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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683화 (683/850)

683화

크론보르 성의 집무실에서 측근들과 회의를 하던 덴마크-노르웨이 왕국의 국왕인 크리스티안 5세는 측근인 한스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그게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새한성에 나가 있는 덴마크 대사가 보낸 긴급 보고서에 분명 그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정말 북미왕국의 국왕이 페로 제도를 방문한다고?”

정성국이 왕실 가족들과 함께 떠나자 새한성에 나가 있는 덴마크 대사는 당연히 정성국이 어디로 가는지를 파악했고, 정성국이 북미 내륙 도시 일부와 아이슬란드, 그리고 페로 제도까지 방문한다는 조용한 곰의 이야기를 듣고 급히 덴마크로 떠나는 연락선을 통해 긴급 보고서를 보냈다.

덕분에 정성국의 페로 제도의 방문 사실을 알게 된 크리스티안 5세는 북미왕국의 국왕으로 무척 바쁜 정성국이 대체 왜 페로 제도 같은 쓸모없는 섬들을 방문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한스를 바라보자 한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일단 북미왕국에서 의외로 아이슬란드의 개발에 집중하고 있잖습니까.”

“그렇지. 그 부분도 도저히 이해가 안 가던데...”

북미왕국이 덴마크에 아이슬란드를 구매했을 때, 한스는 북미왕국이 아이슬란드에 있는 주민들을 대부분 본토로 이주시키고 아이슬란드는 그냥 방치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아이슬란드는 추워 작물을 재배하기 어려운 지역이라 별다른 쓸모가 없었으니까.

헌데 북미왕국이 아이슬란드를 구매한 이후, 한스의 예상과는 다르게 막대한 돈과 자재를 투입해 아이슬란드 전체를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나라에서 직접 집집마다 값비싼 유리를 아낌없이 사용해 온실마저 만들어주자 크리스티안 5세는 북미왕국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정성국이야 아이슬란드를 지열 발전을 연구하고 활용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했지만, 이들은 그러한 사실을 몰랐으니 쓸데없는 짓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한스도 이런 크리스티안 5세의 생각에 동의했고.

“저도 북미왕국에서 아이슬란드의 개발에 집중하는 것이 이해가 가진 않습니다만...이러한 북미왕국의 결정은 곧 북미왕국 국왕의 결정 아니겠습니까. 그건 북미왕국 국왕이 아이슬란드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뜻이고요.”

한스가 여기까지 말하자 크리스티안 5세는 한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채고 말을 받았다.

“그래서 북미왕국의 국왕은 관심을 두던 아이슬란드를 방문하는 김에 페로 제도까지 방문한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아이슬란드든 페로 제도든 새한성에서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 여러 차례 방문하기는 어려우니 이 기회에 둘 다 방문하려는 것 같습니다.”

한스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 크리스티안 5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래? 그보다 페로 제도면 여기서 무척 가까운 편이지?”

“그렇습니다. 범선으로는 4, 5일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지요.”

“북미왕국의 배를 이용하면?”

“그럼...아마 2일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스의 대답에 크리스티안 5세는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흐음. 그럼 이번 기회에 북미왕국의 국왕과 만나 우호를 다지는 것이 어떨까 싶은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에 한스를 비롯해 집무실 안에 있던 측근들은 놀란 얼굴로 크리스티안 5세를 바라보았고.

“페로 제도를 방문하시겠다는 겁니까?”

“그렇지. 북미왕국의 국왕을 한 번쯤은 만나보고 싶었는데...새한성은 너무 멀어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페로 제도는 또 다르지 않나.”

한스가 북미왕국을 다녀온 이후, 크리스티안 5세는 북미왕국의 발전상에 관심을 두었다.

그러다 북미왕국의 발전에 북미왕국의 국왕인 정성국이 깊숙하게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를 한번은 만나보고 싶어했고, 이 때문에 크리스티안 5세는 직접 새한성 방문도 고려했었다.

다만 새한성까지 방문해 정성국을 만나고 북미왕국을 둘러보려면 못해도 한두 달은 걸릴 텐데, 새한성 조약으로 다시 스코네 지역을 스웨덴에 돌려줘야 했고, 귀족들이 크리스티안 5세의 능력을 불신하기 시작한 터라 그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비울 수는 없었기에 포기했고.

헌데 정성국이 가까운 페로 제도까지 방문한다고 하니, 한 일주일 정도만 시간을 내면 정성국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고, 정성국과 친분을 쌓아 동맹이나, 혹은 여러 지원을 얻어낸다면, 현재의 어려움을 수월하게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크리스티안 5세가 페로 제도의 방문 의사를 밝히자, 측근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생각에 잠겼다가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물론 북미왕국이 이를 허락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국왕 전하께서 북미왕국의 국왕과 친분을 쌓는다면 여러모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으니 괜찮아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일주일 궁을 비우는 것 정도야...크게 부담스럽지 않으니까요.”

크리스티안 5세의 측근들도 크리스티안 5세의 페로 제도 방문에 찬성하자 한스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일단 북미왕국 대사에게 국왕 전하의 방문 의사를 밝히고 이를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 * *

뉴펀들랜드 섬을 떠난 지 3일 만에 목적지인 아이슬란드 섬이 보인다는 이야기에 응접실에서 커피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정성국과 왕실 가족들은 갑판 위로 나왔고.

전방에 보이는 커다란 섬과 주변의 풍경을 확인한 하얀 들꽃이 탄성을 내질렀다.

“와! 이곳은 경치가 참 좋네요.”

“그러게. 거기에 예상했던 대로 기온이 꽤 선선해서 지내기도 좋아 보이고. 이곳을 여름 휴양지로 개발하는 것도 괜찮아 보이는데?”

전생에서 아이슬란드가 꽤 괜찮은 여름 휴양지였다는 것을 떠올린 정성국이 이렇게 이야기하자 이 아이슬란드의 경치에 감탄한 하얀 들꽃이 바로 정성국의 의견에 찬성했다.

“그거 괜찮아 보이네요. 이곳에 휴양지가 들어서면 더위에 지친 아국의 백성들이 꽤 많이 방문할 것 같아요. 물론 이곳이 본토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 한계야 있겠지만 말이죠. 한번 진행해볼까요?”

하얀 들꽃이 의외로 의욕을 내자 정성국은 그렇게나 아이슬란드가 마음에 든 것인가 싶어 빙긋 웃으며 조언해주었다.

“그래. 특히 이 아이슬란드는 온천이 많으니 이를 이용하면 괜찮은 휴양지가 될 거야. 물론 지금은 푹 쉬고 말이야.”

그러면서 정성국이 하얀 들꽃의 손을 잡아주자 하얀 들꽃은 화사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호호호. 그럴게요.”

“그리고...비행기가 더 발전해서 쉽게 이곳을 방문할 수 있다면 별궁을 짓는 것도 괜찮아 보이네.”

그 말에 옆에서 아이슬란드의 경치를 구경하던 전아라가 고개를 갸웃하며 끼어들었다.

“물론 비행기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는 하지만...이곳은 거리가 너무 멀어서 비행기가 있더라도 자주 방문하긴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거기에 비행기 여행은 쉽지 않잖아요? 이번에 오라버니도 보스턴에 도착하셔서 힘들다고 한소리 하셨었고요,”

이번에 정성국이 황새급 비행기를 이용해 내륙을 이동하면서 느낀 것은 황새급 비행기로 장시간 비행하는 것은 엄청나게 힘들다는 것이었다.

불편한 의자에 앉아 몇 시간씩 가만히 있어야 했으니 어쩔 수 없긴 했지만 말이다.

해서 정성국은 급한 일이 아니라면 가끔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기차나 배를 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보스턴에 도착했을 때 마중을 나왔던 전아라에게 투덜거렸기에 전아라가 이를 언급하자 정성국은 박기동과 하얀 날개를 더 갈궈서라도 비행기의 발전을 조금은 앞당겨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렇지. 다만 나중에는 몇 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정말 그런 날이 올까요?”

“그럼. 분명 올 거야.”

물론 새한성에서 약 6600km 거리의 아이슬란드를 몇 시간 만에 이동하려면 제트 엔진부터 개발해야 하긴 하겠지만, 북미왕국에서 똑똑하다고 소문난 인재들이 너도나도 몰려드는 곳이 바로 항공기 연구소이니만큼, 정성국이 죽기 전에 제트 엔진을 장착한 비행기의 개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 정성국이었다.

특히 원시적인 제트 엔진의 구조는 비교적 간단한 편이라 정성국도 대충은 기억하고 있으니, 이를 던져주고 연구시킨다면야 개발 기간을 꽤 단축시킬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때 아이슬란드와 점차 가까워지면서 아이슬란드의 거점 항구인 레이캬비크 항을 구경하던 정나리가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보다 아버지! 저기 좀 보세요! 아이슬란드의 집들은 참 예쁜 것 같아요. 아기자기하고.”

“그러게. 개발청에서 신경을 좀 썼나 본데?”

의외로 레이캬비크의 집들은 북미왕국의 일반적인 집들과는 달리 유럽풍의 목조 건물의 느낌이 물씬 풍겼고, 집집마다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해두어서 멀리서 보니 꽤 독특했기에 정성국은 의외라는 얼굴로 이를 바라보았다.

개발청에서는 효율 때문에 새한성이나 정성국이 유럽풍의 건물을 유지하라고 명령을 내렸던 보스턴을 제외하면 다 비슷비슷한 건물을 짓는 편이었기에.

해서 정성국이 의아한 얼굴을 하자 하얀 들꽃이 무언가를 아는지 웃으며 설명했다.

“아이슬란드 주민들이 주로 들르는 곳이 바로 보스턴이거든요. 그러니 아이슬란드 주민들은 자신들도 보스턴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에서 살 수 있을 거라고 무척 기대하자 나중에 이를 알게 된 개발청에서 어쩔 수 없이 약간의 설계 변경을 통해 저런 집들을 만들었다고 알고 있어요.”

“하하하. 그래? 뭐 나쁘지 않은데?”

“그죠? 물론 개발청이 맡은 일이 워낙 많아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아는데 어딜 가나 비슷한 건물이라는 것은 조금 아쉬웠거든요.”

“그렇긴 하지.”

정성국도 너무 획일화된 건물들은 조금 아니다 싶어서 개발청에 이야기했고, 이 때문에 개발청에서도 나름대로 신경 쓰고는 있지만, 한계는 명확했다.

다만 점차 개발청에 들어오는 건축가들이 많아지면서 조금씩 건물들이 다양해지고 있었기에, 그리고 최근에는 건물의 외형을 전문적으로 개조하는 상단들도 생긴 터라 일단은 두고 보고 있었고.

다만 그 변화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개발청에서 주택을 짓는 부서는 따로 빼서 여러 개로 독립시키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잠시 이를 고민하고 있을 때, 어느덧 가까워진 레이캬비크 항을 조용히 응시하던 정안문이 정성국을 바라보고 말했다.

“그리고 집집마다 온실이 있는 것도 특이한 것 같습니다. 아버지.”

정안문의 말마따나 레이캬비크에는 유리 온실이 무척 많았다.

얼핏 보면 집집마다 유리 온실 하나씩은 있다고 봐도 될 정도로.

그리고 저 유리 온실과 레이캬비크 특유의 건물들과 합쳐져 꽤 독특한 도시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기에 정안문이 이를 지적하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곳은 기온이 무척 낮아서 온실이 아니면 작물을 재배하기 어려워서 그래.”

“그거야...본토에서 식량을 수송하면 그만 아닙니까?”

정안문의 의문에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일반 식량이야 본토에서 수송하면 그만이지만, 신선한 채소 같은 것을 본토에서 가져오긴 힘들잖아. 그러니 온실을 이용해 필요한 채소를 직접 키우게 한 거고.”

“아...”

균형 잡힌 식단이 건강에 도움이 되는 터라 정성국이 백성들이 먹는 문제도 무척 신경을 쓴다는 것을 알고 있던 정안문은 정성국의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정성국이 왕실 가족들과 대화하는 사이 정성국과 왕실 가족이 탄 왕실 여객선은 레이캬비크의 선착장에 도달했고, 이미 정성국이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아이슬란드 섬의 주민들이 대부분 레이캬비크의 선착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왕실기가 걸려있는 여객선을 보며 환호하기 시작했고.

정성국은 자신을 보고 환호하는 백성들이게 손을 흔들어준 후 배에서 내려 일단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행정청의 관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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