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5화
정기적으로 열리는 청장 회의에 참석해 청장들의 보고를 듣고 있던 정성국은 군사청장의 보고에 관심을 보이며 되물었다.
“아. 함대가 출발했다고? 아프리카로?”
“그렇습니다. 전하.”
네덜란드는 하루라도 빨리 북미왕국이 아프리카에 진출하기를 바랐기에 북미왕국에서는 일단 2함대 소속의 전선 몇 척과 보급선, 수송선으로 함대를 구성해 아프리카로 파견하기로 했는데, 이 함대가 새진주를 떠났다는 보고에 정성국이 새진주에서 아프리카 골드코스트까지의 거리를 어렴풋이 계산하며 중얼거렸다.
“흠. 네덜란드령 골드코스트까지 도착하는 데 얼마쯤 걸리려나?”
“새진주에서 생크루아, 아마존을 거쳐 보급 후 대서양을 횡단할 예정이니만큼, 대략 3주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3주라...그럼 6월 중순인가? 휘유. 그쯤이면 우기잖아? 무덥고 습할 테니 병사들이나 기술자들이 고생 좀 하겠는데?”
네덜란드령 골드코스트는 전생의 가나 지역으로, 이 지역은 사바나 기후에 속하며, 사바나 기후는 열대 기후에 속한다는 것과 건기와 우기로 뚜렷하게 나뉘는데 우기엔 무덥고 습해 지내기 쉽지 않다는 것을 떠올린 정성국이 조금 미안한 기색으로 중얼거리자 개발청장이 어깨를 으쓱하며 끼어들었다.
“그래도 잠자리는 쾌적해서 다행 아니겠습니까.”
만약 냉방 장치마저 없었더라면, 무더위에 잠자기도 쉽지 않을 텐데, 항구를 건설하기까지 냉방 장치가 설치된 선박에서 지내기로 되어 있으니 괜찮지 않으냐고 이야기하는 개발청장을 보고 정성국이 머리를 긁적였다.
“음. 걸핏하면 폭우가 쏟아지는 시기에 배에서 지내는 게 쉬울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아. 그리고 연료가 넉넉한 편은 아니라 계속해서 기관을 가동해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아?”
물론 군사청에서 신경을 썼기에, 이번에 아프리카로 출항한 선박에는 모두 냉방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문제는 이 냉방 장치를 가동하려면 계속해서 기관을 돌려야 한다는 점이었다.
헌데 아프리카 지역의 경우 가정에서 사용하는 연료는 나무로 충분했기에, 그리고 아프리카 지역으로 진출한 유럽 세력은 석탄보다는 값비싼 귀금속에만 관심이 있었기에 제대로 된 탄광은 거의 없었고, 이 때문에 북미왕국 본토에서 정기적으로 석탄을 보내던가, 아니면 숯을 만들어 증기기관을 돌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고.
그러니 연료를 최대한 아낄 필요가 있었고, 당연히 무더운 낮이라면 모를까, 저녁에까지 기관을 가동할까 싶은 정성국의 의문에 외무청장인 조용한 곰이 대답했다.
“아. 아직 보고를 안 드렸지요. 연료 문제는 크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덴마크에서 도와주기로 했거든요.”
“음? 덴마크?”
조용한 곰이 뜬금없이 덴마크를 거론하자 정성국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조용한 곰은 그런 정성국의 얼굴을 보고 살짝 웃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예. 아시다시피 골드코스트 인근에서 금맥이 발견되면서, 유럽인들은 혹여 다른 금맥이 더 있지 않을까 싶어 골드코스트 인근을 샅샅이 뒤졌고, 그러는 와중에 석탄도 발견하긴 한 모양입니다. 헌데 이 석탄이 묻혀 있는 지역의 위치가...”
유럽이 기니 만 일대를 골드코스트, 즉 황금해안이라고 부른 것은 예전부터 이 지역에서 많은 양의 금이 채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실이 널리 알려지고, 여기에 포르투갈이 아프리카에 진출하며 아프리카 원주민을 노예로 판매해 막대한 이득을 챙기자 유럽 나라들은 너도나도 아프리카, 정확히는 이 기니 만 일대의 골드코스트에 식민지를 건설하려고 노력했고.
그러니 덴마크 역시 이 골드코스트에 식민지를 확보했고, 이 덴마크령 골드코스트는 네덜란드령 골드코스트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정성국이 그제야 상황을 이해하고 조용한 곰의 말을 가로챘다.
“아. 그게 덴마크령 골드코스트 인근인가 보군?”
“그렇습니다. 네덜란드 대사가 이를 말해주더군요. 해서 덴마크 대사와 즉각 협상했고, 당분간은 안정적으로 석탄을 보급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숯보다야 석탄이 훨씬 효율이 좋기에, 그리고 수천km 나 떨어진 지역에서 석탄을 수송하는 것보다는 바로 인근에서 석탄을 구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기에 조용한 곰의 대답에 만족하던 정성국은 문득 거슬리는 단어가 있어 중얼거렸다.
“당분간?”
이에 조용한 곰이 살짝 곤란하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게...덴마크 대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탄광의 규모가 무척 작은 편인 것 같더군요.”
“매장량이 많지 않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더불어 네덜란드와 덴마크도 아국의 도움으로 본격적으로 증기기관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제작한 증기기관 중 상당수가 골드코스트로 향했다고 합니다.”
잉글랜드의 증기기관 수준을 확인한 정성국은 생각을 바꾸어 기초적인 증기기관 제작 기술과 이를 어떻게 응용해야 하는지를 적당한 대가를 받고 알려주라고 명령했고, 북미왕국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을 파악한 네덜란드와 덴마크는 즉각 대가를 지불했다.
덕분에 이들은 자체적으로 연구, 개발하던 증기기관보다 훨씬 뛰어나 실제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증기기관을 만들 수 있었는데, 이를 골드코스트로 보냈다는 조용한 곰의 설명에 정성국이 왜 새롭게 제작한 증기기관을 아프리카로 보냈는지 눈치채고 피식 웃었다.
“골드코스트의 금광에서 사용하기 위해서?”
“예. 증기기관 덕분에 더 깊은 곳에 묻혀 있는 광물을 캘 수 있게 되었으니 일단은 금광에 증기기관을 보내는 것이 맞잖습니까. 다만 이 때문에 골드코스트 지역의 석탄 소모량이 증가한 터라...”
“덴마크령 골드코스트의 탄광은 오래 못 버틴단 거군.”
“예. 해서 덴마크 대사나 네덜란드 대사는 그 전에 다른 탄광을 개발하겠다고는 하는데...의외로 골드코스트 지역은 석탄은 별로 없는 듯해서 말입니다.”
조용한 곰은 아까 이야기한 대로, 유럽 나라들은 골드코스트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새로운 금맥을 찾기 위해 골드코스트 인근을 샅샅이 뒤졌을 때 발견하지 못한 석탄을 뒤늦게 새로 발견할 수 있겠냐는 얼굴이었고.
정성국 역시 전생의 기억을 되짚어봐도, 가나 지역에 엄청난 양의 석탄이 매장되어 있다는 기억은 없었기에 혀를 차며 질문을 던졌다.
“쯧. 그래도 당장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
“그럼요. 비록 아국이 본격적으로 아프리카에 진출한 이후에 석탄 소모량이 급증하겠지만, 그래도 5년에서 10년은 족히 버텨줄 겁니다.”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잠시 머릿속으로 계산해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흠. 그럼 상관없겠지. 그 전에 석유를 채취하게 될 테니. 그보다 연료 보급은 덴마크가 도와준다 치고, 식량 보급은 네덜란드가 책임지기로 했으니, 이쪽은 생필품 보급만 하면 되는 건가?”
이에 개발청장이 끼어들었다.
“그렇진 않습니다. 항구를 건설하기 위한 각종 건설 자재를 왕창 수송할 생각이라서 말입니다.”
“음? 황금해안 항을 건설할 물자는 이번에 함께 보낸 것 아닌가?”
네덜란드와의 조약으로 확보한 땅에 건설할 새로운 북미왕국의 첫 번째 아프리카 거점 항구의 이름은 골드코스트를 직역한 황금해안 항으로 정해졌기에 정성국이 이를 거론하며 고개를 갸웃하자 개발청장이 대답했다.
“원래는 6함대를 창설하고, 6함대에 배속할 전선을 생산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릴 것으로 예상해서 천천히 케이프 식민지와 모잠비크 지역에 항구를 건설할 생각이었습니다만, 신형 전선 교체 사업을 미루면서까지 6함대를 창설하고 확장하실 생각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이에 맞추어...”
“계획보다 빠르게 케이프 식민지와 모잠비크 지역에 항구를 건설할 예정이고, 미리 황금해안 항에 항구 건설에 필요한 물자를 비축해두겠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전하.”
개발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뭐 기왕 아프리카 지역으로 진출하기로 마음먹었으니 할 수만 있다면 빠르게 영역을 확장하는 것은 환영할 만해. 다만 인력이 부족하지 않겠어? 개발청 외지 개발 부서에 남는 인력이 거의 없지 않아?”
그동안 북미왕국은 다른 나라들과의 협상으로 꽤 많은 지역을 추가로 확보했다.
그리고 이렇게 확보한 땅들을 그동안은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어느 정도 방치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개발청에서는 본토 외의 지역을 관리하는 외지 개발 부서를 따로 만들어 각 지역을 조금씩이나마 개발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전격적으로 동남아시아 진출이 결정되고, 말라카 항뿐만 아니라 팔렘방 술탄국과의 협상으로 팔렘방 인근에도 항구와 석유 시추 시설, 그리고 여러 기반 시설을 건설해야 했으며,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반자르 술탄국과의 협상도 끝나 보르네오 섬에 매장되어 있는 석유를 시추하기 위한 공사와 인근 해안가에 항구를 건설하는 일까지 떠맡았기에 이 외지 개발 부서는 과부하가 걸릴 정도라는 것을 정성국 역시 모르지 않았다.
해서 정성국은 황금해안 항을 건설한 후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케이프 식민지, 그리고 모잠비크 지역에 거점 항구를 건설하며 영향력을 아프리카 서부에서 동부로 확장할 생각이었고.
헌데 개발청장은 미적거리지 말고 단숨에 두 지역에 항구를 개발하고 빠르게 확장하자고 이야기하니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정성국의 시선을 눈치챈 개발청장은 자신만만한 미소와 함께 답했다.
“뭐 인력이 부족하면 추가로 모집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니. 그게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지 않아?”
“그렇긴 하지요. 헌데 외무청에서 도움을 줘서 말입니다.”
“음? 그게 무슨 소리야?”
정성국이 고개를 갸웃하자 개발청장은 조용한 곰을 바라보았고, 정성국이 개발청장의 시선을 따라 조용한 곰을 바라보자 조용한 곰이 입을 열었다.
“아국의 건축 기술은 분명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그렇다고 타국의 건축 기술 역시 무시할 정도는 아니잖습니까. 그리고 개발청은 항상 건축가가 부족해 허덕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요.”
“어? 그럼 설마...”
“예. 해서 유럽에 주재하는 대사들이 각국의 건축가들과 접촉해 이주를 권했고, 꽤 많은 건축가들이 아국으로의 이주를 결정했습니다.”
북미왕국과 정식으로 외교 관계를 맺은 국가들은 일반 백성들이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는 문제는 조금 민감하게 반응했어도, 학자들이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는 것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물론 최근에 와서는 너무 많은 유럽 학자들이 북미왕국으로 이주한 덕분에 유럽에 남은 학자들의 몸값이 올라 슬슬 학자들의 북미왕국 이주도 막아야 하지 않냐는 말이 돌기는 하지만, 건축가들은 예외였고.
그리고 북미왕국의 이주 권유를 받게 된 건축가들은 고층 건축물을 수없이 건설하는 북미왕국의 건축 기술에 관심이 많았을뿐더러, 북미왕국이 막대한 부를 투자해 북미왕국 전역을 개발 중이라 그만큼 많은 건축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짐작했기에 기꺼이 북미왕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이들이 기본적인 교육을 이수한 후 개발청으로 보냈으며, 개발청에서는 이들을 모두 개발청 소속 건축가로 만들었다는 조용한 곰의 설명에 정성국은 헛웃음을 흘렸다.
“허. 그런 일이 있었나?”
“예. 그리고 그동안 북미왕국어와 철근 석회석을 이용하는 북미왕국 건축 기술을 배운 이 유럽 출신 건축가들이 개발청에 충원되었기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게 되었지요. 그러니 예정된 아프리카 진출 계획을 조금 조정해서 빠르게 아프리카 전역으로 진출해도 될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인도 지역 진출도 당장 가능하고요.”
개발청장의 말에 옆에 있던 군사청장이 급히 끼어들었다.
“아. 당장 인도 지역으로 진출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전하께서도 아시는 것처럼 7함대는 아직 동남아시아 해역을 완전히 장악한 것이 아니라 당장 인도 해역까지 진출할 여력이 없습니다.”
말라카 항에 주둔한 7함대는 필리핀 북부의 일로카노 항, 그리고 호주 연합의 라라키아 항을 오가는 상선, 수송선을 호위하면서 보이는 해적들을 소탕하고 있었지만, 워낙 수가 많아 아직은 동남아시아 해역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말하기 어려웠고, 그런 만큼 당장 인도 지역으로 진출하긴 어렵다고 설명하며 급격한 확장에 반대하는 군사청장이었고.
이런 군사청장의 반응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긴 하지. 아프리카 지역을 담당할 6함대의 창설만으로 버거운데 여기서 새로이 인도 지역을 담당할 새로운 함대를 창설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니 인도 진출은 예정대로 3년 후에 진행하되...아프리카 진출은 계획을 조금 앞당기도록 하지. 어차피 내년이면 6함대 소속 전선이 15척가량은 될 테니까.”
항구마다 5척으로 구성된 분함대를 배치하면 주변 해역을 어느 정도는 안정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 정성국이 아프리카 진출 계획을 앞당길 것을 명령하자, 이에 일이 늘어난 관리청장과 군사청장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미 일 중독자가 되어 버린 개발청장은 오히려 반색하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