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9화
정성국의 호출을 받은 법무청장과 연금 복지국 국장은 급히 정성국의 집무실로 찾았고.
그나마 정성국에 익숙한 법무청장과는 달리 정성국과 직접 만난 적은 두 손가락을 꼽을 정도였던 연금 복지국 국장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집무실을 들어왔고, 정성국은 그런 연금 복지국 국장을 보고 쓰게 웃으며 게으른 곰이 올렸던 보고서를 건넸다.
이에 연금 복지국 국장은 고개를 갸웃하며 보고서를 받아 들고 내용을 확인하기 시작했고.
보고서의 내용이 비리를 저지른 연금 복지국 관리에 감찰 보고서였기에 연금 복지국 국장의 안색은 점차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어...아니...이건...어찌...”
그리고 그런 연금 복지국 국장의 반응에 옆에 있던 법무청장은 대체 저 보고서가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 슬쩍 목을 빼서 연금 복지국이 들고 있는 보고서를 살펴보았고.
“허. 서류를 조작한 겁니까? 연금을 받기 위해?”
“그렇네. 그래서 전대규를 비롯한 친척들은 다자녀 가구 연금을 최대치로 받으며 부유하게 살 수 있었고 말이지.”
“그럼 저를 부르신 것은...”
이에 정성국이 차가운 눈빛으로 법무청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행정 서류를 조작해 부당 이득을 챙긴 전대규와 친척들을 벌하기 위해서지.”
정성국의 살벌한 목소리에 연금 복지국 국장은 바들바들 떨었지만, 법무청장은 개의치 않고 자신감 넘치는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맡겨주시옵소서. 최대한 꼼꼼하게 살펴 위법 사항을 모두 찾아 처벌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부당 이득은 철저히 환수하도록 하게.”
“물론입니다. 전하.”
법무청장의 대답에 만족한 정성국은 시선을 돌려 연금 복지국 국장을 바라보았고.
정성국의 시선을 느낀 연금 복지국 국장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벌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됐네. 앉게.”
“하오나 연금 복지국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은 분명 소신의 죄이옵니다. 벌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그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정성국이었다.
물론 이런 비리가 연금 복지국에서 발생한 만큼, 연금 복지국의 총 책임자인 국장에게도 죄가 없지는 않다.
다만 이번 비리는 말단 관리가 벌인 일이라 연금 복지국 국장을 벌하기는 조금 그랬달까.
‘오히려 연금 복지국의 감사실 직원들이나 새진주 연금 복지국 지부장을 징계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은데...’
그런 생각을 하며 정성국이 말했다.
“자네를 징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네.”
“예?”
정성국은 연금 복지국 국장이 들고 있는 보고서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번엔 우연히 정보기관에서 정보를 입수한 덕분에 저 친구의 비리를 적발할 수 있었지. 헌데 딴마음을 품고 연금에 손을 댄 자가 저 친구 하나라고 확신할 수 있나?”
“그건...”
다른 청이나 국도 사정이 비슷하긴 한데, 연금 복지국은 정말 막대한 예산을 다룬다.
그리고 견물생심이라는 말이 있듯이, 전대규 말고 다른 연금 복지국의 관리들도 이 막대한 자금을 다루면서 이 중 일부를 충분히 탐낼 수도 있었고.
물론 이 때문에 정성국은 각 청과 국마다 자체적으로 감사실을 두고 이들의 활동을 알려 관리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고, 또 관리들에게 넉넉한 급여를 주며 대우해서 잘못된 선택으로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을 잃는 멍청한 짓을 하지 말라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심어주고 있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욕심이 과한 자들을 막긴 어려웠다.
이를 연금 복지국 국장도 모르지는 않았기에 정성국의 말에 멈칫했고.
정성국은 연금 복지국 국장이 자신의 말을 이해한 것처럼 보였기에 대화를 마무리할 겸 말했다.
“그래. 법무청에서 전대규 저 친구를 탈탈 터는 사이, 자네는 감사실을 움직여 연금 복지국 전체를 철저히 털어야지. 자네에 대한 처벌은 그 이후일세.”
지금 자신을 처벌하고 새로운 국장을 선임했다간, 연금 복지국 내부가 혼란스러울 테니 일단 미루겠다고 이해한 연금 복지국 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전하. 바로 감사실을 움직여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부정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정성국은 연금 복지국 국장을 보고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번엔 내 믿음을 저버리지 말게.”
부담을 왕창 떠넘겨주는 정성국의 말에 법무청장은 역시나 싶어 피식 웃었지만, 연금 복지국 국장은 주먹을 불끈 쥐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믿어주시옵소서. 전하.”
* * *
한창 국내의 일을 처리하는 데 정신이 없던 정성국은 조용한 곰이 집무실을 방문하자 한숨 돌릴 겸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고.
한 방울씩 떨어지는 커피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정성국은 고개를 돌려 조용한 곰을 보고 물었다.
“그래. 무슨 일인가.”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
“예. 투로시노가 보내온 연락에 따르면 동녕국이 청나라와의 화친에 동의했다고 합니다.”
“오. 동녕국을 설득했다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던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말에 피로가 풀린 듯 빨리 자세히 설명하라는 눈빛을 보냈고.
이에 조용한 곰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전하. 동녕국의 수도인 승천부를 방문한 외무청 관리와 유럽 외교관들이 동녕국을 설득에 성공했다는 보고가 막 올라왔습니다.”
“그거 다행이긴 다행이군. 헌데 주나라는?”
동녕국이 청나라와 화친을 위해 협상하기로 결정한 것은 정말 다행인 일이다.
그러나 동녕국보다는 주나라의 세력이 강대했고, 청나라와의 전선 역시 주나라와의 전선이 길게 늘여져 있었기에, 주나라가 마음을 바꿔 공세를 멈춰야 청나라가 한숨을 돌릴 수 있었기에 정성국이 묻자 조용한 곰이 대답했다.
“방성현에서 대기하던 주나라 예부의 관리에게 용건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주나라의 반응은?”
정성국의 물음에 조용한 곰이 고개를 저었다.
“음...솔직히 반응이랄 것이 없습니다. 방성현에 대기하고 있던 예부 관리는 하급 관리에 불과하니까요.”
북미왕국도, 그리고 유럽 역시 워낙 먼 곳까지 외교관을 보내야 하니, 외교관들에게 막대한 권한을 대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었지만, 동양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그러니 방성현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하급 관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이를 이해한 정성국이 중얼거렸다.
“아. 그건 그렇군. 그럼 오세번이 결정할 문제라는 건데...”
“그렇지요. 다만, 투로시노의 판단으로는 주나라도 결국, 동녕국처럼 별다른 반발 없이 받아들일 거라고 하더군요.”
“음? 왜?”
이유를 묻는 정성국에게 조용한 곰이 말했다.
“투로시노는 동녕국과 주나라를 설득하기에 앞서 마닐라를 방문해 동녕국과 주나라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에스파냐, 네덜란드, 잉글랜드의 외교관을 먼저 설득했고, 이 설득에 마음을 바꾼 외교관들은 동녕국과 주나라로 향하는 군수 물자를 차단했습니다. 덕분에 두 나라는 유럽 세력들이 판매한 화약 무기로 무장한 병력을 아껴야 하는 처지가 되었지요. 헌데...”
조용한 곰이 여기까지 말하자 정성국 역시 상황을 이해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아. 그러고 보면 주나라에서 화약 무기로 무장한 병력은 모두 오세번이 지휘하고 있지?”
오세번이 제대로 된 무력이 없어서 군벌들을 장악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투로시노가 나서서 유럽 세력들이 오세번에 직접 거래하도록 공작했었다.
그 덕분에 오세번은 휘하의 병력을 화약 무기로 무장시킬 수 있었고, 이 병력을 이용해 군벌들을 장악할 수 있었고.
그런 만큼, 군수 물자의 차단은 오세번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짐작한 정성국이었고, 조용한 곰은 그런 정성국의 짐작이 맞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맞습니다. 그러니 오세번으로서는 청나라와의 전쟁을 계속할 수가 없습니다. 그랬다간 비축해둔 화약을 모두 소모할 테고, 화약이 떨어지면 화약 무기로 무장한 병력은 애물단지가 되니까요.”
“흠. 그렇게 되면 오세번에 숙였던 군벌들이 다시 딴마음을 품을 수도 있겠구만.”
호북성이 청나라에 넘어가면서 주나라의 군벌들은 위기감을 느꼈다.
권력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생존이었으니까.
이 때문에 주나라 군벌들은 생존을 위해 청나라에 항복해야 할지, 아니면 오세번에게 붙어야 할지 고민하던 와중에 오세번이 유럽 세력들과 직접 거래하면서, 휘하의 병력을 화약 무기로 무장시켰고, 여기에 준가르가 다시 청나라를 공격하면서 청나라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주나라 군벌들은 일단 오세번에게 고개를 숙였다.
허나 이 주나라 군벌들이 완전히 오세번에게 충성을 맹세한 것은 아니었고, 이를 오세번도 잘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오세번은 호북성을 탈환하기 위해, 가장 먼저 호북성에 화약 무기로 무장한 자신의 병력을 파견했음에도 불구하고, 소극적으로 움직이며 전투로 인한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고.
이를 볼 때 군수 물자가 끊긴 현 상황에서 오세번이 취할 행동은 뻔했기에 정성국이 묘한 표정을 하자 조용한 곰이 정성국을 대신해 이야기했다.
“예. 그걸 오세번이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러니 군수 물자의 추가 판매가 당분간 없을 거라는 사실을 오세번이 알게 되면, 현재 호북성에 배치 중인 화약 무기로 무장한 병력을 바로 뺄 테고, 그렇게 오세번이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면, 다른 군벌들도 몸을 사릴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청나라와의 화친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거군.”
“그렇습니다.”
솔직히 정성국은 전생의 기억이 있기에,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이 껄끄러워서 중재를 통해 현 상황을 고착시키려고 마음먹었던 정성국이었다.
하지만 내심으론 정말 가능할까 싶었고.
헌데 조용한 곰의 설명으로 청나라를 거세게 밀어붙이던 동녕국과 주나라가 결국 협상장에 앉아 청나라와 화친 협상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하자 만족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동시에 중국 대륙의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게끔 도운 준가르가 떠오른 정성국이었고.
“아. 그러고 보면 준가르로 보낸 외교관은 지금쯤 갈단 칸을 만나고 있으려나?”
이에 머릿속으로 계산해보던 조용한 곰이 대답했다.
“아마 지금쯤이면...최소한 준가르와 접촉했을 것 같기야 합니다.”
“흠. 갈단 칸이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할 텐데 말이지.”
준가르 덕분에 북미왕국은 꽤 많은 이득을 보았다.
조청전쟁 당시 청나라가 화친을 위해 동만주까지 넘긴 것은 준가르의 침공이 결정적이었고, 이번에도 준가르가 대대적으로 병력을 끌고 몽골 지역을 재침공했기에, 청나라가 결국 자존심을 꺾고, 반란군과 명나라 잔당으로 여기던 주나라, 동녕국을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하고, 북미왕국의 중재를 받아들여 화친 협상마저 감수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준가르 덕분에 중국 대륙의 정세를 정성국이 원하는 대로 이끌었으니만큼, 정성국은 준가르에 내심 미안한 마음이 있었고.
그렇기에 준가르가 고집을 피우지 않고, 자신들의 중재 제의를 받아들여 적당히 이익을 얻길 바랐다.
이미 동녕국과 주나라가 청나라와 화친 협상을 시작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그리고 저 삼국이 협상을 시작하면 북미왕국과 유럽 각국은 어떻게든 중국 대륙의 전쟁을 끝낼 것이고, 그렇게 되면 3년 전처럼 준가르는 또다시 몽골 지역에서 물러나야 할 수도 있었으니.
‘뭐 갈단 칸이 직접 정예를 데려온 만큼, 3년 전처럼 허무하게 깨지진 않을 것 같긴 한데...’
정성국이 속으로 갈단 칸의 역량을 계산하고 있을 때, 조용한 곰이 목소리가 들렸다.
“뭐 그동안 국영 상단을 통해 확보한 갈단 칸이라는 인물은 영민한 인물인 것 같으니, 현 청나라의 사정을 알게 된다면, 물러나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정성국의 의문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