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7화
“부르셨습니까. 스승님.”
“아. 왔냐? 앉아라.”
한창 업무를 보고 있던 정성국은 문이 열리며 강평화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오자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티테이블로 이동했고.
커피를 내리면서 잠시 잡담을 나누었다.
“그래. 요샌 뭐 하고 지내느냐.”
“뭐하긴요. 탄약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정신없이 움직이는 중이지요.”
그동안 꽤 많은 신식 소총이 유럽에 풀리기도 했고, 신성로마제국이나 오스만 제국은 한창 전쟁 중이라, 그리고 그 외의 나라들도 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병력을 운용해보면서 신식 소총이 강력한 대신 탄약 소모량이 생각외로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만약을 대비해 더 많은 탄약을 비축하기 위해 유럽 대사들은 항상 외무청을 들들 볶고 있었다.
여기에 민간에 신식 소총을 판매하면서, 그리고 부유한 북미왕국 백성들이 신식 소총을 단순히 호신용이 아닌 사냥용으로 사용하면서 민간에서 팔리는 탄약이 엄청나게 늘어났고.
더불어 기관총을 개발하고, 본격적으로 기관총을 양산해 배치하기 시작하면서 이전보다 수십 배나 많은 탄약을 생산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정성국은 지친 얼굴로 푸념하듯 대답하는 강평화를 보고 살짝 미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일단 그가 강평화를 부른 것은 더 많은 일을 강평화에게 떠넘기기 위함이었으니까
해서 정성국은 멋쩍은 웃음과 함께 질문을 던졌다.
“하하하. 그렇게 바쁘냐? 그래도 화약 제조 공방을 몇 번 증축해서 탄약 생산량을 꽤 늘린 상태잖아?”
“스승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전선에 기관총을 다수 장착하면서 탄약 소모량이 미친 듯이 증가한 터라 그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해서요. 해서 각종 공방을 죽어라 늘리고 있기는 한데...쉽지 않네요.”
“아...그래?”
“예. 뭐 공방 건설이야 개발청에 맡겼는데 문제는 공방에서 일할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죠. 아시다시피 새양주의 인구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고, 기술이 유출될 것을 우려해 아무나 정착시키지 않잖습니까.”
북미왕국은 보안이 중요한 공방들을 모두 새한성 인근의 도시인 새양주로 옮겼고, 그런 만큼 북미왕국은 아무나 새양주에 정착시키지 않았다.
평판을 살피고 결격 사유가 없는지 확인한 후에나 정착을 허락한달까.
그러니 이주민이나 주변 지역에 사는 원주민들이 마구 정착해 빠르게 인구가 증가하는 다른 도시와는 달리 새양주의 인구 증가는 무척 더뎠고.
헌데 중요한 공방은 모두 새양주에 짓는 터라 인구에 비해 일자리는 크게 늘었고, 덕분에 고용할 만한 이가 거의 없어 탄약 생산량을 늘리기 쉽지 않다고 토로하는 강평화를 보고 정성국이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역시 그게 문젠가.”
“예. 해서 정보기관의 게으른 곰에게 부탁하긴 했는데...”
강평화가 말을 흐리자 정성국은 상황을 짐작하고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쪽도 인력이 여유로운 편은 아니라서. 다만 새양주에 지은 공방들은 북미왕국에 있어서 무척 중요한 공방들인데 인력이 부족해 공방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는 것은 확실히 문제는 문제니까...내가 따로 조치를 취하도록 하지.”
정보기관 소속의 관리를 대폭 늘린다면 해결될 문제라고 판단한 정성국이 이렇게 대답하자 강평화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오. 꼭 그래 주세요. 요새 이 문제로 다른 관리들을 만나며 협조를 구하느라 바빠서 무기 개발 연구 쪽에는 아예 손을 뗀 상황이라...”
“아. 그래? 그거 곤란한데...”
강평화의 대답에 정성국이 인상을 찌푸리자 강평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예? 왜요?”
북미왕국에 있어서 신무기 개발은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이미 북미왕국의 군사력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앞서 있었으니.
그리고 강평화 자신이 빨리 이번 화약 제조 공방을 비롯한 각종 공방의 확장을 빠르게 마무리 짓고 연구실로 돌아가려는 것 역시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고 연구하는 것이 재밌기에 하려는 것이지, 빠르게 신무기를 개발할 필요가 있어서 하려는 것이 아니고.
헌데 정성국의 반응은 그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기에 강평화가 의아한 듯 정성국을 바라보자 정성국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후우...탐사대의 일. 혹시 알아?”
“아. 미주리 지역의 탐사대가 들소 떼를 막으려다 결국 화력이 부족해 쓸려버린 것 말이지요?”
“하아. 그래.”
강평화가 아는체하자 정성국은 굳이 미주리 지역의 일을 설명할 필요가 없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솔직히 운이 좋아 중상으로 그쳤지, 잘못했으면 다수의 사망자가 나올 수도 있었어.”
들소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무리를 이끄는 커다란 수컷의 경우 몸무게가 1톤에 육박하고 시속 5, 60km의 속도로 달릴 수 있다.
이 말은 들소에 들이받혔다는 것은 시속 5, 60km의 속도로 달리는 1톤 트럭에 들이받혔다는 것과 똑같았고.
여기에 들소에는 단단한 뿔까지 달려 있는 터라 차에 치이는 것보다 더 위험했다.
그렇기에 들소는 천적이 없다고 이야기할 정도였고, 북미 대륙의 포식자라 할 수 있는 곰이나 늑대 같은 동물조차 무리에서 뒤처진 새끼나 다 늙은 들소를 노리지 성장한 들소를 노리진 않을 정도였고.
그렇기에 들소의 돌진에 여럿이 휘말렸는데 사망자가 없는 것은 솔직히 운이 좋다고 생각한 정성국이었고, 그런 정성국의 의견에 강평화도 동의했다.
“그렇긴 하지요. 무게와 속도에서 나오는 파괴력이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정말 운이 좋은 편이긴 하네요.”
“그래서 대책을 세웠는데...”
정성국이 설명하기 전에 강평화가 잽싸게 입을 열었다.
“아. 대책은 저도 들었습니다. 들소 떼가 가끔 들르는 미주리 지역의 모든 마을에 작은 규모나마 경비대를 배치하고, 기관총도 3자루씩이나 배치하겠다는 것을요.”
탐사대는 북미왕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강력한 부대로 알려져 있었다.
물론 최근에야 각종 신무기가 배치된 특수군을 더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이긴 하지만, 특수군은 아직 규모가 작은 터라 아직은 군사청이든, 다른 나라든, 탐사대를 북미왕국의 주력군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헌데 이러한 탐사대가 들소 떼를 막으려다 중상을 입자 군사청장은 무척 어이없어하기도 했고, 또 무척 분노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야 처음이라 정성국이 별다른 질책을 하지 않았지만, 또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분명 따끔하게 질책할 것이 분명하기도 했고.
해서 군사청장은 들소 떼가 이동하는 경로에 있는 미주리 지역 마을의 안전을 위해 마을마다 기관총과 경비대를 배치하기로 했는데, 이를 알고 있다는 듯 이야기하는 강평화의 말에 정성국이 상황을 짐작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기관총을 추가로 발주해야 하니 너한테도 이야기한 모양이구나.”
“그렇죠. 그리고 아무리 대단한 규모의 들소 떼라 하더라도 마을에 기관총이 3자루나 배치되어 있으면 충분히 방어는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기관총 3자루라면야 뭐...다만, 이번 일로 탐사대의 화력을 조금 높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널 부른 거고.”
“탐사대의 화력을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정성국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강평화였다.
이번에 탐사대가 무리하게 움직인 것은 다 마을의 안전 때문이었는데, 이번에 미주리 지역의 마을에 기관총을 대거 배치하기로 한 만큼 마을의 안전은 확보된 이상 탐사대가 더는 무리하게 움직일 이유는 없었으니까.
헌데 정성국이 자신을 불러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새로운 무기를 개발했으면 하는 눈치였기에 강평화가 의아하다는 듯 자신의 스승을 바라보자 정성국이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만약을 대비해 미주리 지역에 기관총을 대량으로 배치하기로 했으니, 이번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지는 않겠지. 다만, 탐사대의 화력이 조금 더 강력했더라면 탐사대원들이 다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말이야.”
물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긴 하지만, 정성국의 말도 일리가 있었기에 강평화가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정성국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지금은 한창 발전 중이라 군을 늘릴 상황이 아니잖아. 그러니 병사 개개인의 화력을 높일 필요가 있고.”
아무리 군이 소비만 하는 집단이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규모는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군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끼려다 타국의 침공을 부를 수 있었으니까.
다만 북미왕국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비행기, 검차, 전차, 기관총 등등 타국은 감히 만들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신무기가 즐비하기도 했고, 비록 북미왕국의 육군 규모는 무척 작은 편이었지만, 이와는 반대로 북미왕국의 해군은 그 어떤 나라보다 규모가 큰 편이었으니까.
그리고 다른 나라들은 이 사실을 잘 알기에 감히 북미왕국에 덤빌 생각을 하지 않았고.
해서 정성국은 경비대원들의 절반이 치안국으로 빠져나가고 대폭 줄어든 육군 규모를 굳이 이전으로 늘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치안국으로 빠져나가면서 비워진 경비대를 채운답시고 2만 명이 넘는 장정들을 군에 묶어둘 바에는 이들을 건설 노동자로 활용하는 것이 북미왕국의 발전에 훨씬 도움이 되니 말이다.
다만 병사들의 수가 줄어들었다고 전투력마저 급감하는 것은 곤란했기에 경비대에는 기관총을 추가로 배치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경비대의 경우는 기관총 덕분에 병사들의 수는 줄어들었음에도 화력은 오히려 전보다 나아졌다고 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탐사대였다.
기관총의 경우 크기와 무게 때문에 탐사대가 들고 다니면서 써먹기는 어려웠으니까.
해서 군사청에서는 곧 생산될 자동차를 이용하려는 계획을 세웠었지만, 정성국이 보기엔 썩 현실성 없는 탁상행정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말과 자동차는 이동할 수 있는 지형의 범위가 완전히 달랐으니까.
말이야 제대로 된 길이 없어도, 그리고 산이나 강도 건널 수 있었지만, 자동차는 그게 불가능했다.
거기에 연료 문제까지 생각해보면 이동 거리가 무척 제한될 수밖에 없었고.
해서 정성국은 말에 싣고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가벼운 기관총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지만, 당장 급한 일은 아니라 미뤄두고 있었다.
강평화가 맡은 일이 많기도 했고.
허나 그렇게 뭉그적거리다 이번 일이 터진 이상 더는 미루지 말고 빠르게 일을 진행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정성국이 곧바로 강평화를 부른 것이고, 이를 자세히 설명하자 강평화는 스승의 말을 경청하다 곧 알겠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흐음.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북미왕국의 내륙 진출이 가속화되고, 대평원의 원주민 부족들도 하나둘 북미왕국에 합류하면서 탐사대가 담당할 영역은 계속 넓어지는데 스승님께서는 군 규모를 키우는 것을 썩 내켜 하지 않아 하셨잖아요? 그래서 탐사대를 계속 쪼개서 배치하다 보니 화력이 확 줄어들어 군사청 연구소에서 이를 타파할 무기를 개발해보지 않겠냐는 말을 듣긴 했었거든요.”
“어? 그래?”
“예. 군사청 연구소의 연구원들도 자동차가 험지를 이동하긴 어렵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으니까요.”
그 말에 정성국은 군사청 연구소의 연구원들에 투덜거린 것을 속으로 반성했고.
‘하긴...그래도 똑똑한 친구들인데 내가 짐작한 것을 모르겠어? 아마 신무기가 나오기 전에 임시방편으로 써먹기 위해 기관총을 장착한 자동차를 생각한 모양이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정성국의 귓가에 강평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서 연구원들이 기존의 기관총을 경량화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거든요?”
“경량화?”
“예. 크기도 좀 줄이고, 총신을 식히기 위해 물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기를 이용하는 방식으로요.”
“공랭식? 그건 한계가 있을 텐데?”
정성국의 의문에 강평화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렇죠. 거기에 경량화하겠다고 총신의 두께도 줄인 터라 600발 정도 발사하면 총신이 휘기 시작하고요.”
“그럼...”
강평화의 한탄에 정성국이 살짝 힌트를 주려고 입을 여는 순간 강평화가 씩 웃었다.
“해서 아예 발상을 바꿨습니다. 총신이 오래 못 버티면 교체하면 된다고 말입니다.”
“오?!”
강평화에게 해주려 했던 것도 바로 그것이었기에 정성국은 감탄했고.
“그래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으니...곧 탐사대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기관총을 양산해 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강평화의 자신만만한 미소에 정성국이 흡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 그래. 너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