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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730화 (730/850)

730화

잠깐 일이 있어 연구청 산하 연구소를 방문했던 정성국은 볼일을 모두 마친 후 자동차에 올라 다시 궁으로 향했고.

슬슬 해가 질 무렵이라 가로등이 켜진 길거리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음? 왜 이리 사람들이 많은 것 같지?”

이에 정성국과 함께 자동차에 올라탄 호위대장이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곧 신년이잖습니까.”

“신년? 아. 신년 축제를 보겠다고 새한성을 방문한 관광객들 때문이다?”

“그렇지요.”

호위대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이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그래도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거리가 사람들로 가득한 것은 의왼데?”

이에 호위대장이 빙긋 웃으며 자세한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새한성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타 지역 주민들이잖습니까. 그리고 이곳 새한성은 북미왕국의 그 어떤 도시보다 즐길 거리가 많은 지역이고요. 그러니 미리 방문한 겁니다.”

정성국은 이 지역 발전을 위해 다른 지역의 개발에도 무척 신경 쓰는 편이었다.

전생처럼 수도에 인구 대부분이 몰리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하지만 전생에서 사람들이 수도에 몰리는 것은 그만큼 수도에 각종 유무형의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어, 수도에 사는 것이 여러모로 편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정성국으로서는 미리미리 다른 지역의 거점 도시들의 인프라 구축에도 신경 쓸 수밖에 없었고.

다만 개발청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었기에 아직은 수도, 전기, 도로, 주택 같은 유형적인 인프라 건설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문화 시설 등의 건설은 당장 중요한 것이 아니다 보니 건설 계획에서 밀렸다.

그러니 다른 지역의 거점 도시라 하더라도 즐길 거리가 썩 많지 않았고.

이를 호위대장이 상기시키자 정성국은 이렇게 일찍 새한성을 방문한 관광객들의 사정을 이해하고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끙...나름대로 신경 쓰긴 했지만 역시 부족하긴 한가 보군.”

“아무래도 그렇지요. 하지만 전하께서 계속 각 지역의 거점 도시 개발에 신경 쓰고 계시니 곧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그런 호위대장의 말에 정성국이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는데...급격히 인구가 증가하면서 더 많은 각종 기반 시설을 건설하느라 일거리가 점차 많아지니 문제지.”

“아. 그건...그렇군요. 당장 중요한 것은 전기나 수도, 주택 같은 기반 시설이지 문화 시설은 아니니까요.”

호위대장 역시 정성국 곁에서 들은 것이 꽤 많았기에 대꾸하자 정성국이 덧붙였다.

“그래. 거기에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는 것은 좋은데 인구 중 상당수가 여성들과 아이들이니 인력 부족 현상이 너무 심한 것도 문제고.”

북미왕국의 인구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해외에서 이주민을 모집하기도 했고, 북미왕국에 관한 소문이 유럽에 널리 퍼졌기에, 더 나은 삶을 위해 용케 배를 구해 페로 제도에 도착해 밀입국을 시도하는 유럽인들도 꽤 많았으니까.

여기에 출산 지원금과 다자녀 가구에 연금을 지급하고, 언론을 동원해 아이를 많이 낳아 잘 기르는 것이 결국 애국하는 길이라는 관념을 심어줌으로써, 출산율이 증가했으니 북미왕국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북미왕국의 인구는 어느덧 1200만에 달할 정도였고.

다만 가장 큰 문제라면, 이들 중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인구가 무척 적다는 점이었다.

본격적으로 출산율이 증가한 것은 출산 지원금과 연금을 지급하기 시작한 5년 전이었으니, 이때 태어난 아이들이 성인이 되려면 최소한 10년은 더 흘러야 하니 말이다.

해서 정성국이 자신도 모르게 투덜거리듯 이야기하자 호위대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허면 외국에서 추가로 인력을 모집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호위대장의 말에 정성국은 회의적인 얼굴로 슬쩍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글쎄...지금도 많은 이주민들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여기서 더? 그럼 외무청이나 행정청에서 감당하지 못할걸? 여기에 타국을 설득하는 것도 일이고.”

북미왕국은 수많은 이주민을 받아들여 정착시켜왔고, 그 때문에 외무청과 행정청은 이주민들을 정착시키는 데 이골이 나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한계는 있었다.

이주민들을 제대로 교육하고 관리하고 정착시키는 일은 생각외로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니 부족한 인력을 보충하겠다는 이유로 무제한으로 이주민을 받아들였다가는, 혼란이 커지고 치안이 악화될 것이 뻔히 보였고.

또한, 이주민들을 받아들인다고는 해도, 생각보다 노동력이 크게 늘어나는 편은 아니었다.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는 이들은 대부분 가족 단위로 이주하는 터라, 다인 가족이라 하더라도, 실제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이는 한둘에 불과하니.

해서 정성국이 썩 내키지 않는다는 어조로 중얼거리자 호위대장은 정성국이 자신의 말을 잘못 이해했음을 깨닫고 즉각 손을 내저어 이를 부정했다.

“아닙니다. 전하. 이주민을 추가로 모집하자는 것이 아니라 일꾼을 모집하자는 겁니다. 성인 남성을...한 5년 정도 고용하자는 거지요.”

그 말에 정성국은 잠깐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호위대장을 바라보았다.

“어...? 아! 그러니까 외국 노동자들을 고용하자?”

정성국이 자신의 말을 정확히 이해한 듯 보이자 호위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일반 백성들은 재산을 모으기 쉽지 않습니다. 허나 아국에서 5년간 일해 커다란 돈을 벌어 귀환할 수 있다면, 많은 성인 남성들이 아국에서 일하려 들지 않겠습니까?”

“아...”

“거기에 성인 남성을 계약 노동자로 고용하는 것은 다른 나라들도 딱히 경계하지는 않을 겁니다.”

대체 왜 익숙한 외국인 노동자를 떠올리지 못한 것인지 속으로 한탄하던 정성국은 호위대장의 말에 곧 정신을 차리고 대꾸했다.

“그렇겠지. 계약이 끝나면 다시 돌려보내겠다고 한다면야...마다할 이유가 없겠지.”

정성국이 보기엔 오히려 자신들을 적극적으로 돕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북미왕국으로 떠났던 백성들이 큰돈을 가지고 복귀한다면, 다른 나라들은 그만큼 부가 늘어나게 되니 말이다.

‘아국은 당장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고, 북미왕국에 고용된 외국인 노동자들은 5년간 북미왕국에서 일하는 대신 농장을 살 수 있을 정도의 큰돈을 벌 수 있고, 각국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복귀하면 더 많은 세금을 확보할 수 있을 테니...이거 바로 추진해야겠는데?’

그렇게 생각을 마친 정성국이 이런 조언을 건넨 호위대장을 보고 새삼스럽다는 시선을 보내자, 이를 눈치챈 호위대장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서당 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데, 전하의 곁에서 북미왕국이 돌아가는 사정을 파악한 지도 벌써 20년이 넘게 흘렀잖습니까.”

“하하하. 그래? 그럼 나중에 자네에게 다른 업무를 맡기는 것도 괜찮겠는데?”

정성국이 히죽거리며 호위대장을 바라보자 호위대장이 움찔하며 소심히 중얼거렸다.

“소장은 군인입니다. 전하.”

* * *

해가 바뀔수록 신년 축제의 규모는 나날이 커졌고, 이번 1685년 신년 축제는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되었다.

그러니 이 신년 축제의 뒷수습도 만만치는 않았고.

해서 정성국은 정평국의 투덜거림에 결국 항복하고, 짧은 휴식을 취한 후 정평국을 도와야만 했고, 겨우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청장들이 신년 휴가를 마치고 업무를 시작한 터라 정성국은 한숨을 내쉬며 청장 회의에 참석했다.

“흠. 수로 정비 사업이 대부분 끝났다고?”

“그렇습니다. 전하. 나이아가라 운하 공사를 제외한 모든 공사가 끝났습니다.”

그동안 개발청은 북미 내륙 지역의 수로를 정비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었다.

북미 내륙 지역은 워낙 광활한 터라 이곳에 철도를 부설하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보니, 차선으로 기차가 아닌 배를 이용해 물자를 운반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러나 일부 구간은 수송선이 드나들기 힘들었기에 내륙 발전을 위해서는 수로를 제대로 정비할 필요가 있었던 탓이다.

해서 수로 정비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중 대규모 공사라 할 수 있는 나이아가라 운하 공사를 제외한 모든 공사가 끝났다는 이야기는 수로 공사를 진행한 미시시피 강을 기준으로 동쪽 지역과 오대호 가운데 나이아가라 폭포가 가로막고 있는 온타리오 호를 제외한 4개의 호수가 새진주와 뱃길로 완전히 연결되었다는 뜻과 같았기에 정성국이 반색했다.

“그럼 내륙 개발이 더 가속화되겠군.”

“그렇습니다. 특히 미시간 지역, 오지브와 지역을 본격적으로 개발할 수 있게 되었지요.”

오대호 연안은 개발할 가치가 있는 지역이었다.

사탕무나 밀, 콩, 옥수수 같은 작물을 재배하기에도 적합하고, 이를 이용해 축산업을 키우기에도 나쁘지 않으며, 또 오대호 연안에는 광물이 즐비한데, 이리에 거대한 이로쿼이 제철소가 존재하니, 광산업을 육성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

해서 일단은 오대호 연안의 일리노이 지역과, 이로쿼이 지역을 개발했었는데, 미시시피 강의 지류인 일리노이 강과 연결된 일리노이 지역의 개발은 비교적 순조로웠지만, 이로쿼이 지역의 경우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온타리오 호에 접한 이로쿼이 지역 동부는 대서양과 연결되어 있어 비교적 개발이 쉬웠지만, 이리 호에 접한 이로쿼이 지역 서부는 나이아가라 폭포가 가로막고 있어 물자를 수송하기엔 썩 불편했으니까.

그러니 미시간 호와 휴런 호 사이의 미시간 지역이나, 슈피리어 호를 둘러싼 거대한 오지브와 지역의 개발은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물자를 수송하려면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갔으니까.

하지만 수로 정비 사업이 대부분 마무리되면서 이 오지브와 지역과 미시간 지역 역시 미시시피 강을 따라 새진주와 뱃길로 연결된 셈이었고, 본격적으로 이 지역들을 개발할 수 있게 되었고, 개발청장 역시 수로가 정비된 이상 본격적으로 저 두 지역을 개발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정성국이 활짝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하. 포타와토미 족이나 오지브와 족이 이 소식을 들으면 무척 기뻐하겠군.”

“그러게 말입니다. 특히 미시간 지역의 포타와토미 족은 수로 정비 사업이 끝나야 자신들의 고향인 미시간 지역에도 근사한 거점 도시가 생긴다는 것을 알고 대대적으로 수로 정비 사업을 도왔으니 특히 더 기뻐하리라 봅니다.”

미시간 지역의 터줏대감인 포타와토미 족은 범 일리노이 족이라 일리노이 지역의 원주민들과 친분이 있었고, 그 때문에 일리노이 족이 북미왕국에 합류하며 점차 생활 수준이 나아지기 시작하자 곧바로 북미왕국에 합류했다.

헌데 포타와토미 족의 예상과는 달리 미시간 지역은 대규모 물자 수송이 쉽지 않아 개발이 더뎠고.

그 때문에 포타와토미 족의 전직 대추장은 미시간 지역의 외무청 관리와 개발청 관리에게 걸핏하면 하소연했었고, 이번 수로 정비 사업이 마무리되어 일리노이 강과 오대호가 연결되기만 하면 미시간 지역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겠다는 개발청 관리의 약속에 포타와토미 족 전체를 움직여 오대호 연안의 수로 정비 사업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러니 개발청장이 예전 이로쿼이 지역을 방문했을 때, 자신의 방문을 듣고 멀리서 찾아왔었던 포타와토미 족의 전직 대추장을 떠올리며 이를 이야기하자, 정성국도 외무청의 보고서를 통해 그러한 사실을 알기에 내심 미안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포타와토미 족에겐 못 할 짓을 했어. 포타와토미 족은 북미왕국에만 합류하면 바로 사정이 나아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개발청장. 미시간 지역의 개발에 최대한 신경을 써주게.”

정성국의 명령에 개발청장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야 물론입니다. 날이 풀리면 본격적으로 미시간 지역을 개발할 생각으로 개발에 필요한 물자를 가득 실어 보내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아. 그렇다고 오지브와 지역의 개발도...”

“물론 소홀히 할 생각은 없습니다. 아무리 잉글랜드를 비롯한 유럽에서 철광석을 대량으로 수입한다 하더라도, 북미왕국 곳곳을 개발하다 보니 강철이 부족하기도 하고, 또 이러한 물자를 무조건 수입에만 의존하는 것이 썩 좋지 않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으니까요. 해서 철광석이 가득한 지역 인근에 거점 항구를 세울 생각입니다.”

개발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이 지역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게 되면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할 것 같았기에, 정성국은 일전에 호위대장과 이야기했었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기 시작했고.

이에 언제나 인력이 부족한 개발청장은 무척 반색하며 환영했고, 타국을 설득해야 하는 조용한 곰 역시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흠. 일종의 계약 노동자로군요. 그리고 저희가 계약 노동자들의 귀환을 보증한다면 타국이 반대할 것 같지는 않고요.”

“그렇지?”

“예. 그럼 바로 각국 대사들과 협의해 보겠습니다.”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믿겠다는 눈빛을 보낸 후 다른 보고서를 펼치며 밤늦게까지 신년 첫 청장 회의를 계속 진행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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