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1화
페로 제도에서 크리스티안 5세와 빌럼 3세를 배웅한 정성국은 왕실 전용 여객선을 타고 바로 아이슬란드로 이동했고.
아이슬란드에서 머물고 있던 왕실 가족들을 왕실 전용 여객선에 태우고 뉴펀들랜드 섬에 잠시 들렀을 때, 뉴펀들랜드 분함대의 지휘관을 만나고 온 김봉길이 새한성에서 보낸 정보라면서 주나라의 황제 오삼계의 죽음을 알리자 정성국이 화들짝 놀랐다.
“뭐? 오삼계가 죽었다고?”
“그렇습니다. 전하. 노환이라더군요.”
“노환이라...”
원래 오삼계는 1678년 8월에 6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인은 노환이었고.
이 때문에 정성국은 자신으로 인해 역사가 틀어졌어도 오삼계는 1678년 8월에 사망하리라 보았는데, 송상이 보낸 인삼 때문인지 오삼계는 1678년 8월이 되어서도 쌩쌩하게 살아있었고.
해서 정성국은 오삼계가 죽으리라 생각하고 세워두었던 계획을 다수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헌데 그렇게 죽음을 피한 오삼계가 결국 사망했다는 소식에, 그것도 전생처럼 노환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에 정성국은 묘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정성국은 지금은 오삼계의 사망으로 인해 뒤바뀐 중원의 판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바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주나라는?”
“내부적으로 혼란스러운 편이라고 합니다. 그 때문인지 청나라를 거세게 몰아붙이던 주나라를 움직임을 멈췄고, 청나라는 군대를 수습한 후 조선의 조총으로 무장한 병력을 섬서성으로 파견해 잃었던 섬서성을 탈환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더군요.”
김봉길의 대답에 정성국은 매끈한 턱을 매만지다 물었다.
“청나라가 잃었던 섬서성을 되찾을 수 있다고 보나?”
“주나라는 오삼계의 영향력으로 굴러가던 나라이니만큼, 오삼계의 죽음으로 우왕좌왕하겠고...잘만 하면 섬서성 정도는 탈환할 수 있겠지요.”
“그 이상은 어렵겠지?”
이에 김봉길은 정일신이 보낸 편지나 군사청을 통해 확보한 주나라의 정보를 머릿속에서 꺼내 훑어보고 고민한 후 입을 열었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겨우 섬서성을 탈환한다면야 어려울 테고 일부 주나라 인사들이 청나라에 붙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밀릴 수도 있다는 거군.”
“예. 이런 전쟁일수록 기세가 반이니까요.”
김봉길의 대답에 정성국은 혀를 찼다.
“이거 괜히 조선의 조총을 넘긴 것 같은데...”
“하하하. 정일신 3함대 사령관도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입니다만...뭐 어쩌겠습니까. 딱 이런 시기에 오삼계가 죽고 주나라가 흔들릴 줄은 아무도 몰랐으니까요.”
“그래.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그리고 은연중에 동녕국과 주나라를 밀어주었던 유럽 나라들은 청나라가 이들 나라를 멸망시키면 곤란해집니다. 그러니 주나라가 너무 밀리면 더 많은 화약 무기를 판매해서라도 이들을 지원할 테니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김봉길의 말에 정성국이 눈을 번뜩였다.
“아. 그들이 있었지? 그럼 자네 말마따나 일단 지켜보는 것으로 하고...한쪽이 너무 밀린다 싶으면 긴급히 보고하라고 하게.”
“음...주나라와 동녕국을 지원하시게요?”
김봉길의 질문에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직접 지원하고 싶어도 지금 북미왕국에서 따로 전장식 머스킷을 만드는 것은 낭비였다.
그렇다고 신식 소총을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 판매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보다는 우리가 나서서 중재해주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정성국의 대답에 김봉길은 그게 가능하겠느냐는 얼굴로 반문했다.
“예? 그걸 청나라에서 받아들이겠습니까? 저들 입장에서 주나라는 반란군이고 동녕국은 명나라 잔당들의 도당에 불과한데?”
김봉길의 말도 일리는 있다.
예전에 동녕국은 생존을 위해 외교적으로는 청나라에 속국이 되어 청나라의 체면을 살려주는 대신 실제로는 조선이나 왜국처럼 독립적인 나라가 되고 싶어했지만, 청나라는 이 제안을 가차 없이 거부할 정도였으니.
여기에 직접적으로 반란을 일으킨 오삼계가 세운 나라인 주나라를 청나라는 결코 인정하려 하지 않을 테고.
하지만 정성국은 오랜 내전으로 청나라의 국력도 예전만 못하다는 사실과 주나라가 흔들리고 청나라가 기세를 올린다고 해도 주나라를 완전히 멸망시키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강희제도 잘 알고 있는 만큼, 아예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기에 이를 이야기했다.
“그렇긴 한데 벌써 삼번의 난이 시작된 지도 8년 가까이 되지 않았나. 8년 동안 줄기차게 싸워왔으니...”
“흠. 서로 지쳤으니 일단 종전까지는 아니더라도 휴전 정도는 할 수 있다는 겁니까?”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뭐 당장 제의할 생각은 아니니 일단 조금 두고 보자고.”
정성국의 말에 김봉길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의 일정을 물었다.
“알겠습니다. 전하. 그보다 예정대로 보스턴으로 이동하실 겁니까?”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누벨 프랑스와 카유가 항, 그리고 나이아가라 운하 공사 현장을 잠깐 방문하고 싶은데?”
아무리 비행기를 타더라도 이곳까지 오려면 며칠은 걸리는 만큼, 이 북미 동해안 지역은 쉬이 오기 어려웠고, 예전에도 보스턴까지만 방문한 후 돌아가서 누벨 프랑스 지역의 백성들이 무척 아쉬워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으니, 이번에도 이곳을 들르지 않는다면 이런저런 이야기가 돌 것 같긴 했다.
특히 누벨 프랑스 지역은 북미 동부 지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이니 말이다.
해서 누벨 프랑스 지역을 방문하기 위해 세인트로렌스 강으로 이동하는 김에 쭉 들어가 나이아가라 폭포와 그 옆에서 공사 중인 나이아가라 운하 공사까지 살펴볼 생각으로 정성국이 이야기하자 김봉길이 고개를 갸웃했다.
“흠. 그럼 복귀가 너무 늦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그냥 돌아가면 분명 말이 나올걸? 특히 예전에 보스턴까지 방문하고 돌아갔을 때는 내가 루이 14세 때문에 프랑스인들을 싫어한다는 소문까지 나온 것으로 아는데?”
누벨 프랑스엔 프랑스 출신 이주민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많았고, 이 때문에 프랑스를 싫어하는 북미 동해안의 잉글랜드 출신 주민들이 이런 말을 입에 올려서 정성국이 분란이 일어날까 봐 급히 언론과 정보기관을 움직인 적이 있었다.
그러니 정성국은 차라리 며칠 늦더라도 누벨 프랑스 지역은 들르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고,
김봉길 역시 이를 모르지 않았기에 정성국의 투덜거림에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건 그렇지요. 알겠습니다. 허면 나이아가라 운하 공사 현장을 방문한 이후에는 역시 비행기로?”
“어휴. 그래야지.”
정성국이 비행기를 타고 보스턴에 도착했을 때도 투덜거렸던 것을 아는 김봉길이 실실거리며 웃었다.
“흐흐흐. 알겠습니다. 전하. 미리 준비해두도록 하겠습니다.”
* * *
정성국은 누벨 프랑스의 거점 도시인 퀘벡에 들러 보스턴과는 또 다른 이국적인 도시 풍경도 감상하고, 누벨 프랑스의 관리들을 통해 누벨 프랑스의 현 상황과 개발 계획 등을 자세하게 보고 받았다.
그 후 누벨 프랑스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원주민 부족의 옛 대추장들을 만나기도 하고, 인구의 1/4을 차지하는 프랑스, 아일랜드 출신 이주민 중 일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혹시 불만 사항이나 건의할 사항은 없는지 꼼꼼히 살폈고,
정성국이 이렇게 움직이는 사이 전아라나 하얀 들꽃은 각각 정안문과 정나리를 데리고 퀘벡의 병원이나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의원, 환자, 학생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움직였고, 이에 누벨 프랑스의 주민들은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북미왕국 왕실에 감격했다.
특히 누벨 프랑스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프랑스, 아일랜드 출신 이주민들은, 각각 프랑스와 잉글랜드 정부의 가혹한 수탈에 시달렸던 이들이었으니, 정성국과 왕실 가족들의 행동과 실제 자잘한 건의 사항이나 불만 사항은 바로바로 해결해주니 북미왕국으로 이주하길 정말 잘 했다고 자평하며 왕실이 더욱 번창하기를 신에게 기도했고.
그렇게 누벨 프랑스에서 3일간 머무르며 누벨 프랑스의 주민들을 다독인 정성국과 왕실 가족은 다시 왕실 전용 여객선을 타고 이로쿼이의 거점 도시 중 하나인 카유가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일정은 누벨 프랑스와 비슷했다.
이미 범 이로쿼이 부족의 일원인 이리 족의 대추장은 이리 시를 방문했을 때 만났기에 옛 이로쿼이 5 부족의 대추장들과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이곳에 주로 정착한 아일랜드 출신 이주민들이 이 이로쿼이 지역에서의 생활에 만족해하는지, 원하는 것은 없는지 알아보았고.
그러다 카유가 행정청의 관사에서 잠을 자기 전 하얀 들꽃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정성국은 인상을 흐렸다.
“그래? 애를 낳다가 죽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예. 정책적으로 애를 많이 낳기를 권유하고 있으니 가임기의 여성들은 애를 갖는 것을 꺼리지 않는데...문제는 이를 감당할 정도의 의료 인력이 무척 부족하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집안에서 출산하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해요.”
“휴. 보건청에서 그렇게 노력하고 있는데도 역시나 부족하긴 하군.”
정성국이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리자 하얀 들꽃이 안타깝다는 얼굴로 덧붙였다.
“그렇죠. 그나마 서부 지역은 조금 덜한데...동부 지역, 특히 이곳 이로쿼이 지역도 인구가 많은 편이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그러면서 하얀 들꽃은 행정청과 병원에 들러 환자들을 만나 파악한 의료 부족 실태에 관해 정성국에게 알리자 정성국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 정도라면 이번에 건설 중인 종합 대학교들이 완공된다고 해도 턱없이 부족하겠는데?”
“맞아요. 계속해서 인구가 증가하고 있으니 더 많은 의원들을 필요로 하니까요.”
“이거 어쩐다...”
“그래서 말인데 당분간은 산파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했으면 어떨까 싶어요.”
“아. 그거 괜찮네. 다른 의료 인력들과는 달리 산파는 단기간에 키우는 것이 가능하니까.”
정성국은 하얀 들꽃의 말에 반색했다.
북미왕국에서 산파는 정식 의료 인력이었지만, 의원들과는 달리 위생에 관한 기초 지식과 애를 받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위기 상황의 대처 정도만 배우면 되는 만큼, 빠르게 육성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전생과는 달리 한둘만 낳는 시대가 아니다 보니 출산 경험도 풍부한 터라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초보 임산부들에게 많은 조언도 해줄 수 있을 테고 말이다.
이에 정성국은 하얀 들꽃을 보고 말했다.
“그럼 이 건은 보건청에게 말해둘 테니, 네가 가끔 일의 진행 상황 정도만 확인해줘.”
“알겠어요. 그리고 이건 조금 다른 문제긴 한데...”
“무슨 문제?”
“의외로 병원에 총상 환자들이 조금 있더라고요.”
“총상 환자?”
정성국이 하얀 들꽃의 말에 안색을 굳히자 하얀 들꽃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 그렇다고 심각한 문제는 아니고 단순히 사고예요. 이로쿼이 족은 예전부터 사냥으로 먹고살던 부족이다 보니...취미로 사냥을 하는 경우가 많다네요. 근데...”
“설마 야생 동물을 사냥하다 같은 사냥꾼을 쏜 거야?”
정성국이 황당한 표정으로 하얀 들꽃을 바라보자 하얀 들꽃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정성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질문을 던졌다.
“그런 경우가 자주 있대?”
“가끔씩 그런 경우가 있다네요.”
이에 정성국은 표정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뭐지? 난 그에 관해선 보고받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단순 사고로 처리하니 전하께 보고가 올라가진 않은 거겠지요.”
이에 정성국은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전생의 미국에서 얼마나 많은 총기 사고가 발생했는지를 잘 알고 있기에.
“그래? 알았어. 이 건은 따로 행정청을 통해 상세하 파악한 이후 조치를 취해야겠다.”
“알겠어요. 전하.”
“아무튼, 고마워. 덕분에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네.”
정성국의 말에 하얀 들꽃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전하께 도움이 되니 다행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