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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699화 (699/850)

699화

찬바람이 씽씽 불어오는 10월의 어느 날.

정성국은 갑작스럽게 집무실을 방문한 조용한 곰의 얼굴이 밝았기에 길보를 예상했고.

“호오. 스웨덴과 통상 조약을 체결했다고?”

“그렇습니다. 전하.”

그동안 북미왕국과의 통상에 회의적이던 스웨덴이 마침내 입장을 바꿔 북미왕국과 통상 조약에 합의했다는 조용한 곰의 보고에 정성국은 반색하며 중얼거렸다.

“그동안 덴마크 주재 북미왕국 대사가 보내온 보고서에 따르면 당분간 스웨덴과의 통상은 어렵다고 했던 것 같은데?”

북미왕국은 이전부터 스웨덴과의 교역을 원했다.

러시아의 확장을 견제하기 위함이기도 했고, 스웨덴에 매장되어 있는 풍부한 광물들이 탐나기도 했기에.

다만 북미왕국이 스웨덴과 접촉하기 전에 먼저 덴마크가 북미왕국으로 외교 사절을 보내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를 판매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고, 북미왕국은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덴마크의 요청을 받아들여 두 지역을 사들였고, 이 자금으로 덴마크가 군대를 재정비하고 용병을 고용해 스웨덴과 전쟁을 시작하면서 스웨덴과의 관계는 자연스레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해서 외무청에서는 일단 발트 해의 상인들을 통해 스웨덴의 동향을 살피면서 기회를 엿보다 전쟁이 끝난 이후 스웨덴과 접촉했지만, 스웨덴은 이번 전쟁으로 피해가 꽤 컸기 때문인지 덴마크뿐만 아니라 덴마크가 전쟁을 시작할 수 있도록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를 구매한 북미왕국과도 거리를 두었고.

해서 스웨덴과의 통상 조약을 체결하라는 명령을 받고 스웨덴과 접촉하던 덴마크 주재 북미왕국 대사는 당장은 스웨덴이 덴마크에 갖는 적개심 때문에 스웨덴과 통상 조약을 체결하기는 어렵다는 보고서를 올렸었고, 최근엔 덴마크와 동맹까지 맺었기에 정성국도 당장은 스웨덴과의 통상은 확실히 어렵겠구나 싶어 관심을 껐었다.

헌데 갑자기 스웨덴과 통상 조약을 체결했다고 하니 정성국으로서는 무척 의외의 결과라 질문을 던지자 조용한 곰이 답했다.

“이번 전쟁으로 인해 전면에 나선 스웨덴 왕국의 국왕인 칼 11세가 아국과의 통상에 무척 긍정적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칼 11세가?”

“예. 그동안 칼 11세를 대신해 스웨덴을 이끌었던 고위 귀족들은 덴마크가 스코네 지방을 빼앗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 것은 결국 아국의 지원 때문이라며 은연중에 적대시했습니다. 덕분에 북미왕국 대사가 스웨덴과의 통상 조약을 맺기 위해 노력했어도 별다른 성과가 없었지요.”

“그랬지. 헌데 칼 11세는 달랐다는 건가?”

“예. 칼 11세는 아국과 덴마크와의 영토 거래는 단순한 국가 간의 거래일 뿐이지 아국이 스웨덴을 적대시해서 일부러 덴마크를 지원한 것은 아니지 않냐고 이야기했다더군요.”

스웨덴의 국왕 칼 10세가 37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자 그의 외동아들인 칼 11세가 왕위에 오르긴 했지만, 당시 칼 11세의 나이는 4살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칼 10세는 사망 전에 왕비이자 칼 11세의 모친을 섭정으로 임명했고.

다만 칼 11세의 모친은 정치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기에 스웨덴의 고위 귀족들에게 나랏일을 위임했고, 칼 11세 역시 성인이 되었어도 여전히 운동, 곰 사냥 같은 야외 활동에만 전념할 뿐, 정치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허나 덴마크의 침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동맹인 프랑스의 도움만을 바라는 고위 귀족들이 행태에 분노한 칼 11세는 정치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패퇴한 스웨덴군을 추슬러 이를 직접 지휘해 일부 전투에선 승리를 거두기도 하며 병사들과 백성들에게 신뢰를 얻었고, 전쟁이 끝난 이후 이전과는 달리 본격적으로 나랏일에 참여하며 귀족들에게 넘겨 주었던 권력들을 하나씩 회수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고위 귀족들이 맡고 있던 외교도 칼 11세가 직접 챙기면서, 그리고 칼 11세가 북미왕국의 요청에 고위 귀족들과는 다른 반응을 보이면서 상황이 변했다는 조용한 곰의 설명에 정성국이 흥미를 보이며 중얼거렸다.

“오호. 의외로 합리적인데? 국내외의 소문이 꽤 박해서 칼 11세가 스웨덴의 전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스웨덴과의 통상은 계속 지체될 거라 여겼는데 말이야.”

이전까지 칼 11세의 평가는 썩 좋지 않았다.

어렸을 적 칼 11세는 모친에게 배운 독일어는 할 수 있을지언정 스웨덴어는 제대로 하지 못해 궁정에서 귀족들과 제대로 소통도 하지 못했고, 공부엔 별다른 관심이 없었으며, 성인이 되었음에도 정치엔 무관심하고 그저 사냥이나 좋아했으니 국내외의 평가가 좋을 수가 있겠는가.

물론 전쟁 이후 칼 11세가 직접 군사들을 이끌고 일부 전투에 직접 참여하면서 역시 스웨덴 국왕답게 용맹하다는 평가를 받긴 했지만, 정성국은 오히려 칼 11세가 직접 전투에 참여했기에 뒤에서 명령만 내렸던 고위 귀족들보다는 덴마크에 적개심이 강하리라 판단했고, 당연히 다른 고위 귀족들처럼 북미왕국도 좋아하지 않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헌데 칼 11세의 반응은 예상과 전혀 달랐기에 정성국이 예상외라는 표정을 짓자 조용한 곰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북미왕국 대사의 보고로는 칼 11세는 합리적인 면모도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스웨덴의 상황이 워낙 엉망이다 보니 괜히 아국에 시비를 거는 것은 위험하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지적에 정성국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아. 하긴. 이번 전쟁으로 스웨덴도 무척 큰 피해를 보긴 했지.”

“예. 특히 스웨덴군은 용맹해 자신들보다 훨씬 많은 병력을 자랑했던 덴마크군을 상대로 분전했고, 몇 번의 전투에서는 승리를 거두기도 했습니다만, 그만큼 피해도 컸지요. 덕분에 현재 스웨덴군은 반신불수가 되었고, 이러한 스웨덴군을 재건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데...스웨덴은 프랑스 때문에 새한성 조약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못했고, 잃었던 스코네 지방을 돌려받을 수는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기에 당장 스웨덴군을 이전의 상태로 재건하긴 어렵답니다. 그런 상태에서 프랑스도 두려워하는 아국을 끝까지 적대할 수는 없는 법이지요.”

스웨덴은 명백히 이번 전쟁의 당사국이었지만, 종전 협상에 참여하지는 못했다.

신성로마제국이 교황청의 중재로 프랑스와 단독 협상을 시작했기에 새한성에서의 종전 협상에 참여하지 않은 것과는 달리, 스웨덴은 프랑스가 스웨덴을 대리해 협상하는 것이 더 유리할 거라는 프랑스의 설득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었고.

헌데 프랑스는 중재국인 북미왕국과 잉글랜드가 전쟁에 참여할 것을 두려워해 무리한 요구보다는 스코네 지방을 스웨덴에 되돌려주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스웨덴은 스코네 지방은 되찾을 수 있었지만, 이번 전쟁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스웨덴군을 재건할만한 전쟁배상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해서 지금 당장은 스웨덴의 군사력이 무척이나 떨어진 상태였고, 그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칼 11세이니만큼, 괜히 북미왕국을 적대했다 문제가 생기는 것을 우려해 북미왕국과의 통상에 긍정적으로 반응한 것 같다는 조용한 곰의 이야기에 정성국이 피식 웃었을 때, 조용한 곰이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스코네 지방이 몇 년간 전쟁터가 되면서 식량 수급이 어려워져 타국에서 비싸게 식량을 수입해야 했고, 그 때문에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 스웨덴은 재정적인 타격이 컸습니다. 거기에 전쟁 초반에는 프랑스 해군의 도움 덕분에 발트 해의 제해권을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만...네덜란드, 그리고 에스파냐가 덴마크와 동맹을 맺고 참전하면서 두 나라의 해군마저 상대해야 했던 프랑스 해군은 더는 스웨덴 해군을 지원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전쟁 중반부터는 덴마크 해군에 밀려 발트 해의 제해권을 잃어 대외 무역이 힘들어지고, 경제는 극도로 피폐해졌지요.”

“그래? 그 정도로 스웨덴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고? 프랑스가 스웨덴을 돕기 위해 따로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것으로 아는데...”

한때 강력한 북방 제국을 건설하며 북유럽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고 부유했던 스웨덴이었지만, 계속된 전쟁으로 재정은 고갈되기 시작했다.

해서 1671년 섭정을 대신해 스웨덴을 다스리던 스웨덴의 고위 귀족들은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스웨덴은 프랑스의 편을 들어주는 대신 프랑스는 스웨덴의 침체되는 경제를 살리기 위한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고.

그러니 정성국은 당장 전쟁으로 인해 경제가 피폐해졌더라도, 이미 전쟁이 끝난 지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으니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을까 싶어 묻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저었다.

“피폐한 스웨덴의 경제를 되살리려면 프랑스가 지원해주는 보조금의 규모로는 턱없이 부족하지요. 이 때문에 스웨덴은 프랑스에 더 많은 보조금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만...프랑스도 이번 전쟁으로 막대한 재정을 소모했기에 스웨덴의 요청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고, 해서 칼 11세는 아국과의 통상에 주목한 모양입니다. 거기에 아국이 덴마크와 동맹을 맺고 노르웨이 지역의 광산에 대규모 투자를 하기로 했으니...”

“일단 통상 조약을 맺고, 아국의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생각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이 매끈한 턱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중얼거렸다.

“뭐 스웨덴에 투자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 가뜩이나 기술이 발전하면서 구리 소모량이 급증했고, 여기에 북미왕국 전역에 통신망을 구축하느라 막대한 양의 구리가 소모되고 있었으니 스웨덴의 구리 광산에 투자해 스웨덴의 구리 생산량을 늘린다면 아국에도 큰 도움이 될 거야.”

구리는 북미왕국에서 무척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중요한 금속이었다.

화폐, 전선, 통신선, 배관 등등.

그렇기에 북미왕국에서는 왜국에서, 멕시코 지역에서, 그리고 잉글랜드를 통해 유럽의 구리를 대거 수입하고 있었지만, 북미왕국이 점차 발전하고, 대도시뿐만 아니라 중소도시, 그리고 일정 규모의 마을에서도 전력망을 구축하고 전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구리 소모량은 급증했다.

여기에 원활한 통치를 위해 새로이 통신망까지 구축하면서 더 많은 구리가 필요해졌는데, 스웨덴이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자국에 투자하길 원한다면, 이 기회에 스웨덴에 대거 자금을 투자해 기존의 구리 광산을 확장하고 다른 구리 광산을 개발한다면 이 구리 부족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될 거라는 생각에 안도한 정성국이었다.

‘그리고 잉글랜드가 증기기관을 이용해 더 깊은 곳의 광물도 캐내고 있으니만큼...스웨덴에 간단한 증기기관을 넘겨 구리 광산의 생산량을 증가시키는 방법도 사용할 만하고.’

원래 깊은 곳의 묻혀 있는 광물은 캐기 어려웠다.

깊은 곳에 묻혀 있는 광물을 캐기 위해 계속해서 땅을 파다 보면 지하수가 흘러나와 작업이 불가능해졌으니까.

해서 일부 광산은 양동이를 이용해 수동으로 물을 퍼내기도 했지만, 한계는 명확했고.

그러나 증기기관을 이용한 양수기가 개발되면서 더 깊은 곳에 묻혀 있는 광물도 캐낼 수 있게 되었는데 현재 잉글랜드의 광산은 이 증기기관을 이용해 물을 퍼내 더 깊은 곳에 묻혀 있는 광물을 캐내고 있는 만큼, 스웨덴이 기초적인 증기기관을 넘겨 더 많은 광물을 확보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 정성국이었고, 정성국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귓가에 조용한 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지요. 거기에 그동안 전하께서 기대하시던 해저 통신선 연구도 크게 진척이 있어 연구청에서는 본격적으로 해저 통신선을 이용해 포로나이까지 통신망을 구축하길 원한다고 들었으니...”

이에 정신을 차린 정성국이 최근 연구청장을 통해 보고받은 내용을 떠올리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맞네. 이번에 연구청에서 해저 통신선을 이용해 새남포에서 하이다 섬까지 통신망을 연결하는 데 성공했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연구청에서는 해저 통신선을 이용해 통신망을 구축하고 싶어 하고. 헌데 구리가 워낙 부족해서 수천 km의 해저 통신선을 만드는 것이 조금 부담이었는데 아주 잘 됐어.”

정성국의 명령으로 꾸준히 해저 통신선 연구를 진행해온 연구청은 여러 번의 실험 끝에 실제 해저 통신선을 이용해 통신망을 구축하기로 마음먹었고, 그 대상으로 새남포에서 북서쪽으로 약 1000km가량 떨어진 하이다 섬을 낙점했다.

북미왕국의 본토에서 떨어진 지역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지역은 역시 아이누 섬의 포로나이였기에 해저 통신선을 이용해 통신망을 구축하게 되면 포로나이까지 통신망을 구축해야 할 텐데, 새남포에서 포로나이까지는 약 7000km가량 떨어져 있는 만큼, 이 정도의 길이를 한 번에 연결하기엔 부담이 컸다.

해서 연구청에서는 새남포, 하이다 섬, 봉길 섬, 카무이를 거쳐 포로나이로 연결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이 때문에 일단 새남포와 하이다 섬을 연결한 것이다.

그리고 해저 통신선은 제 역할을 다 해냈고, 덕분에 하이다 섬까지 통신망이 구축되자 고무된 연구청은 바로 해저 통신선을 대량 생산해 일단 포로나이까지, 그 후엔 본토와 떨어진 다른 섬들도 통신망을 구축하고, 마지막으론 해외의 각 대사관까지 통신망을 구축하고 싶어 했다.

정성국도 이런 연구청장의 보고를 받고 잔뜩 흥분하며 연구청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싶었지만, 당장 구리가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였고.

해서 정성국은 개발청장과 의논해 아예 북미왕국 내에 새로운 구리 광산을 개발하는 것까지 염두하고 있었는데 스웨덴과의 통상이 가능해진 이상 이를 미룰 수 있어 광산 개발에 투입할 인력을 다른 곳에 투입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여겼을 때, 조용한 곰이 말했다.

“그렇지요. 허면 스웨덴과의 교역은 최대한 많은 양의 구리를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스웨덴의 구리 광산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것도 알리고 바로 협상을 진행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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