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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727화 (727/850)

727화

새김포에 도착했다는 호위대장의 보고에 갑판으로 나온 정성국은 갑작스레 불어오는 차갑고 날카로운 강바람에 잠시 몸을 움츠렸고.

그러다 외투의 깃을 세워 새하얀 목을 공격하는 바람을 막은 정성국은 곧 발걸음을 옮겨 선착장에서 자신을 반기는 지혜로운 나무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오셨습니까. 전하.”

“오랜만이네. 지혜로운 나무. 잘 지냈나?”

“하하하. 그렇지요.”

정성국은 지혜로운 나무의 안내를 받아 다른 선착장으로 이동하면서, 그동안의 안부도 묻고,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고.

그러다 정성국은 순간 지혜로운 나무의 대답에 발걸음을 멈추고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어?! 잠깐만. 다시 말해 보게. 지금 뭘 개발 중이라고?”

정성국의 옆에서 발걸음을 옮기고 있던 지혜로운 나무는 갑자기 정성국이 멈추며 놀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자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예? 아. 전파가 장애물에 반사되는 특성을 이용한 일종의 원거리 탐지기를 개발 중이라고 했습니다만...”

지혜로운 나무의 대답에 정성국은 놀라움에 자연스레 벌어지는 입을 급히 닫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전파를 이용한 원거리 탐지기? 맙소사. 그건 레이더 기술이잖아?’

지혜로운 나무와 연구원들이 현재 개발하고 있는 장치는 일종의 레이더 장치나 다름없었기에, 그리고 레이더가 얼마나 대단한 기술이고, 또 유용한 기술인지를 정성국은 모르지 않았기에 자체적으로 레이더를 개발하기 시작한 지혜로운 나무와 연구원들의 능력에 새삼 감탄하고 또 경악했다.

특히, 레이더 기술은 라디오 기술에서 파생된 기술이었기에, 그리고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며 이에 관련된 연구가 더욱 많이 진행되고 있었기에, 정성국은 기회를 봐서 지혜로운 나무가 레이더 기술을 연구하게끔 슬쩍 조언해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고, 전파 탐지에 관한 이론을 확립한 후 전파 탐지기의 개발에 착수했으며, 조만간 전파 탐지기의 시제품마저 생산할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었으니.

이렇게 정성국이 지혜로운 나무와 연구원들의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나무는 왜 저렇게 놀라는 건가 하는 얼굴을 하며 정성국을 바라보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왜 그러십니까? 전하.”

지혜로운 나무의 질문에 정성국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급히 적당한 말을 둘러댔다.

“아. 듣기만 해도 무척 쓸모가 있을 것 같아서 말이네.”

그러면서 정성국이 다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자, 지혜로운 나무가 정성국을 따라 걸으면서 대답했다.

“그렇지요? 저희도 군사청 연구소의 이야기를 듣고 그 발상에 놀랐었습니다.”

“음? 그게 무슨 말인가?”

예상 밖의 대답에 정성국이 다시 발걸음을 멈추고 지혜로운 나무를 바라보자, 지혜로운 나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아. 이번 전파 탐지기의 개발은 군사청의 요청 때문에 시작된 일이거든요.”

“군사청에서?”

“예. 전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최근에 동남아시아를 담당할 7함대를 창설하면서 해안 경비대의 전선을 차출하는 바람에 해안 경비대의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잖습니까. 여기에 아프리카를 담당할 6함대의 창설 때문에, 선박 교체 사업이 중지되면서, 해안 경비대의 확장은 당분간 어려워졌고요.”

“아...”

지혜로운 나무의 대답에 정성국은 돌아가는 상황을 대충 짐작하고 묘한 표정으로 감탄사를 토해냈다.

전생에서 항공기의 발달로 폭격기가 개발되자, 영토를 보호하려면 최대한 빠르게 적의 공격을 탐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레이더 기술을 개발한 것처럼, 군사청 역시 해안 경비대의 축소로 해안 경비에 구멍이 뚫리자 영토를 보호하려면 효과적으로 적을 탐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위한 방법을 떠올리던 중 우연히 레이더 기술을 떠올린 것 같았기에.

그리고 지혜로운 나무는 정성국의 짐작과도 비슷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물론 해안 경비대가 축소되고 순찰 횟수가 확연히 줄어든다고 해서 별문제는 없을 겁니다. 감히 어느 나라가 아국을, 아국의 본토를 공격하겠습니까.”

꽤 오랫동안 유럽 나라들과 외교 관계를 맺고, 외교관들이 새한성에 상주해 정보를 수집하면서, 유럽 나라들은 점차 북미왕국을 파악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북미왕국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유럽 나라들은 북미왕국의 국력에 내심 질릴 수밖에 없었고.

물론 북미왕국은 인구가 적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경제력이나 군사력의 경우에는 다른 나라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였으니까.

해서 유럽 국가들은 은연중에 북미왕국을 자신들과 비슷하기에 경쟁할 나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보다 위에 있기에 어떻게든 따라잡아야 할 나라로 여기고 있었으며, 북미왕국을 따라잡기 전까지는 북미왕국과의 마찰을 피하려는 경향이 강했고.

그 때문에 북미왕국에서 노예무역을 금지하지 않으면 외교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자 유럽 국가들은 즉시 노예무역을 금지해버린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해안 경비대가 축소되고 순찰 횟수가 줄어들었다고 한들 별다른 문제가 없을 거라는 지혜로운 나무의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고.

“다만...군사청은 지금처럼 본토 경계가 느슨해진 상황에 우려를 표하며 군사청 산하 군사 연구소의 연구원들에게 이를 해결할 방안을 찾아보라고 했고, 군사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여러 자료를 살피던 도중 전파 연구 자료를 보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군사청 산하 군사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각종 연구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들은 지혜로운 나무가 연구해 작성한 전자기파의 성질에 관한 연구 자료도 확인할 수 있었고, 일부는 이 전파가 물체에 부딪치면 반사되는 성질을 이용하면 원거리에서 물체를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제시했다.

해서 지혜로운 나무에게 조언을 구해본 결과 전파를 쏘아 보낸 후 장애물에 반사되는 전자기파의 반향을 전파 수신 장치로 잡아낸다면, 이를 통해 먼 거리에 있는 장애물의 존재와 계산을 통해 이 장애물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어 보인다는 답을 받을 수 있었고.

이에 군사 연구소는 즉각 군사청에 이를 알렸고, 군사청장이 보기엔 꽤 유용한 기술처럼 보였기에 지혜로운 나무를 찾아가 전파를 이용하는 원거리 탐지기의 개발을 요청했으며, 지혜로운 나무는 전파의 성질을 이용해 원거리에서 물체를 탐지한다는 군사 연구소의 발상이 참신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었고, 이를 연구하는 것이 재밌을 것 같았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덕분에 연구청뿐만 아니라 군사청의 전폭적인 지원마저 받아 빠르게 전파 탐지기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하자 정성국이 기대 섞인 눈빛으로 지혜로운 나무를 바라보았다.

“하. 이거 단순히 근황을 물어본 건데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었어. 앞으로 전파 탐지기와 관련된 보고도 내게 올리도록 하게. 알겠나?”

“흠. 물론 저도 전파 탐지기가 꽤 유용하게 쓰일 수 있으리라 생각해 연구하고는 있습니다만...전하께서 이렇게 관심을 보이실 줄은 몰랐군요.”

지혜로운 나무는 정성국의 반응에 조금 의아한 기색이었다.

분명 전파 탐지기의 개발이 재밌을 것도 같고, 군사청장의 말마따나 꽤 유용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방어 도구에 불과했고, 지혜로운 나무는 여러 북미왕국의 지식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타국이 북미왕국을 공격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전파 탐지기를 개발해도 제대로 써먹긴 힘들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헌데 정성국은 예상외로 이에 깊은 관심을 보이니 자신이 무엇을 놓쳤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고.

이에 정성국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물론 당장은 크게 대단하지 않을 거야. 탐지 거리에도 한계가 있을 테고, 물체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려면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테니. 하지만 훗날 기술이 더 발전한다면? 이 기술을 이용해 앉아서도 수백km 거리 밖을 훤히 파악할 수 있을 걸세.”

정성국이 전생의 레이더 기술을 떠올리며 이렇게 이야기했지만, 지혜로운 나무는 조금 회의적인 얼굴로 슬쩍 반박했다.

“글쎄요. 지구는 둥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탐지 거리의 한계는 명확할 텐데요?”

이에 정성국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비행기가 있잖나.”

“아...”

비행기에 전파 탐지기를 장착하고 하늘에서 전파를 쏘아 보낸다면, 확실히 탐지 거리의 한계는 큰 문제가 아닐 것 같아 지혜로운 나무가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이 손을 들어 푸른 하늘의 하얀 구름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전파가 장애물뿐만 아니라 물에도 반사한다는 성질을 이용한다면 지금 저기 보이는 구름에 얼마나 많은 물방울이 있을지를 파악할 수 있을 테고, 이를 통해 저 구름이 비구름인지, 아닌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도 있겠지.”

정성국이 기상 레이더를 이용한 예보 시스템을 떠올리고 이를 간략히 설명하자 지혜로운 나무는 신음을 흘렸다.

“...으음.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군요. 전파 탐지기를 이용해 기상 예보의 정확성을 높인다라...”

“동시에 배에 전파 탐지기를 부착해 멀리서 비구름을 파악하고 피할 수도 있겠지. 그만큼 배들은 안전해질 테고.”

지금도 많은 북미왕국의 선박들이 태평양과 대서양을 횡단하고 있고, 가끔은 기상 문제에 휘말려 실종되는 배가 있다는 것까지 생각해보면, 확실히 북미왕국에 있어서 꼭 필요한 기술처럼 들렸기에 지혜로운 나무가 다시 신음을 흘리는 사이 정성국이 슬쩍 웃으며 말했다.

“그 외에도 전파 탐지 기술이 발전하면, 쓰임새는 더 다양해질 거야. 그러니 내가 관심을 보이고 직접 챙기려 하는 거지.”

이에 지혜로운 나무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허. 알겠습니다. 전파 탐지기에 관한 보고는 전하께 직접 보고할 터이니...일단 이곳에 온 목적을 우선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이거 미안하군.”

지혜로운 나무의 지적에 정성국은 아차 하는 얼굴로 저쪽 선착장에서 정성국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해저 통신선 연구원들을 보고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정성국이 오늘 궁을 나와 이곳 새김포를 방문한 것은 전파 탐지기 때문이 아니라 해저 통신망의 구축을 위해 출항하는 선박을 배웅하기 위함이었으니까.

해서 정성국은 급히 발걸음을 옮겨 그동안 해저 통신선 연구를 진행해 온 연구원들과 곧 배를 타고 바다로 떠날 기술자들에게 다가가 어깨를 다독이며 격려의 말을 해주었고.

그 후 한창 출항을 준비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지혜로운 나무에게 물었다.

“지금 이 선착장에 있는 배들이 바로 해저 통신선의 부설을 위해 개조한 배들이지?”

“그렇습니다. 전하.”

“그럼 저 갑판 뒤쪽에 있는 거대한 원통이 전부 해저 통신선인 건가?”

해저 통신선의 부설을 위해 연구청이 직접 개조한 수송선들은 기존의 수송선들과는 달리 뒤쪽에 거대한 원통이 달려 있었기에 정성국이 묻자 지혜로운 나무가 빙긋 웃으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물론 저게 전부가 아니고 배 안쪽에도 해저 통신선으로 가득하지요.”

그러면서 지혜로운 나무는 개조한 수송선의 구조에 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고, 정성국이 이를 듣고 감탄하고 있을 때, 출항 준비가 끝났다는 보고가 들려왔고.

이에 정성국은 바로 출항을 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곧 4척의 배가 하나둘 선착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정성국이 중얼거렸다.

“끙...실제로 통신망을 가설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아쉽군.”

그동안 꾸준히 해저 통신선을 연구해 왔지만, 그리고 해저 통신선을 이용해 본토와 가까운 섬에 실험 삼아 통신망을 구축해 보기도 했고, 이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직접 새김포에서 포로나이까지 연결하는 해저 통신망을 구축하긴 무리였다.

새김포에서 포로나이까지는 직선거리만 해도 약 7000km가 넘었으니.

또한, 어떻게 설치한다 하더라도, 유지 보수하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 분명했다.

해서 연구청에서는 구간을 쪼개 통신망을 구축하기로 했고, 우선 새남포와 하이다 섬 사이를 해저 통신선을 이용해 통신망을 구축할 예정이었고.

그러니 이곳 새김포에서는 원통이 천천히 회전하며 해저 통신선을 푸는 모습 따위는 볼 수 없었기에 정성국이 아쉬워하는 눈치이자 지혜로운 나무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해저 통신선을 이용해 포로나이까지 통신망을 성공적으로 구축한다면, 그다음에는 하와이 제도까지 통신망을 구축할 예정이잖습니까. 그리고 그때는 이 새김포에서 직접 연결할 테니 그때 친히 관람하시지요.”

“아. 그러면 되겠군. 다만, 난 최대한 빠르게 구경하고 싶으니...이번 해저 통신선 가설이 별다른 문제 없이 진행되었으면 정말 좋겠군.”

지혜로운 나무는 정성국의 대답에서 그가 이번 해저 통신망 구축을 조금 걱정하는 눈치라는 것을 파악하고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많은 연구와 실험을 거쳤으니 분명 그리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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