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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690화 (690/850)

690화

공항 안쪽의 활주로에서 대기하고 있는 황새급 비행기를 본 크리스티안 5세와 빌럼 3세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고.

그런 둘을 보고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멋지지요? 저게 바로 북미왕국의 4인용 비행기입니다.”

“정말 멋지군요. 그리고 제 생각보다 크기도 하고.”

빌럼 3세의 대답에 옆에 있던 크리스티안 5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가 생각한 것보다 크고 육중해보이는데...허. 저게 정말 하늘을 난단 말이지? 북미왕국의 기술력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군.”

크리스티안 5세의 말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둘과 함께 비행 준비가 끝난 비행기 근처로 이동했고.

비행기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비행기 조종사가 정성국을 보고 인사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옵니다. 전하.”

“그래. 나도 자네를 만날 수 있어서 기쁘군. 헌데 비행 준비는 다 끝난 건가?”

“그렇습니다. 이륙 준비는 모두 끝났으니, 탑승만 하시면 됩니다.”

이들이 이곳을 방문한 이유는 크리스티안 5세와 빌럼 3세가 비행기를 타고 싶다고 요청했기 때문이었기에 정성국은 곧바로 비행기에 탑승하려 하자 오히려 크리스티안 5세와 빌럼 3세는 자신도 모르게 정성국의 팔을 잡았고.

이에 정성국은 왜 그러냐는 듯한 눈빛을 보내자 크리스티안 5세가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정말 안전한 거 맞지?”

“걱정하지 마. 나도 같이 타는데 내가 위험을 무릅쓰고 타겠어?”

“아. 하긴 그렇지?”

“그래. 그러니 걱정 말고 타. 아. 빌럼 3세도 불안한 모양인데 네가 괜찮다고 달래주고.”

“그...그래.”

황새급 비행기는 4인용이었기에 빌럼 3세의 통역사까지 탈 수는 없었고, 그래서 통역사는 저 멀리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유럽의 공용어인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크리스티안 5세가 빌럼 3세를 다독이자 불안한지 눈을 파르르 떨던 빌럼 3세는 곧 고개를 끄덕이고 비행기 조종사의 안내를 받아 비행기에 탑승했고.

그후 크리스티안 5세의 뒤를 이어 정성국이 비행기에 탑승해 안전띠를 맨 후 뒷좌석에 앉아 있는 둘을 살피자 크리스티안 5세와 빌럼 3세는 애써 대범한 척하고 있었지만, 안색은 썩 좋지 않았기에 정성국은 피식 웃고 옆에 있는 비행기 조종사에게 말했다.

“바로 비행을 시작하게. 시간 끌어봐야 저 친구들의 안색이 더욱 나빠질 것 같으니 말일세.”

“알겠습니다. 전하.”

정성국이 명령을 내리자 비행기 조종수는 바로 기관의 출력을 높였고, 그러자 비행기는 점차 가속했다.

이에 이런 속도는 처음으로 경험하는 크리스티안 5세와 빌럼 3세는 눈이 왕방울처럼 커졌고, 곧 붕 뜨는 느낌과 함께 비행기가 이륙하며 주변의 풍경이 바뀌기 시작하자 크리스티안 5세와 빌럼 3세는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 * *

페로 제도 주변의 하늘을 한 바퀴 돈 비행기가 다시 공항에 착륙하자 정성국은 잔뜩 흥분한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크리스티안 5세와 빌럼 3세를 보고 혀를 차며 이 둘을 데리고 공항 시설 중 하나인 찻집으로 이동했고.

정성국을 보고 황송해하는 직원에게 커피 3잔을 주문한 후, 직원이 떨리는 손으로 커피를 가져오자 고맙다고 인사한 후 크리스티안 5세에게 말했다.

“자. 커피 마시고 진정 좀 해라. 뭐 그렇게 흥분했어.”

“하늘을 날았는데 어떻게 흥분은 안 할 수 있어? 안그래?”

“그렇습니다. 정말 충격적이었지요.”

둘의 반응에 정성국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잠깐 타면 재밌기야 하지. 오래 타면 힘들지만.”

“음? 힘들다고?”

“북미왕국에선 비행기를 이동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알고 있지?”

이에 크리스티안 5세가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헌데 가까운 곳은 자동차나 마차를 이용하면 그만이라 비행기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아무래도 장거리가 될 수밖에 없어. 그러니 한 번 비행하려면 그 딱딱한 의자에서 7, 8시간씩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쉽나.”

“허. 그래?”

크리스티안 5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때, 옆에 있던 빌럼 3세가 말했다.

“이번에 비행기를 타 보니 무척 빠르던데, 7, 8시간씩이나 비행하면 얼마나 이동하는 겁니까?”

“대략 1000km 내외인데...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프랑스의 수도 파리까지의 직선거리가 그쯤 될 거야.”

정성국의 설명에 빌럼 3세가 감탄을 터트렸다.

“허. 덴마크에서 파리까지 7시간이면 이동할 수 있다고요?”

“그렇지. 물론 비행기는 도로 사정이나 지형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니 가능한 거지만 말이야.”

이에 크리스티안 5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노련한 뱃사람이 최대한 빠르게 파리로 항해하더라도 4일은 걸릴 텐데 고작 7시간이면 당도한다니.

물론 배로 이동하려면 유틀란드 반도를 돌아가야 하니 이동 거리가 훨씬 늘어날 수밖에 없긴 하지만, 그래도 놀라울 정도라 크리스티안 5세는 비행기의 성능에 놀랄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문득 이 비행기를 이용하면 북미왕국을 조금 손쉽게 방문할 수 있지는 않을까 싶어 슬쩍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보면 예전 북미신문에서 본 것 같은데 페로 제도에서 새항성까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할 수 있지 않아?”

“가능은 해. 8일이면 이동할 수 있긴 하지.”

“8일? 허. 엄청나네. 물론 북미왕국의 영토가 엄청나게 넓다는 사실이야 알지만...”

정성국의 대답에 크리스티안 5세가 조금 질린 기색으로 감탄했고, 빌럼 3세는 그런 거대한 나라를 세운 정성국이 새삼 대단해 보여 묘하게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정성국은 빌럼 3세의 눈빛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고.

정성국은 빌럼 3세 때문에 북미왕국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라위터르 때문에 빌럼 3세를 그리 좋게 평가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아무튼, 정성국은 자신의 말에 감탄하는 크리스티안 5세를 보며 말했다.

“넓긴 넓지. 그래서 비행기로 이동하는 데도 한 세월이 걸리고...그러니 조금 느리더라도 편한 기차나 배를 이용하는 게 더 낫긴 해.”

“아. 그런가?”

“그래. 보아하니 새한성을 방문하고 싶은 거지?”

정성국은 요 며칠간 친구가 된 크리스티안 5세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그가 새한성을 방문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를 묻자 크리스티안 5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뭐 당장은 어렵겠지만, 북미왕국과 동맹도 맺었고, 여러 지원을 받기로 했으니 한 1, 2년만 고생하면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을 것 같거든. 다만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긴 어려우니 조금 고생하더라도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비행기를 타는 것이 나을 것 같고.”

그 말에 정성국은 뒷머리를 긁적이다 어깨를 으쓱했다.

비행기로 이동하는 것이 힘들긴 한데, 그렇다고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고, 하늘에서 주변 풍경을 감상하는 재미도 있긴 했으니까.

“뭐 그렇다면야...편할 대로 해. 네가 정말 새한성을 방문하겠다면 정식으로 초대할 테니까.”

“오. 고마워.”

통역을 통해 정성국과 크리스티안 5세의 대화를 전해 들은 빌럼 3세가 끼어들었다.

“그때 저도 방문할 수 있겠습니까?”

“동맹국의 국왕이 아국을 방문한다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함께 초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성국의 승낙에 빌럼 3세는 새한성을 방문할 수 있다는 사실에 빙긋 웃으면서도, 오가는 시간과 새한성에서 체류하는 시간까지 생각해보면 못해도 3주에서 한 달은 걸릴 테니 그 전에 네덜란드부터 제대로 복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보다 적당히 흥분이 가라앉았으면 슬슬 돌아갑시다?”

“어...”

“음...”

정성국의 말에 크리스티안 5세와 빌럼 3세는 아쉬운 표정으로 바깥의 활주로 한가운데에 있는 비행기를 바라보았고, 정성국은 혀를 차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럼 난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한 번 더 타고 와.”

“오오!”

“와아!”

* * *

크리스티안 5세와 빌럼 3세는 무려 3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페로 제도 주변을 뺑뺑 돈 이후에 만족하고 비행기에서 내렸고, 정성국은 그런 둘을 보고 혀를 차며 이들과 함께 다시 왕실 전용 여객선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정성국도 그렇지만, 크리스티안 5세나 빌럼 3세도 페로 제도에서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마지막으로 저녁을 함께하며 다시 한번 친분을 다졌고.

“흠. 평민들을 더 중용하는 것이 낫다고?”

“그럼. 지금처럼 귀족들을 견제하려면 평민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최선이야.”

크리스티안 5세는 아버지가 추구했던 절대군주제의 확립을 위해 의도적으로 평민들을 공무에 참여시켜 귀족들의 영향력을 축소하려는 뜻을 세우고 평민들을 꾸준히 밀어주고 일부에겐 작위마저 하사했었다.

헌데 이번 전쟁의 패전으로 귀족들은 크리스티안 5세에게 등을 돌린 상태였고, 이 때문에 크리스티안 5세는 일단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 정책을 바꿔서라도 귀족들을 달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었고.

다만 자칫하면 귀족들의 영향력이 확대될 수 있어 페로 제도를 방문하기 전까지는 무척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마지막 날이기도 하고, 정성국은 북미왕국의 군주이자 뛰어난 통치자이니만큼, 그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여겨, 빌럼 3세가 술에 취해 호위대원들의 부축을 받아 먼저 선실로 이동하자 조언을 구했고.

정성국은 크리스티안 5세의 말을 듣자마자 정책을 바꾸지 말고 계속 평민들을 중용하라고 조언했다.

이에 크리스티안 5세는 심각한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다 물었다.

“솔직히 그동안 평민들을 의도적으로 밀어주긴 했지만, 아직 이들이 귀족 세력을 감당하긴 힘들어. 그러니 자칫하면 귀족들이 들고 일어나 나에게 대항할 수도 있고. 그게 걱정이거든.”

“글쎄? 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병력만 확실히 장악하고 있으면 귀족들의 반란 따위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텐데?”

“흐음...역시 그럴까? 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병력의 전투력이 대단해서 전쟁이 끝나자마자 친위대로 만들고 따로 관리해주고 있긴 한데...”

크리스티안 5세도 신식 소총이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전쟁을 통해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래서 네덜란드로 파견했던 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병사들을 따로 관리하고 있었고.

이를 이야기하자 정성국이 술을 홀짝이며 손을 내저었다.

“그럼 됐어. 그들만 잘 관리하면 귀족들은 불만이 많더라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거야. 그리고 이번에 우리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었고, 내가 너와 친구라는 사실까지 은연중에 흘린다면 귀족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덤비지 못할 테고.”

“큭큭. 그런가?”

“그래. 그러니 이 기회에 더 많은 평민들을 중용해. 물론 능력도 없는 이를 평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중용할 수는 없을 테니...제대로 된 교육 체계를 만들어 평민들을 가르치도록 하고.”

“북미왕국처럼 말이지?”

“그래. 우리야 뭐 귀족이고 나발이고 없지만 말이야.”

정성국의 대답에 크리스티안 5세는 부러움이 섞인 시선으로 정성국을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정말 부러워. 귀족이 없고 모든 백성이 너의 말이라면 끔뻑 죽는다면서?”

이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다시 술을 홀짝였다.

“부러우면 너도 백성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그러면 백성들은 자연히 너를 따르게 될걸?”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아무튼, 조언 고마워.”

“고마우면 관세 좀 줄이지?”

덴마크의 재정 적자 때문에 사치품의 관세를 높이겠다는 크리스티안 5세의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던 정성국이 투덜거리자 크리스티안 5세가 빙긋 웃었다.

“나중에 상황이 나아지면 생각해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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