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0화
정성국은 7월 말이 되자 예정대로 왕실 가족들과 함께 아이슬란드에서 휴가를 보내기 위해 왕실 전용 기차를 타고 새한성을 떠났고.
새한성에서 기차를 타고 새진주까지 이동하는 도중 애리조나 지역과 텍사스 지역에 있는 여러 간이역에 들러 폭염으로 인한 피해 상황을 확인 후 조치를 취하고, 더위로 인해 고생하는 백성들을 위로했다.
그러자 백성들은 직접 이상 기후가 발생한 지역을 방문해 자신들을 챙기는 정성국의 모습에 감격했고.
그런 백성들의 모습에 정성국은 재해가 발생했을 때는 너무 새한성에서만 있지 말고 이렇게 나오는 것도 나쁘지는 않구나 싶었다.
정성국은 높은 사람이 움직이면 아랫사람이 고생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괜히 자신이 움직였다가 실무진들이 자신의 접대에 신경 쓰느라 일이 많아질 것을 우려해 어지간하면 자신이 직접 움직이는 것은 자제했는데, 이렇게 직접 현지를 방문해보니 아무리 행정청에서 이런 재해가 발생했을 때, 자신이 직접 움직여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도 괜찮아 보였던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현지 백성들을 위로한 정성국은 다시 기차를 타고 새진주로 이동해,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1함대와 왕실 전용 여객선에 왕실 가족이 오르는 것을 확인한 후, 곧바로 황새급 비행기에 탑승했고.
5시간 만에 미시시피 지역의 거점 항구 중 하나인 치카소 항에 도착해 미리 대기하고 있던 호위대와 함께 화려한 4두 마차를 타고 행정청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다른 병사들과는 복식이 조금 다른 호위대가 치카소 공항을 비롯해 치카소 곳곳에 배치되고, 군사청에서 독립해 치카소의 치안을 맡고 있는 치카소 치안국의 경찰들이 공항에서 행정청까지의 길을 통제하기 시작하자 치카소의 주민들은 정성국이 비행기를 이용해 치카소를 방문한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정성국의 얼굴을 보기 위해 하고 있던 일마저 내팽개치고 거리로 몰려들었고.
“와아!”
“국왕 전하 만세!”
“북미왕국이여! 영원하라!”
왕실기가 휘날리는 화려한 4두 마차를 보고 열정적으로 손을 흔들며 정성국을 환호하자 마차 안에 있던 정성국은 활짝 웃으며 자신을 반기는 치카소의 주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에 치카소의 주민들은 더욱 환호하며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정성국의 얼굴을 보길 원했기에 도로와 인도 사이에서 혹시나 하고 대기하고 있던 치카소 치안국의 경찰들은 기겁하며 주민들을 막기 위해 애를 썼고.
이를 확인한 정성국은 속으로 고생한 저 경찰들에게 따로 제대로 된 포상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하며 계속 손을 흔들어 주며 행정청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행정청에 도착해 마차에서 내린 정성국은 행정청 주변에서 자신을 보고 열정적으로 손을 흔들며 환호하는 백성들에게 다시 손을 흔들어 준 후 바로 행정청 안으로 들어가며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치카소를 처음으로 방문해서 그런가? 생각보다 주민들의 반응이 무척 열광적인데? 거기에 내 예상보다 많은 주민들이 몰려왔고.”
원래 치카소 항은 처음 미시시피 탐사대가 내륙 거점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항구였고, 그 이후 북미왕국에 우호적이었던 치카소 족이 이 항구로 몰려들어 터전을 잡았기에, 치카소의 주민들 대부분이 북미왕국의 왕실에 무척 우호적일 거라고는 생각했었다.
다만 북미 내륙 지역에 북미왕국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전생의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앨라배마, 테네시 주가 미시시피 지역으로 묶이면서, 상당수의 외지인들이 미시시피 지역의 거점 항구 중 하나인 이 치카소로 몰려들었고.
이들 가운데는 요 몇 년 사이 합류한 부족들도 꽤 많았기에 정성국은 이 치카소를 방문하면서도 이렇게 열광적인 환영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헌데 정성국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기에 의외라는 듯 중얼거리자, 정성국을 기다리고 있던 치카소 행정청의 관리가 당연한 것 아니냐는 얼굴로 대답했다.
“전하의 용안을 먼발치서나마 직접 보았는데 어찌 열광하지 않을 수 있겠사옵니까.”
이에 정성국이 피식 웃자 치카소 행정청의 관리는 정성국이 자신의 말을 단순한 아부로 생각한다는 것을 깨닫고 곧바로 입을 열었다.
“제 말은 단순한 아부가 아닌 진심이옵니다. 전하. 전하께서 북미왕국을 다스리느라 바쁘다는 것은 온 백성들이 다 알고 있사옵니다. 또한, 북미왕국은 워낙 넓은 터라 새김포나 새진주처럼 중요한 항구가 아닌 다음에야 전하께서 여러 번 방문하실 까닭이 없다는 것은 이곳 치카소의 주민들도 짐작하옵니다. 그러니...”
“나를 봤다는 것이 이야깃거리가 된다는 건가?”
“이야깃거리가 아니라 자랑거리가 되지 않겠사옵니까.”
자신을 먼발치서나마 본 것이 자랑거리가 된다고 주장하는 치카소 행정청의 관리를 보고 정성국이 다시 피식 웃자 그 뒤에서 정성국을 기다리고 있던 다른 관리들이 입을 열었다.
“물론 그 때문만은 아니옵니다. 북미왕국이 이 미시시피 지역을 통치한 이후 백성들의 생활 수준이 무척 나아졌사옵니다. 북미왕국에서 본격적으로 이 치카소를 개발한 이후, 이곳에는 일자리가 넘쳐나고, 이곳에서 일자리를 구해 일함으로써 그동안은 맛보지 못한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게 되었고, 부드러운 천으로 만든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으며, 나무 썩는 냄새가 가득한 어두운 움막집이 아니라 넓고 쾌적한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사옵니다.”
“또한, 유럽인이 이 북미 대륙에 진출한 이후 전염병으로 수많은 원주민들이 목숨을 잃었사옵니다. 그러니 살아남은 원주민들은 언제 다시 전염병이 퍼질지 몰라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사옵니다. 헌데 북미왕국의 백성이 된 이후에는 이러한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었으니 어찌 전하를 보고 열광하지 않겠사옵니까.”
“거기에 이상 기후로 인해 작물 일부가 타버리면서 작황이 좋지 못할 것을 염려하는 백성들로 인해 이곳 치카소의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사옵니다. 헌데 전하께서 이번 폭염으로 인해 피해를 본 이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히셨고, 또 현지의 사정을 파악하고자 직접 전하께서 행차하셨으니 백성들이 저렇게 기뻐하는 것이겠지요.”
정성국은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관리들의 얼굴을 확인하고 환하게 미소지었다.
이들은 순서대로 전 치카소 족, 체로키 족, 코아사티 족의 대추장들이었고 이들은 북미왕국에 합류한 이후 새한성을 방문해 정성국과 만난 적이 있었으니까.
해서 정성국은 이들을 보고 아는체했다.
“아. 다들 오랜만이군. 3년 만인가?”
정성국이 자신들을 기억하자 옛 대추장들은 활짝 웃으며 정성국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렇사옵니다. 전하.”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지 못한 것을 용서하시옵소서. 전하.”
전 치카소 족 대추장은 나이가 많아 북미왕국에 합류한 후 쉬고 있었지만, 체로키 족 대추장과 코아사티 족 대추장은 각각 행정청 산하에서 고위급 관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정성국은 이들의 말에 손을 내저었다.
“용서는 무슨. 내가 공항으로 나오지 말라고 한 건데. 그리고 가뜩이나 이번 폭염으로 인해 여러 피해가 발생해 이를 수습하느라 바쁠 텐데 굳이 날 마중하겠다고 공항에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지.”
그런 정성국의 대답에 전 체로키 족 대추장이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역시 전하께선 실리적이시군요.”
“새삼스럽게 뭘. 그보다 애리조나 지역이나 텍사스 지역을 돌아다녀 보니 생각보다 피해가 크던데...이 미시시피 지역은 어떤가.”
이에 전 코아사티 족 대추장이 입가에 맺힌 미소를 지우고 진지한 얼굴로 정성국에게 보고했다.
“두 지역의 상황이 어떤진 모르겠습니다만...이 미시시피 지역의 상황도 썩 좋은 것은 아니옵니다. 전하. 그나마 3년 전에 발생했던 가뭄과는 다르게 지금은 미시시피 강의 수위가 괜찮은 편이라 농업용수가 충분하고, 농업 연구소가 연구청과 함께 만든 살수장치를 이용해 12시부터는 매시간 물을 뿌려주고 있기에 피해를 조금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사옵니다”
논은 그냥 물을 대고 물의 수위를 맞추면 그만이었지만 밭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그나마 비가 자주 오는 지역이면 크게 상관없는데, 비가 자주 오지 않는 지역이거나 일부 시기에 비가 집중되는 지역들은 농사짓기가 쉽지 않았고.
해서 지금까지는 커다란 저수조를 장착한 마차를 경운차로 끌어가며 물을 뿌렸다.
다만 경작하는 밭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이 방식은 효율이 떨어졌기에 농업 연구소에서는 전생의 스프링클러와 비슷한 살수장치를 떠올리고 연구청의 연구원들과 함께 이 살수장치를 만들어냈고, 덕분에 최근에 대규모 농장들은 이 살수장치를 이용해 손쉽게 물을 뿌리고 있었고.
이를 잘 알고 있는 정성국은 전 코아사티 족 대추장의 말에 잠깐 미소짓다 다시 미소를 지우고 물었다.
“오. 그건 정말 다행이군. 다만 모든 밭에 살수장치를 설치한 것은 아니지?”
“그렇사옵니다. 국영 농장 같은 대규모 밭에는 모두 설치되어 있습니다만...”
“그럼 일반 농부들의 피해가 꽤 크겠군.”
정성국의 말에 옆에 있던 전 체로키 족 대추장이 끼어들었다.
“예. 그리고 조금이나마 작물을 살리기 위해 대낮에도 직접 물을 뿌리다 더위를 먹고 쓰러진 이들도 일부 있고요.”
“뭐? 분명 북미신문을 통해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고 경고했거늘...”
정성국이 전 체로키 족 대추장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자 전 치카소 족 대추장이 정성국을 보고 말했다.
“눈앞에서 애지중지하며 키우던 작물들이 말라비틀어지는데 그런 경고가 눈에 들어오기나 하겠습니까.”
물론 북미왕국 행정청에서는 이번 폭염으로 발생한 피해를 보상해주겠다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눈앞에서 그동안 관심을 두고 키워온 작물들이 말라 죽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농부가 얼마나 되겠느냐는 전 치코소 족 대추장의 말은 일리가 있었기에 정성국이 골치 아프다는 얼굴로 양 눈가를 주무르며 말했다.
“끙...그렇다고 그걸 그냥 내버려 두면 폭염이 꺾이기 전까지 계속 농부들이 일사병으로 쓰러질 수 있다는 소리 아닌가.”
이에 전 체로키 족 대추장이 대답했다.
“다만 지금까지 쓰러진 농부들만 50명이 넘다 보니, 그리고 이때 더위를 먹고 쓰러진 농부들이 그 이후 무척 고생한다는 소문이 농부들 사이에 퍼지면서, 농부들도 몸을 사리고 있사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시옵소서.”
전 체로키 족 대추장의 말에 정성국은 안도하면서도, 며칠 전 방문했던 애리조나 지역이나 텍사스 지역의 경우 행정청이 개발청, 그리고 치안국과 협조해 대낮의 야외 활동을 막았고, 그 때문에 별다른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리고 이를 관리들에게 말했고.
정성국의 설명에 자신들이 상황을 안이하게 파악했다는 것을 깨달은 고위 관리들을 얼굴을 붉혔다.
“그...그랬군요. 허면 저희도 치안국에 순찰을 부탁해서라도 당분간 야외 활동을 막겠사옵니다. 전하.”
“그래. 어차피 우리는 전기를 이용할 수 있으니 야간작업이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 최대한 낮에 밖에서 일하는 것은 최대한 막도록 하게.”
“알겠사옵니다. 전하.”
“그리고...보조금을 일부 지원할 테니 농부들이 밭에 살수장치를 설치하게끔 유도하게. 언제까지 직접 경운차를 몰며 작물에 물을 뿌릴 수야 없는 노릇 아닌가.”
“농업 연구소의 연구원들과 협의해 그러도록 하겠사옵니다. 전하.”
정성국은 치카소 행정청 관리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언제까지 행정청의 입구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어느덧 저녁 시간이었기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본 후 말했다.
“그래. 그럼 일단 이야기는 여기까지하고...식사나 함께하지.”
“영광이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