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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707화 (707/850)

707화

정성국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조용한 곰에게 직접 내린 커피를 건네주었고.

이를 받아든 조용한 곰은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신 후 커피를 내려놓으며 정성국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전하.”

“음?”

“동남아시아에서 좋은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정성국은 조용한 곰이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이것 때문임을 깨닫고 고개를 갸웃했다.

“좋은 소식? 뭔데?”

이런 정성국의 반응에 조용한 곰은 씩 웃으며 답했다.

“팔렘방 술탄국이 대가를 받고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지역 일대를 아국에 할양하기로 했습니다.”

저번에 7함대가 무사히 말라카 항에 도착해서 네덜란드에 할양받은 말라카 항 서쪽 지역에 선착장과 7함대 사령부, 그리고 창고를 비롯한 각종 시설의 건설에 착수한다는 보고를 받았었기에, 동남아시아에서 올라올 좋은 소식이라고 해 봐야 반자르 술탄국과의 협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이 아닐까 싶었던 정성국은 드디어 석유가 매장된 지역을 확보했다는 조용한 곰의 말에 반색했다.

“오! 그래? 그거 다행...어라? 팔렘방 술탄국? 반자르 술탄국이 아니고?”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던 나라는 보르네오 섬에 위치한 반자르 술탄국이었기에, 정성국은 조용한 곰이 실수로 잘못 이야기한 줄 알고 되묻자 조용한 곰이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하하하. 예. 반자르 술탄국이 아니라 팔렘방 술탄국과 협상이 끝난 겁니다.”

조용한 곰이 잘못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팔렘방 술탄국과 협상을 마무리해, 수라비아 섬의 팔렘방 인근에 매장되어 있는 석유를 확보했다는 말에 정성국은 화들짝 놀랐다.

“아니. 이렇게 갑자기? 팔렘방 술탄국은 아국이 네덜란드와 동맹이라는 이유로 무척 경계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장기적으로 관계를 개선할 예정이었고?”

“맞습니다. 그럴 계획이었지요. 헌데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아니. 현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해야 할까요?”

“음? 그게 무슨 소린가? 분위기가 바뀌었다?”

정성국이 의문스러운 시선을 보내자 조용한 곰이 설명을 시작했다.

“네덜란드에 할양받은 말라카 항을 개발하고 제대로 운영하려면, 현지인들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그동안 동남아시아에 진출한 유럽 세력들이 워낙 행패를 부렸기 때문인지 말라카 인근의 원주민들은 아국 역시 또 다른 정복자로 간주하고 거리를 두었답니다. 마치 수마트라 섬의 원주민들처럼 말입니다.”

정성국 역시 팔렘방 술탄국에 파견된 외무청 관리의 보고서를 틈틈이 읽어보았기에, 수라비아 섬의 원주민들이 향신료를 확보하기 위해 동남아시아에 진출한 유럽 세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모르지 않았기에 신음을 흘렸다.

“으음. 그래서?”

“해서 7함대와 동행해, 말라카 항에 거주하는 네덜란드 세력과 말라카 인근의 원주민들과의 소통 업무를 담당하던 외무청 관리가 아국에 대한 현지인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이홍섭 7함대 사령관을 설득해 대대적으로 물자를 풀었답니다.”

“물자를?”

“예. 마침 새해가 되었기에 신년 축제의 규모를 키워 말라카 항에 파견된 아국의 백성들뿐만 아니라, 말라카 인근의 원주민들마저 참여하게 한 거지요. 더불어 그동안 아국에 고용되었던 원주민들에게는 일주일 치 식량도 내어주었고요.”

조용한 곰이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정성국도 대략적인 흐름을 이해하고 피식 웃었고.

“호오. 신년 축제를 빌미로 물자를 풀어 현지인들의 호의를 얻겠다는 계획이었나 보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방법이 효과가 있었는지, 신년 축제 이후 현지인들은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아국에 협조하기 시작했고, 아국은 그동안 원주민들을 착취하는 데 혈안이 되었던 유럽 세력과는 전혀 다르다는 말이 주변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말레이 반도 주변이라...그럼 당연히 인근에 있는 수마트라 섬에도 그러한 이야기가 퍼졌나 보군.”

정성국의 중얼거림에 조용한 곰이 묘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특히 팔렘방에는 술탄 압두라만을 설득하기 위해 현지에 체류하던 외무청 관리가 있었고, 이 친구가 손을 써 수마트라 섬 남부에 가장 먼저 이 소문이 퍼져나갔지요.”

팔렘방에 체류하던 외무청 관리는 말라카 항에 머무는 이자화가 보낸 편지를 받고 이자화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동남아시아에서 북미왕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확실히 뒤바뀔 거라 생각했고, 그렇게 되면 별다른 진척이 없는 팔렘방과의 협상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 여겼다.

해서 외무청 관리는 이자화의 계획을 지지한다는 편지를 말라카 항에 보낸 이후 새해가 되기만을 기다렸고, 신년이 된 이후 매일같이 선착장을 드나들며 말라카 항의 소식을 기다렸고.

그러다 말라카 항에 잠깐 들렀다가 북미왕국의 신년 축제를 함께 경험했었던 상인들과 선원들이 하나둘 팔렘방에 도착하자 팔렘방에 주재하던 외무청 관리는 선술집에서 이들에게 술을 대접하며 이들이 말라카 항을 방문해 경험했던 내용을 떠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선술집에는 이들 말고도 여러 사람들이 있었기에 자연히 말라카 항에서 북미왕국이 개최한 신년 축제가 벌어졌다는 소식과 북미왕국은 다른 유럽 세력과는 달리 원주민을 업신여기거나 착취의 대상으로 바라보지는 않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팔렘방에 퍼져나갔고 말이다.

이를 조용한 곰이 자세하게 설명하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해서 그 소문을 팔렘방 술탄국의 술탄 압두라만이 접하고 마음을 바꾸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기존의 편견을 버리고 조금 전향적으로 나왔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팔렘방에 체류하던 외무청 관리는 그런 기회를 놓칠 정도로 무능한 친구가 아니라서 말입니다.”

조용한 곰의 말마따나 해외로 파견되는 외무청 관리들의 경우 무척 능력이 뛰어난 이들이 대다수였다.

특히, 석유를 탐사하기 위해 인력을 파견하면서, 네덜란드의 장담과는 달리 동남아시아 지역의 세력들이 그리 만만하지도 않고, 일부를 제외하면 대다수는 네덜란드의 뜻대로 움직이지도 않으며, 그런 네덜란드의 소개로 접촉했기에 영토 할양 협상이 쉽지 않으리라는 보고서 때문에 외무청에서는 나름대로 협상력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이들을 이 지역에 파견했으며, 팔렘방 술탄국의 경우 네덜란드에 강한 적개심을 보였기에 가장 평가가 높은 이를 파견했었을 정도였고.

그러니 팔렘방에 체류하던 외무청 관리는 북미왕국이 말라카 원주민들을 포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북미왕국은 정말 기존에 동남아시아에 진출했던 유럽 세력과는 다른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압두라만을 알현해 북미왕국의 영토 할양 요청에 무척 부정적이던 그의 생각을 바꿔버린 것이고 말이다.

“하하하. 그래서 압두라만을 설득해 석유가 매장된 지역의 할양을 성사시킨 건가?”

“예. 석유가 매장된 지역을 할양받는 대신, 동남아시아에 진출하려는 유럽 세력이 팔렘방 술탄국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팔렘방 술탄국과 방어 동맹을 체결하기로 했습니다. 더불어 술탄 압두라만은 예전에 네덜란드에 패배했던 기억 때문인지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싶어하는 터라, 머스킷 2만 자루와 화약, 정글도 등을 지원해주기로 했고, 그 외에 도자기, 비단, 면직물 등 일부 물품을 내어주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조용한 곰이 가지고 왔던 보고서를 정성국에게 건네자, 정성국은 커피잔을 내려놓고 이를 받아든 후 나쁘지 않다는 얼굴을 했다.

영토 할양의 대가로 팔렘방 술탄국과 방어 동맹을 맺는 것쯤은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고, 그 외에 군수 물자나 교역품들 역시 대다수는 북미왕국에서 직접 생산하는 물건들이라 원가 자체는 얼마 되지 않았으며, 설사 팔렘방 술탄국에서 여기 적혀 있는 물량의 몇 배를 요구했다고 하더라도, 이번에 할양받은 지역에 매장되어 있는 석유의 가치를 생각하면 헐값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아직 석유는 우리 북미왕국만 사용하는 자원이라 석윳값 자체가 무척 싸긴 한데 미래에 석유가 얼마나 중요한 자원이 되는지 알고 있으니 양심에 좀 찔리니...이 지역을 개발하면서 현지 주민들을 위한 시설들을 건설해둬야겠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정성국은 팔렘방에서 보낸 보고서를 모두 확인한 후 이를 내려놓고 맞은 편에서 커피를 홀짝이고 있는 조용한 곰에게 질문을 던졌다.

“헌데 아국과 방어 동맹을 체결한 이상, 굳이 대규모 군대를 유지할 필요가 없을 텐데, 각종 무기를 원한다는건...설마 압두라만은 수마트라 섬의 정복을 꿈꾸는 건가?”

자고로 군은 돈 먹는 하마나 다름없고, 군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는 골치 아픈 존재였다.

헌데 이러한 군을 북미왕국과의 방어 동맹으로 안전히 보장된 상태에서 키우려 한다는 것에 정성국이 혹시 압두라만이 수마트라 섬을 일통할 욕심이 있어 이러는 것이 아닐까 싶어 이를 묻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겁니다. 아국에서 지원해주는 군수 물자가 많은 편이기는 해도, 이를 이용해 여러 세력이 난립해있는 수마트라 섬을 일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술탄 압두라만이 어리석은 자는 아니니까요.”

수마트라 섬은 여러 세력이 난립해있고, 이들은 한 세력이 강성해지며 위협적인 경쟁자로 변모하면 서로 손을 잡고 대항했기에, 수마트라 섬을 통일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기에 약 2, 30년 전 주변 세력들을 하나둘 점령하면서 세력을 키웠던 수마트라 섬 북서부에 위치한 아체 술탄국 역시 결국 수마트라 섬을 일통하지 못하고 정복 전쟁을 멈출 수밖에 없었고.

헌데 이런 전성기의 아체 술탄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세력인 팔렘방 술탄국이 고작 북미왕국에서 지원해주는 2만 자루의 머스킷과 냉병기만 믿고 수마트라 섬 정복 전쟁을 시작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이를 압두라만이 모르지 않을 거라는 조용한 곰의 설명에 정성국이 탁자 위에 놓여진 보고서를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흠. 그렇단 말이지? 그럼 단순히 자기만족인 건가?”

“그것도 있고, 강력한 군대를 육성해 왕권을 강화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압두라만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와의 전쟁으로 떨어진 왕권을 새우기 위해 더 화려한 궁궐을 짓기도 했고 이슬람 세력을 받아들여 기존의 명칭인 수수후난을 버리고 술탄에 오르며 팔렘방을 팔렘방 술탄국으로 변경했을 정도로 왕권 강화에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과 아직 동남아시아에서 머스킷으로 무장한 군대는 유럽 세력뿐이다 보니 팔렘방 술탄국에서 머스킷으로 무장한 병력을 확보한다면 그만큼 압두라만의 위세가 올라갈 것으로 예상해 머스킷을 요구했을 것이라는 조용한 곰의 설명에 정성국은 일리가 있다고 판단하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바로 조선에 주문해야겠군.”

북미왕국에서 동맹국에 제공하는 머스킷은 전량 조선에서 구했었기에 정성국이 이를 언급하자 조용한 곰이 빙긋 웃으며 답했다.

“예. 그렇지 않아도 2만 자루의 머스킷을 구하기 위해 투로시노에게 따로 연락을 취하겠다고 했습니다. 다만 그 외의 품목들은...”

“이쪽에서 보내줘야 한다 이거지? 뭐 크게 부담되는 양은 아니니 바로 보내주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개발청장과 의논해 바로 이번에 할양받은 영토에서 석유를 채취하도록 하고.”

이미 팔렘방 술탄국과 영토 할양 조약을 체결한 만큼 더 지체할 것 없이 빠르게 석유를 채취할 생각으로 정성국이 이를 언급하자 조용한 곰이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아.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 경비대도 일부 파견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아. 시추 시설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지?”

“그렇습니다.”

팔렘방 인근의 지역들은 열대 기후이다 보니 굳이 많은 병력을 파견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시추 시설과 이곳에 파견할 기술자들의 안전을 생각하면 일부 병력을 주둔시키긴 해야 했다.

더불어 항로의 안전과 유사시 팔렘방을 지원할 수 있도록 분함대를 창설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고.

해서 정성국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다른 질문을 던졌다.

“흠. 알겠네. 내가 군사청장에게 이야기해두겠네. 헌데 팔렘방 술탄국은 그렇다고 치고...반자르 술탄국과의 협상은 아직도 진행 중인 건가?”

팔렘방 술탄국과는 달리 반자르 술탄국은 북미왕국에 우호적이었던 만큼, 슬슬 협상이 끝날 때가 된 것 아이냐는 듯한 정성국의 물음에 조용한 곰이 빙긋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보고드리려 했습니다만, 이번에 도착한 보고서에 따르면 반자르 술탄국 역시 아국에 영토를 할양하는 것에 원칙적으로는 동의했다더군요.”

“오! 그래?”

“예. 다만 반자르 술탄국은 신식 소총의 존재를 알고 영토 할양의 대가로 신식 소총을 원하고 있는데...이를 허용할 수 없어 설득 중이라 시간이 조금 걸릴 것이라고 하더군요.”

반자르 술탄국은 유럽의 여러 나라와 교역하면서 유럽 내의 정보도 약간은 파악했기에 머스킷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신식 소총의 존재와 북미왕국이 유럽 국가들에 신식 소총을 판매했다는 사실을 알고 영토 할양의 대가로 신식 소총을 원하고 있었다.

헌데 북미왕국에서는 당장 아시아 지역에 신식 소총을 판매할 생각이 없었기에 반자르 술탄국을 설득 중이라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지. 알겠네. 천천히 설득하라고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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