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6화
“하하하. 호북성을 장악하고 있던 반란군의 주력을 대부분 격파했단 말이지?”
자금성의 대전에서 강희제는 승전 보고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승전 보고를 전한 병부상서에게 되물었고, 이에 병부상서는 부복하며 말했다.
“그렇사옵니다. 황상 폐하. 승전을 진심으로 경하드리옵니다.”
““승전을 진심으로 경하드리옵니다! 황상 폐하!””
오삼계가 죽기 전까지 주나라는 기세를 올리며 청나라의 숨통을 조여왔었지만, 오삼계가 죽자 상황은 변했다.
오삼계의 뒤를 이은 손자 오세번은 오삼계처럼 휘하의 범 같은 군벌들을 휘어잡지 못했고, 군벌들은 어차피 전세가 기울어 곧 청나라가 멸망하고 주나라의 천하가 될 테니, 그 이후의 일을 계산하고 몸을 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강희제는 이렇게 생긴 틈을 놓치지 않았고, 조선의 조총으로 무장한 병력을 투입해 섬서성을 되찾았고.
그 후로 감숙성의 일부도 확보한 후, 사천성으로 진군하려 했지만, 사천성의 지형은 험난했기에 결국 조선제 조총으로 무장한 병력을 격전지인 호북성으로 돌렸다.
다만 호북성의 저항은 생각보다 거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주나라의 수도는 호남성 형주였기에, 호북성이 청나라에 넘어가면, 수도가 위협받는 터라 꽤 정예 병력을 배치해두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단숨에 섬서성과 감숙성을 탈환했을 때와는 달리, 호북성의 탈환은 쉽지 않았고.
다만 청나라 입장에서는 천만다행으로 오세번이 아직도 군벌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기에, 주나라는 효과적으로 호북성으로 밀고 들어오는 청나라군을 상대하기 어려웠고, 오세번 역시 군벌을 믿지 못했기에 오삼계가 남겨준 정예 병력을 최대한 보존하려 들었기에, 결국 호북성의 주나라 군벌들이 독자적으로 청나라군과 맞서 싸우다 하나씩 패퇴해, 마침내 호북성의 주나라군을 모두 격파하고 호북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니 강희제와 청나라 대신들은 이 소식에 무척이나 기뻐했고.
특히, 1년 전만 하더라도 요동으로 도망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공공연히 나돌 정도였으니 말이다.
해서 청나라 대신들은 일제히 부복하며 이번 승전을 축하했고, 그런 대신들의 행동에 강희제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
“이제 조금 일이 풀리는구나. 호북성을 장악하고 있던 반란군들을 모두 격파한 이상 호남성을 공격할 길이 열린 셈 아닌가.”
“그렇사옵니다. 반란군들의 근거지라 할 수 있는 호남성을 공격할 길이 열린 이상, 용맹한 청나라의 장수들과 병사들은 곧 호남성을 공격해 반란군의 수괴인 오세번의 목을 올릴 것이라 확신하옵니다. 황상 폐하.”
병부상서의 호기로운 대답에 강희제가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하하. 뭐 듣기는 좋은 말이다만...형주로의 길이 열린 이상, 오세번이 계속해서 형주에 있겠느냐? 아마 곤명으로 도망치겠지.”
원래 오삼계는 청나라에 항복 후 귀주성과 운남성의 왕인 평서왕으로 봉해졌기에, 오삼계의 기반은 실질적으로 운남성의 성도인 곤명에 집중되어 있다고 보아도 되었다.
다만 이곳은 워낙 멀리 떨어진 지역이라, 반란을 일으키고 주나라를 세운 후에는 호남성의 형주를 새로이 수도로 지정하고 창천부로 개칭했지만 말이다.
그러니 청나라가 호북성을 장악한 이상 오세번은 형주를 버리고 다시 곤명으로 도망칠 거라는 강희제의 예측에 예부상서가 입을 열었다.
“분명 겁이 많은 반란군의 수괴 오세번은 그리할 것이옵니다. 그리고 오세번이 형주를 버리고 곤명으로 도망친다면, 반란군들도 하나둘 사세가 급박하다는 것을 깨닫고 먼저 머리를 숙이지 않겠사옵니까.”
“하하하. 분명 그럴 테지. 그러니 예부상서.”
“하명하시옵소서. 황상 폐하.”
예부상서가 다시 부복하자 강희제가 강렬한 눈빛으로 예부상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바로 격문을 뿌려라. 지금이라도 항복한다면, 반란군에 가담한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이에 내각대학사가 조심스럽게 간언했다.
“으음...황상 폐하. 굳이 그러실 필요까지 있겠사옵니까? 반란에 가담한 불충한 자들은 이번 기회에 뿌리 뽑는 것이...”
내각대학사는 이미 승기가 기울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고 이야기하자 강희제가 조금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나라고 반란에 가담한 불충한 자들을 용서해주고 싶겠나. 허나 어쩔 수 없다. 반란이 일어난 지도 벌써 10년이 흘렀어. 10년 가까이 반란을 진압하느라 나라 꼴이 말이 아니야. 그러니 빠르게 이를 수습해야 하지 않겠나.”
강희제의 말마따나 삼번의 난이 일어난 지도 벌써 10년이 흘렀다.
그리고 삼번의 난이 발생한 이후 청나라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고.
허나 여러 판단 착오로 인해 반란은 길어졌고, 그러다 보니 막대한 전비가 소모되었으며, 이를 감당하기 위해 더 많은 세금을 거두다 보니 각지에서 반란마저 일어나는 판국이었다.
그러니 호북성의 반란군 주력을 격파해 반란군들이 흔들렸을 때, 격문을 돌려 이들의 항복을 유도해, 하루라도 빨리 반란을 진압하는 것이 낫다는 강희제의 말에 내각대학사가 조심스럽게 반문했다.
“하오나 황상 폐하. 비록 소신이 군략에는 무지하나 이미 승기는 잡았다고 판단되옵니다. 하오니 이 기회에 반란에 가담한 자들을 삭초제근하는 것이 훗날 남부 지역을 통치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사옵니까. 저들은 지역 유지들이니 말이옵니다.”
내각대학사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지금 반란 세력들은 대부분 지역 유지들이었으니, 이들을 반란에 엮여 있을 때, 모조리 뿌리 뽑는다면, 최소한 지금 반란군들이 장악하고 있는 사천, 운남, 귀주, 호남, 광서의 지역 유지들은 초토화될 테고, 훗날 이 지역을 통치하기가 무척 편해질 테니까.
그러니 지금 조금 괴롭더라도 조금은 참는 것이 어떻겠냐는 내각 대학사의 말에 일부 대신들이 동의하는 눈빛을 보내자, 강희제가 한숨을 내쉬며 반박했다.
“반란 세력이 하나라면 그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허나 저 대만 섬에 근거지를 두고 악착같이 복건성을 사수하고 있는 명나라 잔당들이 남아 있지 않은가.”
“명나라 잔당들은 세력도 약하고 지금 버티는 것도 우리 대청의 주력군은 호북성에 집중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 아니겠사옵니까.”
“그렇긴 해. 그러니 천천히 하나씩 정리해도 될 것 같고. 다만...저들 뒤에 유럽 세력이 있다는 점이 유독 걸려서 말이네.”
“으음...”
강희제가 유럽을 입에 올리자 내각대학사가 신음을 흘리며 생각에 잠겼고.
그때 강희제가 말했다.
“세작의 보고에 따르면, 그동안 우리 대청과 정식으로 교역을 하고 싶다며 여러 차례 요청하던 유럽 나라들이 전부 명나라 잔당에 붙어 화약 무기와 물자들을 제공하는 상황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사옵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유럽에서의 대전쟁이 북미왕국의 중재로 마무리되었다는 점이옵니다.”
예부상서의 대답에 강희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네. 지금까지는 유럽의 상황도 복잡한 터라 우리의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는 못했겠지만, 이미 유럽에서의 대규모 전쟁은 끝났다고 들었네. 그러니 지금까지와는 달리 더 많은 전쟁 물자를 보낼 수도 있을 테고, 그렇게 되면 설사 우리 대청이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두고 반란 세력을 모두 진압한다 하더라도 피해가 너무 커져. 그러니 일단은 반란군의 항복을 유도해 하루라도 빨리 반란은 종식하고...”
‘쾅!’
팔로 용상을 강하게 내리친 강희제가 강렬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그 후에 감히 대청을 만만히 본 이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면 되겠지.”
그런 강희제의 반응에 대전은 다시 조용해졌고, 내각대학사 역시 강희제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판단해 더는 반박하지 않고 부복했다.
“...황상 폐하의 고견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나이다. 그리하시옵소서.”
그리고 내각대학사가 마침내 자신의 의견에 수긍하자 강희제는 경직된 대전의 분위기를 풀 겸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해해주니 고맙네. 그러니 예부상서. 방금 말한 대로 바로 격문을 뿌려 반란군을 회유하게.”
“그리하겠사옵니다. 황상 폐하.”
예부상서가 부복하자 강희제는 옆에 있는 병부상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병부상서. 오세번이 도망치고 여기에 예부에서 뿌리는 격문으로 반란군이 흔들리면, 그때 움직이게. 항복하는 이들은 받아들이고, 저항하는 이들은 격파하고.”
“그리하겠나이다. 황상 폐하.”
병부상서가 강희제의 말에 부복하자 강희제가 한마디 덧붙였다.
“그렇게 해서 오세번의 목을 취한다면, 그때는 저 대만 섬의 명나라 잔당들을 소탕할 테니, 미리 수군을 정비해두도록 하고.”
이에 병부상서가 자신 있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수군은 이미 정비중...”
그때 한 환관이 창백한 얼굴로 급히 강희제에게 서찰을 건넸고.
강희제는 고개를 갸웃하며 환관이 건넨 서찰의 내용을 확인하고 기겁했다.
“뭐라고?! 이 무슨?!”
* * *
투로시노는 집무실을 찾아와 최근에 확보한 청나라의 정보를 이야기해주는 정일신 3함대 사령관의 설명에 귀 기울이다 마침내 정일신의 설명이 끝나자 새삼 놀랐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야. 이거 놀랍네요.”
“그러게 말이야. 나도 처음 소식을 듣고 정말 놀랐어. 하필 이런 시기에 중가르가 대군을 이끌고 몽골을 공격할 줄은...”
정일신은 최근 북경을 방문한 국영 상단을 통해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일전에 할하부 우익과 함께 할하부 좌익을 공격해 몽골을 장악하려다, 결국 청나라에 패배해 할하부 우익과 함께 도망친 중가르가 다시 할하부 우익을 앞세워 몽골을 침공했다는 소식이었다.
여기에 더욱 놀라운 소식은, 이전과는 달리 중가르의 지도자인 갈단 칸이 직접 10만에 달하는 대병을 동원했다는 점이었고.
이 때문에 호북성의 주나라군을 격파한 후 그 기세를 이어 호남성으로 진군해 주나라의 수도인 창천부를 불태우고 곧 반란을 종식할 거라는 희망에 쌓여있던 북경의 분위기가 일변했으며, 급히 추가로 병력을 징병하고, 어떻게든 조총을 구하기 위해 국영 상단에 접촉했었다는 말을 듣고 정일신이 급히 투로시노에게 이를 알린 것이다.
이에 투로시노는 이야기를 듣느라 미지근해진 커피를 홀짝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고, 정일신 역시 한참을 떠들었기에 목이 말라 이 미지근해진 커피를 단숨에 마셨고.
그렇게 잠시 침묵만이 감돌았던 집무실에서 투로시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헌데...제가 기억하기로는 청나라에서 몽골에 병력 일부를 배치하지 않았습니까?”
할하부 우익과 손잡고 몽골을 장악하려 했던 중가르를 완전히 격파한 청나라는, 일부 병력을 몽골에 배치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미 할하부 좌익은 삼번의 난 이후 청나라에 병력 대부분을 지원한 상태였고, 여기에 할하부 우익이 중가르에 붙었다가 패퇴하면서 함께 도망쳐버렸기에 몽골이 텅 비어버린 상황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달까.
이를 기억해낸 투로시노의 물음에 정일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랬지. 하지만 그렇게 많은 병력을 배치한 것은 아니고, 듣기로 호북성을 공격할 때, 일부 병력을 뺐다고 들었어. 그러니 몽골에 배치된 병력은 얼마 안 되고, 할하부는 세력이 완전히 쪼그라들었으니...오래 버티긴 힘들 거야.”
“아. 그 정도라면...10만의 병력을 자랑하는 중가르를 상대하긴 무리겠군요?”
“그렇지.”
정일신의 대답에 투로시노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
“그럼...현재 호북성에 배치된 병력을 회군시켜야겠네요.”
청나라 수도인 북경에 병력이 배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병력으로 10만에 달하는 중가르군을 막긴 쉽지 않을 테니 현재 호북성에 배치된 병력을 빼지 않겠느냐는 투로시노의 예측에 정일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청나라로선 절호의 기회를 놓친 셈일 테고... 뭐 주나라는 한숨을 돌리고 재정비할 천금의 시간을 확보한 셈이지.”
이에 투로시노가 묘한 얼굴로 말했다.
“잉글랜드, 네덜란드, 에스파냐에서 계속 동녕국에 화약 무기를 비롯한 물자를 지원해주고 있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청나라는 이번 반란을 진압할 마지막 기회를 잃은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오삼계가 죽으면서 갑자기 중국대륙의 상황이 변하고, 그동안 투자했던 주나라와 동녕국의 세력이 밀리기 시작하자 이들의 뒤에서 군수 물자를 넘기고 도자기, 비단 등을 받아 이득을 챙겨오던 유럽 나라들은 기겁했다.
이미 청나라와는 척을 진 상황이라 만약 청나라가 주나라와 동녕국을 멸망시킨다면, 아시아 무역은 불가능해질 테니까.
물론 북미왕국과의 무역 때문에 이 아시아 무역의 중요도는 조금 떨어졌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유럽 나라들은 그렇게 되면 타격이 컸고.
여기에 대프랑스 전쟁도 끝난 상황이라, 유럽 나라들은 본국에 추가로 물자를 요청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투로시노로서는 이번 중가르의 침공으로 청나라는 마지막 기회를 잃었다고 판단하자 정일신이 볼을 긁적이다 동의했다.
“아. 그럴 수도 있겠네. 아무튼, 우리한테는 나쁘지 않아. 덕분에 청나라는 승기를 잃어버린 셈이니...우리가 중재에 나선다면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렇지요. 다만 당장 움직이는 것은 조금 그렇고...일단 상황을 지켜봐야겠습니다.”
“그래? 그럼 그러던가. 난 따로 중국대륙의 정보를 더 수집해보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