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2화
포로나이의 외무청 집무실에서 보고서를 확인하던 투로시노는 갑자기 집무실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정일신 3함대 사령관을 보고 무슨 일인지를 물었고.
“예? 누가 죽어요?”
투로시노는 정일신의 말이 실감이 나지 않는지 그저 큰 눈을 깜빡이며 되묻자 정일신이 그런 투로시노를 보고 의자에 앉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주나라의 태조. 오삼계 말이네.”
명나라의 장수로 청나라의 남하를 막다 명나라가 멸망하자 청나라에 투항하고, 청나라의 번왕으로 운남을 다스리다 강희제가 여러 특권들을 회수하려 들자 곧바로 반란을 일으키고 주나라를 건국해 스스로 황제가 된 그 오삼계가 사망했다는 소식에 투로시노는 그제야 정일신의 말을 실감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맙소사...대체 어떻게?”
“어떻게는. 오삼계도 나이가 있는데. 노환으로 죽은 거지.”
정일신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투로시노를 보고 타박하듯 대답했고, 그제야 투로시노는 정신을 차리고 중얼거렸다.
“아. 그러고 보면 오삼계의 나이는 이미 70이 넘긴 했으니...그럼 정확히 언제 죽은 겁니까?”
“정확한 건 모르겠고. 대충 7월 초에 죽은 모양이야. 그래서 오삼계의 손자인 오세번이 황위를 이었고.”
청나라에서는 오삼계의 아들인 오응웅을 홍타이지의 막내딸과 혼인시켜 부마로 만들어 조정에 진출시켰지만, 이는 오삼계의 배반을 우려한 청나라 조정에서 인질을 잡기 위한 술책에 불과했다.
그러니 오삼계가 정말로 반란을 일으키자 강희제는 바로 북경에 있는 오응웅과 아들인 오세림을 하옥시켰고.
인질의 효과가 없다고 판단되자 강희제는 이 둘을 사형시켰다.
해서 오삼계의 직계는 겨우 북경에서 탈출해 살아남았던 오세번 뿐이었고.
이를 알고 있는 투로시노는 정일신의 말에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창 기세를 올리며 청나라를 공격하던 주나라의 황제인 오삼계가 갑자기 사망함으로써 중국 대륙의 사정이 완전히 변했음을 직감하고 입을 열었다.
“하필 이런 시기에 주나라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오삼계가 사망하다니...청나라는 한숨 돌리겠군요.”
유럽의 상인들이 동녕국과 주나라와 접촉해 화약 무기를 넘기기 시작하면서 청나라는 계속 밀리기 시작했고, 굳건히 지키던 강서성을 내어주었으며, 최근엔 겨우 지켜내던 섬서성마저 내어주었다.
이 때문에 청나라는 기겁하며 주나라의 동진을 막기 위해 백성들을 강제로 징집하면서까지 하남성에 병력을 집중하고 있었고.
허나 아무리 백성들을 마구 징집해 병력을 늘린다 하더라도 섬서성을 장악한 후 기세를 몰아 동진하는 주나라를 막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헌데 갑자기 오삼계가 죽으면서 주나라는 동진이 아니라 진군을 멈추고 내부를 안정시켜야 했으니 상황이 완전히 뒤바뀐 셈이었다.
“그렇지. 당분간 주나라는, 아니 주나라의 2대 황제가 된 오세번은 내부를 장악하느라 외부를 신경 쓸 겨를이 없을 테니까. 그렇다고 동녕국만으로 청나라를 밀어붙이는 것은 어렵고.”
그리고 정일신 역시 투로시노의 의견에 동의하자 투로시노는 괜히 청나라에 조선의 조총을 팔았다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우. 청나라는 병력을 재정비할 천금 같은 시간을 확보했고, 거기에 무기 수입 문제도 잘 끝나서 5만 자루의 조총까지 확보했으니...어쩌면 청나라가 다시 주도권을 잡을 수도 있겠어요.”
유럽 각국이 이권을 위해 동녕국과 접촉해 화약 무기를 판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투로시노는 이대로라면 청나라가 멸망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선의 조총 5만 자루를 청나라로 판매하는 계약을 맺었다.
청나라야 당장 급한 상황에서 5만 자루의 조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에 환영했고, 조선은 청나라가 이 조총으로 무장하고 다시 조선을 침공할 수도 있다는 것을 경계하긴 했지만, 북미왕국이 버티고 있는데 청나라가 어찌 조선을 공격하겠느냐는 투로시노의 설득에 넘어간 것이다.
해서 투로시노는 조선의 조총으로 무장한 청나라군이 겨우 주나라군을 막아낼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는데, 갑자기 오삼계가 죽고 주나라 내부가 혼란에 빠지면 오히려 청나라가 다시 주도권을 잡고 주나라를 밀어붙일 수도 있다는 생각했고.
이러한 투로시노의 의견에 정일신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도 그래. 동녕국이야 청나라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것 외에는 어렵고, 중요한 것은 바로 주나라인데, 주나라군을 이끄는 장수들이 믿고 따른 것은 수많은 전쟁터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오삼계이지, 궁 안에만 처박혀 있던 오세번이 아니니까. 그나마 오삼계가 죽기 전까지 주나라가 주도권을 잡고 청나라를 밀어붙이던 중이라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예. 그랬다면 분명 주나라군의 장수 중 일부는 바로 청나라에 항복했을 겁니다.”
“맞아. 아무튼, 상황이 그러니 오세번은 군부를 장악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아야 할 테고, 강희제는 그러한 틈을 노리겠지.”
주나라 장수들 가운데 예전부터 오삼계를 따라 요동에서 저 운남까지 이동했던 가신들은 오세번에게 충성하겠지만, 그 외에 여러 가지 이유로 주나라에 합류한 이들은 주나라를 배반할 확률이 컸다.
그러니 오세번은 이들을 장악하기 위해 애를 써야 했고, 강희제는 오세번이 이들을 장악할 때까지 그냥 두고 볼 인물이 절대 아니었다.
해서 투로시노는 정일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골치 아프다는 듯 중얼거렸다.
“확실히...이거 갑자기 분위기가 확 바뀌어버렸네요. 이러다가 주나라가 쭉 밀리는 것은 아니겠죠?”
정일신은 투로시노의 물음에 인상을 쓰고 잠시 생각하다 어깨를 으쓱했다.
“...그거야 모르지. 다만 상황이 바뀐 만큼, 더 자주 국영 상단을 동녕국과 주나라, 그리고 청나라로 보내 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흠. 확실히 그렇지요. 알겠습니다. 바로 국영 상단에 이야기해두도록 하겠습니다.”
* * *
이리 시에서 제철소를 방문한 정성국은, 그 후 고위급 관리들과 옛 추장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다시 비행기를 타고 보스턴까지 이동했고.
정성국보다 한발 앞서 보스턴에 도착해 휴식을 취하고 있던 1함대와 왕실 가족들과 합류했다.
그 후 정성국과 왕실 가족은 왕실 전용 여객선에 탑승해 1함대의 호위를 받으며 바다로 나섰고, 아이슬란드에 도착하기 전에 가까운 뉴펀들랜드 섬에 들렀다.
뉴펀들랜드 섬은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려는 유럽인들이 처음으로 들르는 관문과도 같은 곳이기에, 정성국은 기왕 이 먼 곳까지 나온 김에 둘러보고 싶어했기에.
해서 뉴펀들랜드 섬에 도착한 정성국은 뉴펀들랜드 분함대의 지휘관과 외무청 관리의 간단한 보고를 받은 후 북미왕국으로 이주를 결심한 유럽인들이 잠시 머무르는 외국인 거주 구역을 방문했고.
외국인 거주 구역 안에 있는 비쩍 마른 아일랜드인들을 보고 정성국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쯧쯧. 여전히 아일랜드의 식량 사정은 안 좋은 건가?”
“그렇습니다. 전하. 그나마 아국이 계속 식량을 제공하기에 예전처럼 아사하는 사람은 사라졌다고 합니다만...그렇다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은 또 아니니까요.”
“흠. 여객선으로 나르는 식량만으로는 역시 부족한가? 추가로 수송선을 붙여야 하나?”
정성국은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조그만 아이들도 비쩍 마른 것이 영 못마땅해 더 많은 식량을 아일랜드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중얼거리자 외국인 거주 구역을 안내하던 외무청 관리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게...잉글랜드와 협의했기에 대량의 식량을 아일랜드에 보내긴 어렵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대체 왜?”
“아국이 대량으로 아일랜드에 보낸 식량이 저항 세력에게 흘러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아...”
잉글랜드가 가혹하게 아일랜드를 수탈하니 당연히 아일랜드인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해서 일부는 잉글랜드에 저항하기 시작했고, 이들이 모여 저항 세력을 이루었고.
다만 큰 규모는 아니었는데, 잉글랜드는 북미왕국이 아일랜드에 대규모로 식량을 보내고, 이 식량이 저항 세력에게 흘러 들어가기라도 하면 저항 세력의 규모가 커질 것을 우려해 잉글랜드에서 일정 이상의 식량이 유입되는 것을 반대했고, 그 때문에 외무청에서는 괜히 잉글랜드를 자극했다가 아일랜드인들의 이주에 차질을 빚을까 걱정해 잉글랜드와 협의해 필요 이상의 식량을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는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것 참...그럼 방법이 없는 건가?”
“물론 재협상을 통해 잉글랜드를 설득할 수도 있긴 할 겁니다. 다만...”
“다만?”
“그보다는 더 많은 아일랜드인들을 아국으로 데려올 수 있도록 협상하는 것이 아일랜드인들에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북미왕국에서 식량을 지원한다 하더라도, 당장 자립하기 어려운 아일랜드인들은 척박한 아일랜드 서부에서 계속 비참하게 하루하루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 더 많은 아일랜드인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북미왕국에게도, 아일랜드인들에게도 나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외무청 관리의 말에 정성국은 잠시 고민하다 결정을 내렸다.
“흠. 자네 말에도 일리가 있군. 예전에야 많은 아일랜드인들을 한꺼번에 받아들이는 것이 부담스러워 이주민의 수를 제한하기도 했지만 이젠 상황이 조금 달라졌으니까. 그럼 자네가 외무청에 보고서를 올리도록 하게. 내가 허락했다는 문구를 덧붙여서 말이네.”
정성국이 외무청 관리의 공을 인정하겠다는 이야기였기에 정성국을 안내하던 외무청 관리의 안색이 확 밝아지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전하.”
“감사는 무슨. 그보다...”
정성국은 주변을 둘러보다 슬쩍 목소리를 줄이고 외무청 관리에게 말했다.
“아일랜드 저항 세력의 평판은 어떤지 혹시 아나?”
이에 외무청 관리 역시 목소리를 줄이며 대답했다.
“글쎄요. 크게 존재감이 없는지라 평판이랄 것이 딱히...”
“아. 그 정도인가.”
정성국은 외무청 관리의 말에 상황을 짐작하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가까이 있는 외무청 관리가 간신히 들을 수 있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허면 그들과 접촉할 수는 있겠나?”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접촉해 볼까요?”
“그러게.”
* * *
뉴펀들랜드 섬을 떠나기 전 정성국은 가족들과 함께 선착장의 북쪽 해안가를 방문했고.
해안가에 가득한 펭귄들의 모습과 가까이 있는 대여섯 마리의 펭귄들이 자신들을 보고 뒤뚱거리며 다가오는 모습에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끌어올릴 수밖에 없었다.
다만 정성국과 왕실 가족을 호위하는 호위대원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가오는 펭귄들을 슬쩍 막았고, 이에 펭귄들은 왜 앞을 가로막느냐는 듯 날개를 파닥이며 소리쳤다.
‘까악! 까악!’
그리고 이런 모습에 정나리는 귀여워 어쩔줄을 몰라했고.
“와! 아버지! 얘들 너무 귀여워요!”
“그래. 귀엽긴 귀엽구나. 그리고...겁도 없고.”
정성국은 이 펭귄들이 전생에서는 멸종되어 버려 펭귄의 이름마저 비슷한 생김새의 다른 종에게 내어주어야 했던 큰바다쇠오리라는 것을 깨닫고 뉴펀들랜드 섬을 비롯해 북대서양의 일부 섬들을 확보함으로써 이들의 멸종을 확실히 막았다는 생각에 만족한 얼굴을 했고.
그리고 정성국과 함께 이 해안가까지 나온 김봉길이 펭귄들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이 녀석들은 여전하군요. 제가 처음 이 녀석들을 봤을 때도 이렇게 겁 없이 다가왔었는데 말입니다.”
“허. 그랬나?”
“예. 무슨 야생 동물이 겁 없이 사람에게 접근하는지 무척 놀랐었지요.”
김봉길은 처음 이 뉴펀들랜드 섬을 방문했을 때의 일을 떠올리고 호위대원들의 저지선 밖에서 파닥거리는 펭귄들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자 김봉길이 머리를 쓰다듬는 펭귄은 의외로 가만히 있었고.
이 모습에 정성국이 헛웃음을 터트렸고, 정나리를 비롯해 전아라와 하얀 들꽃은 눈을 빛내며 가까이 온 펭귄들의 머리를 쓰다듬기 위해 손을 내밀자 호위대원들은 사고라도 날까 기겁했다.
그런 광경에 정성국이 미소지을 때, 김봉길이 펭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해서 알아보니 당시 뉴펀들랜드 섬을 방문하던 유럽인 어부들이 사냥하기 쉽다는 이유로 걸핏하면 이 녀석들을 사냥했기에 제가 이 녀석들의 사냥을 금지시켰고요.”
이에 김봉길 뒤에 있던 뉴펀들랜드 분함대의 지휘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덕분에 펭귄들의 수가 많이 늘어난 편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부임했을 때만 하더라도 저 해안가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었거든요.”
“그래? 그거 다행이군. 그럼 계속해서 저 녀석의 사냥은 막도록 하게. 굳이 저 녀석을 꼭 사냥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알겠습니다. 전하.”
“그보다 이 뉴펀들랜드 섬에 드나드는 유럽인 어부들이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고?”
정성국의 질문에 분함대의 지휘관이 자신만만한 미소와 함께 답했다.
“아국의 통제를 무시하고 문제를 일으키면 어업권을 박탈당하는데 감히 문제를 일으키겠습니까. 온순한 양처럼 굴 뿐입니다.”
“하하하. 그래?”
“예. 거기에 어업 연구소의 말대로 어린 물고기나 산란기의 물고기를 보호하기 위해 금어기를 만들어 일정 기간 어업을 중지한 뒤로 예전보다 물고기들이 꽤 늘어나 금방 만선을 채울 수 있다 보니 어업권의 가치는 더 높아진 상태입니다. 또한, 저 외국인 거주 구역의 교역소에선 꽤 여러 가지 생필품을 판매하는 터라 아국에서 질 좋은 생필품을 싸게 살 수 있다는 이점까지 생각하면 어업권의 가치는 무척 높을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인지 외국인 거주 구역에 머무는 유럽인 어부들은 술도 잘 마시지 않습니다.”
“음? 어부들이 술을 마다한다고?”
“술에 취해 사고를 일으켰다 어업권을 박탈당한 어부들이 있었거든요.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이곳에서 머물 땐 조용히 지내야지요.”
술을 좋아하는 뱃사람들이 실수로 어업권을 취소당할까 봐 술조차 멀리한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혀를 내둘렀고.
다만 덕분에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이들이 없다는 것은 나쁠 것이 없었기에 정성국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런 분위기. 나쁘지 않네. 괜히 유럽인 어부들이 술 마시고 사고를 치면 우리만 골치 아프니 유럽인 어부들이 술을 멀리하게끔 분위기를 유지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