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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720화 (720/850)

720화

정성국이 한창 업무에 집중하고 있을 무렵, 갑작스럽게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군사청장이 들어와 보고했다.

“전하. 아프리카로 떠난 분함대에서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군사청장의 보고에 정성국은 흥미를 보이며 들고 있던 보고서를 내려놓고 물었다.

“아. 잘 도착했다던가?”

“그렇습니다. 중간에 기상 문제로 항로를 크게 우회해 도착이 조금 늦어지기는 한 모양입니다만...별 문제없었다고 하더군요.”

“그거 다행이로군.”

파나마 운하의 개통으로 수가 줄기는 했지만, 아직도 요행을 바라고 아프리카를 우회해 인도 지역이나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이동하는 상선들도 많은 편이었고, 여기에 골드코스트라 불리는 기니 만 해역은 채취한 금을 본국으로 운반하려는 선박들마저 있기에, 당연히 이를 노리고 활동하는 해적들도 꽤 많은 편이었다.

거기에 카리브 해에서 활동한 해적들 상당수가 가까운 이 골드코스트 해역에 눌러앉으면서 다른 지역과는 달리 대규모 해적단도 꽤 있었고.

그렇기에 대서양을 횡단해 네덜란드령 골드코스트에 도착할 때까지 해적과 조우해 몇 차례 전투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봤는데 의외로 그런 일 없이 도착했다고 하니, 정성국은 운이 좋았다며 안도했다.

물론 아프리카로 보낸 분함대의 전투력을 생각하면 대규모 해적단이라도 충분히 상대할 수야 있겠지만, 수송선과 보급선을 다수 대동하고 움직였기에 대규모 해적단을 상대하다 수송선이나 보급선이 공격당하기라도 하면 여러모로 골치 아프니 말이다.

“해서 분함대는 네덜란드령 골드코스트에 도착해 바로 황금해안 항의 건설에 착수했고, 네덜란드에서 일꾼을 지원해주었기에 예정보다 빠르게 항구 건설을 끝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어? 그래?”

“예. 거점 항구와 방어 시설을 건설해야 황금해안 항에 배치된 분함대가 항구 방어 임무에서 벗어나 주변 해역을 순찰하리라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그러니 네덜란드 입장에서는 황금해안 항이 하루라도 빨리 건설되길 바랄 수밖에 없고, 그 때문에 내륙의 광산에 투입된 일꾼마저 황금해안 항 건설에 돌렸다고 하더군요.”

“응? 현지 주민들을 고용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네덜란드의 경제 사정을 생각하면 더 많은 광물을 캐내는 데 집중해야 할 터인데 광산에 투입된 일꾼마저 빼서 북미왕국의 아프리카 첫 거점 항구인 황금해안 항의 건설을 돕는다는 말에 정성국의 의문을 품자 군사청장이 바로 대답했다.

“전하께서도 아시다시피 골드코스트 지역의 주요 교역품은 금과 노예였습니다. 헌데 아국이 노예무역의 금지를 천명한 이후로, 유럽 국가들은 아국의 눈치를 살피며 하나둘 노예무역을 금지했고, 자연히 골드코스트 지역의 산업도 재편될 수밖에 없었지요.”

군사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바로 골드코스트 지역의 상황을 이해하고 되물었다.

“그 말은...더는 노예를 사고팔 수 없으니 광산 산업에 집중했다는 소린가?”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골드코스트 지역에 더 많은 금이 매장되어 있을 거라고 보고 이를 캐기 위해 광산업에 투자하기 시작한 거지요. 그리고 광산 개발은 많은 인력이 필요한 터라 현지 주민들을 대거 고용한 상태이고요.”

“아. 그래서 우리가 고용할 만한 이들이 없다?”

“예. 그리고 골드코스트 지역의 경우는 이전까지 노예 거래가 번성했던 지역이라...원주민 대다수를 노예로 팔았기에 인구 자체가 적은 편이고요.”

포르투갈을 비롯한 유럽 나라들이 아프리카 지역으로 진출한 지도 벌써 100년이 넘게 흘렀고, 그 후 신대륙을 발견해 이곳을 개발하겠답시고, 끊임없이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노예로 잡아 신대륙으로 이주시켰다.

그러니 당연히 신대륙과 가까운 아프리카 서해안 일대에 살던 아프리카 원주민들 상당수는 노예가 되어 배를 타고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자연히 해안가 지역의 인구 밀도는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떠올린 정성국은 군사청장의 말에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쯧. 그럼 황금해안 항을 관리하는 것도 문제겠는데?”

네덜란드의 도움을 받아 거점 항구와 각종 시설을 건설한다고 해도, 이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데 인력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었다.

특히 북미왕국의 경우, 인구가 적을뿐더러, 굳이 살기 좋은 본토를 내버려 두고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외지로 이주하려는 백성은 없는 터라 본토 외의 지역을 개발하고 관리하는 일은 현지 주민들을 고용해 맡기고 있었는데, 황금해안 항의 경우 그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았기에 정성국이 걱정하자 군사청장이 상황이 그런 것을 어쩌겠느냐는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 부분은 네덜란드와 협의해야겠지요.”

따로 황금해안 항에 정착할 이주민을 구하는 것보다는 네덜란드와 협의해 현지 주민 일부를 확보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정성국이 군사청장의 말에 동의했다.

“어쩔 수 없나. 내가 외무청에 따로 이야기해두지.”

“알겠습니다. 전하.”

그 후에도 정성국은 군사청장과 함께 거점 항구인 황금해안 항과 관련된 이야기를 계속 나누다 군사청장의 이야기에 눈을 빛내며 되물었다.

“음? 그게 정말인가? 우리가 거점 항구를 건설해 아프리카 지역에 진출한다는 소식에 해적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 같다고?”

이에 군사청장이 슬쩍 미소지으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전하. 아시다시피 카리브 해의 해적들이 아국의 함대를 피해 대서양을 건너 도착한 곳이 바로 가까운 아프리카 서해안 지역이잖습니까.”

“아. 그러니 아국의 함대가 강력하다는 것이 해적들에게도 잘 알려진 모양이지?”

“그렇습니다. 더불어 카리브 해 해적들이 2함대에 품었던 공포심마저 전염된 모양입니다. 그 때문인지 일부 해적단들이 인도 방면이나 지중해 방면으로 이동한 모양이고, 이것이 알려지면서 다른 해적들도 동요하는 모양이라고 하더군요.”

군사청장의 이야기에 정성국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김봉길이 훈련 명목으로 해적들을 사냥한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또 몰랐군.”

“그러게 말입니다. 덕분에 예상했던 것보다는 해적과의 충돌이 적을 듯싶고, 그만큼 물자의 소모도 적을 것 같아 다행이지요.”

그 말에 정성국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흠. 그래도 보급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충분히 해 두게. 만약을 대비해야 하니 말일세.”

“명심하겠습니다. 전하.”

* * *

잉글랜드의 국왕 찰스 2세는 보좌관이 올린 문서를 확인하고 조금은 침통한 표정으로 신음을 흘리며 되물었다.

“으음...이 문서의 내용이 정말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국왕 폐하.”

보좌관의 대답에 찰스 2세는 허탈하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허허허. 북미왕국에서 네덜란드, 덴마크에 제공한 증기기관의 수준이 우리가 개발한 증기기관 수준과 비슷한 것으로 추측된다라...허. 이거 정말 허탈하군. 우리는 증기기관의 연구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서 겨우 결과물을 얻었는데, 두 나라는 그저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는 것만으로 제대로 된 증기기관 기술을 확보한 셈이니.”

그런 찰스 2세의 중얼거림에 보좌관이 슬며시 맞장구쳤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동안 북미왕국은 자국의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병적으로 꺼렸기에, 북미왕국에 어떤 조건을 내걸더라도 북미왕국이 증기기관 기술을 넘기지 않을 것이라 판단해 북미왕국을 설득하기보다는 증기기관 연구에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것 아닙니까. 헌데 일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보좌관의 말처럼 처음 잉글랜드는 북미왕국과 교류하면서 북미왕국의 문명이 증기기관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인하고 어떻게든 북미왕국의 증기기관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애를 썼었다.

허나 북미왕국은 증기기관 기술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고, 혹여 이 기술이 유출이라도 될까 봐 타국의 외교관들이 증기기관이 설치된 공방을 방문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잉글랜드는 하는 수 없이 학자들을 모아 자체적으로 증기기관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고, 오랜 연구 끝에 겨우 성과를 거둘 수 있었고.

헌데 갑자기 북미왕국에서 네덜란드와 덴마크에 증기기관 완제품을 수출하고, 또 자체적으로 증기기관을 제작할 수 있도록 설계도와 장인을 파견했으니 보좌관은 북미왕국의 정책이 갑작스럽게 바뀐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이런 보좌관의 반응에 찰스 2세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

“북미왕국의 방침이 갑자기 바뀐 것이 크리스티안 5세와 빌럼 3세가 북미왕국 국왕을 설득해서라는 소리가 들리던데...이럴 줄 알았으면 북미왕국의 국왕이 페로 제도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도 페로 제도를 방문할 것을 잘못했군. 쯧.”

정성국이 페로 제도를 방문한다는 사실을 찰스 2세도 듣긴 했었다.

다만 당시 찰스 2세는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기에 한창 정양하고 있었기에, 북미대륙으로 이주해 북미왕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세운 정성국에게 흥미는 있었지만, 결국 페로 제도를 방문하지는 않았었고.

헌데 크리스티안 5세나 빌럼 3세는 페로 제도를 방문해 정성국을 설득해서 결국 북미왕국의 증기기관 기술을 일부나마 확보할 수 있었다는 소리가 들려오니, 만약 자신이 페로 제도에 있었다면 이를 훼방 놓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아쉬워하자 보좌관이 급히 입을 열었다.

“이미 지나간 일인데 후회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더불어 그때는 국왕 폐하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한창 휴식을 취하고 계실 때였으니...”

보좌관의 말마따나 이미 지나간 일을 후회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찰스 2세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현실 안에 있는 보좌관들을 한번 쓱 훑어본 후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북미왕국의 정책이 바뀐 이상, 새한성에서 주재하는 대사의 말처럼 우리도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어야 할까?”

이에 보좌관들이 찰스 2세의 말에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괜히 기술 개발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는 것보다야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고 기술 이전을 받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선택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허나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는다면, 더는 확장이 불가능해지니 문제 아닙니까.”

“글쎄요. 아시다시피 북미왕국의 외교 정책은 교역을 위해 현지 세력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고, 그렇기에 북미왕국이 진출한 지역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북미왕국의 동맹국이나 우호국을 침공하면 북미왕국이 개입할 수 있으니까요.”

덩치가 후덕한 보좌관의 말에 다른 보좌관들이 신음을 흘리며 생각에 잠겼을 때, 이 보좌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헌데 북미왕국은 이미 동남아시아 지역에 진출했고, 최근에는 아프리카 지역으로도 진출했으며, 또 인도 지역의 경우 이미 거점을 마련해 둔 상태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식민지 건설을 통한 영토 확장은 거의 불가능해질 테고, 그러니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어 빠르게 북미왕국의 기술을 받아들여 나라를 발전시키는 것이 더 나은 선택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알현실에 있던 보좌관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와중에 비쩍 말라 날카로운 인상의 한 보좌관이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아시다시피 북미왕국의 증기기관은 아국의 증기기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합니다. 그건 기차나 철선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지요. 헌데 그런 북미왕국이 네덜란드와 덴마크에 넘겨준 증기기관은 아국이 이번에 개발한 증기기관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건...”

“그 말은...”

“예. 제가 생각하기에는 크리스티안 5세나 빌럼 3세가 북미왕국의 국왕을 설득했다기보다는, 우리 잉글랜드가 자체적으로 100마력의 증기기관을 개발해냈기에, 넘겨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흠. 자네는 새한성에 주재 중인 잉글랜드 대사의 생각과는 달리 우리가 동맹을 맺는다고 북미왕국의 도움을 받아 기술을 발전시키기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건가?”

알현실의 왕좌에 앉아 턱을 괴고 보좌관이 서로 논의하는 것을 경청하던 찰스 2세가 갑자기 끼어들자 날카로운 인상의 보좌관이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국왕 폐하. 그러니 지금은 북미왕국과 동맹을 생각하기보다는 북미왕국이 아직 진출하지 않은 아프리카 동해안 지역에 추가로 식민지를 건설하거나, 혹은 인도 지역의 진출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미왕국과의 동맹은 그 후에 해도 되겠지요.”

그 말에 다른 보좌관들이 반박하고 또 재반박하기 시작했고, 이를 주의 깊게 듣던 찰스 2세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그만. 일단 새한성에 주재 중인 잉글랜드 대사에게 연락해 만약 우리가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는다면, 어떤 기술을 얻을 수 있을지 한번 확인해보라고 하겠네.”

이에 날카로운 인상의 보좌관이 살짝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허면...”

“그러니 제대로 된 답이 오기 전까지는 아프리카 동해안 지역에 또 다른 식민지를 건설하고, 인도 지역에 더 많은 항구를 확보하는 데 전력을 다하도록 하지.”

그건 결국 자신의 의견을 따르겠다는 뜻이었기에 날카로운 인상의 보좌관은 활짝 인상을 펴며 찰스 2세에게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국왕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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