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9화
정성국은 집무실을 찾아온 정평국에게 화로를 통해 구운 가래떡을 건네주며 물었다.
“흠. 드디어 라디오 방송 준비가 모두 끝났다고?”
“예. 형님. 그동안 5차례의 시험 방송도 별다른 문제 없이 끝났고, 전에 말씀드린 대로 8개의 라디오 음악 방송과 6개의 라디오 보도 방송, 4개의 생활 정보 방송, 그리고 4개의 라디오 연극 방송 역시 모두 방송할 준비가 끝났으니 슬슬 정식으로 라디오 방송을 시작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송신탑을 건설하기 전까지 열기구를 이용해 라디오 송신 장치를 하늘에 띄워 전파를 송신하기로 하면서, 연구청에서는 기존의 열기구를 정비하고 새롭게 열기구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평국이 라디오 방송국을 설립하고 여러 분야의 방송 인력을 육성하고 각종 방송을 제작하는 동안 연구청에서는 계속 열기구를 생산해 현재는 총 12대의 열기구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고.
다만 정성국이 뒤에서 정평국을 통해 라디오 방송국 설립과 방송 제작에 관여하긴 했어도, 당장 12시간 동안 방송할 여력은 되지 않았기에,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4대의 열기구를 예비로 돌려 총 8시간 동안 방송하기로 정하고 이 8시간의 방송 시간을 채우기 위해 22개의 방송을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드디어 방송 제작이 드디어 끝났다는 정평국의 말에 정성국이 눈을 빛냈다.
“호오. 고작 3개월 만에 그 많은 방송을 다 제작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말이지...”
이에 정평국은 피곤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투덜거렸다.
“하루라도 빨리 방송을 시작하겠다는 일념으로 잠까지 줄여가며 노력한 라디오 방송국 직원들 덕분이지요.”
“하하하. 그래? 이거 방송을 시작하면 따로 휴가라도 챙겨줘야겠네.”
정성국의 말에 정평국이 그게 가당키나 하느냐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매일같이 방송해야 하는데 무슨 수로 휴가를 보내겠습니까.”
“어? 아. 생각해보니 날씨가 좋을 땐 무조건 열기구를 띄울 테니...”
“예. 쉬지 않고 매일매일 방송해야 하지요. 그러니 당분간 방송국 직원들은 제대로 쉬지 못할 겁니다.”
정평국의 말에 정성국은 영 곤란하다는 얼굴로 턱을 매만지다 입을 열었다.
“쉬지도 않고 매일 같이 방송을 하다 보면 분명 지칠 텐데? 그럼 결국 방송에도 지장이 갈 테고.”
물론 라디오 송신기를 열기구로 띄워 방송을 하는 시스템이라, 날씨가 나쁘면 방송도 불가능하니 이때 쉬면 되긴 하는데, 문제라면 역시 새한성의 날씨였다.
이곳은 비가 그리 많이 내리는 편이 아니며, 바람도 강한 지역이 아니었으니까.
해서 정성국이 걱정스럽다는 듯 중얼거리자 정평국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어쩌겠습니까. 방송 인력이 충분해질 때까진 버텨야지요.”
전리층의 존재로 전파가 반사하면서 예상외로 새한성에서 송신하는 전파를 먼 곳에서도 수신할 수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북미왕국 전역에서 새한성에서 송출하는 전파를 수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기후 여건에 따라 전파를 수신할 수도, 혹은 전파를 수신하지 못할 수도 있는 터라, 정성국은 처음부터 지역마다 방송국을 설립하길 원했었고, 이를 아는 정평국은 라디오 방송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대거 모집해 방송 인력으로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그러니 이들이 제 몫을 해낼 정도가 된다면, 교대로 투입해 이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라는 말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쩝. 어쩔 수 없나. 그럼 당장은 포상금을 넉넉히 지급하고 인력에 여유가 생기면 기존의 인력들이 충분히 휴식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아. 그리고 그렇게 키운 방송 인력으로 더 다양한 방송을 제작해서 매일 똑같은 방송이 아니라 조금은 다양한 방송을 하는 것도 괜찮겠지.”
일부 방송의 경우 매일 같이 방송하다 도면 결국 소재가 고갈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정성국이 이렇게 조언하자 정평국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것도 나쁘진 않지요. 알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지요.”
정평국의 대답에 정성국은 정평국에게 가래떡을 건네주고 새로 구운 가래떡을 오물거리면서 잠깐 생각에 잠겼다.
‘방송 준비는 대충 된 것 같으니...’
이미 북미신문을 통해 라디오 방송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며 곧 라디오 방송을 시작할 거라 알렸고, 여기에 라디오 수신기마저 충분한 수량을 생산해 창고에 비축해둔 상황이었다.
그러니 정성국이 명령만 내린다면 내일부터 새한성의 주민들은 라디오 수신기를 구매할 수 있을 테고. 이미 북미신문을 통해 라디오 방송을 알게 된 새한성의 백성들은 이런 역사적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했기에 어떻게든 라디오 수신기를 구해 첫 라디오 방송을 들으려고 매일 같이 가전 기구를 파는 상점을 드나든다는 이야기가 들려올 정도였니, 굳이 방송 시작을 늦출 필요가 없겠다 싶은 정성국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그리고...방송 준비가 모두 끝난 이상 굳이 방송 시작을 미룰 필요는 없을 테니 바로 방송을 시작하는 것이 어때? 다음 주 수요일쯤?”
“다음 주 수요일이라면...3월 1일에 방송을 시작하라는 겁니까?”
“그렇지. 가능할까?”
이에 정평국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이미 방송 준비는 다 끝났으니...형님 말씀처럼 3월 1일에 바로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다만 형님.”
“음?”
“처음으로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는 만큼, 형님께서 축사를 좀 하시지요?”
그 말에 정성국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축사? 아.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말이지?”
“예. 라디오 방송의 기념비적인 첫 방송은 역시 형님의 축사를 방송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서 말이지요.”
정평국의 설명에 정성국이 볼을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음...영 귀찮은데...어쩔 수 없나. 알겠다. 그럼 3월 1일에 라디오 방송국으로 가마.”
* * *
‘이것으로 오늘 방송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라디오 수신기에서 들려오던 목소리가 끊기면서 방 안에 적막이 감돌자, 방송이 시작하고 무려 6시간 동안 자리에서 꼼짝 않고 라디오 수신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잉글랜드 대사가 몸을 풀며 허리를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중얼거렸다.
“허. 이것 참...놀랍군.”
이에 응접실에서 함께 방송을 듣던 보좌관이 그런 잉글랜드 대사의 중얼거림에 대꾸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물론 북미왕국에서 만든 기물들은 대부분 놀라울 정도이긴 합니다만 이 라디오라는 기물은 정말이지...”
보좌관 역시 놀라움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있을 때, 잉글랜드 대사가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완전히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인상을 찌푸린 후 입을 열었다.
“처음 전화의 존재를 알게 되고 선만 연결되어 있다면 거리에 상관없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젠 선도 필요 없고, 다수에게 실시간으로 정보를 보낼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다니...도무지 북미왕국의 기술 발전을 따라갈 수가 없군.”
잉글랜드가 북미왕국의 존재를 파악하고 접촉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게 흘렀다.
그리고 북미왕국과 접촉한 이후, 북미왕국의 기술력이 자신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찰스 2세와 잉글랜드의 고위 귀족들은 어떻게든 북미왕국의 기술력을 따라잡기 위해 10년 넘게 학자와 기술자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며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이러한 정책으로 최근에는 증기기관을 이용해 더 깊은 곳에 묻혀 있는 광물을 채굴할 수도 있게 되었고, 500톤급 규모의 기선 건조에 성공하기도 하는 등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리고 잉글랜드 본토의 찰스 2세나 고위 귀족들은 이러한 성과에 만족하며 언젠간 북미왕국의 기술력을 어느 정도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하지만 새한성에 머물며 북미왕국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는 잉글랜드 대사는 그런 런던의 판단이 우스울 뿐이었다.
아무리 잉글랜드가 기술 발전을 하면 뭐하겠는가.
잉글랜드가 한 발자국씩 나아갈 때, 북미왕국은 수십 발자국씩 나아가고 있는데.
해서 잉글랜드 대사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자 보좌관도 잉글랜드 대사와 비슷한 심정인지 조금 참담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예. 그리고 점점 더 기술 격차가 심해지는 것 같아 걱정됩니다. 기술 격차가 심해질수록 북미왕국의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게 될 테니 말입니다.”
그나마 증기기관이야 유럽도 어느 정도 기초 지식이 있어 나름대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지만, 최근 북미왕국 산업에 기반이 되는 전기의 경우는 어떻게 연구해야 할지 감도 못 잡고 있었다.
덕분에 잉글랜드 본국에서는 어떻게든 수를 써보라고 난리지만, 북미왕국을 따로 방첩 기관을 두고 대학생들의 교재마저 철저히 관리할 정도이다 보니 섣불리 북미왕국의 기술자나 대학생들과 접촉하기도 어려웠고.
차선으로 전기로 동작하는 여러 기물을 꾸준히 매입해 잉글랜드로 보내고는 있었지만, 잉글랜드 학자와 기술자들은 그간 수백 개에 달하는 기물을 분해하고도 아무런 지식을 얻지 못하고 있었으니.
보좌관의 투덜거림에서 이를 떠올린 잉글랜드 대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북미왕국의 기술을 확보하려면 차라리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말이지.”
“음...최근 외교가에 퍼지는 소문 때문에 그러십니까? 북미왕국에서 동맹국들의 발전을 위해 기술을 지원할 거라는?”
최근에 외국인 학교가 확장되어 외무청에서 동맹국들에 유학생들을 모집하면서, 외국인 학교의 교과 과정을 전면 개편해 유학생을 보낸다면 더 다양하고 깊은 지식을 습득해 나라를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인재로 성장할 거라고 이야기하자 새한성 외교가에는 북미왕국이 본격적으로 동맹국들을 발전시키기 위해 나선 것이 아니냐는 말이 떠돌고 있었다.
북미왕국은 이전부터 기술이 낙후된 시베리아 부족 연합이나 호주 연합, 그리고 남태평양의 수많은 부족의 기술 발전을 위해 일부 기술을 전수하기도 했었기에 이러한 소문이 도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기는 했다.
다만 잉글랜드 대사로서 조금 걸리는 점이라면, 북미왕국의 동맹 중에는 네덜란드, 덴마크도 있다는 것과 네덜란드, 덴마크 대사가 최근 외무청을 자주 드나들면서 자국의 장인과 학자들을 외국인 학교에 입학시켜 북미왕국의 증기기관 제작 기술을 얻으려고 하고 있는데 북미왕국에서도 이를 꽤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말이 함께 돈다는 점이었다.
해서 보좌관이 이러한 소문을 언급하자 잉글랜드 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북미왕국의 입장에선 네덜란드, 덴마크가 더욱 발전하고 경제가 활성화돼야 이득이잖나. 특히 북미왕국은 노르웨이 지역의 광산에도 대거 투자하는 모양인데...제대로 광산을 개발하려면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증기기관이 필요하기도 하고.”
증기기관을 이용함으로써 훨씬 깊은 곳에 묻혀 있는 광물을 캘 수 있다는 것을 잘 아는 보좌관이 잉글랜드 대사의 말에 신음을 흘렸다.
“으음...북미왕국은 기술을 독점하려는 경향이 강해서 헛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물론 그렇긴 해. 하지만 이미 우리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우월한 증기기관을 개발해냈고, 이를 사용하고 있으니 북미왕국 입장에선 우리가 개발한 수준의 증기기관 정도는 동맹국에 넘겨줄 수 있지 않겠나.”
“아...”
“그리고 북미왕국 백성들은 고된 일을 피하는 경향이 있어서 광부들을 모집하는 데 애를 먹고 있고, 그 때문인지 북미왕국은 이런 광물들을 직접 캐기보단 타국에서 수입하려는 듯하니, 소문이 맞을 걸세. 문제라면...지금은 고작 기초적인 증기기관 기술을 넘겨주지만, 후에는 더 대단한 기술을 넘겨줄 수도 있다는 거지.”
잉글랜드 대사의 예측에 보좌관이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요? 정말 그러겠습니까? 북미왕국이?”
회의적인 보좌관을 보고 잉글랜드 대사는 심각한 얼굴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보네. 지금 북미왕국이 생산하는 각종 가전제품은 타국에 판매하지 못하지. 타국에 판매해 봐야 전기가 없어서 써먹질 못하니까.”
“아?! 그 말씀은...?”
“그래. 지금이야 다른 식량과 생필품, 사치품만으로 막대한 부를 벌어들이고 있으니 북미왕국에서는 굳이 이런 가전제품을 판매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네만...시간이 흐르면 분명 생각이 바뀔 걸세. 이번에 조선에 제철소를 지어주는 것처럼, 나중엔 동맹국에 발전소를 지어줄 수도 있겠지.”
잉글랜드 대사의 말에 보좌관이 신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으음...확실히 일리가 있군요. 그리고 그렇게 되면 해당 국가는 각종 제반 기술을 확보할 수 있을 테니...”
“그래. 북미왕국 동맹국들의 기술 수준이 급격히 발전할 거야. 그러면 우리는 뒤처질 수도 있고.”
“허. 그건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지 못하면 결국 뒤처진다는 소리 아닙니까.”
이에 잉글랜드 대사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그러니 그때 가서 부랴부랴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기 위해 애를 쓰는 것보다는 미리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는 것이 나아 보이는데...런던에서는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으면 세력 확장이 불가능해진다는 이유로 북미왕국과의 동맹은 부정적으로 보고 있어 걱정일세.”
잉글랜드 대사의 말에 보좌관이 그를 위로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북미왕국이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는지, 그리고 북미왕국의 동맹국들도 이런 북미왕국의 도움을 받아 급격히 발전하는 모습을 알게 된다면, 본국의 생각도 변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야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