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694화 (694/850)

694화

가족들과 함께 나이아가라 폭포를 감상하고, 인근에 지어진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은 정성국은 가족들과 헤어져 곧바로 나이아가라 폭포 인근에 임시로 만든 활주로로 향했다.

여기서 다시 배를 타고 새진주까지 가려면 빙 돌아가야 했기에 꽤 오랫동안 새한성을 비웠던 정성국으로서는 불편하더라도 비행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 후 비행기를 타고 빠르게 내륙 지역을 통과하던 정성국은 중간에 알칸사스 지역에 들러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이상기후로 인해 걱정하던 주민들을 잠시 위무한 후, 바로 새한성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정성국은 거의 한 달 가까이 자리를 비웠기에 집무실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보고서 더미를 뒤로 한 채 회의실로 이동해 오랜만에 보는 청장들과 잠깐 잡담을 나눈 후 바로 청장 회의를 시작했다.

“미시시피 지역과 알칸사스 지역을 직접 방문해보니 생각외로 분위기가 좋더군. 행정청에서 이상기후로 불안해하는 현지 주민들을 잘 다독인 것 같아.”

“그보다는 이상기후로 피해를 본다 하더라도 나라에서 자신들을 외면하지 않고 도와줄 거라는 확고한 믿음을 심어주었기 때문일 겁니다. 현지 주민들은 예전 가뭄이 닥쳤을 때도 나라에서 도움받은 경험이 있으니까요. 거기에 이번엔 전하께서도 직접 방문하실 정도로 미시시피 지역과 알칸사스 지역을 챙긴다는 것을 만방에 알린 셈이니 어찌 분위기가 나쁘겠습니까.”

행정청장이 두 지역의 민심이 안정적인 것을 정성국의 공으로 돌리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다만 계속된 이상기후로 인해 작물 대부분이 타버리면서 농부들은 올해 농사를 포기한 상황이고, 당분간 할 일도 없다 보니 헛짓거리를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더군.”

“설마 도박을?”

정성국의 말에 행정청장이 안색을 굳히며 되묻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가볍게 게임을 하는 것 정도는 이해하겠는데, 이번에 두 지역을 들르면서 각 마을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는 옛 추장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부는 꽤 큰돈을 걸고 게임을 하는 모양이야. 이 때문에 서로 주먹질을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하더군.”

농부들은 추수 이후에는 여유가 있을지 몰라도, 그 전까지는 무척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헌데 미시시피 지역과, 알칸서스 지역에는 이상기후가 발생해 작물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고, 이를 어떻게든 막으려고 강하게 내리쬐는 햇살 아래서 움직였던 농부들이 더위를 먹고 쓰러지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행정청에서 이런 사실을 알리며 낮에는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고 권유하니 농부들은 강제로 쉴 수밖에 없었고.

그러니 갑작스레 시간이 남아돌게 된 농부들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끼리끼리 모여 술을 마시거나 정성국이 개입해 최근 북미왕국에서 유행 중인 각종 게임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북미왕국 백성들이 모두 운동 같은 실외 활동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자연스럽게 실내에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놀이를 찾았는데,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놀이라고 해봐야 바둑, 장기, 체스 정도가 전부이다 보니 이를 딱하게 여긴 정성국이 왕실 상단을 통해 전생의 여러 보드게임을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퍼트렸고, 이것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농부들도 이 게임을 즐긴 것이다.

그리고 일부는 게임의 재미와 긴장감을 위해 승패에 돈을 걸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촌장이나 다름없기에 마을 사정에 훤한 옛 추장들은 기왕 정성국을 만난 김에 이 문제를 알렸고, 정성국은 게임을 퍼트린 것이 자신이었기에 이러한 문제가 생기자 안타까워하면서, 그리고 자칫 잘못해서 미시시피 지역과 알칸사스 지역의 농부들이 도박에 중독될 것을 우려해 바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고 말이다.

“허. 이거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아국에선 도박을 강력하게 금지하고 있는데...”

이런 정성국의 설명에 행정청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정성국은 도박에 중독되면 치료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처음부터 도박을 강력하게 금지했고, 이 때문에 북미왕국에선 도박하다 걸리면 탄광행이었으니 북미왕국 백성들은 탄광행이 두려워 주사위나 골패는 재미로라도 손을 대지 않았으니 말이다.

“뭐 재미를 위해 약간의 돈을 걸다 액수가 점차 오른 모양이더군. 그리고 도박이라고 하면 보통 주사위나 골패 등을 떠올리다 보니 게임의 경우는 크게 문제가 없을 거라고 여긴 모양이고.”

북미왕국의 법에서야 돈이나 재물을 걸고 주사위, 골패 등을 사용해 서로 따먹는 행위를 도박으로 간주하지만, 모든 백성이 북미왕국의 법전을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니다 보니, 북미왕국 백성들에게 있어 도박이란 그저 돈을 걸고 주사위, 골패를 하는 것에 불과했고, 그러니 거리낌 없이 게임의 승패에 돈을 건 것 같다는 정성국의 말에 행정청장은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책을 세웠다.

“으음...허면 행정청에 알려 백성들을 계도하고, 치안국에 이야기해 순찰을 강화하도록 하겠습니다.”

“흠. 순찰 강화뿐만 아니라, 국영 은행의 협조를 구해서 평소와는 달리 자주 돈을 인출하는 주민들을 중점적으로 조사하라고 전하게.”

“아.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그리하도록 하지요.”

행정청장이 정성국의 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 있던 법무청장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전하. 도박을 막기 위해선 행정청에서 계도하는 것보다 북미신문을 통해 도박에 개념을 백성들에게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봅니다.”

“필요 이상의 금액을 걸고 게임을 하면 모두 도박으로 분류한다는 것을 널리 알리자는 거지?”

“그렇습니다. 전하. 더불어 도박으로 인해 패가망신하는 사례를 꾸준히 북미신문에 싣는다면, 담배처럼 백성들이 알아서 도박을 멀리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북미왕국 백성들은 이제 담배를 거의 피우지 않는다.

처음 정성국이 담배를 독초로 지정하며 담배의 재배와 흡연을 금지했지만, 그동안 약으로 생각하며 피워오던 조선인, 원주민, 그리고 유럽인들은 담배를 쉬이 끊지 못하고 알음알음 재배해 피우곤 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던 보건청은 북미신문에 담배는 백해무익하다는 내용의 공익 광고를 냈고, 담배로 인해 건강을 잃고 골골대는 사람, 담배 연기로 죽은 동물들과 동물들의 폐 사진, 그리고 담뱃불로 인해 일어난 화재와 관련된 기사를 마구 실어 백성들이 은연중에 담배를 혐오하게 만들었고, 결국 북미왕국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담배를 멀리하게 되었다.

그러니 도박도 비슷한 방식을 사용해 북미왕국 백성들 스스로 멀리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법무청장의 말에 정성국이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고 여겼고.

“흠. 좋은 방법이네. 그럼 그 건은 법무청에서 진행하도록 하게. 공익 광고도 법무청의 이름으로 내고.”

“알겠습니다. 전하.”

그렇게 도박 문제를 마무리한 정성국은 다시 행정청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누벨 프랑스 지역에선 총기 사고가 종종 발생한다고 들었는데...”

“아. 그건 꼭 누벨 프랑스 지역만의 일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원주민 출신의 성인 남성들은 사냥에 익숙한 만큼, 그리고 신식 소총을 이용하면 쉽게 동물을 사냥할 수 있는 만큼 주말마다 신식 소총을 들고 평원으로, 산으로 나돌아다니는 터라 종종 사냥감으로 오인하고 방아쇠를 당겨 총기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가 보고되거든요.”

행정청장의 설명에 정성국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허. 신식 소총을 마구 사용하다 사고가 날까 봐 총알 가격을 터무니없이 비싸게 책정했는데도 사냥을 취미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는 소린가?”

북미왕국의 영역이 워낙 넓었기에 완전하게 치안을 유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고, 야생동물 중에는 인간을 위협할만한 동물들도 많았다.

그러니 정성국은 총기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고.

다만 전생처럼 총기로 인해 수많은 사고가 발생할 것을 우려한 정성국은 총알의 가격을 올려 섣불리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게 하려 했는데 그의 예상과는 다른 상황이 벌어지자 정성국은 황당하다는 반응이었고,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행정청장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총알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싼 것은 사실입니다만 아국의 백성들은 부유하잖습니까. 특히 신식 소총을 구매한 이들은 대부분 마을 외곽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고 아국에서 농부들은 대부분 알부자다 보니...”

“취미 활동에 돈을 쓰는 것 정도는 크게 부담스러워하지 않는다 이건가?”

“부담스럽긴 한데 그렇다고 사냥을 포기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정확할 겁니다.”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북미왕국에서는 경운차를 이용해 혼자서도 넓은 농경지를 감당할 수 있다 보니, 게으름을 피우는 농부들을 제외하면 다들 부유한 편이기는 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정성국은 골치 아프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끙. 그렇다고 일부러 농부들의 수입을 줄일 수야 없으니...결국, 총알 가격을 더 올려야 하나?”

“지금도 과한 편인데 그건 조금...”

행정청장의 말에 맞은 편에 앉아있던 보건청장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계속 총알 가격을 올린다고 해도 사냥을 그만두진 않을 겁니다. 지금도 총알 가격이 부담스러운 백성들은 활과 화살로 사냥을 하고, 이 때문에 화살을 맞고 다친 백성들도 종종 나오거든요.”

정성국이 민간에 신식 소총을 판매한 것은 인적이 드문 곳은 위험한 야생동물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미왕국 백성들이 사냥하는 곳은 대부분 인적이 드문 지역들이라 늑대, 곰 등 여러 위험한 야생동물들이 존재하며, 사냥을 나서는 이들도 이를 모르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사냥하러 갈 때는 신식 소총도 가져가되 만약의 경우에만 위협용으로 사용하고, 그 외에는 활과 화살을 이용해 사냥하는 경우도 많으며, 보통 이런 이들이 사냥하는 곳이 겹치다 보니 사냥감으로 오인해 화살을 맞는 경우도 있다는 보건청장의 설명에 정성국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거참...그럼 사냥 자체를 금지하는 건 의미가 없겠네?”

“예. 사냥을 좋아하는 백성들이 많아서 반발이 심할 겁니다. 그리고 몰래 사냥을 하겠지요.”

행정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이 이를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군사청장이 슬쩍 의견을 제시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라면, 사냥 구역을 따로 정해서 사냥 구역 안에서만 사냥하도록 규제하고, 사냥할 때는 꼭 눈에 띄는 색깔로 만든 외투를 착용케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봅니다.”

이에 정성국은 한참 머리를 굴렸지만, 군사청장의 말마따나 오발 사고를 줄이기 위해 눈에 띄는 외투를 강제로 착용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나은 방법 같았기에 한숨을 내쉬며 행정청장을 바라보았다.

“휴우. 하는 수 없지. 일단은 군사청장의 말대로 하고...어지간하면 다른 취미를 갖게끔 유도하게. 이 건은 교육청장이 맡았으면 좋겠군.”

이에 교육청장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 알겠습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주말 교실을 만들어 사냥이 아니라 다른 취미에 흥미를 갖도록 해보겠습니다.”

“오! 그거 좋군. 전폭적으로 지원해줄 테니 그렇게 하게. 그리고...”

그 후로도 정성국은 이번에 각 지역을 방문하면서 만난 대추장, 추장들의 건의 사항들을 하나씩 거론하며 현지 주민들이 불편해하는 사항들이나 필요한 시설의 건설을 명령했고, 이후에는 청장들에게 그가 자리를 비울 동안 일어났던 일을 간략히 보고받았지만, 아무리 간략히 보고한다고 해도 워낙 보고할 것이 많았기에 자연스레 청장 회의는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해서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회의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정성국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어휴. 새한성을 장기간 비웠다 복귀할 때마다 이 고생이네. 역시 기동이를 갈궈서 더 나은 비행기를 개발하게 하거나...청장들의 권한을 더 늘려 보고할 거리를 최대한 줄이던가 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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