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5화
정성국은 항공기 연구소에서 돌아와 곧바로 연구청장과 개발청장을 호출했고.
“부르셨습니까. 전하.”
“아. 왔나. 다들 앉게.”
연구청장과 개발청장이 정성국의 집무실을 방문하자, 때마침 커피를 내리고 있던 정성국은 둘을 티테이블로 오라는 듯 손짓하며 내리고 있던 커피를 대접해 주었다.
이에 두 청장은 정성국이 건네주는 커피잔을 조심스럽게 들고 조용히 커피를 음미하기 시작했고.
정성국은 자신의 앞에 놓인 커피잔에도 커피를 따른 후 자신이 내린 커피의 맛에 만족하면서 입을 열었다.
“어제 항공기 연구소를 방문해 새로 개발한 비행기들을 직접 확인했는데...내 예상보다 성능이 좋더군.”
이에 연구청장이 만족스러운 웃음과 함께 말했다.
“하하하. 그렇지요? 저도 뒤늦게 보고 받고 자세히 알아보았는데 성능이 무척 만족스럽더군요.”
이에 개발청장이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연구청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호오. 그렇습니까? 황새급 비행기보다 나은가요?”
“그럼요. 황새급 비행기보다 월등하게 낫습니다. 단적으로 비행기의 속도만 해도 2배나 빠른 것을요.”
“오오! 그래요?”
아무래도 가장 많이 비행기를 이용하는 관리가 개발청 관리들이었고, 개발청장 역시 새한성의 집무실에서 서류 작업만 하는 인물이 아니라 자주 현장을 방문해 꼼꼼하게 챙기는 인물이다 보니, 비행기를 자주 이용하는 편이었다.
헌데 문제라면 황새급 비행기를 타고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이 생각보다 고된 일이라는 점이었고.
그러니 개발청장은 새로 개발된 비행기의 성능이 황새급 비행기보다 월등하게 낫다는 연구청장의 말에 무척이나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새로 개발한 비행기들이 황새급 비행기보다 2배나 빠르다는 말은 이동하느라 하늘 위에서 낭비되는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의미와 같았으니 어찌 기뻐하지 않겠는가.
그때 옆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듣고 있던 정성국이 끼어들었다.
“빠르기도 하고, 여기에 새로 개발한 비행기들은 크기가 커서 그런지 공간이 넉넉하더군. 해서 다리도 어느 정도 펼 수 있을 정도로 좌석의 간격이 넓은 편이었고, 거기에 조악한 황새급 의자와는 달리 의자도 푹신하더군. 여러모로 타고 다닐 만해 보였어.”
“오오! 그렇습니까? 이거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비행기들이 양산되기를 바라야겠군요.”
정성국의 설명에 그동안 조그마한 좌석으로 인해 비행기를 탈 때마다 고생했던 개발청장이 환하게 웃으며 잔뜩 기대하자 정성국이 피식 웃으며 그런 개발청장을 진정시켰다.
“뭐 항공기 연구소에서도 최대한 빠르게 시험 비행을 진행하겠다고 하니, 조금만 참으라고.”
“하하하. 알겠습니다. 헌데 새로운 비행기들을 알리고자 저를 부르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부른 용건을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했고.
개발청장은 정성국이 설명하는 거점 공항의 개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중얼거렸다.
“거점 공항이라...그럼 상당히 많은 비행기들이 그 거점 공항을 들르겠군요?”
개발청장이 거점 공항의 개념을 완전히 이해한 듯싶었기에 정성국은 손뼉을 쳤다.
“그렇지! 그러니 여러 개의 활주로, 여러 개의 주기장, 수많은 창고를 포함한 대형 공항이 필요해. 해서 기존의 타마로아 공항을 확장하던가, 아니면 외곽에 따로 새로운 공항을 건설하던가 해야겠지.”
타마로아는 미시시피 강 중간에 위치한 터라, 자연스레 발전해 미시시피 강을 따라 들어선 북미 내륙 도시 중에서는 손꼽힐 정도로 큰 도시가 되었으니, 자연히 공항도 건설되어 있었다.
다만 북미왕국에 건설한 대부분의 공항이 다 그렇듯, 규모가 그리 큰 편은 아니었고, 비록 훗날 공항을 추가로 확장하리라 예상하고 설계했어도, 정성국이 말하는 거점 공항은 개발청의 예상을 뛰어넘는 초대형 공항이었기에, 상황을 봐서 새로 짓는 것도 고려하라는 정성국의 말에 개발청장이 괜찮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 뭐 저희가 예상한 것보다 더 거대한 규모의 공항을 건설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어차피 대부분의 공항은 외곽 지역에 건설해두었기에 주변 땅은 비어 있는 상태라 기존의 타마로아 공항을 확장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헌데 제가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먼 거리를 이동하려면 이 거점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할 텐데, 갈아탈 비행기가 항상 넘쳐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거기에 비행기는 기상 상황에 따라 비행에 제한을 받고요. 그러면 생각보다 많은 승객들이 공항에서 체류하겠는데요?”
옆에서 정성국과 개발청장의 이야기를 유심히 듣고 있던 연구청장이 끼어들어 질문을 던지자 정성국은 바로 그렇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후, 개발청장을 바라보고 말했다.
“그렇지. 그러니 공항에 체류하는 승객들이 쉴 수 있는 충분한 숙소, 배를 채울 수 있는 식당,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상점도 다수 건설해두어야 할 테고.”
정성국의 말에 개발청장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휴우. 이건 공항이 아니라 도심지나 조그마한 관광 도시를 건설하는 수준이군요.”
“하하하. 그렇지.”
그러면서 정성국은 전생의 허브 공항들을 떠올리고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었고.
개발청장이 이를 귀 기울여 듣다가 정성국의 조언이 끝나자 대답했다.
“흐음...알겠습니다. 전하께서 말씀하신 부분들을 최대한 신경 써서 공항을 확장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하지.”
개발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인 후 옆으로 고개를 돌려 연구청장을 바라보고 말했다.
“그리고 연구청장.”
“말씀하시지요.”
“최근에 비행기 생산 공방의 확장이 모두 끝났지? 그리고 황새급 비행기를 생산 중이고?”
황새급 비행기를 개발한 이후, 정성국은 1차로 180대에 달하는 황새급 비행기를 생산할 것을 주문했고, 연구청에서는 4년에 걸쳐 차근차근 황새급 비행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에 비행기 생산 공방의 추가 확장까지 모두 끝나 본격적으로 황새급 비행기를 양산하기 시작했는데, 정성국이 이를 거론하자 연구청장은 반사적으로 대답하다가 정성국의 속내를 짐작하고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만. 아. 설마 전하께서는...”
“그래. 새로운 비행기의 개발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어 시험 비행이 끝나면 바로 양산에 돌입할 거잖아? 그럼 굳이 황새급 비행기를 예정대로 생산할 이유는 없어 보이는데?”
정성국의 말에 연구청장이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중얼거렸다.
“흠. 생각해보면 새로운 비행기들이 양산된다면 황새급 비행기의 쓰임새가....애매해지긴 하겠군요.”
“그렇지. 지금까지야 유일하게 물자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비행기였기에 가치가 있었지만, 새로운 비행기와 비교한다면 많은 물자를 실을 수도, 승객을 태울 수도 없고 느리기까지 하니 써먹기 애매하단 말이지. 그러니 예정대로 황새급 비행기를 생산하기보다는, 슬슬 생산량을 조절하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
“그러다 시험 비행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바로 새로운 비행기들의 생산에 착수하게끔 말이지요?”
연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이 바로 그거라는 듯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그렇지! 미리 준비를 해두라는 거야. 특히, 하얀 수리의 말을 들어보니, 새로운 비행기들은 황새급 비행기보다 훨씬 많은 부품이 들어가는 터라 조립도 쉽지 않을 것 같으니 미리미리 준비해두는 것도 괜찮을 테고.”
처음 연구청장은 각종 시험 비행을 통과해 새로 개발한 비행기들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어야 생산을 시작할 테니 조금 성급한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설마 두 종류의 비행기가 전부 시험 비행에 실패하지는 않을 것 같았고, 황새급 비행기와 새로운 비행기들의 성능이 너무 차이가 나는 터라, 혹여 새로운 비행기들이 시험 비행을 통과하지 못하고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수정하고 개량해 시험 비행을 통과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낫겠다 싶었기에 결국 정성국의 의견에 동의했다.
“흐음. 알겠습니다. 그리 하도록 하지요.”
“아. 그리고 이번에 개발한 비행기는 2종류니까...공방을 하나 더 세우게.”
“알겠습니다. 그리하지요.”
* * *
어느덧 찬바람이 불어오는 터라 정성국은 애용하던 화로를 꺼내 하얀 들꽃이 가져다준 군것질거리를 굽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조용한 곰이 집무실을 찾아왔기에 정성국은 굽고 있던 떡을 건네주며 용건을 물었고, 조용한 곰의 대답에 조금 당황하며 되물었다.
“음? 미주리 강을 따라 마을이 생겨나고 있다고? 대평원 지역에?”
“그렇습니다. 최근 미주리 강 상류까지 이동하며 대평원 지역을 방문했던 미시시피 탐사대가 새로 생겨난 마을들을 확인하고 급히 보고를 올렸습니다.”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말에 부지깽이로 화로를 뒤적이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중얼거렸다.
“음...내가 알기로 이 지역의 원주민 부족들은 대부분 들소 떼를 따라 이동하는 유목민에 가깝다고 알고 있는데?”
“맞습니다. 그나마 아리카라 족 정도가 정착해 농사를 짓는 정도였지요.”
“헌데 갑자기 들소 떼를 따라 이동하며 사냥으로 먹고 살던 부족들이 미주리 강 근처에 정착하기 시작했다고? 대체 왜?”
미주리 지역 북쪽의 대평원 지역에 사는 원주민들은 대부분 대평원 지역의 들소를 사냥해 먹고 살았다.
고기는 식량으로, 가죽은 옷과 천막으로, 뼈는 가공해 장신구로 만들었으니 대평원 지역의 원주민들에게 있어 들소는 무척 중요한 동물이랄까.
문제는 들소는 가축화할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다 보니, 대평원 지역의 원주민들은 풀을 따라 이동하는 들소들의 뒤를 따라다니는 유목 생활을 했었고, 이는 미시시피 탐사대가 미시시피 강의 지류를 따라 대평원 내륙으로 진출해 이들 부족과 접촉한 후로도 큰 변화가 없었고.
헌데 이런 원주민 부족들이 강을 따라 정착한다는 의미는 이런 생활 양식을 완전히 바꾸겠다는 뜻과도 같았기에 정성국이 당황해 질문을 던지자 조용한 곰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뭐 복합적입니다. 아시다시피 들소를 사냥하며 거처를 옮겼던 원주민 부족들은 저희와 직접 거래하기가 쉽지 않았잖습니까.”
“아무래도 그렇지. 원주민 부족들은 들소를 따라 다녀야 했으니까.”
“예. 해서 그동안은 운 좋게 미시시피 탐사대를 만나 거래를 요청하거나, 혹은 미주리 지역의 마을이나 아리카라 족의 마을을 방문해 거래하곤 했지요. 헌데 미주리 지역의 마을에서 거래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리카라 족의 마을에서 거래하는 건...여러모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지요.”
“아. 뭐 중개상이 중간에 끼어드는 셈이니 그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정성국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자 조용한 곰이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물론 그렇습니다만...가끔 저희와 거래하며 생필품의 가격을 대충 알고 있는 원주민 부족들은 아무래도 중간에서 차익을 얻는 아리카라 족이 고깝게 보일 수밖에 없잖습니까? 헌데 그렇다고 아리카라 족을 공격하기엔 저희가 강하게 경고한 것도 있고, 그동안 저희와 꾸준히 거래하며 아리카라 족의 규모도 커지고, 무장도 충실해졌기에 꺼려질 테고요.”
북미왕국은 당장 해안 지역이나 일부 내륙 지역을 개발하는 것으로도 과부하가 걸린 상황이라 대평원 지역은 거의 방치해둔 상황이었다.
다만 처음에 대평원의 부족들과 접촉하면서 이들의 기질이 생각보다 강했기에 얕보이면 문제가 생길 거라고 판단한 외무청에서 군사청의 협조를 얻어 탐사대를 대평원 지역을 이동시켜 북미왕국의 강력함을 과시하며 서로서로 평화롭게 지내자고 강권했었고.
이때 북미왕국의 군사력을 직접 확인했던 대평원의 원주민 부족들이기에, 이런 북미왕국의 강권을 무시할 수 없었을 거라는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은 대충 대평원 남부의 상황을 이해하고 입을 열었다.
“그래서 아리카라 족을 공격하긴 힘드니, 차선으로 미시시피 강 인근에 정착했다? 아리카라 족 처럼 우리와 정기적으로 거래하기 위해?”
정성국의 추측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아. 그렇다고 대평원의 부족들이 수렵 생활을 완전히 버리고 농경 생활을 하려는 것은 아니랍니다.”
“일부는 미시시피 강에 정착하고, 일부는 지금처럼 들소를 사냥하겠다?”
“그렇습니다. 이제와서 생소한 농사에 도전하기보다는 익숙한 들소 사냥에 전념하는 것이 나쁠 것은 없으니까요.”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렇겠지. 다만 저들 중 일부라도 강가에 정착하고, 계속해서 우리와 교류하려는 것은...나쁘지 않네.”
“그렇지요. 이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미 아국에 합류하고 싶어 하는 아리카라 족처럼 말이지요.”
딱히 이야기하지 않아도, 자신의 속내를 눈치챈 조용한 곰을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정성국이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러니 지금처럼 좋은 조건으로 거래하면서 저들을 회유하도록 하고...아. 그리고 들소 모피의 거래는 제한을 두도록 하게.”
“너무 많은 들소를 남획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말입니까?”
“그래. 어쨌거나 대평원의 터줏대감은 들소이지 않던가.”
정성국의 이야기에 조용한 곰이 빙긋 웃었다.
“알겠습니다. 그리하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