랫동안 계속되면서, 군비를 감당하기 위해 청나라 조정에서는 더 많은 세금을 걷었고, 이에 반발한 백성들과 지역 유지들이 곳곳에서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러한 반란이 가장 많이 일어난 곳 중에 하나가 바로 광동성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강서성을 잃지 않았던 시기에도, 이러한 반란으로 광동성의 극히 일부 영역만 제대로 통치할 수 있었고.

이러한 사실을 동녕국도 잘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하기에, 과연 광동성을 내어주는 조건으로 동녕국을 장악한 절강성의 영토를 받아낼 수 있을까 싶어, 어두운 얼굴을 하는 연목이었고, 그런 연목의 얼굴을 본 강희제가 피식 웃으며 조언했다.

“협박하게.”

“예? 협박이요?”

그게 무슨 소린가 싶어 연목이 강희제를 바라보자 강희제가 담담하게 설명했다.

“그래. 엄밀히 따지면 광동성은 아국의 땅이니, 동녕국이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광동성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협박을 하란 말이네. 그럼 동녕국으로서는 여러모로 불편해지겠지. 배후에 아국의 영토가 있는 셈이고, 광동성과의 교통 때문에 많은 선박이 동녕국의 영해를 드나들게 될 테니까.”

“아...”

“그리고 저들이 절강성의 4할 가까이 점령하긴 했지만, 다행히 항주 같은 중요 도시들을 점령하진 못했네. 그에 반해 광동성에는 광주가 있으니, 동녕국으로서는 지금 점령한 절강성의 땅을 포기하고 온전히 광동성을 확보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것쯤은 짐작할 걸세. 그러니 우리가 광동성을 쉽게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것만 동녕국이 인식한다면, 동녕국도 결국은 우리의 뜻대로 움직일 거야.”

연목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강희제의 말이 옳았기에 고개를 숙였다.

“알겠사옵니다. 황상 폐하의 금과옥조를 되새겨 협상에 임하도록 하겠나이다.”

연목의 대답에 강희제가 피식 웃은 후 입을 열었다.

“그리고 문제는 주나라인데...”

동녕국과의 협상은 광동성이라는 좋은 패가 있었지만, 주나라와의 협상에는 그런 패가 없었기에 강희제가 안색을 찌푸리자 내각 대학사가 입을 열었다.

“주나라와는 지금처럼 장강을 경계로 국경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러니 화친을 위한 예물이나 적당히 내어주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예물이라...”

주나라 황제인 오삼계가 죽은 이후, 주나라 내부는 흔들렸고, 이를 파악한 강희제는 조선제 조총으로 무장한 병력을 주나라 방면에 투입해 주나라를 밀어붙였고, 덕분에 잃었던 섬서성과 호북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준가르의 침공으로 강희제는 어쩔 수 없이 조선제 조총으로 무장한 정예병력을 빼야만 했고, 그렇게 주나라는 내부를 어느 정도 수습하고 수도의 방어를 위해 호북성을 되찾고자 거세게 밀어붙였고.

이러한 거센 공세에 청나라는 장강 이북으로 후퇴해 장강이라는 천혜의 방어선을 이용해 주나라군을 막고 있었다.

그리고 내각 대학사는 지금처럼 장강을 경계로 국경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니 화친을 맺는 대가로 적당히 예물이나 내어주자고 이야기했고.

이에 강희제는 주나라에 예물까지 내어 줘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긴 했지만, 상황이 상황이었기에 한숨을 내쉬며 동의했다.

“후우. 하는 수 없지. 그러도록 하게.”

“알겠사옵니다. 협상을 통해 최소한의 예물로 저들을 만족하도록 하겠나이다.”

연목의 대답에 강희제는 힘없이 웃었고.

그러다 강희제는 문득 자신들을 도와 화친을 중재하는 북미왕국과 유럽 나라들을 떠올리며 연목에게 물었다.

“헌데 이번에 화친 협상을 돕고 있는 북미왕국과 유럽 나라들에도 무언가를 내어줘야 하지 않나? 보통 중재를 해주면 그에 맞는 사례를 하는 것이 저들의 관례라면서?”

“그렇사옵니다. 다만 유럽 나라들은 우리 대청과의 교역을 원하는 터라 북미왕국처럼 통상을 허락해주면 될 것 같사옵니다.”

그동안 유럽 나라들은 한결같이 청나라와의 정식 교역을 원했었기에, 강희제는 연목의 대답에 역시나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북미왕국은?”

“북미왕국은...추가로 개항장을 확보하길 원하더군요.”

“추가로 개항장을?”

연목의 대답에 강희제는 고개를 갸웃했다.

북미왕국은 조청전쟁을 통해 이미 충분한 수의 개항장을 확보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추가로 개항장을 원한다는 것이 의아했던 것이다.

더불어 자신의 뜻대로 협상이 진행된다면, 청나라는 장강 이남을 대부분 잃게 되는 터라 쓸만한 항구 도시들은 더욱 적어지니.

그런 강희제의 의문을 눈치챈 연목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북미왕국이 추가로 원하는 항구들은...장강과 연결된 내륙 항구들이옵니다. 황상 폐하.”

“뭐? 내륙 항구? 그럼...”

“그렇사옵니다. 북미왕국은 내륙 항구를 개항장으로 지정해 내륙의 상인들과 직접 거래를 하고 싶어 하옵니다.”

“으음...”

예상외의 대답에 강희제가 신음을 흘리며 생각에 잠겼을 때, 내각 대학사가 입을 열었다.

“내륙 항구를 개항장으로 지정한다? 그럼 북미왕국의 선박들이 장강을 자유로이 드나드는 것을 허락해야 한다는 거요?”

“그렇습니다.”

“그건 조금...”

내각 대학사는 북미왕국의 선박들이 장강을 자유로이 드나든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 듯 얼굴을 찌푸리고 있을 때, 강희제가 입을 열었다.

“그래. 타국의 선박이 우리 대청의 강을 마음대로 드나드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아. 하지만...북미왕국에 받은 도움이 크니 어쩌겠나.”

“으음...”

“그리고 우리의 뜻대로 협상이 진행된다면, 대부분은 장강을 경계로 영토가 나뉠 테고, 그렇게 되면 장강은 우리 대청뿐만 아니라 동녕국과 주나라도 이용할 테니, 여기에 북미왕국의 배가 좀 드나들면 어떠한가.”

확실히 장강이 온전히 청나라의 강이라면 모를까, 아마 청나라가 원하는 대로 협상이 진행된다면, 장강 하류는 청나라가 완전히 장악하더라도 중류부터는 동녕국과 주나라와 함께 장강을 이용해야 했다.

그러니 타국의 배가 추가로 드나드는 것쯤은 크게 문제가 아니라는 강희제의 말에 내각 대학사가 대답했다.

“...알겠사옵니다. 황상 폐하. 허나 장강을 드나드는 북미왕국 선박의 숫자를 제한할 필요는 있지 않겠사옵니까.”

“흠. 그러도록 하게. 무제한으로 허용했다가는...아국의 은의 상당수가 북미왕국으로 흘러 들어갈 테니.”

강희제의 대답에 내각 대학사가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을 때, 환관이 급히 대전으로 들어와 강희제에게 서찰을 건넸고.

서찰을 확인한 강희제가 탄성을 내질렀다.

“허. 북미왕국이 준가르마저 설득했다는군!”

“그...그게 정말이옵니까?”

내각 대학사를 비롯한 청나라 대신들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묻자 강희제가 한시름 놓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북미왕국의 사절이 준가르를 설득했고, 화친 협상을 위한 사절을 보내라는 연락을 해왔다는군.”

“오오!”

“경하드리옵니다. 황상 폐하.”

“경하드리옵니다. 황상 폐하.”

계속된 전쟁으로 청나라가 피폐해지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국지적으로 민란이 발생하고 있는 터라, 동녕국, 주나라에 이어 준가르와의 화친은 분명 축하할 일이었다.

청나라 내부를 수습할 기회를 얻은 셈이니까.

해서 청나라 대신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그런 청나라 대신들의 축하에 강희제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됐네. 축하보다는 준가르와의 협상을 대비하는 것이 우선일세. 그러니까...”

준가르와 협상을 잘 마무리 짓는다면, 청나라 내부를 수습할 수 있었기에 강희제는 강한 의욕을 보이며 대전 회의를 계속했고.

덕분에 청나라 대신들은 밤늦게까지 대전에서 준가르와의 협상을 논의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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