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9화
냉방장치가 가동되어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회의실 안에서 정성국은 행정청장의 말에 안색을 굳히며 중얼거렸다.
“더위가 심상치 않다더니...남부 지역에는 폭염이 계속되는 중이라고?”
항상 궁 안에서만 생활하는 정성국조차 최근의 더위가 심상치 않다고 느끼긴 했었는데, 역시나 남부 지역에서는 이상 고온으로 작물이 말라 비틀어지고 있다는 행정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아니. 17세기 후반은 소빙하기라면서 무슨 이상 고온이야. 그나마 땅이 넓으니 다행이긴 한데...땅이 넓으니 걸핏하면 자연재해를 겪는 느낌이라 또 문제네. 행정청 산하에 재난 관리부라도 신설 해야 하나...’
생각해보면 전생의 미국은 땅덩이가 큰 만큼 지진, 가뭄, 태풍, 홍수 등의 여러 자연재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니 미리미리 이를 대비할 필요성을 느낀 정성국은 이를 담당할 재난 관리부의 신설을 느꼈고.
더불어 자신의 존재로 인해 전생보다 빠르게 기술이 발전하고 있으니 환경 오염 문제에도 더욱 신경 써서 최소한 인위적인 기후 변화는 늦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으로 인해 유럽 각국과 조선, 그리고 북미왕국의 동맹국들은 증기기관이 얼마나 쓸모있는 지를 깨닫고, 너도나도 증기기관을 연구하거나 증기기관을 이용하려고 하는 만큼, 그냥 내버려 둔다면 이산화탄소나 온실가스로 인해 기후가 변화하고, 영토가 넓은 북미왕국은 이러한 기후 변화에 큰 피해를 입을 것이 자명했으니까.
더불어 이러한 개념이 없었던 전생에선 너도나도 수도에 공장을 건설하고 미친 듯이 석탄을 태우며 공장을 돌린 탓에 스모그가 발생해 막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었으니, 이를 알려 불필요한 피해를 막아야겠다고도 생각했고.
그렇게 정성국이 이번에 발생한 이상 기후 때문에 한참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그의 귓가에 행정청장의 목소리가 들려왔기에 정성국은 일단 생각을 미루고 행정청장을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전하. 그나마 수리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기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만...”
“흠. 그래도 피해가 발생은 할 거라는 거군.”
“그렇습니다. 전하. 그러니 미리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행정청장의 말에 청장 회의에 참석한 다른 청장들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청장들의 반응에 정성국은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그래야겠지. 헌데 일부 지역에서 폭염 때문에 작물이 상해 올해 수확량이 줄어든다 하더라도 크게 문제는 없지?”
“그렇습니다. 전하. 현재 폭염이 계속되는 지역들에서 단 한 톨의 식량도 수확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식량이 부족할 일은 없지요.”
북미왕국은 영토를 확장하고, 계속 이주민들을 받아들이면서 농경지를 꾸준히 늘려나갔고, 이 때문에 식량은 과잉 생산되고 있다.
그리고 보통의 경우 식량이 과잉 생산된다면 가격이 폭락하는 터라 적절히 이를 조절하겠지만, 지금은 소빙하기라 전 세계에서 이상 기후가 속출하고, 그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식량이 부족해 기근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정성국은 차라리 식량이 썩어 버리는 경우가 있더라도 계속 농경지를 늘리면서 식량 생산량을 늘려왔고.
그 때문인지, 일부 지역에서 문제가 발생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행정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식량은 그렇다 치고, 다른 상품 작물들은?”
이에 옆에 있던 관리청장이 대신 대답했다.
“그나마 걸리는 것이 목화 농사이긴 합니다. 다만 면직물의 가격 폭락을 우려해 판매를 조절하고 있었기에 상당한 수량의 면직물이 아직 창고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이를 적절히 푼다면 아국은 큰 문제가 없을 겁니다.”
폭염은 남부 지역에서 발생했는데, 이 남부 지역에는 대규모 목화 농장이 여럿 위치해 있었기에 이번 폭염으로 목화의 생산량이 대폭 줄어들겠지만, 목화 생산량 역시 면직물 공방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요를 넘어설 정도의 물량을 생산하고 있는 터라 당장은 문제가 없을 거라는 관리청장의 보고에 다른 청장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다만 정성국은 관리청장의 대답에 무언가 거슬리는 것이 있어 이를 잠깐 생각해보다가 조금 우려스러운 눈빛으로 관리청장을 바라보았다.
“아국이라...그럼 수출 물량은 줄어든다는 소린가?”
“그렇습니다. 다만 아무리 폭염이 계속된다고 해도 모든 목화가 타버리지는 않을 테니 전하께서 걱정하시는 것처럼 크게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으리라고 판단합니다. 물량이 조금 줄어 가격이 조금 오를 뿐이겠지요.”
북미왕국에서는 식량을 비롯해 수많은 교역품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이 교역품 가운데 계속해서 비율이 높아지는 것이 바로 면직물이었다.
북미왕국의 면직물은 품질도 좋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으니까.
헌데 이 면직물은 기본적인 생필품에 가깝다 보니, 북미왕국에서 판매하는 면직물의 물량이 줄어 가격이 오른다면 여러 문제가 생길 것 같긴 했다.
다만 타국을 생각해 국내로 돌릴 물량마저 해외로 반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정성국은 그 문제를 깔끔하게 넘기며 말했다.
“그렇단 말이지? 그럼 일단 북미신문을 통해 강렬할 햇살이 내리쬐는 대낮에는 야외활동을 자제하라고 경고하게. 괜히 무더운 날씨에 바깥에서 일하다가 일사병으로 백성이 사망하면 곤란하니 말일세. 그리고 낮에는 냉방장치가 가동되는 상점이나 집에서 몸을 꼭 식히라고 알리고.”
북미왕국이 냉방장치를 상용화하긴 했지만, 아직 대부분의 백성은 냉방장치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냉방장치는 그냥 사서 전기만 꼽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설치 기사가 직접 냉방장치를 설치해야 하는 터라 이러한 비용마저 모두 합산되어 있어 부유한 북미왕국의 백성들로서도 꽤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으니까.
다만 북미왕국 남부 지역은 여름에 무척 더운 편이라 이곳에 사는 백성들은 쾌적한 환경을 위해 냉방장치의 구매에 적극적이었고, 보급률도 높은 편이니만큼 이 냉방장치만 잘 이용하더라도 북미왕국 백성들이 일사병으로 사망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아 정성국이 이를 당부하자 개발청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더위가 심하다고 해서 사람이 상한단 말씀이십니까?”
“그럼. 너무 추우면 체온을 잃어 얼어 죽는 것처럼 너무 더워 체내에서 발생하는 열이 바깥으로 배출되지 못해도 문제가 생기네. 그러니 보건청에서 나서서 강하게 경고하도록 하게. 더불어 각 청에서도 따로 손을 쓰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전하.”
정성국의 당부에 보건청장을 비롯한 여러 청장들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정성국은 바로 행정청장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행정청에서는 폭염으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될 농민들의 지원책도 생각해두게.”
“바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전하.”
* * *
“폭염이요?”
정성국은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이때 나라가 돌아가는 사정을 이야기하며 가볍게 토론을 나누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정성국은 현재 북미왕국 남부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한 이상 기후에 관해 이야기하자 연구실에 틀어박혀 연구만 하는 전아라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 정성국을 바라보며 되물었고.
“그래. 남부 내륙 지역에 폭염이 심하다더라. 그래서 그 문제로 지금까지 청장들과 회의를 하다 왔었고.”
정성국의 대답에 전아라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이번 휴가는 취소하거나 미루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에 옆에서 정성국과 전아라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하얀 들꽃이 고개를 끄덕이며 전아라의 의견에 동의했다.
“예. 기상 이변으로 남부 지역의 백성들이 고통받는 데 저희가 휴가를 떠나는 것은 조금 아닌 것 같아요.”
하얀 들꽃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궁을 마음대로 나가지 못하는 터라 이번 휴가를 누구보다 기다렸던 정안문과 정나리 역시 백성들을 생각해 이번 휴가를 미루거나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런 아이들의 말에 정성국은 내심 만족했다.
그동안의 교육 덕분인지, 아니면 천성이 선한 편인지 백성들을 먼저 생각했었으니까.
다만 정성국은 청장 회의를 통해 이번 이상 기후에 대한 대비는 다 세워두었기에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괜찮아. 이미 대책은 다 세워뒀으니까. 그리고 이번 휴가는 단순히 더위를 피해 쉬려고 가는 것이 아니야. 아국의 영토가 된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를 한 번쯤 방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서 그곳을 방문하는 김에 잠시 쉬겠다는 거지. 휴식보단 나랏일 때문에 방문하는 거랄까? 그리고 북미신문에서도 이번 여행은 예전 북미 동해안 지역의 방문처럼 현지 주민들을 위로하기 위한 방문으로 알려질 테니 백성들도 괜찮을 테고.”
“하지만...”
정성국의 말에도 무언가 걸린다는 듯 중얼거리는 전아라였고, 정성국은 그런 전아라의 반응에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했다.
“그리고 기왕 새한성을 나서는 김에 현재 이상 기후가 발생한 남부 지역을 직접 방문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여서 말이야.”
정성국의 말에 밥을 깨작깨작 먹던 정나리가 입을 열었다.
“아. 배를 타기 위해 새진주로 방문하기 전에 폭염이 발생한 지역들을 들를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 더불어 나는 새진주에서 배에 타지 않고 비행기를 이용해 내륙 지역도 방문할 생각이고.”
“비행기를요?”
“그래. 여러 지역을 빠르게 둘러봐야 하니까. 그 후에 다시 비행기를 타고 보스턴 항에서 합류할 생각이고.”
이번 폭염은 애리조나, 텍사스, 미시시피, 알칸사스 지역에서 발생한 만큼, 새진주에서 배를 타고 배를 타고 이동해도 되긴 했다.
미시시피 강을 이용하면 되니까.
다만 그렇게 되면 미시시피 강을 어느 정도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대서양으로 이동해 움직여야 하는 만큼, 시간이 오래 소모될 것이 분명했고.
해서 정성국은 기차를 타고 이동하며 애리조나 지역과 텍사스 지역을 둘러보고, 그 후 비행기를 타고 미시시피 지역과 알칸사스 지역을 둘러본 후, 다시 비행기를 타고 아국의 영토가 되었지만, 아직 한 번도 방문하지 못했던 내륙 지역인 미주리, 일리노이, 이로쿼이 지역까지 잠깐 들러 이곳 주민들을 다독인 후 보스턴 항에서 합류할 거라는 이야기에 전아라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괜찮을까요?”
다만 하얀 들꽃은 정성국의 말에 조금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이건 이유가 있었다.
북미왕국은 계속해서 황새급 비행기를 생산해 곳곳에 있는 공항에 배치했고, 덕분에 매일같이 여러 대의 비행기가 하늘을 날게 되었고.
그렇게 여러 대의 비행기가 매일 하늘을 날다 보니 종종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사고 가운데는 하늘을 날던 비행기의 동력이 멈춘 대형 사고도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다행히 이 비행기를 조종하던 조종사가 나름대로 비행 경험이 많은 인물이었기에 기관이 멈추었어도 활공을 통해 평지로 이동한 후 동체 착륙을 성공시켜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자칫했으면 유능한 조종사와 외무청의 고위 관리를 잃을 뻔했었기에 간담이 서늘했었던 정성국과 청장들이었고.
하얀 들꽃도 이 소식을 접한 적이 있었기에 정성국이 비행기를 이용한다는 사실에 걱정스럽다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자 정성국은 자신을 걱정하는 하얀 들꽃의 얼굴을 바라보고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내가 탑승하는 비행기는 더욱 철저히 점검하고 관리할 테니까. 그러니 별문제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
이 사고 소식을 접한 후 비행기를 운용하는 군사청에서는 비행기의 관리와 정비에 더욱 힘을 쓰고 있었다.
거기에 정성국이 직접 비행기를 타고 이동한다고 하면, 군사청에서는 더욱 철저히 정성국이 탑승할 비행기를 정비할 것이 분명했고.
그러니 조금 위험하긴 해도 낙하산마저 존재하는 만큼, 정성국은 일말의 걱정도 없었고, 그런 태평한 정성국을 보고 하얀 들꽃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수긍했다.
“휴우. 알겠어요. 그럼.”
그런 하얀 들꽃의 반응에 옆에 있던 전아라는 괜찮을 거라며 조용히 하얀 들꽃을 다독였고.
그때 정안문이 정성국의 눈치를 살피며 슬쩍 입을 열었다.
“저...”
그리고 정성국은 정안문의 기대 어린 눈빛에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깨닫고 단호히 거절했다.
처음 황새급 비행기가 개발되고 안전이 확인된 이후, 정성국은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정안문의 비행기 탑승을 허락했다가 나중에 전아라에게 바가지를 긁혔었으니까.
다만 이를 말할 수 없는 정성국은 다른 이유를 대었다.
“안돼. 물론 비행기가 무척 안전하다지만 만약을 대비해야 하니 함께 움직이는 것은 안 되지.”
“...알겠습니다.”
정성국의 반응에 시무룩한 얼굴을 짓는 정안문이었고, 그런 정안문의 반응에 정성국은 조금 미안해서 한마디 덧붙였다.
“대신 따로 김봉길 1함대 사령관에게 말해 둘 테니 넌 신형 전선을 구경해보거라.”
“감사합니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