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화
정성국이 탄 자동차는 연구청 산하 연구소로 향했고, 정성국이 자동차에서 내렸을 때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지혜로운 나무는 정성국을 반기며 인사를 건넸다.
“오셨습니까. 전하.”
“오랜만일세. 지혜로운 나무.”
정성국은 오랜만에 본 지혜로운 나무에게 미소를 지으며 슬쩍 타박하듯 말했다.
“연구도 바쁠 텐데 무엇하러 여기까지 나온 건가. 하도 들러서 굳이 안내도 필요 없는데 말이야.”
“하하하. 전하께서 여기까지 행차하셨는데 어찌 마중을 나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정성국은 지혜로운 나무의 대답에 피식 웃으며 그의 연구실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렇게 지혜로운 나무의 연구실로 이동하면서 정성국은 그와 일상의 대화를 나누다 최근 스웨덴과 통상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언급하자 지혜로운 나무가 눈을 빛냈다.
그도 스웨덴과의 통상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호오. 스웨덴과 통상이 가능해졌다는 겁니까? 허면...”
“그래. 거기에 우리가 직접 스웨덴의 광산에 투자할 생각이니 이전보다 더 많은 구리를 확보할 수 있을 거야. 그럼 구리 부족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될 테고, 해저 통신선으로 본토와 떨어진 지역과 빠르게 통신을 주고받을 수 있겠지.”
정성국의 이야기에 지혜로운 나무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하하. 해저 통신선을 연구하는 연구원들이 이 소식을 듣는다면 무척 기뻐하겠군요. 그 친구들. 무척 조바심을 내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조바심?”
“무선 통신 연구도 계속 진행되고 있고, 덕분에 통신 거리가 비약적으로 상승하지 않았습니까.”
무선 통신이 개발되고 막 시범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신형 전선에 무선 통신 장치가 설치될 때만 하더라도 통신 거리는 고작 12km에 불과했다.
하지만 정성국이 전기와 통신기술 분야에 무척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연구청장은 이 분야들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여기에 지혜로운 나무가 새한성 대학교에서 가르친 학생들까지 연구청 산하 연구소에 들어오자 이 분야들은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통신 분야 중 무선 통신 분야도 빠르게 발전하며 계속해서 통신 거리를 늘려가고 있었으니, 무선 통신 연구원들을 경쟁자로 생각하는 유선 통신 연구원들, 특히 구리 부족 문제로 해저 통신선 설치에 난항을 겪고 있는 해저 통신선을 연구하는 연구원들은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한 정성국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쯧. 무선 통신 때문에 자신들의 연구 성과가 묻힐 거라고 걱정하는 모양이지?”
“예. 아무래도 아국의 상황에서 유선 통신보단 무선 통신이 편하지 않습니까. 특히, 해저 통신선의 경우는 육지와는 달리 바다에 통신선을 가설하기에 더 큰 비용이 소모되고 유지 보수도 쉽지 않다 보니...”
“그렇긴 하지. 바닷속은 무척 불안정한 공간이니까. 해저 화산 활동이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어부들이 그물로 해저 통신선을 훼손시킬 수도 있으며, 상어가 해저 통신선을 물어뜯을 수도 있을 테니.”
“하하하.”
정성국이야 전생에서 가끔 상어가 해저 케이블을 물어뜯어 해외와의 통신망이 끊겼었다는 것을 떠올리고 이렇게 덧붙였지만, 지혜로운 나무는 이를 농담으로 듣고 웃음을 터트렸고.
그런 지혜로운 나무에 정성국은 진담이라고 덧붙인 후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내가 일전에도 몇 번 이야기한 것처럼, 아국은 두 기술이 모두 필요하고, 두 기술 모두 계속해서 발전시킬 필요가 있어. 그리고 무선 통신의 경우도 안정적인 무선 통신망을 구축하려면, 결국 유선 통신망을 빌려야 하고, 특히 본토와 멀리 떨어진 지역들은 더 그렇지.”
“어? 그렇습니까?”
“그래. 지역 간 연결은 유선으로 연결하는 것이 훨씬 안정적일 테니까.”
지역 내 통신망이라면 모를까, 지역 간 통신망까지 모두 무선으로 연결하기는 어렵고 그렇기에 무선 통신과 유선 통신은 서로 경쟁 관계가 되기보다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무선 통신 기술이 계속해서 발전하게 되면 상황이 조금 바뀌기야 하지만, 아무리 정성국의 개입으로 기술 발전이 빨라진 북미왕국이라 하더라도, 그가 죽기 전까지 전생처럼 위성을 턱턱 발사해 위성 통신의 시대를 열긴 쉽지 않을 것 같았기에, 이런 관계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정성국이 지혜로운 나무에게 이를 설명하자 지혜로운 나무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고.
“흐음...”
그런 지혜로운 나무의 반응에 정성국도 잠시 발걸음을 멈춘 후 계속 말했다.
“그러니 유선 통신의 발전, 특히 해저 통신선 연구에 지금처럼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네. 이건 단순히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죽을 때까지, 아니지. 죽고 나서도 이 분야의 연구만큼은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따로 이야기해둘 생각이고. 그러니 해저 통신선을 연구하는 연구원들에게 쓸데없는 걱정은 버리고 더 튼튼하고, 더 빠르고, 더 많은 용량의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해저 통신선의 개발에 전력을 다하라고 하게.”
“알겠습니다. 전하.”
정성국의 당부에 지혜로운 나무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정성국은 다시 발걸음을 옮겨 연구실의 문을 열고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고.
연구실 안을 둘러본 정성국은 한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커다란 상자를 보고 묘한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저게 그건가? 가정용 전파 수신기?”
“그렇습니다. 전하.”
정성국이 이곳까지 방문한 것도 다 이 가정용 전파 수신기, 전생에서는 라디오 수신기로 불리는 장치의 개발에 성공했다는 보고 때문이었다.
무선 통신 기술이 발전하면서 정성국은 지혜로운 나무에게 라디오 방송에 관한 개념을 설명하면서 이를 위한 개인용 전파 수신기를 개발해보라고 이야기했었고, 마침 꾸준히 진공관을 연구하고 개량하던 부서에서 신호를 증폭시킬 수 있는 3극 진공관의 개발에 성공하자 지혜로운 나무와 무선 통신을 연구하는 연구원들은 이 3극 진공관을 이용하면 미약한 신호도 증폭시켜 수신할 수 있는 만큼, 기존의 전파 수신기보다 훨씬 소형화시킬 수 있어 쉽게 들고 다닐 수 있는 개인용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정마다 설치해 전파를 수신할 수 있는 가정용 수신기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거라 판단했고.
예상대로 진공관을 사용하면서 수신기의 크기를 커다란 상자 정도로 줄일 수 있었고, 수신 감도도 훨씬 좋아졌기에 정성국에게 이를 보고하자 정성국이 급히 달려온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가정용 전파 수신기는 정성국이 전생에서 사진으로만 보았던 초창기 라디오 수신기와 꽤 비슷해 보였기에, 정성국은 따로 디자인을 정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크기나 모양이 꽤 비슷하다는 것에 새삼 놀라면서 가정용 전파 수신기를 관찰하다 중얼거렸다.
“흠. 겉모습은 그렇다 치고 이게 실제로 작동하는 모습을 조금 보고 싶은데...”
이에 지혜로운 나무는 그런 정성국의 말을 예상이라도 한 듯 씩 웃으며 연구실 한쪽의 창문 너머를 가리키고 말했다.
“아. 그렇지 않아도 저 방향으로 약 5km가량 떨어진 곳에 전파 송신 장치를 설치하고, 이를 통해 곡을 송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러면서 지혜로운 나무가 가정용 전파 수신기를 작동하자 처음엔 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리다가 이내 피아노 소리가 수신기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이렇게 수신기를 작동시키면 바로 전파를 수신할 수 있지요.”
지혜로운 나무가 가정용 전파 수신기를 작동하면서 수신기에서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오자 정성국은 집중해 소리를 듣다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호오. 이거 생각보다 수신 감도가 좋네? 소리도 잘 들리고?”
“진공관으로 잡음은 줄이고 원하는 신호만 증폭시킬 수 있게 된 덕분입니다.”
지혜로운 나무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정성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흐음. 그럼 가정용 전파 수신기는 완성이 된 상태고...전파 송신 장치야 예전에 완성된 상태이니, 이제 새한성에서 무선 방송을 시작할 수 있다는 건가?”
정성국은 이번에 개발한 가정용 전파 수신기의 성능이 만족스러웠고, 그런 만큼 본격적으로 라디오, 즉 무선 방송을 시작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판단해 지혜로운 나무에게 의견을 묻자 지혜로운 나무는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음...무선 방송을 시작할 수는 있을 겁니다. 다만, 아무리 전파 송신 장치의 출력을 높인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낮은 곳에서 전파를 송신한다면 장애물 때문에 먼 거리에서는 무선 방송을 수신하긴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일단 송신탑을 세우는 것이 우선일 듯싶습니다만...”
북미 동해안 지역이라면 초고층 건물의 옥상에 전파 송신 장치를 설치하면 그만이었지만, 이곳 새한성에는 고층 건물이 존재하지 않았고, 야트막한 산도 존재하지 않는 평원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지혜로운 나무가 송신탑을 거론하자 정성국의 머릿속에는 전생의 남산 타워나 도쿄 타워 등을 잠시 떠올렸다가 이내 가장 유명한 철탑인 에펠탑을 떠올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남산 타워 같은 일자형 타워보다는 에펠탑 같은 철탑이 훨씬 웅장하고 멋있긴 하겠지. 거기에 새한성에는 아직 고층 건물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만큼, 외곽 지역에 에펠탑 같은 거대한 철탑을 건설한다면 새한성의 명소로도 손색이 없을 테고.’
물론 이곳은 파리와는 달리 종종 지진이 발생하는 터라 개발청장과 제대로 의논을 해봐야겠지만, 개발청 소속 건축가들은 북미 서해안에도 고층 건물을 건설하기 위해 더 안전한 건물을 꾸준히 연구하고 있었던 만큼, 그리고 송신탑은 일반적인 고층 건물과는 다른 건물이니만큼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정성국이 지혜로운 나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 확실히 그렇겠군. 송신탑이라...그리고 송신탑은 높을수록 좋겠지?”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다만 북미 서부는 지진 때문에 고층 건축물을 쉽사리 건설하긴 힘들 테니 적당한 높이의 송신탑으로 만족해야겠지만 말입니다.”
지혜로운 나무의 말에 정성국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긴 한데 송신탑은 철탑이니 일반적인 건축물과는 조금 다르잖나. 그리고 개발청 소속 건축가들이 지진에도 안전한 건물을 짓겠다고 꽤 오랫동안 연구하기도 했으니 또 모르는 일이지.”
“아. 그럼 이 새한성뿐만 아니라 가까운 다른 도시에서도 무선 방송을 수신할 수도 있겠군요.”
“호오. 그래?”
지혜로운 나무의 말에 정성국이 관심을 보이자 지혜로운 나무는 잠시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보다가 입을 열었다.
“예. 한 200m 정도 높이의 송신탑에서 전파를 송출한다면, 그리고 진공관 덕분에 약한 신호도 증폭할 수 있는 이 가정용 전파 수신기를 이용한다면 아마 새김포에서도 무선 방송을 수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새한성에서 새김포까지의 거리가 약 100km 정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았기에 정성국은 씩 웃으며 지혜로운 나무에게 말했다.
“알겠네. 그럼 바로 송신탑을 건설할 테니, 자네는 일단 연구청장과 상의해 이번에 개발한 가정용 전파 수신기를 양산하도록 하게.”
“그리하겠습니다.”
“그리고 송신탑을 건설하는 데도 시간이 꽤 걸릴 거야. 그러니 그 전까지는 전파 송신 장치의 성능을 개량하는 데 집중하도록 하고.”
정성국이 기억하기로 에펠탑 건축은 꽤 단기간에 이루어졌지만, 새한성에는 종종 지진이 발생하기에 안전을 더욱 신경 써야 하니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또한, 에펠탑을 건축하는 데 들어갔던 강철이 약 7천여 톤인데 당장 철도를 부설하고 거대한 댐들을 건설하며 철제 콘크리트 건물을 마구 건설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그 정도 되는 철강 물량을 마련하긴 쉽지 않을 것 같으니 막상 공사에 들어가기까지도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았고.
해서 이를 이야기하자 지혜로운 나무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슬쩍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당장은 열기구를 이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열기구?”
“예. 송신탑을 세우는 것이 가장 나은 방법이지만, 지진 때문에 송신탑을 건설하기 어렵다면 차선으로 비행기에 전파 송신 장치를 장착하는 것이 어떨까 싶어 하얀 날개에게 연락해보니 그 경우는 비행기보다는 열기구가 나을 거라고 하더군요.”
“확실히 그런 상황이라면 비행기보다는 열기구가 낫겠지. 헌데 전파 송신 장치의 무게가 꽤 될 텐데,,,”
정성국의 의문에 지혜로운 나무가 대답했다.
“하얀 날개과 논의해본 결과 전파 송신 장치 정도는 띄울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다만 연료 문제도 있고 해서 열기구를 사용하게 되면 기껏해야 1시간 정도 방송하는 것이 전부인 것이 문제긴 합니다만, 그거야 여러 대의 열기구를 사용하면 그만이고요.”
지혜로운 나무의 설명을 들어보니 열기구를 이용하는 것도 꽤 매력적이었다.
문제는 날씨가 좋지 않은 경우엔 열기구를 띄울 수 없어 방송이 불가하다는 점이었지만, 당장 가정용 전파 수신기를 개발해놓고도 새한성에서는 몇 년 동안 무선 방송을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다른 지역에서 먼저 무선 방송을 시작하기도 애매했던 정성국은 송신탑을 건설하기 전까지는 열기구를 이용해 전파를 송신하고, 그 이후에는 송신탑을 이용하는 것이 괜찮겠다 싶었고.
해서 이를 지혜로운 나무에게 이야기하자 지혜로운 나무도 정성국의 의견에 동의했다.
“송신탑이 건설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그편이 좋겠군요. 알겠습니다. 하얀 날개와 이야기해 바로 전파 송신 장치를 탑재한 열기구를 제작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