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3화
기차에서 내린 정성국과 왕실 가족은 바로 마차를 타고 동쪽으로 이동했고, 30분 정도 이동했을 때, 멀리서 물이 떨어지며 나는 소음이 들리기 시작하자 마차 안의 왕실 가족들은 나이아가라 폭포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정안문이나 정나리는 조금이라도 빨리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기 위해 창문에 얼굴을 가져다 대자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정성국은 웃음을 흘렸고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마차가 멈추자 정성국은 아이들의 재촉에 바로 마차에서 내려 나이아가라 폭포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을뿐더러 울타리를 쳐서 안전하게 관람할 수 있는 자리로 이동했고.
“우와...”
“어머. 폭포가 정말 크네요.”
“그러게요. 형님. 저렇게 큰 폭포는 처음이에요.”
나이아가라 폭포의 전체적인 모습도 장관이었지만 수많은 물이 폭포에서 떨어지며 피어오르는 물안개로 인한 몽환적인 모습과 날씨가 화창하기에 이 물안개로 인해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에 거대한 무지개까지 드리우자 정안문과 정나리는 차마 입을 다물지 못하며 멍하니 폭포를 응시했고, 전아라와 하얀 들꽃은 쉬이 보기 힘든 거대한 폭포의 모습과 신비하고 아름다운 풍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다만 정성국은 이런 풍경을 보고 왕실 가족들과는 달리 조금은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가 기억하는 나이아가라 폭포와는 달랐기에.
나이아가라 폭포는 총 3개의 폭포로 이루어져 있었다.
원래는 커다란 하나의 폭포였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지형이 깎여나가며 폭포 모양이 변해 1개의 소형 폭포와 2개의 대형 폭포로 나뉘었고.
그리고 전생에선 나이아가라 폭포가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에 걸쳐 있었기에 미국 국경에 있는 대형 폭포는 미국 폭포, 캐나다 국경에 있는 대형 폭포는 캐나다 폭포라고 불렸는데 미국 폭포는 직선적인 형태인 데 반해 캐나다 폭포는 U자형으로 되어 있어 폭포의 규모나 경관이 무척 빼어났기에 나이아가라 폭포 하면 대부분 이 캐나다 폭포를 떠올렸고 말이다.
다만 이 캐나다 폭포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약 300년 후의 모습이었을 뿐이지 지금 정성국의 눈앞에 있는 폭포는 달랐다.
약간의 곡선이 존재하긴 했지만, 거의 직선 형태에 가까운 폭포라 정성국이 기대하던 전생의 나이아가라 폭포의 모습과는 상당히 달랐기 때문이다.
‘흠. 사진을 통해 짐작하긴 했지만 역시나로군. 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대략 300년의 격차가 있으니 어쩔 수 없나?’
나이아가라 폭포는 일단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폭포로 알려져 있었기에 이를 찍은 사진들도 많았고, 북미신문에 여러 번 실리기도 했던 터라 정성국도 전생의 모습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자신이 아쉬워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기에 아쉬운 마음을 훌훌 털어버리고 잠시 시원하게 떨어지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감상했고.
그러다 고개를 돌려 폭포 뒤쪽에서 끊임없이 밀려오는 풍부한 강물을 보고 다시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이 나이아가라 폭포는 세계에서 가장 큰 폭포는 아니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량을 자랑하는 폭포였지? 거기에 오대호의 물이 이 나이아가라 강을 따라 흐르는 만큼 수량도 풍부할 테고...이곳에 수력 발전소를 건설하면 막대한 양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겠는데?’
북미왕국의 기술 수준이 발전하면서 전기를 이용해 작동하는 수많은 기계가 발명되었고, 북미왕국의 백성들은 부유한 편이었기에 이런 기계들을 사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여기에 북미왕국에서는 아직 전기요금을 걷지 않다 보니 북미왕국 백성들의 전기 소모량은 가파르게 늘어났고.
그러니 늘어나는 전기 소모량을 감당하기 위해 개발청에서는 따로 발전소 건설만 전담하는 부서를 세울 정도로 전기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는데, 이곳에 커다란 수력 발전소를 생산하면 최소한 누벨 프랑스 지역과 이로쿼이 지역에서만큼은 꽤 오랫동안 전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개발청에서도 운하 공사가 끝나면 이곳을 누벨 프랑스의 또 다른 거점 지역으로 삼고 본격적으로 개발할 예정이라고 한 만큼 미리미리 준비해두는 것이 나을 것 같군. 새한성으로 돌아가자마자 개발청장에게 말해야겠어.’
그렇게 정성국은 각종 업무에 치여 사는 개발청장에게 또다시 막대한 일거리를 넘겨줄 생각을 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하는 휴식 여행의 마지막 일정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정성국이 페로 제도에서 크리스티안 5세, 빌럼 3세와 직접 만나 북미왕국과 덴마크-노르웨이 왕국, 그리고 북미왕국과 네덜란드 동맹을 맺기로 잠정 합의하고, 퀘벡에 도착해 전화로 이 소식을 새한성에 알리자 조용한 곰은 무척 바빠지기 시작했다.
뒤늦게 이러한 소식을 접한 유럽 각국 대사들이 조용한 곰을 방문하기 시작했기에.
물론 조용한 곰도 유럽 대사들의 행동을 이해했다.
북미왕국의 국력은 다른 유럽 어떤 국가보다도 월등했기에 예전부터 유럽국가들은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길 원했었으니까.
다만 지금껏 북미왕국은 유럽 각국의 복잡한 외교 관계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기에 거리를 두었고. 각국은 다른 어떤 유럽국가와도 동맹을 거부하는 모습에 최소한 자신들의 적국이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고 자신들을 위협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에 안심하고 있었고.
헌데 이번에 북미왕국이 네덜란드, 덴마크와 전격적으로 동맹을 맺으면서 상황은 완전히 변한 것이다.
여기에 네덜란드, 덴마크와도 동맹을 맺은 북미왕국이니 다른 나라와도 동맹을 맺을 가능성이 존재했고, 새한성에 주재하는 대사들은 북미왕국의 국력, 특히 막강한 군사력을 대충이나마 짐작했기에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지 못하면 자국의 안전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기 위해 매일같이 외무청을 드나들면서 조용한 곰을 만나려 들었고.
조용한 곰은 이런 유럽 대사들의 방문이 귀찮긴 했지만, 정성국이 퀘벡에서 네덜란드, 덴마크와의 동맹을 합의했다는 소식과 함께 가능하면 다른 국가와 동맹을 맺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전했기에 이들의 방문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해서 조용한 곰은 자신을 찾아온 에스파냐 대사를 만나기 위해 응접실로 이동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굳이 유럽의 모든 나라와 동맹을 맺지 않더라도, 몇몇 국가와 동맹을 맺는다면 전하께서 바라시는 대로 유럽에서의 전쟁은 사라질 텐데...에스파냐 대사가 과연 우리와의 동맹을 받아들이려나 모르겠군.’
유럽에서 대프랑스 전쟁이 격화되면서 대프랑스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잉글랜드를 제외한 다른 나라와의 무역은 정체되었다.
아무래도 전쟁이 격화되다 보니 북미왕국의 주요 수출품인 사치품들을 찾는 이들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달까.
물론 손해를 본 것은 아니다.
북미왕국에서는 사치품뿐만 아니라 식량과 생필품도 수출했고, 전쟁이 격화되면서 안정적인 식량과 생필품이 필요했던 각국의 상인들은 너도나도 아카디아로 몰려왔기에.
다만 잉글랜드와는 매년 무역 규모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에스파냐, 프랑스, 네덜란드와의 무역은 정체되는 상황은 썩 만족스럽지 않았고.
그래서 정성국은 기왕 네덜란드, 덴마크와 동맹을 맺은 김에 더 많은 나라와 동맹, 정확히는 방어 동맹을 맺어 유럽에서의 전쟁을 억제하는 것이 북미왕국의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리라 판단하고 조용한 곰에게 이를 자세히 설명했고, 조용한 곰은 한때 덴마크와 스웨덴과의 계속된 전쟁을 막는 것은 두 나라와 모두 동맹을 맺는 것뿐이라는 의견을 정성국에게 제시할 정도로 유럽국가와의 동맹에 긍정적인 편이었으니만큼 정성국의 이야기를 환영했다.
그러나 정성국은 유럽과의 동맹의 성격은 방어 동맹에 한정하고, 북미왕국과의 동맹 관계를 이용해 타국을 압박하거나 타국을 공격하면 자연히 동맹을 파기한다는 조건을 꼭 삽입하라고 한 만큼, 에스파냐, 잉글랜드 같은 나라들이 과연 북미왕국과의 동맹 제안을 받아들일지는 의문이었다.
이러한 조건으로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는다면, 유럽에서의 세력 확장도, 그리고 독보적으로 앞서 나가고 있는 프랑스의 견제도 완전히 불가능해지는 셈이었으니까.
“아. 오셨군요.”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응접실에 도착한 조용한 곰을 보고 아까부터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에스파냐 대사는 조용한 곰을 반겼고.
에스파냐 대사의 인사에 생각을 멈춘 조용한 곰은 잠시 에스파냐 대사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려 했지만, 에스파냐 대사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정말 네덜란드, 덴마크와 동맹을 맺은 겁니까?”
이에 조용한 곰은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이 나을 듯싶어 커피잔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번에 국왕 전하께서 외유하신 것은 아시지요? 이때 페로 제도까지 방문하셨다가 덴마크-노르웨이 왕국의 국왕 크리스티안 5세와 네덜란드의 총독 빌럼 3세를 만나 친분을 쌓고, 동맹 제안도 받고, 고심 끝에 이를 받아들이셨다더군요.”
이에 에스파냐 대사는 무척 안타까웠다.
물론 에스파냐에서도 북미왕국의 국왕이 페로 제도까지 방문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에스파냐의 국왕인 카를로스 2세는 몸이 약해 페로 제도를 방문할 수 없었고, 설사 정성국과 만나더라도 정신지체인 카를로스 2세가 정성국과 제대로 된 협상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 분명했기에 이를 털어버린 에스파냐 대사는 속으로 생각했다.
‘전에 안토니오 부왕께서 북미왕국 국왕을 만났을 때, 안토니오 부왕은 넌지시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고 싶다는 뜻을 알렸지만, 북미왕국 국왕은 복잡한 유럽 문제에 끼어들기 싫다는 이유로 거절했으니 빌럼 3세나 크리스티안 5세를 직접 동맹을 요청했기에 받아들인 것은 아닐 테고, 아마 북미왕국 국왕은 군주들과 대화하면서 대유럽 정책을 변경하기로 마음먹은 모양이니...’
생각을 정리한 에스파냐 대사는 과장되게 한탄하기 시작했다.
“북미왕국에서 어찌 이럴 수 있습니까. 그동안 우리 에스파냐는 북미왕국과 우호적으로 지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까. 헌데 막상 동맹은 네덜란드, 덴마크와 맺다니요. 북미왕국이 정책을 바꿔 유럽국가와 동맹을 맺는다면 가장 먼저 우리 에스파냐와 동맹을 맺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하하. 그 부분은 조금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다만 전하께서 페로 제도를 방문하신 이후 생각이 조금 바뀌셨기에...”
조용한 곰이 우는소리를 하는 에스파냐 대사를 달래기 위해 입을 열자 에스파냐 대사가 눈을 빛내며 급히 끼어들었다.
“그럼 아국의 동맹 요청도 거절하지 않으실 거란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아국과 에스파냐는 오랫동안 우호 관계를 계속해온 만큼, 에스파냐가 원한다면 아국은 에스파냐와도 동맹을 맺을 의사가 있습니다.”
“오오! 그럼...”
조용한 곰의 말에 에스파냐 대사가 탄성을 지르며 급히 동맹을 맺자고 재촉하려는 찰나, 조용한 곰이 손을 들어 에스파냐 대사의 말을 막고 먼저 입을 열었다.
“단 먼저 말씀드릴 것은 아국이 유럽국가와 맺는 동맹은 일반적인 동맹과는 조건이 조금 다릅니다.”
“예? 그게 무슨...”
에스파냐 대사가 고개를 갸웃하자 조용한 곰은 네덜란드, 덴마크와 맺기로 한 동맹의 성격과 동맹 조약에 삽입된 내용을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고.
이를 주의 깊게 들은 에스파냐 대사는 신음을 흘렸다.
다른 것은 몰라도 타국을 공격하면 동맹은 곧바로 파기된다는 것이 내심 걸렸기에.
‘북미왕국 국왕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자신들과의 동맹을 파기한 나라와 다시 동맹을 맺지 않으려 할 텐데 그럼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는다면, 못해도 4, 50년 정도는 타국을 공격하지 못한다고 봐야겠지. 그럼...유럽에서의 세력 확장이나 프랑스를 견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진다는 소리니...’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네덜란드, 그리고 여러 압박을 받는 덴마크와 에스파냐는 상황이 달랐다.
그리고 한때 유럽을 호령했던 에스파냐는 북미왕국과의 동맹으로 예전의 지배력을 되찾길 원했지, 지금 상황을 유지하려고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으려는 것은 아니었고.
해서 에스파냐 대사의 얼굴이 복잡해지자 조용한 곰이 이를 확인하고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쩌시겠습니까.”
이에 에스파냐 대사는 잠시 머뭇거리다 크게 한숨을 내쉬며 두 손을 들었다.
“휴우. 제 선에서 결정하기는 어려운 문제로군요.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처음에만 하더라도 바로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을 것처럼 나섰던 에스파냐 대사는 조용한 곰의 예상대로 슬쩍 빼는 기색을 내보이자 조용한 곰은 역시나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러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