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4화
정성국은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잠깐 고민하다 하던 일을 멈추고 곧바로 자동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한참을 달린 끝에 자동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자 자동차 안에서 창문을 통해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정성국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흠. 이곳도 꽤 오랜만이네.”
여러 커다란 건물들과 넓은 활주로.
정성국이 도착한 곳은 바로 항공기 연구소였다.
지금껏 항공기 연구소에서는 일전에 정성국이 조언한 대로 동력기관을 여러 개 장착한 비행기를 새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수많은 실험과 시행착오 끝에 설계를 확정 짓고 시험적으로 비행기를 제작했으며, 오늘 첫 시험 비행마저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연락을 받으니, 정성국으로서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던 탓이다.
해서 즉각 자동차를 타고 항공기 연구소로 향했고, 연구소 정문의 경비 병력이 정성국의 방문을 알렸는지, 부랴부랴 건물에서 나오는 하얀 수리와 항공기 연구소의 연구원들을 보고 정성국은 이럴 줄 알았으면 출발 전에 미리 알려둘 것을 그랬다고 생각하며 어느덧 멈춘 자동차에서 내렸다.
“헉헉. 오셨습니까. 전하.”
“아. 오랜만이군. 하얀 수리.”
정성국은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숙이는 비행기 연구소의 책임자인 하얀 수리를 보고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어깨를 살짝 다독인 후 입을 열었다.
“그래. 그동안 잘 지냈나?”
“예. 전하의 배려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하얀 수리의 대답에 정성국이 고개를 갸웃했다.
“배려? 내가 딱히 배려해준 것이 있던가?”
“새로운 비행기를 개발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시지 않았습니까. 그것으로 충분하지요.”
그 말에 정성국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자네는 비행기 개발자가 천직이로구만.”
그 후 정성국은 하얀 수리를 따라 정성국을 마중 나온 연구원들과 악수하며, 이번 시험 비행의 성공을 축하한 후 하얀 수리를 보고 슬쩍 질문을 던졌다.
“헌데 박기동은 오늘 안 왔나?”
“아. 오시긴 하셨습니다. 다만 연구할 것이 남아 있다면서 시험 비행이 끝나자 바로 돌아가셨지요.”
하얀 수리의 대답에 정성국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돌려 텅 비어 있는 활주로를 바라보고 물었다.
“그보다...이번에 새로 개발한 비행기들을 보고 싶은데? 격납고에 있나?”
“그렇습니다. 저기 저 격납고에 있습니다.”
하얀 수리가 활주로와 인접한 한 커다란 격납고를 가리키자 정성국은 바로 발걸음을 옮겼고.
정성국이 다가가자 커다란 격납고의 문이 열리면서 안쪽에 있던 2대의 비행기가 보이자 정성국은 그 육중함에 감탄사를 터트렸다.
더불어 황새급 비행기의 경우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었기에, 정성국이 기억하는 전생의 비행기의 모습과 무척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지만, 그동안 그가 떠올린 전생의 비행기가 경비행기에 가까웠다면, 지금 격납고에 있는 2대의 비행기는 보자마자 전생의 영화나 후진국에서 볼법한 어느 정도 덩치가 되는 프로펠러 수송기가 떠올랐으니, 정성국으로서는 북미왕국의 항공기 제작 기술이 벌써 이 정도 수준까지 올라왔나 하는 생각이 들며 속으로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고.
“허어. 저게 이번에 새로 개발한 비행기들인가?”
그리고 이런 정성국의 감탄에 하얀 수리는 뿌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왼쪽의 회전 날개가 2개인 녀석이 12호, 오른쪽의 회전 날개가 4개인 녀석이 14호지요.”
하얀 수리의 말에 정성국이 고개를 갸웃했다.
“음? 이미 시험 비행이 성공했는데 아직 제대로 된 이름을 붙이진 않았나?”
“첫 번째 시험 비행에 성공했을 뿐입니다. 앞으로 있을 수많은 시험 비행을 다 통과하고, 양산을 결정하면 그때 정식으로 이름을 붙일 생각이고요.”
하얀 수리의 대답에 일리가 있다는 듯 정성국이 수긍했다.
“아. 뭐 앞으로도 만들 수많은 비행기를 생각하면 그 편이 낫긴 하겠군. 그보다...황새급 비행기가 6호로 기억하는데 시행착오를 꽤 겪었나 보군?”
이에 하얀 수리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예. 뭐 쉽지는 않았습니다. 기관을 여러 개 장착해야 하니 이전처럼 동체가 아닌 날개에 기관을 장착해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날개가 받는 하중이 더욱 커져서 이를 해결해야 했거든요. 더불어, 비행기의 속도를 올리기 위해 저 바퀴를 수납할 수 있게 만들었는데, 이것도 쉽지 않았고요.”
하얀 수리의 설명에 정성국은 흥미롭다는 얼굴로 격납고 안에 있는 비행기들의 바퀴를 살펴보았다.
황새급 비행기까지는 동체에 고정된 큼지막한 바퀴가 달려 있었는데, 격납고의 비행기들의 바퀴는 날개에 접히게 설계되어 있었고, 이는 전생의 기억이 있는 정성국에게는 익숙한 방식이지만, 이들에겐 새로운 도전이었을 텐데 결국 이런 식으로 만든 것이 놀랍기도 했다.
특히 이 부분은 정성국이 따로 조언해준 것도 아니었기에.
“호오.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 이렇게 설계한 건가? 고생 좀 했겠는데?”
정성국이 하얀 수리와 연구원들의 고생을 짐작하고 공감해주자 하얀 수리가 울컥한 표정으로 하소연하듯 말했다.
“예. 가뜩이나 비행기의 무게가 무거워졌기에 그만큼 바퀴도 튼튼하게 만들어야 했는데, 이걸 수납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니 정말 고생했습니다. 날개에 바퀴가 들어갈 공간을 따로 빼야 했고, 바퀴를 제어하기 위해 전동기를 비롯한 기계 장치마저 추가해야 했으며, 혹여 바퀴를 수납하다 문제라도 생기면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에 고장 나지 않도록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어야 했으니...”
그 이후로도 하얀 수리는 정성국을 붙잡고 한참을 이야기했고, 정성국은 이를 듣고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래도 덕분에 더 빠르고 연비가 좋은 비행기가 탄생한 것 아니겠나.”
정성국의 말대로 이전의 방식으로 만들면, 편하기는 하지만 공기 저항 때문에 속도에서도, 연비에서도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어떻게든 더 빠르게, 그리고 더 멀리 나는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던 하얀 수리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문제였고.
그 때문에 하얀 수리를 비롯한 항공기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고, 덕분에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성능의 비행기가 탄생한 것은 사실이라 하얀 수리가 슬쩍 미소지었다.
“예. 그래서 다행이긴 하지요.”
그런 하얀 수리의 반응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다시 한번 어깨를 다독이며 그동안의 고생을 위로해준 후 다시 격납고 안의 비행기에 시선을 고정한 후 가까이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오.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엄청 커 보이네? 이 12호 비행기조차 황새급 비행기보다 훨씬 크군?”
“물론입니다. 체급 자체가 다른 것을요.”
그러면서 동체나 날개 길이가 황새급 비행기보다 거의 2배는 길어졌다고 설명하자 정성국은 역시나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다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이거 몇 명이나 탈 수 있는 거지?”
“총 14명이 탑승할 수 있습니다.”
“14명?!”
솔직히 비행기 자체가 황새급 비행기보다 훨씬 큰 편이었기에, 많은 인원을 태울 수 있지 않을까 싶긴 했다.
다만 황새급 비행기 역시 항속 거리를 늘리기 위해 탑승 인원을 제한했었기에, 혹시나 했는데 정성국의 예상보다 많은 인원을 태우고 날 수 있다는 소리에 정성국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특히 드디어 본격적으로 항공 수송의 시대가 열린다는 것이 무척이나 기대되는 정성국이었다.
물론 이미 황새급 비행기를 양산해 항공 수송의 시대를 열긴 했지만, 솔직히 황새급 비행기는 북미왕국에서 처음으로 개발한 금속 비행기, 그리고 다인승 비행기라는 것에 의의가 있지, 탑승 인원이나 실을 수 있는 무게가 너무 적어 실제 운용해보니 여러모로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해서 정성국은 앞으로를 생각하며 입꼬리가 귀에 걸렸을 때, 하얀 수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물론 승무원이 2명 필요한 터라, 실제로 태울 수 있는 승객의 수는 12명에 불과합니다만...”
“겨우 4명을 태울 수 있는 황새급 비행기를 생각해보면 엄청난 거지. 잠깐만. 이 작은 녀석이 14명을 태울 수 있다면 저 큰 녀석은?”
왼쪽에 있는 12호 비행기보다, 오른쪽에 있는 4개의 기관을 장착한 14호 비행기가 동체 크기도 조금 더 컸기에 정성국이 잔뜩 기대하며 묻자 하얀 수리가 쓴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아쉽게도 탑승 인원엔 차이가 없습니다. 14호 비행기는 항속 거리를 늘리기 위해 연료통의 크기를 키워 더 많은 연료를 실어야 했으니까요.”
하얀 수리의 대답에 정성국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며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고개를 갸웃하며 질문을 던졌다.
“아...그건 조금 아쉽긴 하군. 잠깐. 그럼 14호 비행기의 항속 거리를 희생하면, 더 많은 인원을 태울 수 있다는 소리잖아?”
“그렇기야 합니다. 연료통의 크기를 조절해 항속 거리를 1500km 정도로 개조하면, 20명을 태울 수 있지요.”
바로 대답을 하는 하얀 수리를 보고 정성국이 대충 상황을 짐작하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굳이 2종류의 비행기를 만든 것은 역시...”
이에 하얀 수리가 정성국의 짐작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14호 비행기의 생산단가가 생각보다 높아서 말입니다. 뭐 기관을 4개나 장착했고, 비행기의 크기도 전체적으로 커졌으니 어쩔 수 없긴 한데...”
“단일 기종으로 대량 생산해서 비용을 낮추는 것보다 2종류의 기종을 만들어 운용하는 것이 싸게 먹힌다?”
“그렇습니다. 생산 비용도 그렇고...거기에 14호 비행기는 기관이 4개라 연료 소모도 많은 편이라서요.”
“역시 그랬나. 뭐 그렇다면야...”
하얀 수리의 설명에 정성국은 그럼 어쩔 수 없지 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비행기 모두 생각보다 성능이 좋은 터라, 이를 이용하면 본격적으로 항공 수송 시대가 열릴 텐데, 이들 비행기를 대량으로 양산하기 시작하면 비용 문제는 무척이나 중요한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다 정성국은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황새급 비행기의 항속 거리를 늘리기 위해 연료통의 크기를 키운 대신 탑승 인원을 제한한 것처럼, 저 거대한 14호 비행기의 연료통을 더욱 키운다면 항속 거리를 더욱 늘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해서 정성국이 이를 이야기하자 하얀 수리가 쓰게 웃으며 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여러 가지를 고려해 항속 거리를 3천km로 맞추긴 했습니다만, 조금 아쉽긴 했습니다. 항속 거리가 최소 4천km는 되어야 하와이 제도를 오갈 수 있고, 또 중간이 착륙하지 않고 북미 동해안 지역까지 이동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다만 그렇게 되면 저 동체 대부분을 연료로 채워야 하는 터라...탑승 인원은 6명으로 줄어들더군요.”
“흠. 저 큰 비행기에 승객은 고작 4명이라...확실히 비효율적이군.”
“예. 그래서 기본 항속 거리를 3천km로 설계한 거지요. 북미 대륙의 중심지라고 하기엔 조금 뭣 합니다만...그나마 중앙에 가까운 미주리 지역의 타마로아 까지의 거리가 약 2800km가량 되거든요.”
하얀 수리의 말에 정성국은 전생의 허브 공항을 떠올리고 탄성을 내질렀다.
“아! 타마로아를 허브...아니. 거점 공항으로 삼게?”
이에 하얀 수리가 정성국의 통찰력에 감탄한 얼굴로 대답했다.
“어? 눈치채셨군요. 그렇습니다. 연구원들이 그동안 항공 수송을 더욱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연구한 결과 북미 대륙 중심 부근에 거점 공항을 건설하고, 그 거점 공항을 주요 환승 거점으로 삼아 각 공항과 연결하는 항공 노선을 만들면 훨씬 효율적으로 물자나 인력을 수송할 수 있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거든요. 다만, 지도를 놓고 계산해보니 북미 대륙의 중심지는 대평원인데 이곳에 대형 공항을 건설할 수야 없잖습니까.”
“그렇지. 뭐 대평원 원주민들을 설득해 대형 공항을 건설할 땅을 확보하고, 공항에서 일할 사람들을 모집해 공항과 도시를 꾸리는 것도 가능은 한데...”
“예. 비효율적이지요. 그리고 아국의 주요 도시들은 해안가에 집중되어 있고, 당장 북방 지역을 개발할 일은 없을 테니,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 대평원보다는 타마로아에 대형 공항을 두는 것이 최선이라는 계산이 나와서 말입니다.”
하얀 수리의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북방의 툰드라 지역에 각종 자원이 묻혀 있긴 한데, 그걸 당장 캐야 할 정도로 자원에 허덕이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굳이 북미 대륙의 정중앙에 거점 공항을 건설하는 것보다는, 전생의 미국 영토의 중앙 부근인 미주리 지역에 거점 공항을 건설하는 것이 여러모로 나아 보였던 탓이다.
“자네 말이 맞아. 타마로아에 거점 공항을 두는 것이 나을 것 같군. 이 건은 무척 중요하니 내가 따로 개발청장에게 이야기해두겠네.”
정성국의 이야기에 하얀 수리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 그럼 시험 비행의 일정을 최대한 당겨야겠군요. 타마로아에 거점 공항이 빠르게 건설될 테니까요.”
“하하하.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안전이 최우선인 것은 알지?”
“물론입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