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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713화 (713/850)

713화

청장 회의가 끝난 후, 회의실에 걸려 있는 시계를 통해 시간을 파악한 정성국은 생각보다 회의가 빨리 끝났다는 것에 만족했다.

동시에 자신을 보고 인사하는 청장들에게 손을 흔들어 배웅하면서 잠깐 집무실에 가서 조금 남은 업무를 볼지, 아니면 남은 업무는 내일로 미루고 일단 내궁으로 돌아가 쉬거나 한창 공부하고 있을 아이들에게 들를지 속으로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때 다른 청장들과는 달리 조용한 곰은 정성국에게 할 말이 있는 눈치였기에, 정성국은 선택을 미루고 조용한 곰에게 물었다.

“뭐 할 말이라도 있나?”

“그렇습니다. 이건 타국과의 일이라 청장 회의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만...최근 포르투갈에서 신식 소총을 구매하길 원하더군요.”

“음? 포르투갈에서 신식 소총을 원한다고? 대체 왜? 반란군을 다 진압한 것으로 아는데?”

한때 포르투갈은 노예무역과 관련해 북미왕국과 마찰을 빚었다.

해서 북미왕국은 포르투갈에 대항하는 도망친 노예들을 뒤에서 지원해 포르투갈이 장악한 브라질 지역에 큰 타격을 주었고.

계속해서 북미왕국과 마찰을 빚으면 해외에 건설한 식민지를 모두 잃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한 포르투갈의 섭정 페드루 왕자는 결국 북미왕국의 뜻대로 노예무역을 금지했다.

덕분에 포르투갈은 다시 북미왕국과 외교 관계를 맺을 수 있었지만, 그동안 노예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이룩한 고위 귀족들은 그런 페드루 왕자의 결정에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페드루 왕자가 전격적으로 노예무역을 금지하면서, 아프리카 식민지의 대표적인 수출품이 사라진 셈이라 포르투갈령 아프리카 식민지에 여러 이권을 갖고 있던 여러 귀족, 상인들도 큰 손해를 보았다.

다만 이들의 손해가 왕가로선 오히려 이득이다 보니 페드루 왕자는 모른 척했는데, 고위 귀족들은 이번 노예무역 금지로 인해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된 귀족, 그리고 상인들을 선동하기 시작했고, 이를 알면서도 페드루 왕자는 북미왕국과 외교 관계를 다시 정상화하면서 신식 소총마저 구매했기에 이를 기회로 보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곧 페드루 왕자에게 유폐 당한 현 포르투갈의 국왕인 아폰수 6세를 구출한다는 명목으로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페드루 왕자는 준비한 병력을 움직였다.

그리고 예상대로 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병력의 전투력은 대단했고, 덕분에 페드루 왕자는 수월하게 반란을 진압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페드루 왕자에게 유폐되었던 아폰수 6세가 사망한 것이다.

당연히 반란군은 페드루 왕자가 아폰수 6세를 죽였다며 페드루 왕자를 비난했고.

아폰수 6세의 죽음으로 이 내전에서 한발 물러나 있던 일부 귀족들이 페드루 왕자를 적대시하면서 내전은 길어졌다.

그러나 이번 내전을 왕권 강화의 기회로 보고 철저한 준비했던 이가 바로 페드루 왕자였고, 아폰수 6세가 죽으면서 페드루 왕자는 즉각 왕위에 올라 각 지역에 주둔한 병력마저 반란군 토벌에 투입했기에, 결국 내전은 포르투갈의 국왕이 된 페드루 2세의 승리로 돌아갔고.

그리고 내전이 끝났으니, 포르투갈은 한창 전후 처리에 힘쓸 시기이지, 군사력 강화에 신경 쓸 시기가 아닌데 포르투갈에서 추가로 신식 소총을 원한다고 하니 정성국은 의아해하자, 조용한 곰이 당연한 것 아니냐는 얼굴로 답했다.

“아폰수 6세의 죽음 이후 기세에서 밀리던 페드루 2세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군대 덕분이잖습니까. 그러니 페드루 2세로서는 더 많은 신식 소총을 확보하고 싶겠지요. 특히, 앞으로의 통치를 생각하면 말이지요.”

“흠. 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친위 병력을 늘려 왕권을 강화하겠다?”

이에 조용한 곰은 고개를 끄덕이며 포르투갈 대사와 이야기를 나누며 확보한 페드루 2세의 속셈을 정성국에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내전으로 인해 여러 고위 귀족들을 쳐낼 수 있었고, 페드루 2세의 국정 장악력은 한없이 높아졌으니, 이 기회에 더 강력한 친위군을 육성해 절대 왕권을 구축하겠다는 속셈 같습니다.”

북미왕국이나 청나라, 그리고 가까이는 프랑스의 존재로 유럽의 군주들은 절대 왕권을 구축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 정성국이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뭐 페드루 2세의 처지를 생각해보면 왕권에 집착하는 것도 이해는 가는데...”

페드루 2세가 섭정 시절 고위 귀족들에게 시달렸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가 왕권 강화에 집착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굳이 페드루 2세의 왕권 강화를 위해 신식 소총을 수출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 정성국의 판단이었고.

특히 유럽은 여전히 혼란스럽기에 유럽 각국에서 신식 소총을 추가로 확보하기 위해 애를 쓰는 상황이라 포르투갈에 추가로 신식 소총을 판매하면 다른 나라들도 가만히 있을 것 같지는 않았으니.

이에 조용한 곰이 묘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물론 유럽 세력들이 너도나도 더 많은 신식 소총을 구하려고 애를 쓰는 상황에서 굳이 포르투갈에 추가로 신식 소총을 팔 이유는 없긴 하지요. 다만...”

“다만?”

“신식 소총 판매의 대가로 포르투갈 대사가 제시한 조건이 생각외로 무척 괜찮아서 말입니다.”

“무슨 조건을 내걸었는데?”

정성국이 호기심을 보이자 조용한 곰이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먼저 포르투갈령 인도의 항구 중 하나인 디우 항에 상관을 개설할 수 있도록 돕겠다더군요.”

이에 정성국은 눈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상관을? 그럼...”

“예. 아국이 디우 항을 거점으로 인도에 진출하는 것을 용인하겠다는 뜻입니다.”

포르투갈은 다른 나라들보다 먼저 인도 지역에 진출했고, 당연히 해안가 곳곳에 거점 항구를 만들어 두었다.

그 후 뒤늦게 인도 지역에 진출한 유럽 세력들에 의해 이런 거점 항구들을 빼앗기긴 했지만, 그래도 남은 거점 항구는 조금 있었고, 디우 역시 그런 거점 항구 중 하나였고.

이런 디우 항에 북미왕국의 상관을 개설하도록 돕겠다는 뜻은 북미왕국이 디우 항을 거점으로 인도 지역에 진출한다 해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뜻이었으니 몇 년 안에 국영 상단을 움직여 인도 지역에 진출하려 했던 북미왕국으로서는 꽤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기에 정성국이 입을 열었다.

“그거...괜찮은데? 거기데 디우 항이라면 인도 북부 지역에 있는 항구잖아?”

“예. 무굴 제국이 인도 전역을 일통하겠다고 전쟁을 일으킨 터라 인도 중부, 남부 지역은 무척 혼란스럽습니다만...북부 지역은 그나마 안정적이라 최근 포르투갈에서도 꽤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덕분에 무굴 제국의 상인들도 디우 항을 찾고 있으니 이곳에 상관을 개설할 수 있다면, 국영 상단의 인도 진출이 무척 수월해지겠지요.”

이것만으로도 꽤 매력적이라 조용한 곰이 왜 포르투갈에 신식 소총 판매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인지 이해한 정성국은 문득 이게 첫 번째 조건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바로 질문을 던졌다.

“확실히. 헌데 먼저라고 한 것을 보면 다른 조건도 있는 듯한데...”

“예. 또 다른 조건은 모잠비크 지역에 항구를 건설할 땅을 내어주겠다더군요.”

“모잠비크 지역에 항구를 건설할 땅을 내어주겠다고?”

“그렇습니다. 포르투갈 대사는 용케 아국과 네덜란드가 맺은 조약의 내용을 파악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아국이 곧 아프리카 지역으로 진출하리라는 것을 알고 이런 조건을 내건 것 같습니다.”

포르투갈 대사는 북미왕국이 네덜란드, 그리고 오스만 제국과 조약을 맺어 인도 지역에 거점을 확보하는 것을 보고 북미왕국이 곧 인도 지역에 진출할 생각이라는 것과 다른 지역에도 다 진출했으니, 아프리카 지역에도 진출하지는 않을까 판단했다.

다만 아프리카의 해안가는 예전이 아프리카에 진출한 유럽 세력들이 대부분 장악하고 있었으니, 북미왕국으로선 이들에게 항구를 건설할 땅을 구매하지 않을까 싶었다.

북미왕국이 타 대륙에 원정군을 보낼 정도로 식민지 개척에 열성적인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때 네덜란드 대사가 자주 외무청에 드나들자 무언가 있구나 싶었던 포르투갈 대사는 네덜란드 대사를 통해 네덜란드령 아프리카 식민지인 골드코스트 식민지와 케이프 식민지의 일부 땅을 북미왕국에 판매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북미왕국이 아프리카 동해안에 새로이 거점을 만들기 전에 네덜란드처럼 항구를 건설할만한 땅을 내어주는 대신 신식 소총을 확보하는 것이 나으리라 판단했고.

그래서 이러한 제한을 했다는 조용한 곰의 설명에 정성국은 매끈한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아프리카 동해안에 거점이 없는 것 같으니 모잠비크 지역에 항구를 건설할 땅을 내어주는 것으로 신식 소총을 구해보겠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원래는 유럽 세력이 장악한 아프리카 동해안에 거점 항구를 건설할 땅을 확보하기 위해 교섭하기보다는 마다가스카르 섬에 거점 항구를 건설할 생각이었습니다만...포르투갈이 전폭적으로 협조해준다면 모잠비크 지역에 거점 항구를 건설하는 편이 더 낫겠지요.”

아프리카 대륙은 거대하고, 그만큼 해안가는 길었다.

그렇기에 네덜란드를 통해 2곳의 거점 항구를 확보하긴 했지만, 이는 아프리카 서해안, 그리고 최남단에 있었기에 외무청에서는 아프리카 동해안에 추가로 거점을 마련할 생각이었고.

다만 아프리카 동해안은 이미 유럽 세력이 대부분 장악한 터라 차선으로 가까운 마다가스카르 섬에 거점 항구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일부 유럽 세력이 마다가스카르 섬을 식민지로 삼기 위해 진출했었지만, 결국 실패해 아직 마다가스카르 섬은 현지 세력들만 난립해있는 섬이었으니까.

다만 그러려면 여러 현지 세력들을 조율해야 했기에 아프리카 동해안 진출은 생각보다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는데 포르투갈에 신식 소총을 판매하는 것으로 아프리카 동해안 진출을 훨씬 앞당길 수 있을 것 같았으니, 조용한 곰은 기존의 계획을 폐기하고, 포르투갈에 신식 소총을 판매하는 것이 낫지 않냐는 얼굴이었고.

이에 정성국은 한참을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저들이 원하는 신식 소총의 수량은?”

“뭐 포르투갈 대사는 많이 요구하긴 합니다만...1만 자루 정도만 내어주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그 정도라면...확실히 우리에게 무척 유리한 조건이니만큼 거절할 이유가 없겠지.”

정성국의 대답에 조용한 곰이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전하. 그럼 바로 포르투갈 대사와 협상해 조약을 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게. 다만...마다가스카르 섬의 세력과 접촉하는 것도 그대로 진행하게.”

이에 조용한 곰은 고개를 갸웃하다 정성국의 성향을 떠올리고 질문했다.

“예? 굳이...아. 현지 세력을 키워 유럽 세력이 후에 마다가스카르 섬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하실 생각이십니까?”

“정확해.”

후에 프랑스가 마다가스카르 섬을 침략해 이 섬을 식민지로 만들고, 쓸만한 자원을 쓸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정성국이 이를 막을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일단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진출한 후, 마다가스카르 섬의 현지 세력과 접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하지. 그리고 또 보고할 것이 남아있나?”

조용한 곰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시간이 흘러 어느덧 저녁 시간이었기에 정성국이 슬슬 일어날 생각으로 묻자 조용한 곰이 자리에서 일어나다 막 생각났다는 듯 대답했다.

“아. 왜국에서 파견한 대사 일행이 3일 후 새한성에 도착합니다.”

“아. 북방 항로가 열렸으니 슬슬 올 때가 되기는 했지.”

북미왕국과 왜국은 서로 대사관을 설립하기로 한 만큼,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자 조용한 곰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허니...”

“알겠네. 왜국 대사를 맞이할 시간을 빼두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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