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695화 (695/850)

695화

“부르셨습니까. 전하.”

정성국이 막 커피를 내리고 있을 때,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조용한 곰이 들어오며 인사하자 정성국은 조용한 곰에게 손짓했다.

“아. 왔나. 이리로 오게.”

정성국은 조용한 곰을 집무실 한쪽의 티테이블로 부른 후 내리고 있던 커피를 따라 건넸고, 조용한 곰은 정성국이 건네주는 커피잔을 받아들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오. 감사합니다. 이거 오랜만에 전하께서 내려주시는 커피를 마시는군요.”

정성국은 커피를 마저 내려 자신의 커피잔에 커피를 따르다 그런 조용한 곰의 말을 듣고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커피가 다 거기서 거기지. 그보다 내가 자네를 부른 건 네덜란드, 그리고 덴마크와 동맹을 맺는다는 소식을 접한 다른 나라 대사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말이야.”

딱히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기에 어제 있었던 청장 회의에서 조용한 곰은 따로 보고하지 않았고, 정성국도 따로 묻지는 않았지만, 각국 대사들의 반응이 영 궁금했던 정성국이 따로 불러 묻자 조용한 곰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입을 열었다.

“아. 그러십니까? 먼저 에스파냐 대사는...”

조용한 곰은 정성국이 궁금해하는 각국 대사들의 반응을 하나하나 설명했는데, 정성국의 예상대로 다른 나라들은 북미왕국이 외교 정책의 방향을 바꿔 유럽 국가와 동맹을 맺기로 했다는 소식에는 놀라며 어떻게든 북미왕국의 동맹을 추진하려 했지만, 북미왕국이 동맹 조약에 꼭 삽입해야 한다는 조항들을 확인한 후엔 급히 말을 돌렸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역시나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대사관을 두고 대사를 파견한 나라 가운데 덴마크, 네덜란드 정도를 제외하면, 다들 나름 한 가닥 하는 나라들이다 보니 세력 확장이 불가능해지는 것을 절대 원치 않을 것이 분명했기에.

다만 조용한 곰이 마지막으로 설명한 프랑스 대사의 반응은 정성국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기에 조용한 곰의 말이 끝나자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흠. 프랑스의 반응이 조금 의외로군.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관계를 생각하면 항의라도 할 줄 알았는데.”

루이 14세가 네덜란드를 얼마나 눈엣가시로 여기는지는 누구나 알 정도였고, 그 때문에 새한성 조약을 통해 평화 조약을 체결했다 하더라도, 평화 조약의 기한이 끝난다면 루이 14세는 다시 프랑스를 침공할 거라는 것이 외교가의 예측이었다.

허나 이번에 북미왕국이 네덜란드와 동맹을 맺게 됨으로써 프랑스는 더 이상 네덜란드를 침공하는 것은 불가능해졌으니 당연히 프랑스 대사는 이에 대해 항의할 거라 여겼는데 조용한 곰의 말로는 네덜란드와 맺기로 한 동맹의 성격과 동맹 조약의 일부 내용을 확인한 이후엔 선선히 네덜란드와의 동맹을 축하했다고 하니 정성국으로선 의외일 수밖에 없었고.

이런 정성국의 의문에 조용한 곰이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그게...새한성 조약을 체결했기에 당분간 네덜란드를 노리긴 어렵고, 네덜란드와의 동맹은 전하께서 직접 빌럼 3세와 합의한 내용이다 보니 프랑스 대사가 항의한다 한들 결정이 뒤바뀔 일도 없지 않습니까.”

“아...그래서 괜히 항의해 양국의 관계를 악화시키기보다는 넘어갔다는 건가?”

“예. 저는 그렇게 추측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공수동맹이면 모를까 방어 동맹에 불과하고 네덜란드가 타국의 일에 개입하면 아국과의 동맹은 파기되는데 대프랑스 전쟁 이후 국력이 확 꺾여버린 네덜란드가 과연 그런 선택을 하겠느냐 하는 생각도 있을 테고요.”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입을 열었다.

“흠. 우리와의 동맹으로 더는 네덜란드를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나쁘지 않다는 건가?”

“예. 프랑스 대사와 대화를 나눠보니 최소한 프랑스 대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프랑스는 현재 유럽의 최강국 아닙니까. 그러니 아국과 동맹을 맺는다면, 타국의 견제를 받지 않고 지금의 우위를 계속 지킬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아국과의 동맹을 꽤 긍정적으로 바라보더군요.”

“허. 그래?”

주변국과의 마찰도 감수하며 끊임없이 영토를 확장하려 한 프랑스이니만큼, 당연히 북미왕국과의 동맹은 다른 나라처럼 거리를 둘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기에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으려 한다는 것은 의외였던 정성국이 헛웃음을 짓자 조용한 곰이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아국과의 동맹을 맺는다면 프랑스의 행동에도 제약을 받게 되는 만큼, 아무리 전권을 위임받은 프랑스 대사라 하더라도 홀로 결정할 수는 없는 문제라 더는 이야기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에스파냐 대사나 잉글랜드 대사의 반응과는 확실히 다르더군요.”

조용한 곰의 말처럼 아무리 전권을 위임받은 북미왕국 주재 프랑스 대사라 하더라도 북미왕국과의 동맹을 홀로 결정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해서 정성국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잠시 유럽의 정세와 루이 14세의 성향 등을 고려해보다가 입을 열었다.

“흐음...근데 프랑스 대사는 우리와의 동맹을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루이 14세의 생각은 조금 다를 것 같은데?”

파리에 주재하며 가끔 루이 14세와 알현했던 북미왕국 대사의 말에 따르면 대프랑스 전쟁 이후 루이 14세는 무척 기고만장한 상태라고 평가했다.

프랑스를 둘러싼 여러 나라들이 동맹을 맺고 프랑스를 공격했음에도 시종일관 우세한 상황이었으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는 했고.

거기에 전생의 루이 14세는 영토의 확장을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니 정성국은 루이 14세가 과연 현 상황을 유지하고자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을까 싶었고, 조용한 곰 역시 이런 정성국의 생각에 동의했다.

“맞습니다. 파리에 주재하는 북미왕국 대사의 보고에 따르면 루이 14세는 계속해서 유럽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고 하니 말입니다.”

“쩝. 뭐 예상대로긴 한데 조금 아쉽긴 하군. 꼴을 보니 기회만 되면 다시 전쟁을 시작할 것 같아서 말이야.”

네덜란드가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었으니 반프랑스 동맹의 주축 중 하나가 사라진 셈이었다.

그런 만큼 에스파냐나 신성로마제국은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해 어떻게든 잉글랜드를 자신들 쪽으로 끌어들이려 할 것이 분명했고.

비록 찰스 2세가 친프랑스 파이기는 하지만 잉글랜드의 귀족들은 프랑스의 승승장구를 무척이나 배 아파하는 만큼, 잉글랜드도 프랑스 견제에 동참할 가능성이 크고, 그러다가 다시 서유럽에서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대유럽 무역은 엉망이 될 수밖에 없기에 정성국이 혀를 차자 조용한 곰이 정성국을 달래듯 웃으며 말했다.

“뭐 어쩌겠습니까. 그게 저들의 선택인 것을요. 다만 저들이 다시 전쟁을 시작하면 이전처럼 무역량이 대폭 줄어들어 아국에도 피해가 생길 테니, 이를 미리 대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겠군. 관리청장에게도 따로 말해 둬야겠고.”

북미왕국의 경제에서 유럽과의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컸다.

그렇기에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말처럼 미리미리 대비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고개를 끄덕이자 조용한 곰이 덧붙였다.

“그리고 덴마크에 투자한 것처럼 네덜란드에도 투자한다면 네덜란드의 경제도 빠르게 복구될 테고, 자연히 아국과의 교역량은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현재 덴마크나 네덜란드는 상황이 상황이라 무역량이 대폭 줄어들었는데, 덴마크야 원래 경제 규모가 작기에 무역량도 큰 편이 아니라 상관없지만, 네덜란드는 원래 부유한 나라기도 했고, 네덜란드 상인들이 중개 무역도 하는 터라 사치품을 대거 수입했었는데 전쟁 이후에는 이 사치품 수입이 급감했다.

초토화된 네덜란드 남부 지역을 복구하기 위한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을 대폭 올렸고, 동유럽에서는 다시 전쟁이 벌어졌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네덜란드와의 무역으로 꽤 많은 이득을 챙겨왔던 북미왕국으로서는 무척 아쉬울 수밖에 없었고.

그러니 네덜란드에 투자해 네덜란드의 경제가 회복되도록 돕는 것이 어떻겠냐는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은 괜찮은 생각이라고 여기며 눈을 빛냈다.

“호오. 네덜란드에 투자라...그거 괜찮네. 바로 왕실 상단을 움직여야겠군. 그리고 기왕 네덜란드에 투자하는 김에 다른 동맹국들에도 더 많이 투자하는 것도 괜찮겠고.”

오삼계가 죽으면서 중원의 전쟁은 더욱 격화된 만큼, 당분간 대중국 무역도 정체될 것이 분명하니 기왕 네덜란드에 투자하는 김에 다른 동맹국에도 더 많이 투자해 빠르게 발전시켜 북미왕국의 소비 시장으로 만드는 것이 괜찮겠다고 판단한 정성국이 이렇게 이야기하자 조용한 곰은 정성국의 결정에 찬성했다.

“그것도 좋겠지요. 동맹국들의 발전할수록 아국의 경제에도 도움이 될 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아국의 동맹국들이 빠르게 발전한다면, 다른 나라들도 결국 아국과의 동맹을 원할 테고, 그러면 아국의 경제는 더욱 번창하지 않겠습니까.”

조용한 곰의 이야기에 정성국은 앞으로의 일이 기대되는지 웃음을 흘렸다.

“흐.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군. 그보다 동유럽에서의 전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기왕 조용한 곰을 부른 김에 유럽의 최근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고자 정성국이 동유럽에서 한창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관해 묻자 커피를 마시며 목을 축이던 조용한 곰이 커피잔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오스만 제국이 조금 밀리고는 있지만, 폴란드, 신성로마제국을 비롯한 여러 연합군의 공세를 잘 막아내고 있습니다.”

“호오. 그래?”

“예. 거기에 오스만 제국의 주력 병력이 헝가리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틈을 타 러시아 차르국이 평화 조약을 깨고 쳐들어와 순간 밀렸지만, 아국이 이번에 판매한 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병력을 아조프로 파견했다고 들었으니 러시아 차르국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거라 판단하고요.”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설명에 감탄하듯 중얼거렸다.

“허. 오스만 대사가 하도 우는소리를 하길래 조금 위험한 것이 아닌가 했더니만...역시 오스만 제국은 오스만 제국이군.”

북미왕국이 잉글랜드와 함께 서유럽에서 진행되던 대프랑스 전쟁을 중재하기 시작하자 새한성에 주재하던 오스만 대사는 엄청 쫑알거렸었다.

더불어 더는 뒤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 신성로마제국과 이 기회에 동유럽에서 오스만 제국의 영향력을 줄이려는 폴란드가 전군을 동원해 빈에서 후퇴하는 오스만 제국군을 추격하면서 오스만 대사는 죽는소리를 하며 아직 넘겨주지 않은 신식 소총과 더불어 추가로 신식 소총을 팔아달라고 난리를 쳤었고.

그렇기에 정성국은 오스만 제국의 상황이 썩 좋지 않다고 짐작했는데, 올라오는 보고를 보아하니 조금 밀리기는 했지만 여러 방면에서 밀고 들어오는 다른 나라들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 보였기에 정성국은 역시 오스만 제국이라고 감탄하자 조용한 곰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괜히 신식 소총을 추가로 넘겼다 싶기도 하고요.”

정성국 역시 조용한 곰과 비슷한 생각이었지만, 이미 신식 소총을 넘긴 후였기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뭐 이미 넘긴 거니 어쩔 수 없고...이를 기억하고 있다가 추가로 넘기지만 않으면 되겠지. 그보다 오스만 제국과의 무역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터라 이번 동유럽에서의 전쟁이 아국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테지만...그 전쟁의 불길이 다시 서유럽으로 번질 수 있으니 정보 획득에 최선을 다해주게.”

“알겠습니다. 전하.”

“그리고 따로 보고할 사항은 없지?”

정성국의 물음에 조용한 곰이 잠깐 생각에 잠겼다 말했다.

“아국과 관련된 내용이야 어제 말씀드린 것이 전부입니다만...오늘 아침에 새로운 소식이 하나 도착했는데 전하께서도 이 소식에 관심을 두실 것 같군요.”

“음? 무슨 소식인데?”

정성국이 조용한 곰을 바라보자 조용한 곰이 말했다.

“청나라가 섬서성을 완전히 탈환했다는 보고입니다.”

“뭐?! 섬서성을?”

주나라에 빼앗겼던 섬서성을 고작 한 달 만에 탈환했다는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섬서성만 하더라도 한 나라와 비견될 정도로 큰 영역이었는데, 이 정도로 커다란 영역을 한 달 만에 탈환했다는 것은 그만큼 청나라의 기세가 대단하다는 의미였으니까.

“예. 저도 소식을 듣고 놀랄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청나라의 기세가 대단하고...주나라의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뜻이니까요. 거기에 주나라가 이렇게 쉬이 섬서성을 잃은 것은 그만큼 오세번을 못 미더워하는 자들이 많다는 뜻이니...”

“허. 이거 잘못하면 주나라가 쭉 밀릴 수도 있겠군.”

“예. 투로시노나 정일신 3함대 사령관도 그 점을 우려하더군요. 더불어 유럽 대사들도 이 소식을 듣는다면 기겁하겠지요.”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지금 개입해봐야 청나라의 반발이 심하겠지?”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전하의 생각처럼 청나라가 주나라나 동녕국을 인정하려면 청나라가 불리한 상황이어야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청나라 이전의 중국 왕조는 내부가 안정되면 그것에 만족하고 장성 밖을 나오지 않았지만, 청나라는 상황이 달랐다.

그러니 정성국은 중국 대륙이 3개로 나뉜 현 상황을 유지하고 싶어했고.

해서 유럽의 일에 끼어들어 중재한 것처럼 청나라와 주나라, 그리고 동녕국 사이를 중재하고 싶었지만, 오삼계의 죽음으로 기회를 잡은 청나라의 반발이 거셀 거라는 조용한 곰의 의견에 정성국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우. 어쩔 수 없군. 일단 이 소식을 바로 유럽 대사들에게 흘려 유럽 본국에서도 주나라와 동녕국에 물자를 지원할 수 있게끔 유도하게. 그리고 청나라의 기세가 꺾일 때 한 번 개입해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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