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4화
“왜국, 아. 일본 대사와 협상은 끝났나?”
왜국과 정식으로 외교 관계를 맺으면서 왜국은 자국의 정식 국호는 왜국이 아닌 일본이라며 자신들을 일본으로 불러달라고 요청했지만, 공식 석상에서는 몰라도 일반적으로는 익숙한 왜국이라 불렀던 북미왕국인들이었다.
다만 일전에 북미왕국을 방문했던 막부의 사절단이 민간에서 자신들을 왜인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깨닫고 이를 정정하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하기도 했고, 이번에 새한성에 주재하게 된 일본 대사가 정성국을 만나 이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기에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왜국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가 애써 바꾸었고.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조용한 곰이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해서 내년부터 막부는 매년 10만 명에 달하는 이주민을 아국에 보내주기로 약조했습니다. 더불어 포로나이로 이동하는 동안 이주민들이 소모한 식량을 비롯한 물자는 이쪽에서 계산해 내어주기로 했으니, 바로 일꾼으로 채용할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다행이야. 북미왕국 전역이 공사판이라 개발청에서 난리인데...이주민 10만 명이라면 못해도 3, 4만 명의 일꾼은 확보한 셈이니까.”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안도했다.
정성국의 지시로 굵직한 여러 공사를 진행하고, 여기에 각 지역의 개발까지 겹치면서 건설 노동자들이 꽤 부족해져서 이대로라면 일부 공사의 일정이 늦춰질 수도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었기에.
해서 정성국은 돌파구로 막부에서 보내주는 이주민을 떠올리고 이 이주민의 수를 대거 늘리고, 또 이 이주민들의 건강을 챙겨 바로 건설 노동자로 투입할 수 있게끔 일본 대사와 협상해보라고 외무청에 명령했는데, 다행히 성공적으로 협상한 덕분에 내년부턴 이전보다 더 많은, 그리고 양질의 노동자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으니 정성국은 만족스러웠다.
다만 이주민의 수를 대폭 늘리는 것은 막부로서도 부담이 크다고 판단했는데 생각외로 빠르게 협상이 진행된 것 같아 정성국이 질문을 던졌다.
“헌데 일본 대사가 우리의 요청을 순순히 받아주던가?”
“그럼요. 일본 대사는 막부측 인사이고, 막부로선 적대적인 지역의 장정을 아국에 넘기는 대신, 소개비 조로 꽤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물론 그 과정에서 반 막부 번주들의 반발이 있겠지만, 일본 대사는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그래?”
정성국은 이 문제로 막부와 반 막부 번주들 간에 분쟁이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지만, 그동안 북미왕국과 교역을 독점한 북부 번주들이 막부에 충성하는 인사들이고, 북부 번주들이 북미왕국과의 교역으로 많은 부를 축적하고 세력을 키우면서 막부의 영향력이 강대해졌기에, 고작 이런 문제로 반 막부 번주들이 막부에 강하게 반발하지는 않을 거라는 조용한 곰의 설명에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고.
여기에 조용한 곰이 추가로 설명했다.
“그리고 전하께서는 인구 비율을 고려해 일본인들의 이주를 계속 허용하실 생각도 아니시잖습니까.”
조용한 곰의 말처럼 정성국은 일본 출신 이주민을 너무 많이 받을 생각은 없었다.
나중에 이를 기준으로 서로 뭉쳐서 정치 세력을 형성하려 들 테니 적당한 비율로 조절할 생각이었달까.
물론 아일랜드인들의 경우는 사정이 달라 무제한으로 받아들일 생각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성국의 생각을 조용한 곰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이를 거론하자 정성국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았다.
“그렇긴 한데...그걸 말한 건가?”
“뭐 그대로 이야기한 것은 아니고, 현재 북미왕국의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터라, 앞으로 5년 정도 후면 타국의 이주민을 받지 않을 거라는 식으로 이야기했지요. 그러니...”
“우리가 이주민을 받을 때 왕창 보내서 이득을 챙기겠다는 거군?”
조용한 곰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은 한결 부담을 던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내년부터 몰려올 일본 출신 이주민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하게. 뭐 10만 명 정도라면 크게 부담은 없겠지?”
이에 조용한 곰은 자신만만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이전에는 그 정도 숫자의 이주민을 매년 받아들였었으니까요.”
“하하하. 그래. 외무청만 믿도록 하지.”
* * *
관광을 구실로 새진주를 방문한 프랑스 대사는 텍사스 지역의 더운 날씨에 헉헉대며 열심히 발걸음을 옮겨 선착장 인근의 2층 찻집으로 향했고.
다행히 찻집 내부는 냉방 장치가 가동되어 무척이나 시원한 편이었기에 프랑스 대사는 땀을 식히며 찻집 내부를 주변을 살핀 후 자신이 찾는 이가 없었기에 바로 2층 계단을 올랐다.
2층에 오른 프랑스 대사는 선착장 방면의 창가에 앉아있는 자신의 보좌관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창가의 자리에 앉아 조금은 심각한 표정으로 창밖의 선착장을 바라보고 있던 보좌관이 고개를 돌려 프랑스 대사를 발견하고 즉각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셨습니까. 대사님.”
“아. 그래.”
프랑스 대사는 보좌관의 인사에 성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자 보좌관이 슬쩍 그의 눈치를 살폈고, 그런 보좌관의 행동에 프랑스 대사는 손수건을 꺼내며 말했다.
“신경 쓰지 말게. 조금 지쳐서 그러네. 날씨도 화창하고 숙소와 가깝기에 그냥 걸어왔더니만...”
“아. 이곳의 태양이 조금 강렬하긴 하지요.”
“그래. 그나마 다행이라면 냉방 장치 덕분에 빠르게 몸을 식힐 수 있다는 거지. 정말 위대한 발명품이야.”
프랑스 대사가 찻집 구석에서 연신 찬바람을 쏟아내는 커다란 냉방 장치를 바라보며 중얼거리자, 보좌관이 답했다.
“그렇지요. 기온을 조절해 더운 지역에서도 쾌적하게 지낼 수 있는 장치이니만큼...냉방 장치의 원리와 구조를 파악해 우리 프랑스에서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에 진출하기 쉬울 텐데 말입니다.”
“그게 가능하겠나. 아직 우린 어떻게 전기를 생산하는지도 모를뿐더러, 이전에 냉방 장치의 구조를 파악하겠답시고 덤벼들었다가 사고가 난 이후로는 학자들도 냉장고나 냉방 장치 연구를 꺼려하니...”
냉장고도 그렇고 냉방 장치도 그렇고 꽤 매력적인 장치였다.
냉장고는 식료품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게 해주고, 냉방 장치는 더위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무더운 지역에서 살 수 있게 해주는 장치나 다름없었으니까.
물론 둘 다 전기로 구동되는 물건이니만큼, 그리고 프랑스는 아직 전기 공학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만큼 이를 복제하긴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프랑스 학자들은 이 냉장고와 냉방 장치의 원리나 구조를 파악하고 싶어했다.
해서 프랑스에서는 일부 학자들을 외교관으로 위장해 새한성으로 보냈고, 새한성의 프랑스 대사관에 도착한 학자들은 냉방 장치에 붙어 있는 경고문을 무시하고 기계의 구조를 파악하겠답시고 분해했고, 냉방 장치 안의 냉매로 인해 학자들이 중상을 입거나 일부는 사망했다.
그제야 프랑스인들은 냉방 장치 뒤쪽에 붙어 있는 경고문이나, 북미신문을 통해 냉장고나 냉방 장치는 분해하면 위험하니 절대로 분해하지 말라는 경고가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하고 탄식했고.
그 이후로는 냉방 장치나 냉장고의 연구는 일절 손대지 않았기에 프랑스 대사는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가 옆길로 새는 것 같아 고개를 돌려 커다란 창문 너머에 보이는 선착장의 풍경과, 선착장에 정박해 있는 여러 척의 선박들을 확인 후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저기 보이는 선박들이 바로 아프리카 지역으로 떠나는 선박들인가?”
“그렇습니다. 대사님.”
북미왕국에서 아프리카 진출을 위해 함대를 파견한다는 소식에 하루 먼저 자신의 보좌관을 새진주에 보내 상황을 파악하라고 일러두었기에, 보좌관은 어제와 오늘 선착장 인근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정보들을 프랑스 대사에게 이야기해주기 시작했고.
덕분에 저기 보이는 8척의 선박이 이번에 북미왕국에서 파견하는 아프리카 함대의 전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 프랑스 대사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이거 의외로군.”
“예? 뭐가 말입니까?”
“함대 규모가 생각보다 작아서 말이네. 듣자니 네덜란드와 포르투갈과 조약을 체결해 아프리카 서해안, 남해안, 동해안에 항구를 건설할 땅을 확보했으니, 일전에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보낸 함대보다 더 대규모 함대를 보낼 줄 알았더니.”
프랑스 대사는 일전에 새김포에서 보았던 7함대 창설 행사와 출정식을 떠올리고 중얼거리자 보좌관이 조심스럽게 반박했다.
“아무래도 상황이 조금 다르잖습니까. 7함대를 파견했을 때는 필리핀 북부 지역에 거점을 세워두고 충분한 물자를 비축해둔 터라 말라카 항이 건설되기 전까지 뒤에서 7함대를 지원해줄 수 있지만, 아프리카의 경우 아무런 거점이 없으니까요.”
“그러니 대규모 함대를 파견하긴 어렵다? 글쎄. 동맹인 네덜란드가 아주 전폭적인 지원을 해줄 텐데?”
네덜란드가 항구를 건설할 땅까지 내어주면서 북미왕국의 아프리카 진출을 돕는 이유가 결국 네덜란드령 아프리카 식민지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자신들과 잉글랜드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네덜란드가 북미왕국의 아프리카 진출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지 않겠냐고 프랑스 대사가 지적하자 보좌관이 대답했다.
“뭐 네덜란드 입장에서는 북미왕국에서 더 많은 함대를 아프리카에 파견해 주었으면 하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자국의 함대도 제대로 유지하기 버거운 판국에 북미왕국의 대규모 함대를 지원해줄 여력이 되겠습니까?”
“아. 그건 또 그렇겠군.”
확실히 자신들이나 잉글랜드가 네덜란드령 아프리카 식민지에 관심을 보인 것도, 현 네덜란드의 재정 상황이 워낙 안 좋기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보좌관의 말이 일리가 있어 프랑스 대사가 수긍하자 보좌관이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북미왕국이 동남아시아 지역을 담당하는 7함대를 창설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잖습니까. 헌데 또 다른 함대를 창설하는 것은 조금 버겁겠지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전선을 건조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거군?”
“예. 왕립 조선소에서 쉬지 않고 전선을 건조하고 있긴 하지만, 북미왕국은 모든 전선을 철선으로 교체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덕분에 북미왕국의 아프리카, 인도 지역으로의 진출이 지체되고 있으니 저희 프랑스의 입장에선 정말 다행이지요.”
“다행?”
프랑스 대사는 보좌관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미 북미왕국이 네덜란드와 조약을 체결한 이상, 아직 북미왕국이 본격적으로 아프리카에 진출하지는 못했어도 네덜란드령 아프리카 식민지를 침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다행이랄 것이 없었으니까.
그런 프랑스 대사의 반응에 보좌관이 자세히 설명을 시작했다.
“예전 북미왕국은 북미 대륙에만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나마 예외라면 일부 동맹국들이 존재하는 태평양 지역에나 조금 관심을 두었을까요?”
“음...확실히 그랬었지.”
“헌데 최근에는 다릅니다. 북미왕국은 전 세계에 거점 항구를 건설하려 하고 있지요. 그리고 북미왕국이 전 세계에 거점 항구를 건설하고 각 지역의 거점 항구를 중심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하면...솔직히 그걸 누가 막겠습니까.”
“끙...”
보좌관의 말이 맞았다.
북미왕국이 아프리카, 인도 지역에 거점 항구를 건설해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하면, 다른 나라들은 이를 막기가 거의 불가능했기에.
해서 프랑스 대사가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을 때, 보좌관이 말을 이어나갔다.
“여기에 북미왕국이 식민지 건설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는 것과 현지 세력에 우호적인 편이라는 것까지 종합해보면, 북미왕국이 아프리카, 인도 지역에 진출하면 식민지 건설이 더욱 힘들어질 겁니다.”
유럽인들이 먼저 남태평양의 일부를 탐사하긴 했지만, 쓸모가 없다고 생각해 내버려 둔 사이 북미왕국이 남태평양에 진출해 이곳에 사는 수많은 부족과 우호적으로 교류했고, 덕분에 지금은 남태평양에 식민지를 건설한다는 것은 꿈도 못 꾼다는 것과 북미왕국이 동남아시아에 진출해 현지 세력과 접촉해 외교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이전과는 달리 힘을 앞세우며 과격하게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이 무척 어려워졌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보좌관의 말처럼 북미왕국이 아프리카, 인도 지역에 진출하는 순간 식민지 건설은 거의 불가능해지리라는 것을 이해한 프랑스 대사가 신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으음...확실히 그렇긴 하겠군. 그럼 자네는 아직 북미왕국이 아프리카, 인도 지역에 영향력을 확대하기 전에 우리 프랑스가 더 많은 아프리카. 인도 식민지를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북미왕국이 식민지 건설에 무척 부정적이었지만, 그렇다고 유럽 나라들이 기존에 건설한 식민지를 두고 왈가왈부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북미왕국의 국력이 대단하다고는 해도, 타국이 이미 보유한 식민지를 별다른 명분 없이 이래라저래라 한다면 유럽 나라들이 뭉쳐 반발할 거라는 사실을 알기에.
그러니 보좌관은 북미왕국이 아프리카, 인도 지역으로 진출하기 전에 이 지역에 식민지를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북미왕국과의 충돌로 기껏 확보한 누벨 프랑스 식민지도 날아간 상황이었으니.
그나마 네덜란드와의 전쟁을 통해 카리브 해의 소앤틸리스 제도 섬들을 다수 확보해두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프랑스에서 생산하는 수많은 물산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보좌관이 이를 설명하며 어떻게든 더 많은 식민지를 미리 확보해둘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하자, 프랑스 대사는 직원이 가져다준 커피를 마시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본토에 이야기하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