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2화
정성국의 갑작스러운 호출에 집무실을 방문한 박기동과 최주명은 오랜만에 만난 스승에게 반갑게 인사했고.
정성국은 제자들과 커피를 마시며 잠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다가 피차 바쁜데 언제까지 잡담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슬쩍 이야기를 돌렸다.
그리고 정성국의 이야기에 박기동은 조금 놀랍다는 듯 대꾸했다.
“와.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는 팔렘방 지역을 확보했다는 이야기와 올해 안에 이곳에 매장되어 있는 석유를 채취하겠다고 수송선에 시추시설을 왕창 실어 이 지역으로 보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인도 지역과 아프리카 지역에도 추가로 영토를 확보하거나 확보 중이고, 이 지역들에도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고요?”
“그래. 이번에 할양받은 쿠웨이트 지역에는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는 기밀 보고가 올라왔고, 아프리카 지역의 경우 할양받은 영토에 석유가 매장되어 있지는 않지만, 어차피 네덜란드는 석유를 시추할 능력도 없고, 아직 네덜란드에게는 석유가 중요하지도 않은 터라 네덜란드 식민지에 묻혀 있는 석유 개발권을 우리가 가져올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되면 전 세계에서 석유를 채취할 수 있게 되는 거지.”
정성국은 일단 전생의 기억을 기밀 보고로 둔갑시켜 박기동에게 설명하자 옆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를 듣고 있던 최주명이 떨떠름한 얼굴로 자신의 스승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설마 선박의 동력원을 모두 석탄에서 석유로 바꾸라는 말을 하기 위해 저희를 부르신 겁니까?”
갑자기 자신들을 불러, 이제 곳곳에서 석유를 채취할 수 있다고 알리는 까닭은 이것뿐이라고 생각해 최주명이 묻자 정성국이 웃으며 답했다.
“하하하. 뭐 그렇지. 선박 연료를 석유로 통일하는 것이 연료 보급 문제에 있어서 여러모로 편리할 테니까. 그리고 석탄보단 석유가 더 효율적이기도 하고.”
지금까지는 선박 연료로 석탄과 석유를 동시에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항구에는 석탄 저장고와 석유 저장고를 둘 다 두어야 했고 그만큼 공간도 많이 차지하고 또 연료에 따라 이용하는 선착장을 달리해야 했으니 번거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석탄보다는 석유의 열량이 큰 편이라 대형 선박일수록 석유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최주명도 이를 잘 알고 있었고,
다만 이제 와서 선박 연료를 단일 계통으로 바꾸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닌데, 이런 엄청난 일거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떠넘기는 자신의 스승을 보고 탄식하며 투덜거렸다.
“하아...그렇긴 한데 그게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잘 아시잖습니까.”
이에 옆에 있던 박기동도 공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제자들의 반응에 정성국은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가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 입을 열었다.
“어? 아. 무언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기존의 선박을 모두 개조할 생각은 아니야.”
제자들은 석탄을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모든 선박을 개조하라는 명령인 줄 알고 공포에 떨었지만, 정성국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동안 열심히 선박을 건조했지만, 점차 타국과의 무역이 늘어나고, 북미왕국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선박이 부족한 판국이라 더 많은 선박을 건조해야 할 판에 기존의 선박을 개조하는 데 쓸 시간과 자원 따윈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런 정성국의 의중을 확인한 박기동과 최주명은 서로를 마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다행이군요.”
“그러게 말이야.”
이런 제자들의 반응에 정성국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동안 꾸준히 조선소를 늘리고 이 조선소들에서 미친 듯이 찍어낸 선박만 수천 척인데 그걸 무슨 수로 다 개조하겠어.”
솔직히 박기동과 최주명은 정성국이라면 그런 명령도 충분히 내릴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괜히 이를 지적했다가 정성국이 정말 그런 명령을 내리면 여러모로 곤란했기에 어설프게 웃었고.
그러다 최주명이 쐐기를 박기 위해 슬쩍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부터 건조되는 선박들만 동력원을 석유로 하면 되겠군요.”
“그렇지. 그러면 한 1, 20년 후에는 석유로 움직이는 선박들만 남을 테니까. 문제는 전선과 수송선들인데...”
전선과 수송선들은 주로 석탄을 사용했다.
물론 연료의 효율은 석유가 훨씬 낫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주로 해외를 드나들어야 하는 전선과 수송선들의 연료를 석유로 하면 연료 수급이 힘들었기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고.
해서 정성국이 이를 언급하자 박기동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일단 준비는 해 두겠습니다. 그리고 팔렘방에서 석유를 뽑아내면 그때 차근차근 석탄으로 가동하는 전선과 수송선들을 개조하면 되겠지요.”
전선과 수송선의 동력원을 석유로 바꾸는 것이 당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기에 천천히 일을 진행하겠다는 박기동의 말에 정성국은 만족하며 대답했다.
“그래. 그러면 될 테니 네가 신경 좀 써주고.”
“알겠습니다. 스승님.”
“헌데 이렇게 선박의 동력원까지 석유로 바꾸면 석유 사용량이 가파르게 늘어날 거다. 그럼 지금보다 더 많은 유조선이 필요해지겠지.”
석탄의 경우 어지간한 지역엔 다 매장되어 있었기에 이를 구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기에 석탄 수송선을 그리 많이 건조할 필요는 없었지만, 석유는 상황이 달랐다.
석유는 무척 한정된 지역에 매장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 한정된 지역에서 채취한 석유를 북미왕국의 배들이 드나드는 모든 항구에 일정량 이상 비축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유조선이 필요했고, 정성국은 전생의 미국이 했던 것처럼 어지간하면 본토의 유전보다는 해외 유전부터 사용할 생각이었으니 생각보다 많은 유조선을 건설해야 할 것 같아 이를 최주명에게 이야기하자 최주명은 의외로 자신만만한 웃음과 함께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외무청에서 자꾸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해외의 땅을 확보하기에 1만 톤급 유조선을 설계해 건조하고 있습니다.”
“오. 그래?”
“예. 듣자니 석유 사용량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터라 대형 유조선이 필요하긴 했으니까요. 그리고, 이번에 2만 톤급 선박을 시범 건조 중이잖습니까. 이 선체를 기반으로 2만 톤급 유조선도 설계 중이고요.”
수송선의 경우 클수록 경제성이 좋은 만큼, 그리고 1만 톤급 선박을 건조한 후 정성국이 지나가듯 언급한 항공모함에 꽂힌 최주명과 조선 장인들은, 1만 톤급 선박 양산에 성공한 이후 계속해서 더 큰 선박을 건조하는 데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계속 배수량을 키워 최근에는 2만 톤급 선박을 설계해 시범적으로 건조하기 시작했고, 이 선박 건조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던 정성국이 최주명의 이야기에 기대된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2만 톤급 유조선이라...그거 대단하겠는데?”
물론 정성국이야 전생에서 수십만 톤에 달하는 유조선도 보긴 했지만, 전생과의 기술 격차나 철선을 건조한 지 오랜 시간이 흐른 것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확실히 대단했기에 정성국이 이렇게 반응하자 최주명은 어깨를 펴며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럼요. 그리고 엄청난 양의 기름을 한 번에 실어나를 수 있으니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겁니다.”
최주명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던 정성국은 문득 이제부터 수많은 유조선이 바다를 누비게 된다면 그만큼 사고가 발생할 확률도 늘어난다는 것을 떠올리고 슬쩍 말했다.
“아. 헌데 만약을 대비해 유조선에는 다수의 격벽을 설치했으면 하는데 말이지?”
“으음...안전을 더 생각하라는 뜻입니까? 아니면...”
“안전도 안전이고, 혹시라도 사고가 났을 경우도 고려해야 하니까.”
정성국의 말에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최주명이었지만, 정성국이 최악을 가정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 알기에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지요.”
“그리고 아프리카 지역에 진출하게 되면 이 지역에도 전선을 배치해야 하는데...”
정성국의 말에 최주명은 그저 한숨만 내쉬었고, 옆에 있던 박기동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슬쩍 항의했다.
“어휴. 7함대를 창설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새로운 함대의 창설입니까.”
그리고 제자들의 반응에 정성국은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어쩔 수 없었기에 어깨를 으쓱했다.
“어쩌겠어. 아프리카에 해적들과 노예상인들이 넘쳐나는데 그냥 방치할 수는 없잖아? 그러니...”
정성국이 노예무역을 무척이나 혐오한다는 사실을 아는 최주명으로서는 이를 위해 아프리카에 진출하겠다는 정성국에게 조금 미룰 수 있지 않냐고 차마 말할 수 없어 머리를 긁적이다 말했다.
“문제는 이미 해안 경비대 소속 전선 가운데 쓸만한 전선은 모두 빼서 7함대에 배속한 터라, 새로운 함대를 창설하려면 결국 새로 건조해야 합니다. 헌데...”
최주명이 말을 흐리자 정성국이 그가 무엇 때문에 말을 흐리는지 짐작하고 바로 질문을 던졌다.
“신형 전선 교체 사업을 진행하면서 나오는 선박들은?”
“그건 해안 경비대로 보내야지요.”
“끙...”
최주명의 말에 정성국은 잠시 한숨을 내쉬었고, 그런 정성국을 보고 최주명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스승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왕립 조선소는 최대한 빠르게 전선을 건조하기 위해 이미 3교대 근무까지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보다 건조 속도를 늘릴 수도 없고요.”
이번 신형 전선 교체 사업을 진행하면서 단기간에 엄청난 전선을 생산해야 하는 왕립 조선소들을 건조 속도를 높이기 위해 휴일 없이 4조 3교대 근무까지 시행할 정도라는 것을 잘 아는 만큼, 정성국 역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고.
이때 옆에서 둘의 대화를 묵묵히 지켜보던 박기동이 끼어들었다.
“결국, 방법은 하나네요. 신형 전선 교체 사업을 미루고 지금 건조하는 신형 전선들을 모두 아프리카 지역으로 보내는 것.”
어차피 신형 전선 교체 사업이 시급을 다투는 일은 아닌 만큼, 정성국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휴우. 역시 그 방법뿐인가?”
“그쵸. 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신형 전선을 건조하는 건 무척 숙련된 일꾼이 필요하기에, 그리고 기술 보안 때문에 왕립 조선소 외의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것도 위험하니까요.”
“어쩔 수 없군. 그럼 신형 전선 교체 작업을 조금 미루도록 하지.”
“그 건은 저희하고 상관없지만, 이 건으로 더 많은 신형 전선을 건조해야 할 테니 미리 준비해두도록 하지요.”
“그래. 부탁하마.”
그렇게 최주명과의 이야기를 마무리한 정성국은 박기동을 바라보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새로운 비행기의 설계가 끝났다면서?”
“예. 항공기 연구소에서 총 2종류의 비행기를 설계했고, 곧 제작할 생각입니다.”
새로운 비행기의 제작에 들어갈 거라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기에 박기동을 부른 김에 질문을 던졌었던 정성국은 예상치 못한 박기동의 대답에 놀라며 되물었다.
“음? 2종류나?”
“예. 각각 2개와 4개의 동력 기관을 장착한 비행기지요.”
일전에 황새급 비행기는 동력 기관이 1개에 불과해 동력 기관이 사고로 멈추면 추락할 수밖에 없어서 다수의 기관을 이용한 비행기를 설계해보라는 말을 했었는데, 쌍발 비행기를 넘어 4발 비행기마저 설계했다는 박기동의 설명에 정성국이 놀라고 있을 때, 박기동이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 둘은 기종 자체가 다릅니다. 2개의 기관을 장착한 비행기는 장기적으로 황새급 비행기를 대체하기 위한 단거리 수송에 특화된 비행기이고, 4개의 기관을 장착한 비행기는 장거리 수송에 적합한 비행기랄까요?”
“음? 항속 거리에서 차이가 나는 건가?”
“예. 전자는 황새급 비행기처럼 1500km 정도지만, 후자는 4개의 기관을 사용해 이륙 중량이 늘어난 만큼, 더 많은 연료를 적재할 수 있어서 3000km까지 비행할 수 있거든요.”
박기동의 말에 최주명은 새로이 개발하고 있는 비행기의 성능에 놀랐지만, 정성국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듯 바로 질문을 던졌다.
“속도는?”
그리고 박기동은 정성국이 이러한 질문을 던질 줄 알았다는 듯 씩 웃으며 대답했다.
“순항 속도는 시속 300km 정도입니다.”
“헉! 황새급 비행기의 2배라고?”
정성국의 놀란 얼굴을 보고 박기동이 덧붙였다.
“예. 그리고 두 비행기 모두 황새급 비행기보다 많은 승객을 태울 수 있지요. 그러니 지금 개발 중인 비행기들이 성공적으로 비행한다면, 스승님께서 항상 이야기하셨던 본격적인 항공 수송 시대에 도달할 수 있을 테고요.”
작년에 비행기를 이용해보긴 했지만, 생각외로 느리고, 여기에 야간 비행도 불가능했기에 비행기가 가진 이점을 제대로 살리기는 어려웠다.
해서 참 안타까웠는데, 박기동의 말처럼 저 두 비행기가 성공적으로 하늘을 날 수 있다면 새한성에서 보스턴까지 넉넉잡고 2일이면 도착할 수 있을 테니, 훨씬 유용하리라는 생각에 정성국은 무척이나 기뻐하며 박기동의 어깨를 두 손으로 붙잡고 명령했다.
“좋아. 전폭적인 지원을 해줄 테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비행기 개발에 성공해야 한다. 알았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니...힘 좀 푸세요. 스승님.”
“아. 미안. 좀 흥분했다. 크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