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698화 (698/850)

698화

“이야. 이거 장관인데?”

정성국은 새김포에 도열한 7함대와 지원 물자를 실은 수송선, 그리고 7함대의 모항인 말라카에 7함대의 사령부를 비롯해 각종 시설 건설하는 데 필요한 물자를 가득 실은 5천 톤급 수송선 10여 척이 나란히 도열해 있는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고.

이는 7함대의 창단식과 출항식을 보기 위해 정성국과 함께 새김포를 방문한 유럽 대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유럽 대사들은 북미왕국의 해군력에 기가 질릴 정도였달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보이는 7함대만 하더라도 함대의 규모도 대단했고, 전투력까지 따지자면 유럽의 어느 나라도 상대하기 어려울 정도인데, 북미왕국은 저런 함대가 지금 눈앞에 보이는 7함대 말고도 5개는 더 있다는 것을 유럽 대사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거기에 7함대는 빠르게 창설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동남아시아의 해적들이 위협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인지 주력 함선 대부분이 기존의 천급, 지급, 인급 전선들이었기에 다른 함대보다 실질적인 전투력은 훨씬 떨어진다는 것까지 생각해보면 정말 북미왕국의 해군력은 규격 외라고 봐도 되었고.

해서 유럽 대사들은 군용 선착장 인근에 도열한 함대를 보고 열렬히 환호하는 북미왕국 백성들과는 달리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고.

다만 네덜란드 대사는 표정이 나쁘지 않았는데, 저 7함대의 모항은 동남아시아의 말라카 항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7함대가 말라카 항을 모항으로 해서 동남아시아 해역을 순찰한다면, 당연히 동남아시아에 들끓는 해적들은 자취를 감출 테니 동남아시아의 향신료 무역에 집중하는 네덜란드로서는 이 7함대 창단식과 출항식이 오히려 즐거울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네덜란드 대사의 반응에 옆에 있던 프랑스 대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너무 좋아하시는 것 아닙니까?”

“나쁠 것이 어디 있습니까. 7함대가 말라카 항에 도착하면 동남아시아에서 아국의 향신료를 노리던 해적들 상당수가 사라질 텐데요.”

“그야 그렇겠지요. 뭐 소문이 과장이라 여겼던 해적들도 몇 번 북미왕국의 해군과 맞붙다 보면 현실을 알게 될 테고. 헌데 제가 생각하기엔 그 해적들이 북미왕국 해군을 무서워 깨끗하게 손을 씻고 평범하게 살기보다는 북미왕국 해군을 피해 다른 곳에서 해적질할 것 같습니다만...”

네덜란드 대사는 프랑스 대사의 말에 대꾸했다.

“프랑스 대사께서는 동남아시아의 해적들이 인도와 아프리가 해역으로 몰려들 거라 생각하시는 모양이군요?”

“그렇습니다. 뭐 북쪽에는 동아시아를 담당하는 3함대가, 동쪽과 남쪽으로는 남태평양을 담당하는 5함대가 있으니까요.”

프랑스 대사의 말에 맞은 편에 있던 잉글랜드 대사가 골치 아프다는 얼굴로 끼어들었다.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해적들마저 아프리카와 인도의 해역으로 몰려가 현지의 해적들과 피 튀기는 혈전을 벌여주면 참 고맙겠습니다만...보통은 연합하잖습니까. 그러니 그만큼 아프리카 해역과 인도 해역을 항해하는 것이 위험하고...아국도 그렇지만 네덜란드도 그런 상황이 썩 달갑진 않을 텐데요?”

잉글랜드 대사의 말에 네덜란드 대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일단 7함대는 동남아시아 지역뿐만 아니라 인도 일부 지역도 담당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실론 섬에 7함대의 분함대가 배치된다지요?”

“예. 그러니 아국의 인도 거점들은 꽤 안전할 테고 그러니 기뻐할 수밖에요.”

네덜란드 대사의 대답에 프랑스 대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인도 지역이야 그렇다고 쳐도 아프리카 지역의 식민지들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인도 지역이나 동남아시아 지역을 방문하려면 더 많은 해적들을 상대해야 하니 네덜란드로선 부담이 크지 않겠습니까.”

네덜란드는 잉글랜드 대사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파나마 운하가 있는데 뭐하러 걱정하겠습니까.”

“흠. 아프리카를 우회해 인도나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항해하기보다 파나마 운하를 이용해 인도나 동남아시아 지역을 오가겠다는 겁니까?”

“예. 물론 항해해야 할 거리가 늘어나는 만큼, 그리고 파나마 운하를 이용해야 하는 만큼 비용은 더 들겠습니다만, 그만큼 안전하니 웬만하면 기존의 항로보다는 파나마 운하를 경유하는 항로를 이용하라고 권할 생각이니 그 문제는 상관없습니다.”

네덜란드 대사의 대답에 프랑스 대사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럼 아프리카 지역은요? 네덜란드는 아프리카 지역의 식민지들을 포기하실 겁니까?”

“그럴 수야 없지요. 다만 아무리 아국이 예전만 못하더라도 케이프 식민지는 충분히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

케이프 식민지는 아프리카 최남단에 위치한 네덜란드의 식민지로, 동남아시아의 향신료 무역에 집중한 네덜란드가 본국과 동남아시아의 중간에 배를 정비할 만한 제대로 된 거점 항구를 세우면서 개척한 식민지였다.

그리고 그 위치 때문에 케이프 식민지는 꽤 가치 있는 식민지였고, 해적 때문에 네덜란드가 케이프 식민지에서 철수한다면 이를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기대했던 프랑스 대사는 아쉬운 표정을 애써 감추었고.

다만 네덜란드 대사는 아무리 자신들이 어려운 상황이더라도 해적들을 상대로 케이프 식민지를 충분히 지킬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프랑스 대사가 보기엔 동남아시아 해적마저 두 해역으로 몰려들면 정말 대규모 해적단이 생겨날 테고, 그렇게 되면 네덜란드로선 이를 막기 어려울 테니 잘만 하면 케이프 식민지를 얻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해적들을 선동해 케이프 지역을 공격하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는데?’

그리고 옆에 있던 잉글랜드 대사도 프랑스 대사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이에 네덜란드 대사는 두 대사의 속내를 대충 짐작하고 속으로 피식 웃었다.

‘우리 힘만으론 해적들을 상대하기 어렵다고 여기는 모양인데...우리 힘만으로 해적들을 상대하기 어렵다면 북미왕국을 끌어들이면 그만이지.’

이전과는 달리 북미왕국은 해외 진출에 꽤 적극적이었다.

이미 동남아시아와 인도 지역에도 일부 진출한 상황이었고, 그가 알기로 북미왕국은 오스만 제국에 추가로 신식 소총을 판매한 대가로 페르시아 만 안쪽에 거점을 마련하려고 하는 터라, 정말 북미왕국이 페르시아 만 안쪽에 거점 항구를 만든다면 자연스레 인도 해역 대부분이 북미왕국의 영향력 아래에 들어가게 될 것이 분명했고.

그럼 남은 바다는 아프리카 해역뿐인데 북미왕국이 남은 아프리카 해역을 그냥 방치하겠는가.

당연히 북미왕국은 때가 되면 아프리카 해역으로도 진출하려 할 테니 그때 네덜란드가 동맹으로써 북미왕국 함대의 거점을 내어주고 북미왕국을 끌어들이면 북미왕국과 동맹인 네덜란드는 전 세계 바다에서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으리라 보았고.

‘어차피 우리는 무역만 할 수 있으면 돼. 다른 나라처럼 곳곳에 방어 거점을 비롯한 거대한 식민지를 구축하기엔 인구가 워낙 부족하니. 그러니...북미왕국이 각 지역에 거점 항구를 만드는 것을 돕는 대신 나중에 무역으로 이득을 취하면 그만이지.’

그렇게 네덜란드 대사와 프랑스 대사, 잉글랜드 대사가 동상이몽을 하는 동안 이들과 조금 멀리 떨어져 있던 정성국은 옆에 있던 군사청장과 김봉길, 그리고 조용한 곰과 대화를 나누었다.

“출항하면 바로 태평양을 횡단해 말라카 항으로 이동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하와이 제도를 거쳐 마리아나 제도, 필리핀 북부의 일로카노 항을 거쳐 곧바로 말라카 항으로 이동할 겁니다.”

정성국의 물음에 김봉길이 대답하자 정성국은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저 함대가 말라카 항에 도착하는 데 얼마나 걸리려나? 한 달 정도?”

“물론 전력으로 항해하면야 3주 정도로 단축할 수 있겠습니다만...굳이 무리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해서 중간에 들르는 항구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해 피로를 푼 후 이동할 예정이라 일단 45일 정도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45일?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

물론 이곳에서 말라카 항까지 꽤 멀긴 하지만, 생각외로 오랜 시일이 걸린다는 생각에 정성국이 중얼거리자 김봉길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시다시피 동남아시아 해역은 아직 아국에 익숙한 해역이 아니잖습니까. 거기에 7함대 소속 함장들도 비슷한 처지고, 물론 삼태극 깃발을 휘날리는 저 아국의 대규모 함대를 공격하는 미친 해적들은 없겠지만...만약을 대비해야 하는 만큼 일로카노 항에서 말라카 항까지 이동하는 도중엔 항해 속도를 늦추고 주변을 경계하며 항해할 예정이라 좀 오래 걸리지요.”

김봉길의 설명에 상황을 이해한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고개를 바다로 돌리며 중얼거렸다.

“그럼 10월 말에 도착해 거점 항구를 건설하기 시작하겠군.”

이에 옆에 있던 군사청장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전하. 그리고 내년 6월에 필수적인 시설을 모두 건설 완료할 생각이며, 그 후 실론 섬에 분함대가 머물 수 있는 거점 항구를 건설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7함대는 주야장천 주변 해역을 순찰하며 해적들을 소탕할 계획이고요.”

김봉길이 부럽다는 듯 7함대를 바라보며 투덜거리자 정성국은 그런 김봉길을 바라보고 타박했다.

“허. 그게 그렇게 부럽나? 그 무더운 지역에서 한참을 고생해야 하는데?”

“무덥긴요. 어차피 냉방장치를 풀로 가동할 텐데요.”

“끙...”

7함대의 경우 무더운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하는 터라 병사들의 건강과 사기를 위해 7함대 소속 선박엔 냉방장치를 장착해 무더위 속에서도 큰 어려움 없이 작전을 치를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한 정성국이었다.

더불어 저기 보이는 수송선들에도 말라카 항에 설치할 대용량 발전기와 냉방장치가 수없이 실려 있기도 했고.

해서 할 말이 없어진 정성국은 다시 고개를 돌려 조용한 곰을 보고 물었다.

“그보다 팔렘방 술탄국과 반자르 술타국과의 협상은 어떻게 되어가나?”

“일단 반자르 술탄국과의 협상은 순조롭습니다.”

“그래?”

북미왕국이 석유가 나는 땅을 확보하기 위해 두 나라와 본격적으로 접촉해 교섭하면서 주기적으로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새한성으로 소식이 전해졌고, 이때 두 나라 모두 반응이 썩 좋지는 않았기에 정성국은 내심 걱정했는데, 조용한 곰의 대답은 예상과 달랐기에 정성국이 반색하자 조용한 곰이 미소지으며 답했다.

“예. 반자르 술탄국의 술탄 아궁은 네덜란드 세력의 영향력을 무척 경계한 터라 처음 네덜란드와의 연줄을 이용해 접촉했을 때는 아국을 무척 경계했습니다만...반자르 술탄국은 여러 나라와 후추 무역을 하고 있기에 타국의 상인들을 통해 나라 바깥의 사정을 어느 정도 들을 수 있었고, 덕분에 아국이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원주민 세력을 공격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모양입니다.”

조용한 곰의 설명에 정성국이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조금 쉽게 동남아시아에 진출하려고 네덜란드를 이용하려 했는데 오히려 방해만 된 셈이로군.”

이에 조용한 곰은 쓰게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술탄 아궁은 이전과는 달리 꽤 우호적으로 외무청 전권 대사를 대하고 있답니다. 다만 아국은 항구와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지역 전체를 확보하려 하는데 이 지역들이 비록 쓸모없는 땅이라고 해도, 항구와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지역을 모두 합하면 면적이 조금 되는 편이라 이를 타국에 넘기는 것이 부담스러운 모양입니다. 해서 외무청 전권 대사는 일단 여러 조건을 내걸고 술탄 아궁을 설득 중이라는 연락을 전해왔습니다.”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이전엔 별다른 교류도 없는 타국이 갑자기 접촉해 항구를 건설할 땅이 필요하니 땅을 팔아달라고 정중히 요청하는 건데 이걸 바로 받아들이기가 어디 쉽겠는가.

물론 현대와는 달리 지금 시대엔 아예 말이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니긴 한데, 그렇다고 해도 영토를 타국에 판매하는 것은 타국에 굴복한다고 알려질 수 있었고, 잘못하면 왕의 권위가 떨어질 수도 있는 문제이기도 했으니.

해서 정성국은 조용한 곰에게 말했다.

“그래. 일단 최대한 설득해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영토 할양 말고 자원 개발권만이라도 확보하게.”

“물론입니다.”

“그리고 팔렘방 술탄국은?”

정성국의 질문에 조용한 곰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덜란드가 팔렘방에 진출하다 약 20년 전에 팔렘방을 점령하고 약탈하고 방화해 궁궐마저 파괴되었기에 팔렘방 술탄국은 네덜란드를 무척 적대시합니다. 특히 팔렘방 술탄국의 현 술탄인 압두라만은...”

조용한 곰이 말을 흐리자 정성국은 설마 하는 얼굴로 조용한 곰을 보며 질문을 던졌다.

“어? 설마...당시의 술탄인가?”

“후계자로서 네덜란드가 팔렘방을 파괴하는 것을 목격하고 바로 왕위를 물려받아 팔렘방을 재건한 인물이지요. 그렇다 보니 동남아시아에선 네덜란드와 긴밀한 관계로 알려진 아국도 극도로 경계하는 터라 별다른 성과는 없습니다.”

이에 정성국은 속으로 동남아시아에서 똥을 퍼지르게 싼 네덜란드, 정확히는 동인도회사를 욕한 후 입을 열었다.

“끙. 팔렘방의 유전이 말라카 항에 가까워서 이곳은 꼭 확보하고 싶었는데.”

“다만 팔렘방에 파견된 전권 대사가 술탄 압두라만을 설득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기에 포기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리고 저 7함대가 말라카 항에 주둔해 동남아시아 해역을 약탈하는 유럽 해적들을 토벌하기 시작하면 술탄 압두라만의 생각도 변할 거라고 생각하고요.”

조용한 곰의 설명에 정성국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알겠네. 그럼 너무 조급히 설득하려 들지 말고, 장기적으로 접근하라 하게. 뭐 일단은 무역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것도 괜찮겠고.”

“알겠습니다. 그리 전하도록 하지요.”

그때 기적이 울리며 마지막으로 예포를 발사한 7함대가 일제히 선수를 돌려 미리 도열해 있던 수송선과 합류해 거대한 함대를 구성한 후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고, 정성국은 조용한 곰과의 대화를 멈추고 고개를 돌려 조금씩 멀어지는 저 함대가 큰 사고 없이 말라카 항에 도착하기를 기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