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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703화 (703/850)

703화

기차가 대동강 철교 위를 달리기 시작하자, 북미왕국 왕실에서 선물한 화려한 객차 안에서 탁 트인 대동강의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조선의 왕 이연은 어느덧 기차가 대동강 철교를 완전히 지나치자 곧 평양에 도착하리라는 것을 떠올리고, 품 안에서 북미왕국산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 후 감탄하듯 중얼거렸다.

“허. 일전에 기차를 이용해 온천을 다녀왔을 때도 느낀 거지만 정말 대단하긴 하군. 정말 4시간 만에 평양에 도착하다니...”

이런 이연의 중얼거림에 이연과 함께 왕실 전용 객차에 탑승했던 일부 조정 신료들이 대답했다.

“그렇사옵니다. 철도가 깔려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기는 하지만, 이동 수단으로는 가히 최고라 할 수 있사옵니다. 주상 전하.”

“맞사옵니다. 특히 지금처럼 추운 날씨에 이동하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를 생각해보면, 이처럼 빠르고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기차의 가치는 정말 놀라울 정도이옵니다.”

병조판서의 대답에 이연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기차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찬바람이 쌩쌩 부는 한겨울에 궁 밖을 나와 평양을 방문하기까지 얼마나 고생할지 뻔히 짐작되었기에.

특히 이연은 피부병 때문에 고생했기에, 궁 안에 목욕탕을 만들기 전까지는 자주 아산까지 행차했고, 덕분에 궁 밖을 나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를 잘 알고 있기도 했고.

또한, 이연뿐만 아니라 이 객차 안에 있던 다른 조정 신료들도 병조판서의 대답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는데, 이들은 한 번쯤 추운 겨울에 이동하며 엄청나게 고생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조선은 매년 청나라에 정기적으로 외교사절을 파견했었는데, 청나라에 보내는 사절을 아무나 보낼 수는 없으니 조정 대신들이 사절단의 정사를 맡을 수밖에 없었고.

문제는 이 사절단은 항상 한겨울인 동지에 사행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해서 한겨울에 도성을 떠나 육로로 약 5, 60일가량을 이동해 북경을 방문했으니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한 셈이고.

아직 이를 기억하는 조정 신료들은 이처럼 고작 4시간 만에 편하게 평양에 도착한 것으로 기차가 얼마나 대단한 기물인지를 다시 한번 실감하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확실히...그래서 기차를 이용하는 백성들도 많다지?”

“그렇사옵니다. 주상 전하. 기찻값이 비싸긴 하지만 그 가치를 충분히 하는 터라 노선이 깔린 곳으로 이동하려는 백성들은 웬만하면 기차를 이용하려 하고, 덕분에 객차는 항상 만석이라 하옵니다.”

호조판서의 대답에 이연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허허허. 기차를 이용하려는 백성들이 많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항상 만석이라? 철도가 개통된 지도 벌써 반년이 넘게 흘렀고, 기차를 신기하게 여기던 백성들도 기차에 익숙해졌을 테니, 흥미 본위로 기차에 탑승하려는 이들이 많지 않을 터인데...”

이연이 조금 의아하다는 듯 중얼거리자 호조판서는 빙긋 웃으며 상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흥미 본위로 기차에 탑승하려는 백성들은 줄어들었습니다만, 다른 지역의 명소를 방문하려는 양반들이나, 고향을 방문하려는 일반 백성들, 그리고 기차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상인들까지 있다 보니, 항상 기차표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옵니다.”

“허어. 그 정도였다는 말인가.”

“예. 그래서 더 많은 기차가 필요하고, 곧 방문할 원상의 객차 생산 공방이 제대로 운영되어야 할 것이옵니다.”

조선에 철도가 부설되긴 했지만, 아직 기차는 턱없이 부족해 조선철도공사는 대량의 기차를 북미왕국에 주문했는데, 기관차는 몰라도 700대에 달하는 객차까지 모두 북미왕국에서 만들어 배를 통해 수송하는 것은 아무리 북미왕국이라도 부담이 컸고.

해서 북미왕국은 이익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객차는 조선에서 만들게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고 원상에게 객차를 만드는 대규모 공방을 세우라고 권했고, 원상은 어디다 세워야 하나 고민하다 대동강을 이용해 북미왕국으로부터 객차의 주요 부품을 수입하기도 편하고, 객차가 완성된 후에는 가까운 철도를 이용해 바로 객차를 수송할 수 있는 평양에 객차 생산 공방을 세웠다.

그리고 원상은 공방을 세운 후 평양의 백성들을 대거 고용해 객차를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관련된 장계를 확인한 이연은 원상이 운영하는 대규모 공방에 호기심을 느끼고 객차 생산 공방을 방문하기 위해 평양으로 행차한 것이고 말이다.

“뭐 원상은 조선소도 그렇고 대규모 공방을 여럿 운영하고 있으니 객차 생산 공방도 잘 운영하겠지. 그보다 객차 생산 공방이 제대로 운영된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기관차인데...”

이에 이조판서에서 어느덧 우의정이 된 유철이 입을 열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사옵니다. 주상 전하. 북미왕국에서 내년에 35대, 후년에 35대, 총 70대의 기관차를 생산해 넘겨주기로 했사옵니다.”

“2년에 걸쳐? 이거 조금 의외로군. 북미왕국의 공업력이라면 바로 생산해 넘겨줄 줄 알았거늘.”

비록 이연이 직접 북미왕국을 방문하지는 못했다지만, 조선은 매년 대규모 사절단을 파견하며 여러 보고를 들었기에 북미왕국을 자세히 파악하고 있었고, 북미왕국의 사절단들은 새한성에 있는 커다란 기차 생산 공방도 방문한 적도 있었기에 이 공방에서 한 해에 얼마나 많은 기관차와 객차를 생산하는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 대규모 공방에서 고작 70대의 기관차를 2년에 걸쳐 생산해 넘겨주는 것은 조금 의외라 이연이 중얼거리자 유철이 쓰게 웃으며 답했다.

“그것이 북미왕국도 계속해서 노선을 늘려가고 있기에...”

유철이 말을 흐리자 이연 역시 사정을 짐작하고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북미왕국을 달릴 기관차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는 거겠지?”

“송구하옵니다. 전하.”

유철이 고개를 숙이자 이연은 손을 내저었다.

“아닐세. 자국을 먼저 생각하는 것인데 어찌 보면 당연한 거지. 다만 북미왕국은 꾸준히 자국의 노선을 늘리고 있는 만큼 더 많은 기관차가 필요할 테고, 그렇게 되면 아국이 필요로 하는 기관차는 뒷전으로 밀릴까 우려되는군.”

이미 조선의 철도 부설도 자국에 먼저 철도를 부설해야 한다는 이유로 밀렸다.

그리고 이번에 북미왕국에 70대의 기관차를 주문하긴 했지만, 조선의 사정상 더 많은 기차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고, 여기에 조선에서도 계속해서 노선을 늘려나갈 것까지 고려하면 생각보다 많은 기차가 필요한데, 이건 북미왕국도 비슷한 사정이라 철도 부설 건처럼 북미왕국의 사정으로 밀릴 것이라 생각한 이연이 우려하자 유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미 일부 공조의 장인들이 기차를 연구하고 있고, 최근 조선철도공사에서 북미왕국의 기술자들이 기관차를 정비하는 모습을 먼발치서나마 살펴보면서 기관차의 구조를 파악하고 있는 만큼, 공조의 장인들이 언젠가는 기관차를 설계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옵니다.”

조선의 장인들은 한 번쯤 조선 사절단의 일원으로 북미왕국을 방문했었고, 그렇기에 그곳에서 움직이는 기차를 보고 조선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기물이라는 생각에 연구를 시작했고, 이는 조선에 철도를 부설하면서 필요한 자재들을 수송하기 위해 기차가 조선에 도입되면서 이를 계속해서 관찰하고, 조선에서 기차를 운영하면서 기본적인 정비를 하는 모습을 멀리서 관찰하면서 기관차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덕분에 최근에 공조판서에게 듣기로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고 들었고.

해서 이를 이야기하자 이연은 신음을 흘리며 생각에 잠겼고, 유철은 그런 이연을 보며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공조의 장인들이 기관차를 설계할 수 있을 때쯤이면 북미왕국에서 지어주기로 약속한 제철소도 가동되어 양질의 강철을 생산할 테니, 더 좋은 증기 기관들을 개발할 수 있을 테고, 그렇게만 된다면 아국에서 필요한 기관차는 아국에서 생산해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옵니다.”

유철의 말에 다른 조정 대신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유철의 의견에 동의했고, 이에 이연은 자체적으로 기차를 생산하는 모습을 상상해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 그리되면 좋으련만...아. 그보다 아직도 제철소가 들어설 위치를 정하지 못한 것이라던가?”

조선에서 자체적으로 선로를 생산하기 위해 제철소를 건설할 필요가 있는데, 조선의 자체 기술만으로 제철소를 건설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라 북미왕국에 도움을 요청하자, 북미왕국은 제철소 건설에 도움을 주는 것을 넘어 아예 북미왕국에서 제철소를 지어주겠다고 제의했다.

이에 조정 대신들은 이게 웬 떡인가 싶어 바로 북미왕국의 제의를 승낙했고, 그때부터 북미왕국은 제철소를 건설할 최적의 위치를 찾고 있었기에 이연이 이를 묻자 호조판서가 대답했다.

“그렇사옵니다. 전하. 제철소는 입지가 무척 중요한 터라 섣불리 정하진 않으리라고 생각되옵니다.”

“흠. 그런가.”

아직도 제철소의 위치를 정하지 못했다는 말에 아쉬워하면서도, 어디에 제철소를 건설하게 될지가 궁금하다는 눈빛을 감추지 못하는 이연이었고, 그런 이연의 속내를 눈치챈 유철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다만, 조선의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지형을 살피던 북미왕국 개발청 관리와 잠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입지 자체는 조금 전에 지나친 송림이라는 작은 어촌이 가장 낫다는 이야기는 들었사옵니다.”

“송림?”

이연은 평양 남쪽에 위치한 대동강에 인접한 작은 포구인 송림을 언급하는 유철의 말에 의아한 눈빛을 보내자 유철이 바로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렇사옵니다. 비록 작은 어촌에 불과하지만, 대동강 변에 자리 잡고 있을뿐더러 철도와도 가까워 송림에 제철소를 세운다면 강철을 생산하기 위한 원료를 수급하기도 용이하며, 제철소에서 생산하는 강철을 손쉽게 다른 곳으로 육로나 해로로 수송할 수 있기에 북미왕국의 개발청 관리들은 송림을 가장 눈여겨보고 있다고 하옵니다.”

원래 북미왕국의 관리들은 제철소를 건설하기 위해 조선 땅을 살피면서 정성국이 지나가듯이 언급한 포항이나 광양을 먼저 살폈지만, 현시점에서 이 지역들은 썩 매력적인 위치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아무래도 철도가 부설된 지역과 떨어져 있었기에 이 지역에 제철소를 건설하면 오로지 해로로만 물자를 운반해야 했던 탓이다.

해서 육로와 해로를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을 찾다 보니, 자연스레 평양 남쪽의 송림이 눈에 들어왔고.

송림은 교통의 요지였을뿐더러 청나라와 거리가 가까워 청나라의 철광석이나 선철을 수입해 이용할 수도 있었으니 여러모로 괜찮은 지역이라 다른 적당한 지역이 없다면 송림에 제철소를 건설할 것 같다는 유철의 이야기에 이연이 흥미를 보이며 중얼거렸다.

“으음...그렇다면 평양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한양으로 복귀할 때, 잠깐 송림에 들르는 것도 괜찮겠군.”

“그리하시옵소서. 주상 전하.”

그렇게 이연이 유철을 비롯해 이번 행차에 따라온 조정 대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기차는 어느덧 평양역에 도착했고.

기차가 멈추자 이를 깨달은 이연은 멋쩍은 미소와 함께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평양역 가까이에 있는 객차 생산 공방으로 향했다.

“호오. 저 건물인가?”

“그렇사옵니다. 주상 전하.”

“상당히 크군.”

이렇게 큰 단일 건물은 처음 보는 이연이 감탄하자, 뒤따르던 유철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객차를 여럿 조립해야 하다 보니 건물 자체가 커질 수밖에 없사옵니다. 해서 원상이 저 공방을 세우는 데 꽤 애를 먹었다고 들었사옵니다.”

“그럴 테지.”

딱 봐도 엄청나게 큰 건물이었다.

단일 건물로는 가장 크지만 이미 불타버린 경회루와 비견될 정도라고 해야 할까.

물론 저 건물은 창고 형태에 가까운 투박한 형태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니 저만한 건물을 짓기가 쉽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 이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건물을 다시 한번 둘러보다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허어. 건물 안까지 철도가 연결된 건가?”

“그렇사옵니다. 전하. 이 공방에서 생산된 객차는 지금 보시는 이 철도를 통해 운반된다고 하옵니다.”

“그렇군.”

이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철도가 연결된 커다란 출입구로 이동하자 안쪽에는 약 10대의 객차가 반쯤 조립되어 있었고.

이연의 경호를 위해 금군이 나서서 공방을 비워두었기에 직접 객차가 조립되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미리 대기하고 있던 원상의 행수를 통해 이 공방에서 어떻게 객차를 만들어내는지 자세히 파악할 수 있었다.

물론 중요한 부품들을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북미왕국에서 보내주는 만큼, 이곳에서 하는 것은 단순한 조립에 불과하긴 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렇게 객차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체계를 갖춘 것이 이연으로서는 인상적이었기에 이연은 연신 감탄하며 원상의 행수에게 말했다.

“호오. 그럼 이 공방의 일꾼들이 숙달되면 더 많은 객차를 생산할 수 있다는 소린가?”

“그렇사옵니다. 물론 객차만 마구 생산해봐야 객차를 보관하는 데 추가로 비용이 소모되며, 2년 후에 이 공방을 닫을 생각이 아니라면 생산량을 조절할 필요성은 있사옵니다만...”

“그야 그렇겠지. 다만 언젠가 더 많은 노선을 부설하게 되면 더 많은 기차가 필요해질 텐데, 지금 이 공방의 생산량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다행이로군.”

“아. 그렇지 않아도 원상에서 이 공방 뒤쪽의 땅도 다 매입을 해 두었습니다. 그러니 상황을 봐서 공방을 확장하거나 추가로 공방을 건설해 객차의 생산량은 늘릴 수 있사옵니다.”

“호오. 그래? 역시 철두철미한 원상답군.”

원상 행수의 말에 이연이 만족한 표정을 짓자 원상 행수가 황송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고.

이연은 그런 원상의 행수를 보고 말했다.

“아무튼, 이 공방에서 생산하는 객차는 조선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발전시킬 걸세. 그러니 이 공방의 운영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신경을 써주게.”

“그리하겠나이다. 주상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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