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8화
새진주 외곽 마을에 있는 국영 은행의 지부장은 거침없이 집무실로 들어오는 2명의 사내를 바라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기에.
다만 보안이 생명인 은행에는 경비들이 가득했고, 이 집무실까지 왔다는 뜻은 경비들이 통과시켜줬다는 뜻과도 같았기에, 지부장은 검토하던 서류를 내려놓고 질문을 던졌다.
“자네들은 누군가?”
이에 덩치가 큰 남자가 품에서 종이를 꺼내 펼치며 말했다.
“감사실에서 나왔네.”
“헉! 가...감사실!”
지부장은 덩치가 큰 남자의 말에 순간 긴장했다.
그동안 성실하게 일해왔다고 자부하는 지부장이었지만, 감사실에서 마음만 먹으면 자신도 자를 수 있다 보니 자연스레 긴장될 수밖에 없었달까.
거기에 감사실 직원들이 자신을 방문한 것을 보면, 이 지부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고, 자신은 이 지부의 총책임자이니 자신이 떳떳하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고.
해서 지부장이 내심 당황하고 있을 때, 덩치 큰 남자가 들고 있는 종이를 지부장에게 건네며 말했다.
“당황하지 말고 절차대로 일단 신분증명서부터 확인해보게.”
“아...알겠습니다.”
그제야 절차를 떠올린 지부장은 덩치 큰 남자가 건넨 신분증명서가 진품인지 확인했고.
전화로 본점의 감사실과 통화를 한 이후에 신분증명서를 돌려주며 말했다.
“확인했습니다. 헌데 감사실에서 여긴 어쩐 일로...”
그 말에 옆에 있던 어디서나 흔히 볼법한 평범해 보이는 남자가 들고 있던 가죽 가방을 열어 한 보고서를 꺼내 지부장에게 건네며 질문을 던졌다.
“이 보고서. 자네가 작성했다면서?”
보고서를 받아든 지부장이 내용을 확인 후 안색이 밝아졌다.
감사실 직원들이 이 보고서 때문에 방문한 거라면, 자신이나 이 지부에 문제가 있어서 온 것이 아니란 소리였기에.
“아. 이것 때문에 오신 겁니까?”
“그래. 자세한 내용을 듣고 싶어서 말이네.”
이에 긴장을 완전히 털어버린 지부장이 설명을 시작했다.
“그게 그러니까...”
지부장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이 지부의 고객 중에 전대규라는 연금 복지국의 관리가 있다.
헌데 이 전대규는 2년 전부터 월급이 입금되는 자신의 계좌에서 돈을 인출하지 않았고, 지부장은 그 점이 조금 이상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고를 올렸다는 것이다.
원래 은행원들의 비리를 염려해 은행원들의 계좌를 주기적으로 확인해 무언가 의심되는 사항이 있으면 보고를 했지만, 관리들의 부패를 경계한 정성국이 관리들의 계좌도 확인할 수 있게 법을 바꿨기에, 지부장이 보고한 것으로 보이자 평범한 얼굴의 남자가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흠. 월급을 모두 저축해서 의심스럽다?”
“예. 살아가려면 기본적인 생활비는 필요하잖습니까.”
관리들의 경우 은행 직원들처럼 국영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고 이 계좌에 월급을 넣어주기에, 관리들의 월급날에는 항상 관리들로 붐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전대규도 2년 전까지는 월급날마다 꾸준히 급여의 절반 정도를 인출해 왔었고.
헌데 그 이후로는 가끔 은행에 들러 계좌를 확인할 뿐, 출금을 하지 않았기에 관리들의 계좌를 점검하던 지부장은 은행의 직원이나 관리들의 입출금 내역이 급격히 바뀌면 보고하라는 지침에 따라 기본 조사 후 보고 했다는 지부장의 설명에 옆에서 듣고 있던 덩치 큰 남자가 끼어들었다.
“그렇기야 한데...이 친구. 혹시 혼자 사나?”
“그건 아닙니다. 가족이 있지요. 다만 아내는 가정주부이고, 자식이 둘 있더군요.”
“자식들은 아직 어리고?”
“예.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못했으니까요.”
지부장의 대답에 덩치 큰 남자가 확실히 의심스럽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럼 가족 중에 돈을 버는 이는 전대규 뿐이라는 건데...”
이에 옆에서 생각에 잠겨 있던 평범한 얼굴의 남성이 의견을 제시했다.
“혹시 출산 지원금으로 생활비를 대신하는 건 아닐까? 아이가 어리면 출산 지원금을 받은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소리고, 전대규와 그 부인이 자린고비에 가까울 정도로 절약 정신이 투철하다면야...”
확실히 일리가 있어 보이는 의견이었지만, 지부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겁니다.”
“아니라고? 부인의 계좌도 확인한 건가?”
감사실 직원들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지부장을 바라보자 지부장은 급히 손을 내저었다.
“부인이야 관리가 아닌 일반인이니 어찌 의심만으로 계좌를 확인하겠습니까. 다만 전대규가 의심스러워 그 보고서를 작성하기 전에 개인적으로 알아보았는데, 생활상이 자린고비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래?”
“예. 사치...까지는 아닙니다만 다른 관리들처럼 부유하게 사는 편이었습니다. 외식도 자주 하고요.”
그러면서 지부장은 책상의 서랍을 열어 하나의 보고서를 꺼내 가까이 있는 평범한 얼굴의 남자에게 건넸고.
평범한 얼굴의 남자는 전대규의 신상 정보와 평판 등이 적힌 보고서 내용을 확인 후 흥미로운 눈빛과 함께 말했다.
“흠. 2년 전부터는 월급에 손도 안 대는데 돈은 펑펑 쓴다 이거지? 그럼 한번 조사해볼 가치는 있겠네.”
“그러게. 그럼 이 건은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자네는...”
덩치 큰 남자가 지부장을 바라보자, 지부장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입 다물고 있겠습니다.”
“그래. 협조 부탁하지.”
지부장의 눈치가 빠른 편이었기에, 굳이 다른 말은 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 두 남성은 지부장과 악수를 한 후 바로 은행에서 나왔고.
대로를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던 덩치 큰 사내는 평범한 얼굴의 사내를 보고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글쎄? 단순히 생각해보면 관리의 비리 문제가 아닐까 싶은데 말이지?”
“그치? 외국인들이 연금 복지국 관리에게 접근해 뇌물까지 줘가면서 정보를 수집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럼 이 건은 어쩔까? 그냥 연금 복지국에 넘겨?”
지부장이야 신분 증명서를 확인하고 이 둘을 국영 은행의 감사실 직원으로 생각했지만, 실제로 이 둘은 국영 은행의 직원이 아닌 정보기관 소속의 현장 요원들이었다.
국영 은행의 감사실에서는 지부장의 보고서를 확인 후 자신들의 일이 아닌 것 같았기에 바로 정보기관이 이 보고서를 넘겼고, 정보기관에서는 보고서의 내용을 확인한 후, 한 번 확인해볼 필요는 있다고 여겼기에 현장 요원들을 파견한 것이고 말이다.
다만, 역시나 관리들의 비리 문제 같았고, 이건 자신들의 관할이 아니었기에 넘기는 것이 어떻겠냐는 덩치 큰 사내의 말에 평범한 얼굴의 사내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또 모르는 일이니까 조사를 좀 하자.”
그리고 이에 덩치 큰 남성이 피식 웃었다.
“하. 심심하다 이거지?”
“야. 솔직히 사무실에 틀어박혀서 또 서류 작업만 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아?”
“그렇긴 하지. 좋아. 그럼 바로 움직이자고.”
* * *
정성국은 정보기관의 게으른 곰이 집무실을 방문하자 그를 반겼다.
정성국도 그렇지만 게으른 곰 역시 업무가 만만치 않게 많아, 그동안은 직접 얼굴을 맞대고 보고하기보다는 보고서나 전화로 보고해왔었기에, 오랜만에 대면하는 셈이었으니까.
해서 정성국은 직접 커피를 내리며 게으른 곰과 음흉한 여우의 근황을 물었고.
별일 없다는 게으른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다행이라는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그래. 자네는 무척 바쁜 것으로 아는데 무슨 일로 온 건가? 설마 프랑스 친구들이 또 새양주에 알짱거리는 건가?”
일전에 프랑스 대사관 소속 직원들이 기술도시라 할 수 있는 새양주를 방문해 화약 제조 공방의 직원들과 접촉한 적이 있었고, 그 때문에 게으른 곰이 급히 정성국을 찾았었기에 정성국이 이를 거론하자, 게으른 곰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저희에게 경고를 받은 후로 새양주 인근에서 알짱거리던 외국인들은 대부분 사라졌으니까요.”
“대부분이라...아직 몇몇이 있긴 하단 소리네?”
“뭐 자신들은 안 들켰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일부 남아있긴 합니다만...저희의 눈치를 살피느라 프랑스처럼 과격하게 움직이지는 않으니 일단 감시만 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였기에 피식 웃은 정성국은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야 뭐...헌데 산업 스파이 문제가 아니면 무슨 문젠데?”
“솔직히 이 건은 저희의 관할은 아닌데...어쩌다보니 알게 되어 직접 보고드리는 겁니다.”
“음?”
정성국은 게으른 곰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그가 건넨 보고서를 받아 쭉 살펴보았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 연금 복지국의 관리가 서류를 조작해 허위로 연금을 받았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그렇습니다. 전하.”
게으른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보고서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신생아가 24명?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정성국은 지금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처음 연금 제도를 시행했을 때, 정성국도 행정청 관리가 이 연금을 눈먼 돈으로 생각하고 서류를 조작할 것을 대비해 이런저런 대책을 세워두기도 했기에.
또한, 출생 신고를 하면 아이의 존재를 행정청뿐만 아니라 교육청에서도 알게 되기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가 되면 무조건 발각될 수밖에 없기에 아무리 돈에 눈이 먼 행정청 관리들이라도 감히 출생 신고를 조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헌데 이 전대규라는 연금 복지국의 관리는 출생 신고를 허위로 작성해 무려 24명의 서류상으로 존재하는 아이들을 만들어내고, 덕분에 전대규와 친척들은 다자녀 가구 연금을 최대치로 받고 있었기에 정성국이 기가 찬다는 얼굴을 하자, 게으른 곰이 말했다.
“그게...2년 전, 연금 부서가 연금 복지국으로 독립되면서 생긴 틈을 이용한 모양입니다.”
“어?”
정성국이 관심을 보이자 게으른 곰이 자세히 설명했다.
“아시다시피 행정청의 하위 부서였던 연금 부서가 연금 복지국으로 독립하면서 이전과는 달리 독립적으로 주민들의 신상 정보를 확보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조작된 서류를 끼워 넣은 겁니다. 그러니 행정청과 교육청의 서류에는 이 24명의 서류가 없고...걸릴 일이 없는 거지요.”
“이것 참...”
모든 자료가 전산화되어 있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다 보니 교차 검증이 어렵다는 점을 이용했다는 것에 정성국은 혀를 찼다.
동시에 이 전대규라는 관리 말고도 서류를 조작해 눈먼 돈을 노리는 관리가 없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해서 정성국은 잠깐 고민하다 게으른 곰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보기관을 반으로 쪼갰으면 하네.”
“예?”
게으른 곰은 정성국의 말에 당황하며 설마 월권을 문제 삼아 질책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얼굴로 정성국을 바라보았고.
정성국의 얼굴을 확인 후 그건 아닌 것 같아 머리를 굴려 입을 열었다.
“아...독립적인 감찰 기관을 만드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지금까지는 각 청과 국에서 자체적으로 감찰을 하게 내버려 뒀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증명된 이상 독립적인 감찰 기관을 만들어야겠지.”
예상대로 게으른 곰이 자신의 의도를 눈치채자 정성국은 빙긋 웃으며 대꾸했고.
이에 게으른 곰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긴 한데...전하. 기껏 육성한 인력들을 절반이나 빼가면 저희는 어쩝니까.”
“크흠. 어...그게 말이지...”
정성국의 반응에 게으른 곰은 울먹거리는 눈빛으로 정성국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동안 죽어라 고생해 겨우 자리를 잡았을 때쯤에 해외까지 정보망을 구축하기 위해 상당수를 외국에 파견해서 고생했고, 또 죽어라 고생해 인력을 키우자 군사청만의 정보 수집 기관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저희의 인력을 왕창 데려갔잖습니까. 헌데 또 이러시면...”
게으른 곰의 하소연에 정성국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쓰게 웃었다.
확실히 게으른 곰의 입장에서는 일이 줄어 들만하면 늘어나니 답답하기는 하리라.
하지만, 관리들의 부패하면 북미왕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기에, 미리미리 부패한 관리들을 가차 없이 찍어내야 하는 만큼, 이 감찰국의 신설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 정성국이 게으른 곰을 달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이게 아마 마지막일 거네. 그리고...차출될 인원을 조금 줄여주지. 기존의 감사실 직원들도 일부 차출하는 것이 나을 듯싶으니까.”
한바탕 죽는소리를 하자 차출되는 인원을 줄여주는 정성국을 보고 게으른 곰이 슬쩍 정성국의 눈치를 살폈지만, 단호한 정성국의 얼굴을 보아하니 계속 하소연한다 해도 더는 얻을 것이 없어 보였기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도록 하지요.”
그런 게으른 곰을 보고 정성국은 웃으며 휴가를 약속하며 다시 한번 그를 적당히 달랜 후, 게으른 곰이 집무실을 나가자 집무실 밖에 있는 호위대원에게 말했다.
“당장 법무청장과 연금 복지국 국장을 호출하게.”
“알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