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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718화 (718/850)

718화

정성국은 집무실을 찾아온 외무청장인 조용한 곰을 환영하며 더위에 지친 듯한 얼굴을 한 조용한 곰을 위해 아이스크림을 내어주었고.

조용한 곰은 아이스크림이 담긴 접시를 받아들고 감사를 표하며 게눈 감추듯 빠르게 먹어치웠다.

그 모습을 보고 정성국이 혀를 차며 말했다.

“천천히 먹게. 천천히. 너무 빨리 먹으면 머리가 아플걸?”

그리고 정성국의 말에 조용한 곰이 화들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어? 그렇지 않아도 가끔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머리가 아프긴 하던데...그게 정말 아이스크림 때문이었군요?”

“뭐 정확히는 아이스크림 때문이라기보다는 찬 음식 때문에 혈관이 수축해서 통증이 생기는 거지만 말이야.”

조용한 곰은 별다른 의학 지식은 없었지만, 정성국의 말이 왠지 위험하게 들려 걱정스러운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음...그거 위험한 겁니까?”

“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 몇 번 경험해봤다니 알겠지만 잠깐 후면 혈관이 확장되어 괜찮아지니까. 다만 천천히 먹으면 두통이 생길 이유가 없다 이거지.”

“휴우. 다행이군요.”

아이스크림을 꽤 좋아하는 조용한 곰이었기에 정성국의 대답에 안도하고, 또 기뻐하는 모습이었고, 그런 조용한 곰의 반응에 정성국이 피식 웃었다.

“아무리 봐도 건강하다고 해서 기뻐하기보다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어 기뻐하는 것 같은데?”

“하하하. 그럼요. 무더운 한여름에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한다면 무척 괴로울 테니까요.”

그렇게 정성국은 조용한 곰과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잠시 잡담을 나누었고.

그 후 조용한 곰이 기운을 차린 듯 하자 정성국은 방문한 용건을 물었고, 조용한 곰은 들고 온 보고서를 정성국에게 건네며 집무실을 방문한 용건을 이야기했다.

이에 정성국은 눈을 크게 뜨며 급히 조용한 곰이 건넨 보고서를 낚아채며 되물었다.

“허. 드디어 스웨덴과의 투자 조약을 체결했다고?”

“늦어져서 송구합니다. 전하.”

북미왕국이 발전하면서 더 많은 구리가 필요했기에, 외무청에서는 스웨덴과 접촉해 정식으로 외교 관계를 맺고, 통상 조약을 체결해 스웨덴에서 채굴하는 구리를 매입하려 했지만, 그 전에 덴마크가 먼저 북미왕국과 접촉하면서 상황이 꼬였다.

해서 외무청에서는 대프랑스 전쟁이 끝난 이후에나 스웨덴과 통상 조약을 체결할 수 있었고.

다만 북미왕국에서 아무리 후한 조건으로 구리를 매입한다 하더라도 스웨덴에서 채굴하는 모든 구리를 매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고, 그렇다 보니 당장은 스웨덴에서 구리를 수입해 북미왕국의 구리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 또 구리 부족 문제로 골치를 썩이게 될 것이 뻔했다.

그 때문에 정성국은 외무청을 통해 스웨덴의 구리 광산에 투자하라고 명령했다.

스웨덴의 구리 광산에 투자해 구리의 채굴량을 늘리려 한 것이다.

그리고 정성국은 스웨덴의 경제가 엉망이라는 것을 알기에 스웨덴에서 이 투자 조약을 절대로 거부하지 않으리라 판단했고, 그 때문에 빠르게 협상이 진행될 거라 여겼다.

헌데 투자 조약을 체결하는 데 거의 반년이 넘게 걸렸으니 정성국이 의아한 기색으로 조용한 곰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니. 왜 이렇게 늦어진 건가?”

이에 조용한 곰이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하는 얼굴로 잠시 머뭇거리다 결국 입을 열었다.

“그게...단순히 투자 조약을 체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스웨덴의 내부 사정이 얽혀있어서 말입니다.”

조용한 곰이 넘겨준 보고서에는 이번에 맺은 투자 조약에 관한 내용만 있었기에 정성국은 보고서를 덮고 티테이블 위에 올려두면서 질문을 던졌다.

“응? 스웨덴의 내부 사정?”

“예. 아시다시피 스웨덴은 이번 전쟁으로 재정이 바닥났습니다. 뭐 원래부터 스웨덴의 재정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었는데, 전쟁이 시작되면서 스코네 지방을 지키기 위해 군비를 마련해야 했고, 비옥한 스코네 지방이 전쟁터로 변하면서 세입은 확 줄었고, 여기에 서유럽 영토 대부분을 빼앗겨버리면서 교역마저 막혀 버렸으니까요.”

조용한 곰이 말한 내용은 정성국도 잘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까닥하면서 계속 설명하라는 듯 손짓했고, 이에 조용한 곰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물론 새한성 조약으로 스웨덴은 잃었던 영토 상당수를 돌려받긴 했지만, 이미 엉망이 되어버린 영토를 돌려받았다고 해서 바닥난 재정을 복구하긴 무리였고, 결국, 스웨덴의 경제를 회복하려면 타국의 도움이 절실한데...칼 11세는 타국의 지원만 바라보다간 나라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어리석은 군주는 아니지요.”

칼 11세는 4살에 왕위에 올랐다.

그러다 보니 칼 11세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귀족들이 섭정 위원회를 결성해 나라를 통치했고.

헌데 이때 섭정 위원회를 장악한 세력은 호전적이고 전쟁을 중시하는 파벌이었기에 스웨덴은 계속해서 주변국과 전쟁을 치렀고, 그러다 보니 재정이 고갈되어 나라를 유지하려면 타국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때 스웨덴을 지원해주며 스웨덴을 마치 속국이나 거수기처럼 사용한 것이 바로 프랑스였고.

그러니 칼 11세라면 타국의 지원을 바라는 것이 결코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정성국도 외무청을 통해 스웨덴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기에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타국의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스웨덴의 경제를 발전시키기에는 스웨덴의 경제 구조가 이미 귀족 중심의 경제 구조로 구축되어 있다는 점이었고.

이러한 경제 구조를 재구축하려면 개혁 외엔 답이 없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조용한 곰이 흠칫하며 조용한 곰을 바라보았다.

“설마...”

아직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았는데도 정성국이 스웨덴에서 일어난 일을 눈치챈 것 같아 조용한 곰이 내심 감탄하면서도, 정성국의 통찰력은 무척이나 비범한 데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기에 크게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전하. 비록 덴마크군과의 전투로 엉망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실전을 치른 군대가 칼 11세의 손아귀에 있었고, 귀족들은 스웨덴의 땅 대부분을 장악하고 막대한 부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칼 11세는 무력을 이용해 귀족들에게 집중된 부를 가져와 스웨덴의 경제 구조 자체를 뒤바꾸려 했지요.”

조용한 곰이 예상대로의 대답을 하자 정성국은 신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으음...허나 별다른 명분 없이 힘으로 귀족들의 것을 가져오면 뒷감당이 어려울 텐데?”

“맞습니다. 해서 칼 11세는 아국과의 투자 조약을...이용했습니다.”

“뭐? 이용?”

북미왕국의 국력이 다른 나라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다른 나라들은 북미왕국을 어떻게든 이용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이를 잘 아는 정성국은 그럴 여지를 주지 말라고 이야기했었고.

또한, 이 사실이 타국에 알려지면서 괜히 북미왕국을 이용하려 들다 북미왕국과 척을 지면, 북미왕국이 가만히 있지 않고 어떻게든 보복하려 든다는 것은 러시아 차르국이나 포르투갈의 경우로 확인한 유럽 나라들은 북미왕국을 이용하려 들지 않았다.

헌데 스웨덴이 투자 조약을 이용했다는 말에 정성국이 예상외라는 얼굴로 자세히 설명해보라고 재촉하자 조용한 곰이 바로 설명을 시작했다.

“예. 통상 조약을 맺은 아국이 스웨덴 지역의 광산에 투자하려 한다는 소문을 귀족들에게 슬쩍 흘린 겁니다.”

“응? 그걸 흘려서 뭐하려...아. 설마 귀족들이 아국의 투자금을 눈먼 돈으로 생각하고 노리게끔?”

처음엔 어리둥절한 정성국이었지만, 곧 칼 11세의 수작을 눈치채고 확인차 묻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눈먼 돈까지야 아닙니다만...적당히 떼먹을 수도 있고, 이 투자금을 이용해 자신들이 소유한 광산을 확장하고 더 많은 광부를 고용해 광물 생산량을 늘린다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니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귀족들이 눈이 돌아가 자신들이 소유한 광산에 투자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습니다. 이미 임시조약을 체결해 스웨덴 왕실이 소유한 광산에 투자하기로 정해졌는데 말이지요.”

조용한 곰의 묘한 미소와 함께 대답하자 정성국은 상황이 뻔히 짐작되었기에 혀를 차며 말을 받았다.

“쯧쯧. 스웨덴 왕실에 투자하기로 한 돈에 수작을 부리려 한 셈이니 이를 빌미로 귀족들을 압박했겠군.”

“예. 왕실을 능멸하려 한 셈이니까요. 해서 칼 11세는 전격적으로 군을 동원해 정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귀족들을 압박했고, 결국 귀족들이 보유할 수 있는 토지에 제한을 두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더불어 귀족들은 살기 위해 팔아야 하는 토지 대부분을 칼 11세에 바쳐야만 했지요.”

“귀족들이 소유하고 있던 땅을 갈취한 셈인가.”

“그렇습니다. 뭐 칼 11세는 국가의 땅은 귀족의 것이 아니라 왕실의 것이니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는 듯했습니다만...”

더불어, 칼 11세는 기회를 잡았기에 귀족의 세력을 완전히 쳐내고 절대 왕권을 구축하기 위해 스웨덴 국왕은 그 어떠한 헌법에도 구속당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지금까지 귀족들이 국정을 운영하던 국가 위원회를 왕실 위원회로 바꾸어 귀족들을 왕의 협력자이자 조언자의 위치에서 왕의 하수인으로 격하시켜 절대 왕권을 확립했다고 설명하면서 덧붙여 말했다.

“아무튼, 칼 11세가 아국과의 조약을 이용해 귀족들의 세력을 깎아내고 절대 왕권을 구축하는 데 집중하다 보니 정식으로 투자 조약을 체결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용한 곰의 설명에 정성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조금은 찝찝하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쩝...뭐 우리를 이용한 사실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데...이미 끝난 일이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이런 정성국의 반응에 조용한 곰은 속으로 안도하며 정성국의 생각이 바뀔세라 급히 입을 열었다.

“그렇지요. 다만 스웨덴도 아국과 적대할 생각은 없기에 이런저런 배려를 해주었습니다. 그러니 그냥 넘어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배려?”

“아국이 스웨덴에서 채굴하는 구리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내년부터 스웨덴에서 채굴하는 구리 전량을 수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조용한 곰의 이야기에 정성국이 기겁했다.

“뭐?! 스웨덴에서 채굴하는 구리 전량을?”

구리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수입하기 위해 구릿값을 후하게 쳐주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웨덴에서 채굴하는 구리 전량을 확보할 수는 없었는데, 스웨덴 왕실에서 나서 준 덕분에 스웨덴에서 채굴하는 구리 전량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러면 스웨덴에서 수입하는 구리의 양이 거의 배 가까이 늘어나게 되는 셈이었으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니 내년부터는 더는 구리 부족 문제로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하하하! 그래. 그 정도면 그냥 넘어가야지 어쩌겠어.”

거절하기엔 너무 많은 구리였기에 정성국이 웃음을 터트리는 와중에 조용한 곰이 덧붙였다.

“그리고 잘만하면 스웨덴과도 동맹을 맺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응? 스웨덴과?”

“예. 아시다시피 스웨덴은 그동안 아국과 별다른 교류가 없었잖습니까. 덕분에 서유럽의 여러 나라에 비해 증기기관 수준이라던가 각종 기술 수준이 무척 떨어지는 편이지요.”

“어? 그건...”

정성국이 조용한 곰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급히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보고서를 다시 펼쳐보았는데, 보고서에 적혀 있는 투자 조약의 문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아국이 광산 개발을 위한 기술을 지원한다는 문구가 있는데?”

이에 조용한 곰이 묘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다만 이게 증기기관 제작 기술이라는 것을 스웨덴은 모르지요.”

“엥?”

증기기관을 이용하면 더 깊은 곳의 광물도 캘 수 있었기에 어차피 스웨덴에 기초적인 증기기관 제작 기술은 넘겨줄 생각이었다.

헌데 이를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이 황당해하자 조용한 곰이 설명했다.

“그게...스웨덴에 파견되어 현지 분위기를 파악한 외무청 관리가 일부러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째서?”

“굳이 증기기관 기술을 넘겨준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투자 조약을 체결할 거라 판단했고, 서유럽의 나라들이 하나둘 증기기관을 상용화하면서 급격히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보고 스웨덴의 학자들은 이러다 스웨덴이 뒤처지지는 않을까 하는 조바심을 품고 칼 11세에게 간언하고 있다는 사실과, 이번에 아국과 동맹을 맺은 네덜란드와 덴마크가 아국에 증기기관 기술을 넘겨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 학자나 관리들이 아국과의 동맹을 주장하는 탓에 일단 숨기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더군요.”

즉, 스톡홀름에서 오랫동안 협상을 하며 스웨덴의 현지 분위기를 파악한 외무청 관리는 저들이 증기기관 제작 기술을 원하는 만큼, 이를 이용하면 스웨덴을 북미왕국의 동맹국으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의도적으로 숨겼다는 이야기였고.

물론 현지에 파견되는 외교관은 전권을 위임하는 터라 그 정도 권한은 있었기에 정성국은 이를 타박하지 않고 오히려 칭찬했다.

스웨덴과의 동맹이 썩 나쁘지 않았기에.

“좋은 판단이네. 이미 스웨덴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는데, 나중에 스웨덴의 경제가 되살아난 후 다시 발트해 전체를 장악하겠다고 설치면 여러모로 곤란하니 아예 동맹을 맺는 것도 나쁘진 않지.”

“그렇지요. 허면...?”

“그래. 바로 연락해서 스웨덴과의 동맹을 추진하라고 해봐. 저들의 조바심을 이용한다면 충분히 해볼 만하겠네.”

정성국의 승낙에 조용한 곰이 바로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허면 바로 연락하도록 하겠습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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