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8화
조용한 곰과의 대화를 마무리한 정성국은 새로운 함대의 창설을 의논하기 위해 군사청장과 김봉길 1함대 사령관을 집무실로 불렀고.
오후가 되자 집무실을 방문한 군사청장과 김봉길은 정성국이 동남아시아 지역에 새로운 함대를 창설하겠다고 밝히자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예? 분함대 수준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함대를 창설하시겠다고요?”
개발청이 보르네오 섬과 수마트라 섬에서 석유를 발견한 이후 이를 외무청과 군사청에 알린 터라 군사청에서도 동남아시아 지역의 사정을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석유가 발견된 이상, 외무청이 반자르 술탄국과 팔렘방 술탄국과 교섭해서 땅을 확보하려 들 것은 분명했고, 북미왕국을 기만한 네덜란드를 압박해 말라카 항과 실론 섬의 땅마저도 확보할 생각이라는 것을 들었던 군사청장은 이곳에 배치할 해군 함대 때문에 김봉길을 불러 이를 논의했었고.
이때 김봉길은 이렇게 확보한 땅에 건설될 항구에 2, 3척 규모의 분함대들을 창설해 배치한 후, 이 분함대들을 아시아 지역을 담당하는 3함대에 맡기자고 이야기했었고.
그 정도만 하더라도 항구의 방어는 충분하리라 판단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의견에 군사청장 역시 동의했고.
강평화가 개발한 화포들 가운데 사거리를 대폭 늘린 요새형 화포의 경우 장거리 포격이 가능한 터라 이를 배치하면 항구의 방어는 충분했기에 항구에 배치된 전선을 이용하면 주변 해역의 감시와 방어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판단한 탓이다.
헌데 정성국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새로운 함대를 창설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군사청장은 놀란 얼굴로 정성국을 바라보았고, 1함대 사령관이자 실질적으로 해군을 관리하기에 새로운 함대를 창설한다면 일이 넘쳐날 것을 직감한 김봉길은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는 얼굴로 정성국을 바라보았고.
“분함대 수준이라고 해봐야 전선 서너 척이 전부인데, 그걸로 유사시 말라카 해협을 오가는 수많은 배를 통제하긴 어렵잖나.”
“통제라...전하께서는 말라카 해협을 오가는 배들을 통제하길 원하시는 겁니까?”
정성국의 대답에 군사청장이 굳은 얼굴로 되묻자 정성국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완벽한 통제를 바라는 것은 아니네만...최소한 해적들이 말라카 해협을 통해 태평양으로 진입하는 것은 막았으면 해서 말이네.”
정성국의 대답에 그동안 수많은 해적들을 상대했기에 해적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봉길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말라카 항에 새로운 함대가 주둔해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해적들이 섣불리 말라카 해협을 이용하지는 못하겠군요.”
북미왕국 해군이 해적들을 가차 없이 격침시킨다는 소문은 해적들에게 널리 알려졌고, 그 때문에 북미왕국이 필리핀 북부에 교두보를 확보하고, 3함대에서 필리핀 북부 해안가에 전선을 파견하자 필리핀 인근에서 활동하는 해적들은 북부 해역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니 북미왕국에서 말라카 항에 대규모 함대를 배치한다면 말라카 해협에는 얼씬도 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고.
“그리고 동남아시아 지역에 바글거리는 해적들을 좀 줄일 필요가 있어. 그래야 항로의 안전이 확보되고, 국영 상단이나 동맹국의 상단들이 안전하게 항해를 할 수 있겠지.”
물론 아직까지 호주 연합이나 조선이 동남아시아 지역에 상단을 파견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호주 연합은 몰라도 조선의 상단들은 의외로 모험심이 강했다.
아니. 모험심이 강하다기보다는 해외 무역으로 얻는 이득에 눈이 돌아갔다고 해야 할까.
특히 조선에서도 후추 같은 향신료들은 비싼 편이었고, 북미왕국을 방문한 이들이 서양의 음식들을 접하면서, 기존의 조선에서 사용하지 않던 향신료의 수요도 늘어나고 있었으니까.
해서 지금까지는 중국, 그러니까 주나라나 동녕국과 거래해 이러한 향신료를 사 왔지만, 조선의 상단들은 더 큰 이익을 위해 직접 동남아시아 지역을 방문해 향신료를 구매하고 싶어 했고,
다만 장거리 항해가 가능한 범선이야 원상에서 구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 지역에 들끓는 해적들을 조선의 상단들이 상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였다.
특히 조총은 몰라도 화포 같은 무기를 상단이 사사로이 보유하도록 순순히 허락할 조선 조정은 아니었기에.
해서 조선의 상단들은 북미왕국이 하루라도 빨리 동남아시아에 진출하길 바라고 있었다.
북미왕국이 동남아시아에 진출하면 해적들이 사라질 테니 안전하게 동남아시아의 바다를 드나들며 해외 무역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챙길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인지 현재 필리핀 북부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3함대에 줄을 대기 위해 난리를 칠 정도였고, 이러한 사실을 정일신 3함대 사령관을 통해 보고받았던 김봉길은 웃으며 중얼거렸다.
“하하하. 조선의 상단들이 무척 좋아할 소식이로군요. 더불어 에스파냐나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의 상인들도 반길 소식이고요.”
북미왕국의 해군을 피해 해적들이 다른 해역으로 도망치면서, 그 피해는 유럽 상인들이 받았고, 이는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나름 어깨를 펴고 다니는 에스파냐나 네덜란드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에 에스파냐는 아시아 무역 항로의 보호를 위해 기꺼이 필리핀 북부 지역을 북미왕국에 넘겼고, 네덜란드도 자신들의 이익과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까지 감수하면서까지 북미왕국의 동남아시아 진출을 돕는 것이고.
그러니 북미왕국이 본격적으로 동남아시아에 새로운 함대를 창설하고 해적들을 박멸하겠다고 나선다는 것이 알려지면, 이들이 무척 환영하겠다는 생각을 한 김봉길이었고.
다만 군사청장은 조금 골치 아프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라카 항에 새로운 함대를 창설해 배치하고, 실론 섬에도 분함대 수준의 전선을 배치해야 하며, 외무청이 현지 세력을 설득하고 항구를 건설할 땅을 확보하면 그곳에도 전선을 배치해야 하는데...”
“당장 그 많은 전선을 확보할 방법이 없다는 거겠지?”
“그렇습니다. 전하. 조선소들에서 신형 전선의 생산에 집중하고 있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1년에 4, 50척씩 생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새로운 함대를 창설하고 곳곳에 분함대를 배치하려면 못해도 다른 함대와 비슷한 숫자의 전선들, 최소한 2, 30척의 전선이 필요한데, 지금은 기존의 전선을 신형 전선으로 교체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라 전선을 건조하는 조선소들은 쉬지 않고 전선을 건조 중이었다.
그러니 당장 배를 구할 방법이 없다는 군사청장의 하소연에 정성국이 잠시 고민하다 어깨를 으쓱했다.
“뭐...꼭 신형 전선만 고집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신형 전선 교체 사업을 통해 나오는 기존의 전선들을 최대한 활용해야겠지.”
“그게 좋겠군요. 물론 기존의 전선이 신형 전선보다 못하다지만, 해적선들을 상대하는 데는 충분하니까요.”
정성국의 말에 김봉길이 맞장구치자 군사청장이 난처하다는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기존의 전선 가운데 쓸만한 전선들을 모두 해안 경비대로 배치할 예정이었던지라...”
이에 정성국은 잠시 고민하다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결정을 내렸다.
“그렇긴 한데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뭐 어쩌겠나. 당장 급한 동남아시아 지역에 새로운 함대를 창설해 배치하는 것이 우선이니...”
해안 경비대의 확장보다는 새로운 함대의 창설이 우선이라고 이야기하는 정성국의 말에 김봉길이 끼어들었다.
“뭐 어차피 해안 경비대는 북미 대륙의 해안가를 순찰하는 것이 주 임무이니만큼, 선령이 오래되어 폐기하기로 잠정 결정을 내렸던 전선을 수리해 배치해도 될 겁니다. 아니면 전선이 아니라 일반 선박에 약간의 무기만 장착해 사용해도 그만이고요.”
김봉길의 의견에 북미왕국 본토의 안전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군사청장이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일반 선박은 조금...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본토의 방어 아니겠습니까.”
“그야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현 상황에서 어떤 나라가 감히 아국을 건드리겠습니까. 해적들도 마찬가지고요.”
김봉길의 말마따나 현재 유럽의 정세를 볼 때 북미왕국을 건드릴 나라는 없어 보였기에 정성국이 바로 김봉길의 말을 받아 군사청장에게 말했다.
“그건 그렇지. 그럼 해안 경비대에 배치하기로 했던 기존의 쓸만한 전선들은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배치하고, 수리할 수 있는 전선들은 수리해서 해안 경비대로 배치하도록 하게. 그래도 부족하면 일반 선박을 개조해 배치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전하.”
정성국이 이미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직감한 군사청장은 바로 수긍했고.
그 이후 이들은 새로운 함대의 창설에 관해 대화를 시작했다.
“그럼 이번에 창설될 함대는 7함대가 되는 겁니까?”
“그렇지. 그리고 7함대는 일단 동남아시아 지역과 인도 지역의 바다를 담당하는 것으로 하지.”
“휘유. 생각보다 7함대의 규모가 커지겠는데요?”
정성국은 생각외로 7함대에 힘을 실어줄 기세라 김봉길이 감탄하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지. 뭐 당장 인도 지역이야 실론 섬 방어에만 집중하면 되겠지만 동남아시아 지역은 유럽 출신 해적들도 그렇고, 현지인들로 구성된 해적에 저 청나라 출신의 해적들도 존재하는 만큼, 어느 정도의 규모는 되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이에 김봉길이 조금 묘한 기대가 섞인 눈초리로 정성국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여러 나라의 해적들이라...이거 7함대 사령관 자리가 무척 탐나는데요?”
이런 김봉길의 중얼거림에 예전 김봉길이 카리브 해의 해적 소탕을 위해 2함대 사령관 자리를 맡으면서 그가 맡아야 했던 해군 업무를 도맡아야 했던 군사청장이 경기를 일으키며 말했다.
“...그런 끔찍한 소리 좀 하지 말게.”
“말라카 항은 너무 멀어서 안 돼. 그러니 적당한 인물을 뽑도록 하게.”
그리고 정성국 역시 현시점에서 해군을 총괄해야 할 김봉길이 자리를 비우는 것은 곤란했기에 단칼에 끊자 김봉길은 조금 아쉬워하면서도 현 상황을 모르지 않기에 곧 아쉬움을 털어버리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 이후 정성국은 김봉길, 군사청장과 함께 본격적으로 7함대 창설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대략적인 논의가 끝났을 때, 조금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흠. 20척이라...조금 부족한 것 같은데...”
7함대는 신형 전선 4척과 기존의 전선들을 합쳐 총 20척 규모로 결정되었다.
다만 기존의 3함대가 담당하고 있던 필리핀 북부 지역, 그리고 실론 섬, 석유가 매장되어 있기에 꼭 항구를 건설할 필요가 있는 보르네오 섬과 수마트라 섬까지, 7함대는 총 4개의 분함대를 창설해 배치해야 하는 만큼, 그리고 분함대가 주변 해역을 순찰하려면 최소 3, 4척 규모는 되어야 했기에 정성국은 7함대의 규모가 좀 작지 않나 싶은 얼굴이었고, 이런 정성국의 반응에 김봉길이 어깨를 으쓱했다.
“반자르 술탄국과 팔렘방 술탄국의 교섭이 잘 끝나면 추가로 증원하면 되겠지요.”
“음. 그래. 그편이 낫겠군. 그럼 7함대 문제는 그렇게 하도록 하도록 하지.”
그렇게 7함대 창설과 관련된 논의가 끝나고 정성국은 김봉길, 군사청장과 커피를 마시며 잠시 잡담을 나누다 김봉길을 보고 말했다.
“그보다 곧 여름 휴가를 갈 생각인데...”
“여름 휴가요? 그걸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배를 타고 움직이실 겁니까?”
보통 정성국이 휴가를 겸해서 다른 지역을 이동할 때는 호위대장과 의논하지만, 배를 타야 할 때는 김봉길과 함께 상의했었기에, 김봉길이 질문을 던지자 정성국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답했다.
“고민 중이네. 비행기를 타고 움직일지, 아니면 배를 타고 이동할지.”
“어딜 방문하시게요?”
“날도 더우니 그나마 선선한 아이슬란드에서 휴가를 보낼 생각이거든.”
“아이슬란드요?”
아이슬란드는 이 새한성에서 무척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김봉길은 뭐하러 그 먼 동토까지 가느냐는 얼굴로 정성국을 바라보았고, 이는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군사청장도 마찬가지였다.
해서 정성국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 아이슬란드. 최근 연구청에서 아이슬란드에 건설했던 지열 발전소를 완성했기에 한 번쯤 들러야겠다고 생각했거든. 그리고 아이슬란드가 아국의 영토가 되었지만, 이전까진 덴마크의 식민지였으니 한 번쯤 방문해 민심을 살필 생각이기도 했고. 해서 겸사겸사 가볼 생각이야. 그리고 아이슬란드까지 간 김에 페로 제도도 들러볼 생각이고.”
정성국이 페로 제도까지 언급하자 김봉길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페로 제도요? 거기 별로 볼 것이 없을 텐데요? 불편하기도 할 테고...”
“불편이야 충분히 감수할 수 있네. 그리고 페로 제도는 아이슬란드와 함께 아국의 영토가 되었는데 내가 아이슬란드만 방문하고 가버리면 페로 제도에 사는 백성들이 아쉬워할 테니 잠깐이라도 들르긴 해야지. 뭐 아이슬란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허면 1함대가 호위하겠습니다. 비행기가 빠르긴 한데 무척 불편하고, 왕실 가족이 모두 움직일 수도 없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그게 나을 것 같습니다.”
김봉길과 군사청장의 권유에 정성국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알겠네. 그럼 자네가 미리 준비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