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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740화 (740/850)

740화

남쪽의 청나라 진영에서 소규모 병력이 나왔다는 보고에 갈단 칸은 동생인 도르지자브에게 출격을 명령했다.

그 후 다른 장수들과 지도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갈단 칸은 바깥이 소란스러워지자 도르지자브가 복귀했음을 직감했고.

그리고 예상대로 잠시 후 도르지자브가 갈단 칸에게 다가왔고, 갈단 칸은 도르지자브를 보고 말을 건넸다.

“그래. 적들을 격파하고 복귀한 거냐?”

“그게...적들이 아니었습니다. 형님.”

“응? 그게 무슨 소리냐. 적들이 아니라니?”

갈단 칸이 도르지자브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자세히 이야기해보라는 눈빛을 보내자 도르지자브가 입을 열었다.

“청나라 진영에서 나온 소규모 병력을 공격하기 위해 출격했지만, 그들은 저희를 보자마자 백기를 들었습니다.”

“백기를? 그럼 청나라에서 사절을 보낸 것이냐?”

“아닙니다. 청나라가 아니라 북미왕국에서 보낸 사절입니다.”

“음?”

동생이 뜬금없이 북미왕국을 거론하자 갈단 칸은 당황했고.

그런 갈단 칸의 반응에 도르지자브가 진짜이니 믿어달라는 눈빛으로 갈단 칸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입니다. 형님.”

“아니...잠깐만. 그럼 소규모 병력도 북미왕국의 병사들이었나?”

“그건 아닙니다. 청나라군이었습니다. 일종의 호위였고, 북미왕국의 사절이 저희를 따라간다고 이야기하자 청나라 진영으로 되돌아가더군요.”

“그래? 그럼 북미왕국의 사절은...”

도르지자브가 손으로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저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형님.”

“허. 이게 도대체 무슨...”

갈단 칸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고는 저 밖에 있다는 북미왕국의 사절에 관한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도르지자브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럼 북미왕국의 사절은 나를 만나기 위해 청나라를 통해서 온 거라고?”

“그렇게 말하더군요.”

“헌데 청나라가 그걸 도왔다고? 우리는 청나라의 적인데? 오히려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

청나라 입장에서 자신들은 적이었다.

그리고 북미왕국은 강력한 국가로 알려져 있었고.

그러니 청나라에서는 적인 자신들과 북미왕국이 만나는 것을 꺼려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달까.

헌데 청나라가 오히려 북미왕국의 사절이 자신들을 만날 수 있게 도왔다는 말에 뭔가 이상하다는 얼굴을 하는 갈단 칸이었고.

“저도 그 부분이 조금 의문이라 물었는데, 북미왕국에서 청나라를 설득했답니다.”

“설득?”

“예. 자신들이 형님과 만나는 것이 양국에 도움이 될 거라고, 그러니 도와달라고 청나라를 설득했다더군요.”

도르지자브의 대답에 갈단 칸은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자신과 북미왕국의 사절이 만나는 것이 준가르와 청나라, 양국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의미심장했기에.

다만 확실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리고 직접 북미왕국의 사절을 만나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 손짓했다.

“...일단 북미왕국의 사절을 데리고 오너라.”

“알겠습니다. 형님.”

갈단 칸의 명령에 도르지자브는 곧바로 북미왕국의 사절단을 데려왔고.

사절단의 복식은 확실히 생소했기에 갈단 칸이 약간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사절단의 맨 앞에 서 있는 중년 남성을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갈단 칸이시여.”

“그래. 나도 명성이 자자한 북미왕국의 사절을 만나게 되어 반갑군. 헌데...대체 무슨 일로 이 전쟁터에 온 건가?”

바로 용건을 묻는 갈단 칸을 보고 사절단의 대표이자 외무청 관리인 김형준은 갈단 칸을 설득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아국에서 저를 이곳에 보낸 이유는 준가르와 청나라 사이의 전쟁을 중재하기 위해서입니다.”

김형준의 이야기에 도르지자브를 비롯한 장수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갈단 칸은 역시나 싶었다.

저런 용건이 아니고서는 북미왕국의 사절단이 자신들과 접촉하는 것을 청나라가 도울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었기에.

다만 갈단 칸이 생각하기에, 지금처럼 유리한 상황에서 북미왕국의 중재로 청나라와 화친을 하고, 약간의 재물을 받고 물러나는 것보다는, 아예 청나라를 멸망시키고 비옥한 중원 땅을 노리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고.

다만 문제는 북미왕국이었다.

북미왕국이 사절까지 보내 자신들과 청나라 사이를 중재하려고 하는 것을 볼 때, 만약 자신이 저 사절의 제안을 거절하고 청나라와 전쟁을 계속한다면 북미왕국이 청나라를 도울 수도 있었고, 갈단 칸은 이것이 내심 부담스러웠다.

북미왕국의 강력함은 갈단 칸도 모르지 않았으니까.

해서 갈단 칸이 김형준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질문을 던졌다.

“청나라와 화친을 맺어라? 썩 내키지 않는데. 혹시 북미왕국의 중재를 무시한다면, 북미왕국이 이번 전쟁에 개입하는 건가?”

이에 김형준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국의 중재를 거절한다고 해서, 아국이 청나라와 동맹을 맺고 귀국을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

갈단 칸이 김형준의 대답에 조금 의외라는 얼굴을 하자 김형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예. 다만 개인적으로 한 말씀 드리자면, 중국 대륙의 상황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에, 최대한 빠르게 청나라와 화친을 맺는 것이 준가르에도 이득일 겁니다.”

김형준의 대답에 갈단 칸이 표정을 찌푸렸다.

중국 대륙의 변화란 말이 내심 걸렸기에.

해서 갈단 칸이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잘 아시겠지만, 지금까지 청나라는 준가르뿐만 아니라, 남쪽의 동녕국, 주나라와도 오랫동안 전쟁 중이었습니다. 물론 청나라야 동녕국과 주나라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일종의 내전의 형태였습니다만...”

김형준이 장황하게 설명할 기색이자 갈단 칸은 그럴 필요 없다는 듯 손짓하며 말을 끊었다.

“그건 알고 있네. 그리고 우리가 청나라를 공격하면서, 청나라가 남쪽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동녕국과 주나라가 병력을 추스르고 북진해 청나라를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고. 그러니 청나라는 곧 멸망할 테고, 그 점을 고려하면 지금은 청나라와 화친을 맺을 때가 아니라 저들이 북경까지 올라오기 전에 더 거세게 공격해 북경을 함락하고, 남쪽으로 밀고 들어가야 할 상황 아닌가?”

갈단 칸의 말에 주변에 있던 장수들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흘렸고.

하지만 김형준은 그런 장수들을 조금 딱하다는 듯 바라본 후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상황이 바뀌었거든요.”

이에 장수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갈단 칸이 김형준을 재촉하듯 되물었다.

“상황이 바뀌었다?”

“그렇습니다. 동녕국과 주나라가 청나라를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준가르를 의식한 청나라가 병력을 남쪽보다 북쪽에 집중시켰다는 것과 화약 무기 덕분이었습니다.”

“그건 알고 있네.”

“헌데 그동안 동녕국과 주나라에 화약 무기를 판매해 왔던 유럽 상인들이, 문제가 생겨서 더는 화약 무기를 판매하지 못하겠다고 알렸다는 점입니다.”

물론 유럽 상인들이 두 나라에 화약 무기를 판매하지 않는 것은 북미왕국의 설득 때문이었지만, 그걸 밝힐 필요는 없었기에 쏙 빼버린 김형준이었고.

이에 장수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지만, 갈단 칸은 뭐가 문제냐는 얼굴로 반문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지? 유럽 상인들이 화약 무기를 판매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존에 확보한 물량이 있으니 크게 상관이 없을 텐데?”

물론 전투를 치르다 보면 일부 무기들이 파손되기는 한다.

허나 대패해 부대가 전멸할 정도가 아니라면 그 손실률은 높지 않아, 유럽 상인들이 화약 무기를 판매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당장은 큰 문제는 없으리라 판단한 갈단 칸이었고.

그런 갈단 칸을 보고 김형준이 말했다.

“아닙니다. 동녕국과 주나라가 청나라군의 진영, 요새 등을 쉽게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유럽 상인들이 가져다주는 작열탄 덕분이었거든요.”

“작열탄?”

“그렇습니다. 포탄의 일종인데 단순한 쇳덩이가 아니라 폭발해서 더 큰 피해를 주는 포탄이라고 해야 할까요?”

김형준의 설명에 갈단 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물론 김형준이 설명하는 작열탄에 관한 소문은 갈단 칸도 접한 적이 있었다.

북미왕국이 시베리아 원주민들을 도와 러시아 차르국과 전쟁을 치렀을 때 작열탄이 사용되었기에, 시베리아 지역에서 작열탄에 대한 소문이 돌아다녔으니 말이다.

다만, 갈단 칸은 그 소문을 접하고 과장된 소문이라고 치부했었고.

헌데 김형준의 말을 들어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아 갈단 칸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 무기가 정말 있다고?”

“그럼요. 아국에서도 사용하고 있고, 유럽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해서 동녕국과 주나라는 유럽 상인들이 판매하는 이 작열탄을 적극적으로 이용했었지요. 헌데 작열탄의 보급이 어렵게 된 이상, 두 나라는 소극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어쩌면 청나라와 화친을 맺을 수도 있고요.”

김형준의 말에 옆에서 이를 듣고 있던 도르지자브가 버럭 화를 내며 끼어들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청나라가 고작 반란군과 명나라 잔당들은 인정한다고?”

이에 김형준이 고개를 돌려 도르지자브를 바라보고는 담담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인정해야지 어쩌겠습니까. 그만큼 청나라의 상황이 안 좋은 것을요. 그리고 이곳에 오기 전 북경을 들렀는데, 이미 청나라는 동녕국과 주나라와 화친을 맺기 위한 사절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더군요.”

김형준의 말이 끝나자 갈단 칸은 움찔했다.

정말 청나라가 동녕국과 주나라와 화친을 맺기 위해 사절을 보내고, 두 나라가 작열탄이 없다는 이유로 청나라와 화친을 맺게 되면 김형준의 말대로 상황이 완전히 바뀌게 되는 셈이니까.

“...그게 정말인가?”

“물론입니다. 그걸 속여서 무엇하겠습니까.”

“...으음.”

김형준의 대답에 갈단 칸은 생각이 많아졌는지 신음을 흘렸고.

김형준은 그런 갈단 칸을 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청나라가 동녕국, 주나라와 화친을 맺는다면, 남쪽에 주둔한 병력 대다수를 북경으로 불러들일 테고, 준가르는 청나라와 정면 대결을 펼쳐야 할 겁니다.”

“흥. 우리가 그걸 두려워할 것 같나? 이미 청나라는 예전의 청나라가 아니니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갈단 칸은 김형준의 말로 사기가 꺾일 것을 우려해 즉각 김형준의 말을 받아쳤고.

이에 도르지자브를 비롯한 장수들은 갈단 칸의 말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지만, 김형준은 갈단 칸의 반응에서 생각이 많아졌음을 눈치채고 바로 입을 열었다.

“아. 물론 준가르가 청나라와의 정면 대결에서 승리를 거둘 수도 있겠지요. 허나 청나라는 모든 물자를 동원해 최대한 준가르에 저항하려 들 테고, 그렇게 되면 설사 승리한다 하더라도 피해가 무척 커질 겁니다. 청나라군이 요새나 성곽에 틀어박혀 화약 무기만 쏘아댄다면 더욱 말입니다.”

“...그러니 청나라와 화친을 맺어라?”

“그렇습니다. 제가 알기로 이번 전쟁의 목적은 청나라의 멸망이 아니라 몽골 지역의 확보로 알고 있고, 현재 준가르는 몽골 지역 대부분을 점령한 상태이니, 청나라와 협상을 통해 몽골 지역과 몽골 지역 내 부족들의 종주권을 확보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만...”

김형준의 말대로 준가르는 빠른 기습으로 몽골 지역의 청나라군을 패퇴시키고 이미 준가르에 복속된 할하부 우익을 이용해 이렇게 청나라군이 후퇴한 몽골 지역의 장악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러니 갈단 칸으로서는 이번 전쟁을 통해 목표한 바는 이루었다고 봐도 되었고.

다만 갈단 칸은 과연 청나라의 황제가 몽골 지역을, 그동안 쥐고 있던 몽골 부족들의 종주권을 포기할까 싶어 이를 언급하자 김형준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 부분은 협상을 통해 충분히 조율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사절은 그렇게 생각하나?”

“예. 그만큼 청나라의 상황은 좋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청나라가 동녕국, 주나라와 화친을 맺게 되면 상황은 달라질 겁니다.”

“그러니 먼저 협상해라?”

“그렇습니다. 그게 준가르를 위해서도 나을 테지요.”

이에 갈단 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김형준을 바라보고 말했다.

“글쎄...내가 보기엔 화친을 맺는다 하더라도, 청나라가 내부를 추스르고 나면 다시 몽골 지역을 되찾겠다고 나설 것 같고, 그때는 아국도 피해가 더 커질 것 같은데 말이지.”

“청나라를 믿을 수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어찌 믿을 수 있겠나.”

바로 대답하는 갈단 칸을 보고 김형준이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만약 준가르와 청나라가 단독으로 협상한다면, 나중에 이를 쉽게 깰 수도 있겠지요. 허나 이번 협상은 아국이 중재하는 것입니다.”

“...그 말은?”

“아국의 중재 하에 청나라가 몽골 지역을 포기했는데 나중에 이를 불복한다면, 아국이 준가르를 도울 명분이 생기겠지요. 아니 그렇습니까?”

김형준이 씩 미소를 짓자 갈단 칸은 그제야 북미왕국이 이번 일에 끼어든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허...북미왕국은...청나라의 확장을 막을 생각인가? 그래서 이번 일에 끼어든 거고?”

이에 김형준은 슬쩍 웃기만 할 뿐이었고, 그런 김형준을 보고 갈단 칸이 대답하라는 듯 매서운 눈빛을 보내자 김형준이 입을 열었다.

“그보다는...일종의 은혜를 갚는 거라고 생각하시지요.”

“은혜?”

“예. 3년 전 귀국이 몽골 지역을 공격하면서, 급해진 청나라는 동만주를 포기하고 화친을 맺었으니까요. 허니 아국은 귀국에 도움을 받은 셈인데, 이대로라면 귀국은 크게 손해를 볼 것이 뻔하니...그래서 개입한 겁니다.”

말은 그럴듯했지만, 갈단 칸이 보기에 북미왕국은 청나라를 견제하는 것처럼 보였고, 북미왕국이 청나라를 경계한다면 자신들로서는 나쁠 것이 없었기에, 갈단 칸은 알겠다는 얼굴로 손짓하며 말했다.

“북미왕국의 뜻은 잘 알겠다. 허나 바로 결정할 문제는 아닌 듯하니, 일단 쉬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칸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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