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6화
‘음머~!’
들소들이 미주리 강가에서 물을 마시는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망원경을 통해 바라보고 있던 앳된 얼굴의 이병세가 놀랍다는 표정으로 감탄사를 토해냈다.
“와아. 쟤들 정말 소 맞아요? 뭐 저렇게 커요?”
이병세는 새마포가 고향이었고, 지금이야 농사일을 경운차로 하지만, 예전에는 소를 이용했었기에 이병세에게 있어서 소는 퍽 친근하고 익숙한 동물이었다.
헌데 지금 저기서 느긋하게 물을 마시고 있는 들소는 그에게 익숙한 소와는 전혀 다른 종으로 보일 정도로 거대했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자 옆에서 이병세와 함께 들소들을 멀리서 관찰하고 있던 선임이 의외라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 신입은 저 들소를 처음 보냐?”
“예! 아. 사진으론 본 적이 있긴 한데...”
이병세의 대답에 다른 탐사대원들이 피식 웃으며 한 마디씩 던지기 시작했다.
“아. 들소 떼가 이동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들?”
“뭐 그걸 봐선 들소의 크기가 감이 안 오긴 하겠지.”
“그럼. 같이 찍힌 들소들도 다 비슷한 크기일 테니.”
그때 뒤에서 수통에 있는 물을 마시고 있던 조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질문을 던졌다.
“근데 넌 새한성 훈련소에서 군사 훈련을 받았다며? 새한성 동물원에는 저 들소가 몇 마리 있을 건데?”
조장의 말에 선임이 손뼉을 치며 맞장구쳤다.
“어? 맞아. 예전에 동물원에서 들소 좀 몇 마리 생포해달라고 요청해서 우리가 저 들소 떼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무리에서 떨어져 나간 들소를 생포한다고 개고생했었잖아?”
“암. 생포한다고 고생해, 수송하느라고 고생해, 그때만 생각하면 아주 그냥...”
탐사대원들이 예전 일을 떠올리는지 표정을 구기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을 보고 이병세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 탐사대가 그런 일도 합니까?”
“그럼. 동물원은 단순히 오락 시설이 아니라 연구 시설로 분류되거든. 그래서 우리 탐사대뿐만 아니라 해군 탐사대나 해군에서도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지.”
미술관을 설립한 이후 정성국은 교육청에 이야기해 여러 박물관을 추가로 설립하라고 명령했고, 이러한 박물관 중에는 동물원도 있었다.
그리고 5년 전쯤 새한성에 동물원이 건설되었고, 동물원을 운영하기로 한 축산 연구소에서 동물을 확보하기 위해 군사청과 국영 상단에 도움을 요청했고.
해서 북미대륙의 동물들은 탐사대가, 북미대륙 이외의 북미왕국 영토의 동물들은 해군과 해군 탐사대가, 그리고 외국의 동물들은 국영 상단이 나서서 동물을 확보하기 시작했고, 동물원의 시설에 동물들이 가득해지자 추가로 확장 공사를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동물원을 개관했는데, 그게 벌써 2년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동물원을 방문하면 신기한, 그리고 수많은 동물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기에 다른 박물관과는 달리 엄청나게 인파가 몰렸고, 덕분에 동물원에는 항상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기사나, 새한성을 방문하면 꼭 들러야 할 장소라는 기사도 여러 차례 났었기에 조장의 말에 다른 탐사대원들도 이병세를 보고 새한성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았으면서 동물원을 안 가보고 뭐 했느냐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고.
이에 이병세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아...그랬군요. 뭐 동물원에는 항상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구경하기도 쉽지 않다는 말에 비싼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동물원을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었죠. 헌데 직접 들소를 눈으로 보게 되니 살짝 후회되긴 하네요.”
“큭큭.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다르지?”
“예. 엄청 다르네요.”
이병세가 단호하게 대답한 후 고개를 돌려 강을 따라 쭉 늘어서 물을 마시고 있는 들소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헌데...원주민들은 왜 저 들소를 길들일 생각을 하지 않은 걸까요?”
“응?”
“황소보다 훨씬 크고 힘도 좋아 보이니, 저 들소를 길들여서 쟁기를 끌게 하면...”
이병세가 어렸을 적 키웠던 황소보다 배는 커 보이는 들소였다.
그러니 황소보다 훨씬 힘이 좋을 테고, 그만큼 밭을 가는 데도 무척 도움이 될 거라 여겼고, 원주민들이 저 들소를 진작에 길들였다면, 훨씬 발전하지 않았을까 싶어 중얼거리자 탐사대원들은 이병세의 말에 피식 웃기 시작했고, 이병세 옆에 있던 조장이 그런 이병세를 보고 말했다.
“길들여? 저 들소를? 말도 안 되는 소리. 쟤들 성격이 얼마나 사나운데...”
“어? 그래요?”
“야. 딱 봐도 사납고 심술궂어 보이지 않아?”
조장의 말에 이병세는 비교적 가까이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들소의 얼굴을 바라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어...그냥 다른 소들처럼 온순해 보이는데요?”
이병세의 대답에 조장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그 옆에 있던 탐사대원들이 웃음을 참으며 끼어들었다.
“큭큭. 온순해 보인다고? 재들이?”
“전혀. 아까 말한 것처럼 쟤들을 생포한 적이 있었는데...어휴. 생포해서 배가 정박해 있는 곳까지 이동시키는 데 아주 진땀을 흘릴 정도였어. 성질이 워낙 지랄 맞아서 아주 난리를 쳤으니까.”
“맞아. 어떻게든 올가미를 풀겠다고 난리를 쳐서...아. 그때 병국이가 들소에 치일뻔하지 않았냐?”
“하하하. 그랬죠. 어렸을 때 소를 잘 다뤘다면서 자신 있게 다가갔다가 기겁하며 꽁무니 쳤던 것 같은데?”
그렇게 탐사대원들은 예전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사이 강가에서 목을 축이던 들소 떼가 하나둘 이동하기 시작했고.
한창 웃으면서 예전 이야기를 나누던 탐사대원이 조장에게 말했다.
“어? 조장님! 저기 보십쇼!”
“음? 아. 쉴 만큼 쉰 모양이네.”
이곳 대평원에서 들소 떼가 무리를 지어 남쪽으로 이동하다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는 것은 연례행사였기에 조장이 심드렁하게 반응하는 가운데, 이병세의 선임이 수천 마리의 들소 떼가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움직이는 모습에 휘파람을 불며 감탄사를 토해냈다.
“휘유. 쟤들이 이동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진짜 장관은 장관이네요.”
“그러게요. 사진으로만 봤었던 거대한 들소가 무리 지어 움직이는 모습이라니...”
이병세의 반응에 선임이 피식 웃을 때, 한 탐사대원이 들소 떼를 이끄는 것으로 짐작되는, 어깨높이만 해도 2m가 가볍게 넘어 보이는 가장 거대한 들소가 움직이는 방향을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
“왜 그래?”
“원래 쟤들 여기서 강을 건너지 않았나요? 헌데...”
탐사대원이 말을 흐리자 조장이 그 말을 받았다.
“그랬지. 헌데 강을 따라 이동하네?”
“예. 그리고 이곳이 인근에서 가장 폭이 좁은 구간이고 강을 따라 계속 내려가면 오히려 강폭이 넓어지니...”
“예전과 달리 강을 건너지 못하고 쭉 강을 따라 이동할 수도 있다?”
여기까지 이야기한 조장은 순간 얼굴을 굳혔다.
이 강을 따라 저 수천 마리의 들소 떼가 이동하기 시작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했기에.
“젠장. 반나절 거리에 오마하 족의 마을이 있지?”
조장의 말에 웃고 떠들던 탐사대원들의 얼굴이 빠르게 굳기 시작했고, 한 탐사대원이 대답했다.
“예. 더불어 그곳은 전통 마을이라 천막과 나무로 만든 허름한 건물이 전부인 곳이지요.”
개발청에서 건설한 마을이라면 대다수의 건물이 튼튼하니 들소 떼가 몰려온다 하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전통 마을은 상황이 달랐다.
천막이든 나무로 만든 건물이든 저 들소 떼의 파괴력을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해서 조장은 혀를 차며 뒤쪽에 있던 이병세와 그 선임을 바라보며 명령을 내렸다.
“하필이면...쯧. 하는 수 없네. 일단 승찬이하고 병세는 바로 오마하 족의 마을로 가서 이 사실을 전하고 혹시 모르니 대피 준비를 하라고 해. 그동안 우리는 저 들소 떼를 따라다니면서 혹시 마을 방향으로 이동하는지 확인할 테니까.”
조장의 명령에 선임이 정신을 차리고 급히 말 고삐를 당겼다.
“아...알겠습니다. 이럇!”
* * *
정성국은 갑자기 찾아온 군사청장에게 커피를 건네주기 위해 커피 도구를 만지다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군사청장을 바라보았다.
“뭐? 지금 농담하는 건가?”
“아닙니다. 전하.”
군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정말 자신이 들은 것이 맞느냐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럼 정말 들소 떼의 이동을 막다가 탐사대원 6명이 중상을 입은 것이 사실이라고?”
“송구스럽습니다. 전하.”
면목 없다는 얼굴로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는 군사청장을 보고 정성국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아니. 미주리 지역의 탐사대원들은 대체 왜 들소 떼의 이동을 막으려다 중상을 입은 거야?”
원래 이 북미대륙의 대평원에는 소위 버팔로라 불리는 아메리카들소가 약 6천만 마리 가까이 서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평원의 원주민 부족들은 대부분 이 들소를 사냥해 먹고 살았고.
그렇기에 전생의 미국은 원주민들의 기반을 완전히 파괴하려고 무제한으로 들소를 사냥해 씨를 말렸지만, 정성국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미 북미왕국의 품 안에 들어온 대평원에 사는 원주민들의 기반을 파괴할 이유도 없고, 농사를 지을 땅이 넘쳐나는 판국에 미시시피 강 서쪽의 대평원을 농경지로 만들 이유가 전혀 없었으니까.
오히려 정성국은 민간에 총기가 풀리면서 사냥에 취미를 붙이게 된 북미왕국 백성들이 거대한 사냥감을 잡아보겠다는 이유로 들소를 사냥하다 들소의 개체 수가 줄어들어 대평원의 원주민들이 피해를 볼까 걱정해 이 지역에 사는 원주민들을 제외한 북미왕국 백성들의 들소 사냥을 금지했을 정도였고.
그러니 북미왕국이 내륙을 완전히 장악한 현재도 들소의 개체 수는 여전했고, 개체 수가 여전하니 미시시피 강 서쪽의 대평원에는 들소가 널렸고, 그만큼 미주리 지역에서 근무하는 탐사대원들도 들소를 잘 파악하고 있을 것이 분명한데 왜 몸무게가 1톤이 넘고,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하면 시속 5, 60km의 속도를 내는 들소 떼의 이동을 막으려 한 것인지 의아한 정성국이었고, 이런 정성국의 의문에 군사청장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게...대규모 들소 떼가 평상시 이동하는 경로가 아니라 새로운 방향으로 이동을 시작했는데, 그 이동 방향에는 오마하 족의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탐사대의 조장은 들소 떼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는 오마하 족의 마을이 박살이 날 것이라 판단한 모양입니다.”
결국, 북미왕국 백성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들소 떼의 이동을 막으려 들었다는 보고에 정성국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고.
“거기에 오마하 족의 마을에 이러한 사실을 알리긴 했지만, 대피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고요.”
“그래도 들소 떼가 함부로 마을을 짓밟진 않을 텐데...”
정성국의 지적에 군사청장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게...계속해서 들소 떼가 마을 방향으로 이동하자, 들소 떼의 이동 경로를 바꾸려 했던 탐사대가 총을 발사했는데, 이동 경로를 바꾸지는 못하고 들소 떼는 흥분해서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답니다.”
“맙소사...”
“그래서 탐사대의 조장이 판단하기에는 들소 떼가 마을을 짓밟으리라 판단하고 이를 막기 위해 마을 입구에 화력을 집중했던 거지요.”
군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머릿속에서 상황을 떠올려보고 중얼거렸다.
“탐사대원들의 무장으로 들소 떼를 막는 건 거의 불가능할 텐데?”
“예. 원래 계획은 마을 입구에 화력을 집중해서 들소의 사체로 벽을 세워 들소 떼의 이동 경로를 살짝 틀 생각이었던 듯싶습니다만...연사력에 한계가 있는 갑오 소총과 연사는 가능하지만, 파괴력에 한계가 있는 회전 단총으로 이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고, 그 때문에...”
군사청장이 말을 흐리자 정성국이 먼저 입을 열었다.
“들소의 돌진에 치여 6명이 중상을 입었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전하.”
“그럼 다른 피해는?”
“4명이 경상을 입었고, 탐사대원을 도왔던 마을 주민 일부가 다치긴 했습니다만 심각할 정도는 아니라고 합니다.”
군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이것 참...북미왕국의 최정예라고 불리는 탐사대가 들소 떼를 당해내지 못했다는 것에 한탄해야 할지, 아니면 수천 마리나 되는 들소 떼의 이동을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낸 것을 안도해야 하는지 모르겠군.”
정성국의 말에 군사청장이 얼굴을 붉히며 재차 고개를 숙였다.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전하.”
“아닐세. 보고서를 살펴보니, 탐사대원은 최선을 다했으니 따로 책망하진 않겠네. 뭐 어설프게 들소 떼의 경로를 바꾸려고 총을 사용한 것이 조금 아쉽긴 한데...”
그러면서 정성국은 슬쩍 훑어본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군사청장에게 말했다.
“다만...미주리 지역의 경우 들소 떼의 이동 경로에 포함된 지역이니만큼, 그리고 미주리 지역의 주민들이 정착 생활을 하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또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 걸세. 그러니...”
“대응 방안을 짜 두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군사청장의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을 확인한 정성국이 슬쩍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자네를 믿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