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685화 (685/850)

685화

정성국은 아이슬란드의 온천이 썩 마음에 들었고, 해서 계속 온천을 드나들며 그동안 격무로 쌓인 피로를 말끔하게 털어냈다.

이 휴식은 무척이나 달콤했고, 그렇기에 정성국은 조금 더 아이슬란드에서 쉬고 싶었지만, 슬슬 네덜란드의 총독인 빌럼 3세와 덴마크-노르웨이의 국왕인 크리스티안 5세가 페로 제도를 방문할 예정이었으니 정성국은 어쩔 수 없이 다시 배에 올라타야 했고.

다만 배에 오르는 것은 정성국뿐이었다.

전아라나 하얀 들꽃이 아이슬란드의 온천에 무척 만족하기도 했고, 정안문이나 정나리도 북미왕국의 여타 도시들과는 조금 다른 이국적인 레이캬비크의 풍경에 만족해 걸핏하면 도시를 둘러보기 여념이 없었기에 괜히 페로 제도를 함께 방문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기에.

해서 정성국은 가족들과 잠시 헤어져 1함대와 함께 페로 제도의 가장 큰 섬이자 중심 거점 항구인 토르스하운이 위치한 스트레이모이 섬으로 향했고.

토르스하운이 보인다는 이야기에 갑판으로 나온 정성국은 항구를 둘러보고 의외라는 듯 중얼거렸다.

“내 생각보다 항구의 규모가 큰데?”

페로 제도가 덴마크의 영토였을 때, 덴마크는 페로 제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덕분에 페로 제도의 주민들은 타국의 어부들에게 해적질을 당할 정도로 시달릴 정도였고, 당연히 페로 제도의 주민들은 어떻게든 페로 제도에서 탈출하고 싶어했었으니 페로 제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이 사는 토르스하운조차 조그마한 어촌 마을에 불과했었고.

물론 정성국도 페로 제도를 매입한 이후 개발청에서 저 토르스하운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타국의 어부들에게도, 그리고 덴마크의 관리들에게도 시달린 탓에 항상 굶주렸던 페로 제도에 사람이 많을 리 없었고, 당연히 항구의 규모도 그리 크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토르스하운의 크기는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비크와 비슷할 정도로 큰 편이었기에 정성국이 놀랍다는 듯 중얼거리자, 정성국에게 보고하기 위해 아이슬란드를 방문했었던 페로 제도의 외무청 관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페로 제도의 인구가 늘어나니 항구가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음? 아. 그러고 보니 페로 제도에 정착한 유럽의 이주민들이 꽤 되지?”

유럽에 북미왕국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그리고 대프랑스 전쟁이 시작되면서 전쟁의 불길을 피하려는 유럽인들이 북미왕국으로 이주하기 위해 재산을 처분하고 배를 구해 페로 제도를 방문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기억이 있는 정성국이 이를 떠올리며 아는체하자 페로 제도의 외무청 관리는 정성국이 이 변방의 일도 세세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그렇습니다. 해서 지금 페로 제도에는 2만 명이 조금 넘는 백성들이 살고 있지요.”

“허. 2만 명이나? 원래 페로 제도의 인구는 5천 명이 조금 안 되지 않았나?”

“예. 덴마크의 영토였을 때만 하더라도 4천 명이 조금 넘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5년 전에만 하더라도 4천 명에 불과했던 인구가 현재는 거의 5배에 달할 정도로 늘어났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페로 제도의 급격한 인구 증가와 발전에 놀라면서도 조금 우려스러운 눈빛으로 점차 가까워지는 토르스하운을 바라보다 슬쩍 물었다.

“으음...별다른 문제는 없고?”

원래 급격히 인구가 늘어나면 여러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물론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북미왕국의 백성들은 비교적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에 인심이 넉넉했고, 그 때문에 이주민들을 대하는 태도는 친절한 편이기는 했지만, 페로 제도의 경우는 북미왕국에 매입된 지 얼마 안 되기에 사정이 조금 다르다고 판단한 정성국이었고.

거기에 페로 제도에서 살아왔던 주민들보다 몇 배는 많은 외지인들이 정착했으니 정성국은 내심 여러 분쟁이 생겼을 것을 우려해 이를 묻자 페로 제도의 외무청 관리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전하께서 걱정하시는 바는 알겠습니다만, 오히려 페로 제도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습니다. 전하.”

“나쁘지 않다고?”

정성국이 의외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돌려 옆에서 입을 여는 외무청 관리를 바라보자 외무청 관리가 답했다.

“물론 먹고 살기 어렵거나 일자리가 부족한데 이주민들이 늘어나면야 기존의 주민들이 이주민들을 배척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한창 발전 중인 페로 제도의 경우 일자리가 충분한 터라 기존의 주민들이 굳이 이주민들을 배척할 이유가 없지요.”

“음? 일자리가 충분?”

외무청 관리의 대답에 정성국은 조금 황당하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저 조그만 섬에 일자리가 많아 봐야 얼마나 많겠는가 싶었기에.

이런 정성국의 반응에 외무청 관리는 고개를 들어 토르스하운의 선착장 인근에 위치한 커다란 건물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 커다란 건물이 보이십니까?”

“음? 보이네만...저거 창고인가?”

정성국이 고개를 갸웃하자 페로 제도의 외무청 관리가 씩 웃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통조림 공방이지요.”

“통조림? 아! 생선 통조림을 만드는 공방인가?”

연구청에서 통조림을 개발하고, 알루미늄의 대량 생산까지 가능해지면서 북미왕국에서 통조림은 급격히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 북미왕국의 통조림은 무척 다양한 종류의 통조림이 있었지만, 가장 인기가 좋은 통조림은 역시 생선 통조림이었다.

단백질 섭취엔 역시 고기가 최고긴 했지만, 그렇다고 매일같이 육고기를 섭취하는 것도 썩 좋지는 않다고 판단한 정성국은 북미신문이나 선생들을 통해 생선을 섭취하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고 가르치고 있었기에 싱싱한 생선을 구하기 어려운 내륙에서는 생선 통조림이 불티나게 팔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국영 상단에서는 생선 통조림을 만들기 위해 곳곳에 통조림 공방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정성국도 알고 있었고.

해서 이를 묻자 외무청 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곳 페로 제도 주변은 풍부한 어장이 형성되어 있을뿐더러, 섬이 작아 어업 외에 딱히 발전시킬만한 산업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해서 페로 제도의 행정청에서 국영 상단을 설득해 이 토르스하운에 생선 통조림을 생산하는 공방을 건설했고, 저 통조림 공방이 들어서자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었지요.”

정성국은 외무청 관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통조림 공방 하나에 불과했지만, 이 공방의 건설로 창출되는 일자리는 어마어마했으니까.

“어쩐지...생각외로 이 토르스하운의 선착장도 크고 선착장에 어선들이 무척 많다 했더니 저 통조림 공방 때문에 그런 거군?”

“맞습니다. 통조림 공방의 규모가 큰 편이라 공방에서 필요로 하는 물고기의 양이 꽤 많아서 말입니다. 그러니 어선에서 일할 사람들이 많이 필요해졌고, 상황이 이러하니 기존의 주민들은 오히려 이주민을 환영하는 편입니다.”

해안가나 섬에 사는 백성들은 아무래도 어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사람 하나하나가 소중한 북미왕국으로서는 허름한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야 하는 어부들의 안전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고.

해서 철선을 건조하는 주요 조선소들 외에도 항구마다 적당한 규모의 조선소를 세우고, 이곳에서 튼튼한 어선을 대량으로 건조해 어업에 종사하는 백성들에게 싸게 판매하기 시작했고, 당연히 이곳 페로 제도의 어부들도 은행의 도움을 받아 보스턴에서 건조한 튼튼한 배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니 선주가 된 페로 제도의 어부들은 자신들과 함께 일할 이주민들을 환영하며 이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사실에 정성국은 무척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거 정말 다행이로군.”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외무청 관리가 슬쩍 입을 열었다.

“다만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려는 유럽의 이주민들이 꾸준하게 페로 제도를 방문하는 터라 앞으로가 조금 우려스럽긴 합니다.”

“음? 대프랑스 전쟁은 끝났잖아? 헌데도 계속 이주민이 유입된다고?”

“물론 처음 페로 제도가 아국의 영토가 되었을 때 유입되던 이주민들은 전쟁을 피해 이주하려는 이주민들이 많았습니다만, 최근의 이주민들은 그저 아국의 백성이 되어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서 말입니다.”

외무청 관리의 말에 정성국은 왕실 전용 여객선 위에 걸린 왕실기를 확인하고 정성국의 얼굴을 보기 위해 선착장으로 몰려드는 페로 제도의 백성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더 나은 삶이라...연금 혜택을 받지 못하더라도 북미왕국에서 사는 것이 더 낫다고 보는 건가?”

공식적으로 이주를 허용한 아일랜드인들과는 달리, 페로 제도로 몰려오는 이주민들은 불법 이주민으로 분류했고, 당연히 북미왕국의 백성이라면 누구나 받는 혜택인 연금 혜택을 받지 못했다.

이는 북미왕국이 불법 이주민들에게도 연금 혜택을 허락하면 백성 중 상당수가 북미왕국으로 떠날 것을 우려하는 유럽 국가들을 달래기 위한 정책 중 하나였고.

그리고 이러한 정책 때문에 이미 전쟁이 끝난 상황에서 유럽인들의 북미왕국 이주는 썩 매력적이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지만 페로 제도에서 근무하며 누구보다 유럽의 사정에 정통한 외무청 관리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그럼요. 아국의 물가가 낮다는 사실은 유럽에도 널리 알려져 있으니까요. 거기에 북미왕국은 한창 발전 중이라 일자리가 넘쳐난다는 것도 널리 알려졌고요. 그러니 연금 혜택을 제외하더라도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이들이 재산을 처분하고 배를 사서 이 페로 제도를 방문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외무청 관리는 주변의 정세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페로 제도에 가까운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은 다 이번 전쟁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게 되었다.

물론 스웨덴이야 프랑스의 동맹국이다 보니 승전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프랑스의 도움으로 잃었던 스코네 지방을 되돌려받았을 뿐이지, 덴마크로부터 스코네 지방을 탈환하기 위해 몇 차례 덤볐다가 엄청난 피해를 보았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들 국가에서는 군을 다시 재정비하고,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더 많은 세금을 거두려 들었고, 이에 백성들은 고향에서 남아 더 많은 세금을 나라에 바치느니, 차라리 연금의 혜택을 받지 못하더라도 북미왕국으로의 이주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이야기하자 정성국은 수긍하며 잠시 턱을 매만지다 입을 열었다.

“흠. 페로 제도의 인구가 늘어난다는 것은 페로 제도의 발전을 위해 나쁠 것이 없는데...문제는 계속 페로 제도에 사람이 몰리면 결국 일자리가 부족해진다는 거겠지?”

“그렇습니다. 아무리 일자리를 늘리려 애를 써도 이 작은 섬에선 한계가 명확하니까요. 거기에 이주민들뿐만 아니라, 기존 주민들이나 이미 정착한 이주민들도 생활이 안정되다 보니 아이를 갖는 데 주저하지 않는 터라 조금씩 인구는 증가하고 있기에...”

“지금 태어나고 있는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쯤이면 일자리 부족 문제가 커질 거라는 소리군.”

정성국이 외무청 관리의 말을 받자 외무청 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 때문에 페로 제도의 행정청 관리들이 앞으로의 일을 꽤 걱정하고 있지요. 그나마 이곳에서 생산한 생선 통조림들이 본토에서 꽤 잘 팔리고 있고, 본토의 인구도 폭증하고 있으니 그 수요가 커지리라 예상은 합니다만...그래도 통조림 공방을 무제한으로 확장할 수야 없는 노릇 아닙니까. 거기에 통조림 공방이 이 토르스하운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흠. 그러니 아국으로 유입되는 불법 이주민들을 차단하거나, 아니면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방안을 고민 중인가 보군?”

“그렇습니다. 전하. 해서 이에 관한 내용을 새한성에도 보고한 상태이지요. 행정청과 외무청에 말입니다.”

외무청 관리의 대답에 정성국은 잠시 고민했지만, 가뜩이나 북미왕국을 개발하기 위해선 인구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정성국으로서는 불법 이주민들을 차단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거기에 불법 이주민의 수가 그리 많지 않은 탓에 유럽 각국이 괜히 북미왕국과 얼굴을 붉히기보단 모른 척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더더욱.

해서 정성국은 어느덧 자신을 보고 환호하는 백성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기 전에 외무청 관리에게 말했다.

“그럼 앞으로 유입되는 불법 이주민들은 본토로 보내게. 아직은 이주민 하나하나가 소중하니 말이네.”

“알겠습니다. 전하.”

* * *

“호오. 저기가 정말 페로 제도라고?”

덴마크-노르웨이의 국왕인 크리스티안 5세는 갑판 위에서 페로 제도의 거점 항구인 토르스하운의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그가 알기로 저 토르스하운은 무척 낙후된 어촌 마을로 알고 있었기에.

물론 북미왕국이 페로 제도를 매입하면서 급격히 발전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건 예상외였고.

이런 크리스티안 5세의 반응에 그를 보좌하기 위해 함께 북미왕국의 배에 탑승한 한스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국왕 전하께서도 아시다시피 페로 제도를 북미왕국에서 매입하면서, 북미왕국의 영토 중 가장 유럽에 가까운 영토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 때문에 북미왕국에서는 페로 제도의 가치를 꽤 높이 평가하고 페로 제도를 집중적으로 개발했기에 많이 커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에 크리스티안 5세는 고개를 끄덕이며 선착장에 즐비한 선박들의 수에 감탄하다 한쪽에 정박된 거대한 철선들을 보고 눈을 빛냈다.

“저게 북미왕국의 자랑인 철선이로군. 대단한데?”

크리스티안 5세는 북미왕국의 정보를 접한 이후 학자들을 불러 증기기관을 연구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진 기초적인 수준에 불과했다.

해서 기껏해야 자그마한 선박 정도나 움직일 수 있었고.

헌데 북미왕국은 저 거대하고 육중한 배를 증기기관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하니 새삼 북미왕국과의 기술 격차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저 거대하고 육중한 철선을 직접 목격하고 나니 어떻게든 북미왕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북미왕국의 증기기관 기술을 습득할 필요성이 있다고 여겼고.

다만 북미왕국은 기술 유출에 무척 민감하게 반응했기에 크리스티안 5세는 북미왕국의 왕실기로 알려진 흰머리수리 깃발이 펄럭이는 커다란 철선을 보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해야 북미왕국의 국왕을 설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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