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728화 (728/850)

728화

남방 항로를 따라 대서양을 횡단한 정기선이 새김포에 도착하고, 투로시노가 작성한 보고서가 정성국에게 전해지자, 정성국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중얼거렸다.

“허. 준가르가 다시 청나라를 공격했다? 그것도 갈단 칸이 직접 나섰고?”

이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전하께서도 아시잖습니까. 갈단 칸의 동생인 도르지자브가 할하부 우익의 요청을 받아 몽골의 점령을 시도했지만, 결국은 청나라군에 패배해 도망쳐오자 무척 분노했다는 사실을요.”

전생에서는 마지막 유목 제국이라 할 수 있는 준가르와 청나라가 거하게 붙었다는 사실을 알기에 정성국은 이전부터 준가르를 꽤 신경 썼고.

이를 아는 외무청에서는 시베리아 부족 연합이 러시아 차르국과 종전 조약을 체결하면서 영역을 확장해 준가르와 국경을 맞대자, 준가르에 국영 상단을 파견해 정보를 수집했었다.

그렇기에 준가르의 내부 사정을 약간은 알고 있었고,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말에 잠시 기억을 되짚어보고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아. 기억나는군. 그래서 우리는 곧바로 준가르가 재차 청나라를 공격할 줄 알았는데,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추가로 병력을 동원해 서방 원정에 투입한 것이 조금 의외이기는 했지. 그 일로 갈단 칸은 감정보단 이성이 앞서는 군주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어라? 잠깐만. 그럼 설마?”

준가르의 지배자인 갈단 칸은 몽골 제국의 부활을 꿈꿨지만, 그러자면 청나라를 넘어야 했다.

청나라는 유목민의 강력함을 잘 알기에, 그리고 몽골 제국이 부활하면 필연적으로 청나라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에 몽골 부족들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청나라를 상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기에, 갈단 칸은 일단 준가르의 세력을 키울 겸 동쪽의 몽골 지역이 아니라 남쪽의 타림분지를, 타림분지를 장악한 이후에는 파미르 고원을 점령하기 위해 서방 원정을 감행했고.

그렇게 차곡차곡 준가르의 세력을 키워 몽골에 진출하려던 갈단 칸의 계획은 갑작스럽게 청나라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반란군과의 전투에서 승기를 잡은 청나라가 뜬금없이 배후의 조선을 공격해 북미왕국과 시베리아 부족 연합마저 조선을 도와 청나라에 선전포고하면서 어그러지기 시작했지만 말이다.

청나라의 소식을 접한 갈단 칸은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해 서방 원정을 진행하면서도 동생인 도르지자브에게 일부 병력을 맡겨 몽골 지역을 장악하라고 명령했지만, 몽골 지역이 넘어가면 수도가 위협받을 수 있기에 청나라는 만주 동부 지역까지 넘겨주면서 북미왕국, 조선, 시베리아 부족 연합과 화친을 맺고, 이곳에 배치되었던 병력을 재빠르게 몽골 지역으로 이동시켜 준가르의 침공을 겨우 막아낸 것이다.

그리고 뒤늦게 이 소식을 접한 갈단 칸은 청나라에 패배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면서도, 그 분노를 풀기 위해 서방 원정에 투입된 병력을 몽골 지역으로 보내기보다는, 애써 분노를 삭이며 서방 원정에 집중했었고.

헌데 그런 갈단 칸이 직접 10만에 달하는 병력을 끌고 몽골 지역으로 진출했다는 뜻은 서방 원정을 마무리 지었다는 뜻과도 같다는 것에 생각이 미처 정성국이 놀란 얼굴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현 상황을 볼 때 준가르는 서방 원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 같습니다.”

국영 상단이 간간이 준가르를 방문해 정보를 수집하기는 했지만, 거리가 거리였던 탓에 최신 정보라 하더라도 몇 달 전의 정보라는 것을 아는 정성국이 조용한 곰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중얼거렸다.

“흠. 뭐 계속해서 준가르가 현지 세력들을 압도하고 있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니 준가르가 서방 원정을 성공한 것까지는 크게 의외는 아닌데...그렇다 하더라도 국영 상단이 정보를 입수하지 못했다는 것은 비교적 최근에 서방 원정에 성공했다는 뜻 아닌가? 헌데 바로 10만에 달하는 병력을 동원한다고?”

유목민족들의 경우 동원할 수 있는 병력 규모가 정주민족들에 비해 많긴 했다.

유목민족의 성인 남성들은 대부분 말에 익숙한 전사들이나 다름없었으니.

그러나 10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동원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국영 상단을 통해 파악한 준가르의 병력 규모를 생각해보면, 가용할 수 있는 병력을 박박 긁어모은 수준이었고.

이렇게 병력을 박박 긁어모았다는 뜻은 막 점령하고 안정시켜야 할 파미르 고원을 비워두었다는 뜻과도 같았기에 정성국이 의문스럽다는 듯 중얼거리자 조용한 곰이 어깨를 으쓱하며 외무청의 추측을 입에 올렸다.

“물론 점령지를 안정화하는 것도 무척 중요한 일이기는 합니다만...지금 기회를 놓친다면 몽골을 점령하기가 쉽지 않으리라고 판단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러한 추측에 정성국은 곧바로 수긍했다.

비록 지금은 청나라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지만, 여전히 아시아에서 거대하고 강력한 국가였으니 말이다.

“하긴...아무리 준가르라 하더라도 청나라와 단독으로 붙는 것은 조금 부담스럽겠지.”

“예. 그러니 오삼계가 죽은 후 주나라가 흔들리자 최대한 빠르게 서방 원정을 마무리한 후 병력을 추슬러 몽골을 공격한 듯 보이고요.”

확실히 투로시노가 보낸 보고서에도 비슷한 추측이 적혀 있었기에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후 묘한 미소를 머금고 중얼거렸다.

“아무튼...준가르가 대군을 동원해 몽골 지역으로 진출했으니, 북경이 무척 시끄럽겠네?”

이에 조용한 곰이 슬쩍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시끄럽다 뿐이겠습니까. 무척 혼란스럽다고 하더군요.”

“뭐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지. 겨우 반란을 진압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준가르가 몽골을 공격하면서 모든 계획이 물거품으로 돌아갔을 테니. 거기에 준가르의 10만 병력을 몽골에서 틀어막지 못한다면 수도가 위협받을 테니...”

청나라가 몽골 지역에 관심을 두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수도인 북경은 제국의 북쪽에 위치해 있는 터라 몽골이 넘어가면 바로 북경을 공격할 수 있었으니까.

물론 이를 대비한 방어시설인 만리장성이 있기는 하지만, 청나라는 이미 몽골 부족들을 통제하고 있었기에 만리장성의 보수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었으니.

이를 짐작한 정성국의 말에 조용한 곰이 대답했다.

“예. 그 때문에 청나라 조정은 호북성에 있던 화약 무기로 무장한 병력을 즉각 북경으로 불러들였다더군요.”

“당연히 그래야지. 아무래도 기병이 주력인 준가르를 상대하려면 조총으로 무장한 병력이 최선일 테니.”

“또한, 만약을 대비해 추가로 징병을 시작했고, 이들에게 쥐여줄 조총을 구매하고 싶어 했다더군요. 그 때문에 청나라 예부에서 국영 상단과 접촉했고요.”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이 고개를 갸웃했다.

“응? 국영 상단과?”

“예. 조총 구매를 위해 조선에 사절단을 파견하고 싶은데 아시다시피 육로는 시간이 걸리고, 해로 역시 일정을 조금 앞당길 수야 있겠지만...”

“우리와 비교하면 느리고 위험하지. 그러니 국영 상단의 배를 타고 조선을 방문하고 싶어한 건가?”

상황을 짐작한 정성국이 피식 웃으며 묻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더군요. 해서 국영 상단은 이를 받아들여 청나라 사절단을 제물포까지 이동시켜준 모양이고요.”

그 말에 정성국이 매끈한 턱을 잠시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

“헌데 지금 조선이 청나라에 조총을 판매할 수 있어? 조선에서 만드는 조총은 전량 우리가 구매하고 있잖아?”

조선은 보유한 조총 대부분을 북미왕국에 넘겼고, 또 새로 제작하는 조총을 전량 북미왕국에 판매하고 있었다.

북미왕국이 동남아시아에 진출하면서, 팔렘방 술탄국, 그리고 반자르 술탄국의 요청을 받아 유럽 세력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도록 머스킷을 넘겨주기로 약속하기도 했고, 비슷한 이유로 동남아시아의 일부 현지 세력에도 조총을 넘겨주고 있는 터라 어마어마한 양을 조선에 주문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청나라가 조선에 사절을 보냈다고 해서 조총을 구할 수 있겠느냐는 정성국의 질문에 조용한 곰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뭐 아예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그동안 비축해둔 조총의 상당수를 아국에 넘기긴 했지만, 만약을 대비해 따로 비축한 물량도 좀 되는 것으로 알고 있고, 또 민간에 풀린 조총을 구해도 되고 말입니다.”

“글쎄. 후자는 당장 급한 청나라가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은데...”

정성국의 지적에 조용한 곰 역시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그래서 청나라 사절단은 조선이 비축하고 있는 조총 물량을 어떻게든 확보하기 위해 조선과 협상 중이라고 하더군요. 다만...조선에서 이 물량을 내어줄지는 조금 의문입니다.”

“그렇겠지. 우리가 개입해 청나라에 넘긴 조총 물량만 5만 자루에, 화친을 맺은 후 양국의 관계가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 서먹한 편이지요. 거기에 조선은 은근히 청나라를 경계하는 터라 저희가 개입하지 않는다면 절대 조총을 넘겨주진 않으려 들 겁니다.”

조용한 곰의 말마따나 조선은 청나라를 무척이나 경계하는 편이었다.

조선이 북미왕국과 교류하면서 나라 사정이 나아지자, 훗날 조선이 강성해질 것을 우려해 반란군을 진압하지 않은 상황에서 조선을 선제공격했을 정도였으니,

아무리 화친을 맺었다 하더라도 조선은 청나라를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조선은 북미왕국이 5만 자루의 조총을 청나라에 넘기려 했을 때도 꽤 떨떠름해 했었고.

그러니 조선이 청나라에 조총을 넘기지 않을 거라는 조용한 곰의 말에 동의한 정성국이 다시 투로시노의 보고서로 시선을 돌려, 이를 꼼꼼하게 확인한 후에 묘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보다 오삼계가 죽고 주나라가 급격히 흔들려서 조금 고민이었는데, 준가르 덕분에 일이 잘 풀렸군.”

“그렇습니다. 몽골에 진출한 준가르를 토벌하기 전까지 청나라는 주나라나 동녕국에 신경 쓰지 못할 테니까요.”

조용한 곰 역시 정성국이 현재 3개의 세력으로 분할된 중국 대륙의 상황을 유지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빙긋 웃으며 이렇게 이야기한 후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투로시노는 상황을 봐서 청나라에 저희가 중재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알리겠다고 했습니다.”

정성국은 중국 대륙을 한 세력이 일통하고 있는 것보다, 지금처럼 여러 세력으로 나뉘는 것이 조선이나 북미왕국에 유리하다고 생각하긴 했다.

다만 지금처럼 계속 내전이 지속된다면, 그만큼 백성들도 고통받는 터라 썩 내키지도 않았고, 언젠가는 한 세력이 다시 중국 대륙을 일통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물론 정성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뒤에서 각종 공작을 펼쳐 이를 방해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었다.

계속해서 중국 대륙에 신경을 쓸 바에야 상황을 봐서 청나라와 주나라, 동녕국을 중재해 종전 조약을 체결하게 하고, 이중 두 나라와 방어 동맹을 체결한다면 끝날 문제였으니까.

그렇기에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말에 눈을 빛내면서도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흠. 다만 어지간해서는 청나라가 우리의 중재를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 같아 그게 조금 걱정이군.”

“아무래도 그럴 겁니다. 준가르와의 전투에서 밀린다면야 모르겠습니다만...”

청나라의 입장에서 주나라는 반란군이고 동녕국은 명나라 잔당들일 뿐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청나라가 북미왕국의 중재를 받아들일 리 없긴 했다.

그러니 청나라가 준가르에 밀리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아마 자신들의 중재를 거절할 가능성이 컸기에 조용한 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 국영 상단을 통해 준가르를 지원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만...”

“조선제 조총이라도 뿌리자고?”

이에 조용한 곰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은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당장 준가르에 넘겨줄 조선제 조총도 없을뿐더러, 다른 나라에 넘길 조총 물량을 빼서 준가르에 넘긴다 하더라도, 나중에 청나라가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크지.”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거냐는 얼굴의 조용한 곰을 보고 정성국이 말했다.

“대신 투로시노에게 말해 동남아시아의 유럽 세력들이 더 많은 물자를 주나라, 아니. 정확히는 오세번과 동녕국에 지원하도록 유도하라고 하게.”

조용한 곰은 정성국의 말에 곧바로 그의 의도를 눈치챘다.

정성국은 준가르를 직접 지원하기보다는, 간접적으로 준가르를 지원할 생각이라는 것을.

“오세번에게 화약 무기를 넘겨주라는 뜻은, 오세번의 세력을 키워 주나라를 장악하게 만들고, 그렇게 주나라를 다시 장악해 호북성으로 진격시키려는 뜻이로군요.”

“그렇지. 그리고 주나라가 다시 내부를 정리하고 호북성을 공격한다면, 청나라는 입이 바짝바짝 마를 거야. 여기에 동녕국이 북진해 절강성마저 공격한다면 더더욱. 그때 투로시노가 나서서 우리가 삼국을 중재할 의사가 있다고 밝힌다면, 강희제도 마냥 거절하지는 않을 걸세.”

“알겠습니다. 바로 투로시노에게 이를 알리겠습니다. 전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