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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723화 (723/850)

723화

정성국은 청장들과 회의를 하다 잠시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다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 조용한 곰을 바라보았다.

“이보게. 외무청장. 조선 사절단은 돌아갔나?”

“그렇습니다. 전하.”

9월이 되자 북미왕국을 방문했던 조선 사절단은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기 위해 새김포로 향했고, 새김포로 향하기 전에 조선 사절단의 정사와 부사가 정성국을 알현해 하직 인사와 함께 여러 차례 감사의 뜻을 표했었기에 정성국이 입을 열었다.

“제철소를 지을 기술자들과 함께?”

조선의 요청으로 북미왕국에서는 조선에 제철소를 건설해주기로 약속했고, 일부 관리를 파견해 제철소가 들어설 만한 위치를 물색했다.

그리고 여러 후보지 가운데 결국 산동 반도에 가까워 제철소를 운영하는 데 꼭 필요한 역청탄을 쉽게 수입할 수 있는 송림을 낙점했고.

송림에 제철소를 건설하기로 결정되자 개발청은 곧바로 제철소 건설을 위한 물자와 설비들을 수송선에 가득 실어 보내기 시작했고, 이제 남은 것은 기술자들이었기에 정성국이 묻자 옆에서 달콤한 간식을 먹으며 당을 보충하고 있던 개발청장이 커피로 당분을 씻어낸 후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또한, 이번에 해삼위에 건설한 설탕 생산 공방에 필요한 각종 기계들, 그리고 이를 설치하고 운용할 기술자들 역시 조선행 배에 올랐습니다.”

“아. 그들이 있었지.”

작년에 사탕무를 이용한 설탕 생산에 성공한 이후, 북미 내륙 지역에서도 대규모로 사탕무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조선에도 사탕무의 존재를 알리고 만주 지역에 사탕무를 재배하길 권했다.

이런 북미왕국의 권유에 조선 조정에서는 경악했다.

물론 북미왕국과 교역하면서 이전과는 달리 설탕을 쉬이 접할 수 있게 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값비싼 사치품인 설탕을 직접 생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데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거기에 북방 지역에서 그 귀한 설탕을 생산할 원료를 재배할 수 있다는 사실에도 놀랐고 말이다.

해서 조선 조정에서는 북미왕국의 권유를 받아들여 북방 지역으로 이주한 백성들에게 사탕무를 재배해볼 것을 권유하고, 동시에 북방 지역의 개척에 더욱 사활을 걸기 시작했다.

또한, 조선에서 나서서 해삼위에 설탕 생산 공방의 건물을 건설해둔 상태였고.

그러니 설탕 생산 공방에 필요한 각종 기계들이 조선에 도착하면 해삼위에 있는 설탕 생산 공방도 제대로 굴러갈 테고, 올해 수확한 사탕무를 이용해 곧 설탕을 생산할 거란 생각에 정성국이 중얼거렸다.

“그럼 이제 조선의 설탕 가격이 확 떨어지려나?”

이에 연구청장이 끼어들었다.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만주에 파견된 농업 연구소 연구원들의 보고에 따르면, 만주 지역은 사탕무 농사를 짓기에 꽤 적합한 터라 못해도 평작을 될 거라고 예측했고, 해삼위에 지어진 설탕 생산 공방의 규모도 꽤 큰 편 아닙니까.”

“맞습니다. 거기에 만주 지역에서 사탕무를 재배해 설탕을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에 조선 조정에서 북방 개척에 사활을 걸고 있는 터라, 설탕 생산량은 꾸준히 늘어날 테고, 자연히 값은 떨어질 겁니다.”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그럼 언젠가는 조선의 백성들도 설탕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겠군.”

“아마 그럴 겁니다. 아니. 이제 조선도 교역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교역에 임하고 있으니, 동아시아 지역의 백성들도 쉬이 설탕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아직 소빙하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과, 이 소빙하기로 인해 각종 기상 이변이 일어나 기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설탕의 열량을 생각하면 비상시에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써먹을 수 있을 테고, 조선에서 설탕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만주 지역에 더 넓은 경작지를 개척할수록, 앞으로 일어날 기근을 대비할 수 있을 테니 다행이로군.’

* * *

정성국은 언제나 일에 치여 사는 터라 그동안은 전화로만 목소리를 들어왔던 동생 정평국이 오랜만에 집무실을 방문했기에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커피를 내리며 개인적인 잡담을 조금 나누었고.

그러다 정평국이 정성국이 건네준 커피를 홀짝이며 자신이 방문한 용건을 이야기하자 정성국이 조금 당황하며 되물었다.

“어? 다른 지역에서도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겠다고?”

“예. 형님. 이미 새한성 라디오 방송국은 체계가 완전히 잡힌 상태라 더는 손댈 필요도 없어 보이고...행정청에서 하루라도 빨리 다른 지역에도 방송을 시작해달라고 요청하더라고요.”

정성국도 새한성 라디오 방송국이 완전히 체계가 잡혀 잘 굴러간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물론 그러기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한 정성국과, 다른 일을 반쯤 제쳐두고 라디오 방송국에 집중한 정평국, 그리고 북미신문에서 일하다 끌려온 인재들의 노력 덕분이기는 했지만.

다만 이렇게 새한성 라디오 방송국이 별 탈 없이 잘 굴러간다 하더라도, 다른 지역에서도 라디오 방송을 시작한다는 것은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다른 지역에서도 방송을 시작하려면, 결국 다른 지역에도 방송국을 설립해야 하고, 이 타 지역에 설립한 방송국을 제대로 돌아가게 하려면 기껏 키워둔 새한성 방송국의 인력을 다수 보내야 한다는 뜻이었으니까.

물론 이를 대비해 추가로 인력을 모집해 키우고 있긴 했지만, 고작 반년 만에 얼마나 배웠을까 싶은 정성국이었고.

그러나 정평국이 행정청의 요청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도 방송을 시작해야겠다고 이야기하자, 정성국은 고개를 갸웃했다.

“응? 행정청에서? 왜?”

“듣자니 다른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언제쯤 자신들도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는 거냐고 행정청 관리들을 들볶는답니다.”

물론 라디오 방송과 행정청은 아무런 관계가 없긴 했지만, 주민들이 자주 접하고 건의 사항이나 불만 사항이 있을 때, 이를 나라에 알리려면 행정청 관리에게 이야기하곤 했다는 점을 정평국이 상기시키자 정성국이 그제야 상황을 이해하고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아. 그래서? 헌데 행정청 관리들을 들볶을 정도로 강하게 요구한다고?”

“예. 거의 매일 같이 라디오 방송과 관련된 건의 사항을 받는답니다. 그래서인지 행정청에서 민원을 처리하는 관리들이 민원이 폭증했는데, 대다수는 라디오 방송을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달라는 민원이라 아주 치를 떨더군요.”

정평국의 대답에 정성국은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물론 라디오 방송이 신기하긴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라디오 방송을 듣겠다고 너도나도 민원을 넣는다는 것은 조금 비상식적이었으니까.

해서 곰곰이 생각해보던 정성국은 한 가지 이유가 떠올랐기에 즉각 입을 열었다.

“음. 라디오 방송을 시작한 후 라디오 방송에 관련된 기사가 너무 많다 싶긴 했는데...그 때문인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라디오 방송과 관련된 기사가 나오니 다른 지역의 주민들이 라디오 방송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거지요. 그리고 형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새한성이 북미왕국의 수도다 보니 다른 지역의 주민들은 은근히 새한성에 관심을 두고 있잖습니까. 더불어 새한성의 주민들의 생활 양식을 따라 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고요. 그러니...”

“새한성의 주민들처럼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뭐 이런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정평국의 대답에 정성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평국의 말처럼 새한성이 북미왕국의 수도이다 보니, 그리고 북미신문에 실린 기사 중 일부는 새한성에 관련된 기사들이 꽤 되다 보니 다른 지역의 주민들도 새한성을 동경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북미왕국의 백성들은 죽기 전에 한 번은 새한성을 들러야 한다며 관광차 새한성을 방문하곤 했으니까.

헌데 어느덧 새한성에 사는 주민들까지 동경하며 이들의 생활 양식을 따라 하고 싶은 마음에 라디오 방송을 요구한다니 정성국은 이런 현상을 계속 내버려 두었다가는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판단했고.

해서 정성국은 다른 지역 도시들의 개발에 더욱 신경을 쓰고, 또 현재 태동하고 있는 지역 신문들에 투자해 영향력을 키우는 것도 괜찮겠다고 여겼다.

다만 이건 당장 시급한 문제가 아니었기에 일단 미루고 정평국과의 대화에 집중하기 위해 정성국이 입을 열었다.

“헌데...다른 지역에서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는 게 당장 가능하긴 해? 지역마다 라디오 방송국을 설립하기엔 인력이 부족할 것 같은데? 거기에 라디오 수신기의 물량도 부족할 테고.”

정성국의 의문에 정평국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일단 라디오 수신기의 물량 부족 문제는 곧 해결될 겁니다. 진공관 생산 공방과 라디오 생산 공방의 확장이 끝나 생산량이 이전보다 훨씬 늘어날 예정이고...그동안 팔린 라디오 수신기 대부분이 새한성과 인근 지역으로 흘러 들어가 수요가 많이 줄어든 상태거든요.”

“어? 내가 얼핏 보고받기로는 아직 라디오 수신기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던데...”

일전에 하얀 들꽃에게 들은 이야기도 있고, 또 연구청을 통해 라디오 생산 공방의 확장을 지시하며 가끔은 이에 관한 보고서를 살핀 적도 있었기에 정평국의 대답에 정성국이 의구심을 표하자 정평국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현재 라디오 수신기의 구매자 상당수는 타 지역 주민들입니다. 미리 라디오 수신기를 확보하겠다는 거죠. 아시다시피 새로운 가전제품의 경우는 항상 물량이 부족해 물건을 구하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아...”

이 부분에 관한 내용 역시 일전에 하얀 들꽃에게 들은 적이 있었기에 정성국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정평국이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인력 문제도 크게 문제 될 것 없어요. 새한성 라디오 방송국을 설립할 때부터 다른 지역에 설립할 라디오 방송국에 배치할 인원을 고려해 몇 배나 많은 인원을 뽑았고, 또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면서 이쪽 분야에 흥미나 가능성을 짐작하고 몰려든 인재들마저 모조리 고용해 키워 왔으니까요.”

“그건 아는데...그래 봐야 반년 동안 배운 거잖아? 그들에게 방송국을 맡길 수 있겠어?”

정성국의 반문에 정평국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럼요. 충분히 맡길 수 있지요. 초창기에 투입되었던 인원들은 맨땅에서 딱 4개월 만에 방송을 시작한 반면, 이들은 그 밑에서 여러 경험을 쌓으며 반년 동안 배운 인재들 아닙니까.”

“아...그건 또 그렇네.”

정평국의 대답에 정성국이 수긍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헌데 그렇다고 해도 모든 지역에 방송국을 설립할 정도로 인원이 많아? 그건 아닐 텐데?”

이러한 정성국의 지적에 정평국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건 그렇죠. 해서 일단 인구가 많은 순으로 3곳에 라디오 방송국을 설립하고, 이렇게 새로 설립된 라디오 방송국에서도 필요한 인력보다 더 많은 인력을 채용해 키우다 보면...”

“2, 3년 내에 전 지역에 라디오 방송국을 설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죠.”

그러면서 정평국은 인구가 많은 애리조나 지역, 누벨 프랑스 지역, 이로쿼이 지역에 먼저 방송국을 설립할 예정이며, 이 지역들은 이주민들이 많은 지역이다 보니 라디오 방송을 통해 주민들을 효과적으로 통합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이자, 정성국은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고 여겨 결국 지역 라디오 방송국의 설립을 허락했다.

“알겠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된 것 같은데 굳이 미룰 이유가 없긴 하니...다만 그렇게 빨리 전 지역에 라디오 방송국을 설립해 방송을 시작하면 또 라디오 수신기 부족으로 고생할 듯 싶으니...미리 연구청장에게 이야기는 해 둬.”

공방을 증설해 라디오 수신기의 생산량을 늘리긴 했지만, 당장 3곳의 지역에서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면, 라디오 수신기의 물량이 무척이나 부족해질 것은 뻔했다.

애리조나는 멕시코 출신의 이주민들이, 그리고 누벨 프랑스 지역과 이로쿼이 지역은 아일랜드와 유럽 출신 이주민들이 주로 정착하는 지역이다 보니 인구가 많기로 소문난 지역들이었으니까.

또한, 정평국의 장담대로 반년 동안 경험을 쌓은 인재들이 별다른 문제 없이 새로 설립한 방송국들을 운영한다면, 반년 단위로 방송국이 기하급수적으로 늘 테고, 2년 안에 본토 전 지역에, 그리고 3년이면 외지에도 방송국을 설립할 수 있을 테니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단순히 라디오 생산 공방을 확장하는 수준이 아니라 각 지역 도시에 추가로 대규모 공방을 건설하는 수준으로 말이다.

해서 정성국이 이를 이야기하자 정평국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야겠네요. 북미왕국의 각 가정과 상점마다 배치될 라디오를 생각하면...어휴.”

정평국이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정성국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러니 니가 이야기하고 원망도 니가 감당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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