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675화 (675/850)

675화

열대 우림이 우거진 지역을 현지인들이 앞장서서 정글도를 휘둘러 길을 내며 이동하고 있었고. 이렇게 만들어진 길을 뒤따르던 개발청 소속의 김양우가 비처럼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훔쳐가면서 발걸음을 옮기다 힘이 부치는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어휴. 정말 죽겠네요.”

이에 조금 앞서서 걷던 같은 개발청 소속이자 김양우의 선임인 심의남이 발걸음을 멈추고 허리띠에 걸려 있던 수통을 열어 목을 축인 후 김양우를 바라보며 대꾸했다.

“그러게. 무더운 지역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오긴 했는데...이동이 쉽지 않네. 이거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거야?”

이전에 잠시 휴식을 취했을 때, 현지인들과 대화를 나누었던 외무청 관리가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면서, 이후로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는 휴식 없이 이동하겠다고 이야기했기에 슬슬 목적지에 도착할 때가 된 것 같았는데, 앞서서 안내하는 현지인들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에 심의남이 조금은 답답하다는 얼굴로 투덜거리자, 김양우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한 후 대답했다.

“어디 보자...10시 50분? 거의 다 온 것 같은데요? 아까 휴식 때 듣기로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으니까요.”

김양우의 대답에 심의남은 다행이라는 얼굴로 수통을 다시 허리띠에 걸고, 저 앞에서 열심히 길을 내고 있는 현지인들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살폈다.

“그래? 곧 도착한다니 다행이긴 한데...정말 이 근방에 석유가 있는 건가?”

개발청 소속의 심의남과 김양우가 외무청 관리의 도움으로 현지인들을 고용해 열대 우림을 이동하는 것은 바로 석유 때문이었다.

정보기관에서 동남아시아 지역의 수마트라 섬, 자바 섬, 보르네오 섬에 석유가 매장되어 있을 것 같다는 정보를, 그리고 외무청에서 프랑스와 반프랑스 동맹 사이의 협상에서 은근슬쩍 네덜란드 편을 들어주는 대신 네덜란드는 북미왕국의 동남아시아 진출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자 개발청에서는 즉각 세 섬으로 개발청 관리들을 파견해 정말 석유가 묻혀있는지 확인토록 했고.

북미왕국의 필리핀 북부 지역 거점 항구인 일로카노 항 주변을 탐사 중이던 심의남과 김양우는 본국의 명령을 받자마자 즉각 외무청 관리와 함께 보르네오 섬으로 이동해 현지인들과 접촉해 정보를 수집한 후 탐사를 시작했다.

다만 내륙 지역의 자원 탐사들이 늘 그랬듯 이번 탐사도 꽤 고생해야 했는데 석유를 발견하지 못하면 이 고생이 무의미해지기에 심의남이 조금 걱정스럽다는 듯 중얼거리자 심의남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던 김양우가 괜한 걱정이라는 얼굴로 대답했다.

“에이. 선배님도 원주민의 말을 들어보셨잖아요. 석유가 확실합니다. 악취도 나고, 끈적끈적한 검은 물이 고여 있다던데...그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석유잖습니까.”

“원주민들은 석유를 모르니 썩은 물로 착각하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하는 소리지.”

“에이. 이 섬에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는 정보는 정보기관에서 흘러나온 거잖아요. 걔들 정보가 틀린 적이 있던가요?”

김양우의 말처럼 정보기관에서 어떤 자원이 묻혀 이는 것 같다는 정보는 지금까지 틀린 적이 없었기에 심의남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수긍했다.

“끙...그건 그래. 헌데 정보기관에서는 용케 그런 정보를 수집한단 말이지?”

김양우는 심의남의 감탄 섞인 의문에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 친구들의 정보 수집 능력은 대단하잖습니까.”

“그건 인정해. 다만 기왕 그런 소식을 파악했으면 현지인들과 접촉해 정확한 위치도 좀 파악해주지, 너무 대충이란 말이지?”

이들이 말하는 정보는 실제 정보기관이 현지인들의 정보를 수집한 것이 아니라 정성국의 기억에서 꺼낸 정보였다.

북미왕국의 존재로 이미 전생의 역사와 현재의 역사는 많이 뒤틀렸지만, 자원이 묻힌 장소가 뒤바뀔 일은 없었으니까.

다만 정성국이 광물 매장 지도나 광산 지도는 본 적이 없었기에 전생의 기억이 있는 정성국으로서도 정확한 위치를 말해 줄 수는 없었고, 덕분에 개발청의 관리들은 지금처럼 넓은 지역을 탐사해야 했다.

해서 심의남이 투덜거리자 김양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솔직히 그건 좀 그렇죠. 이번에도 석유의 위치를 찾느라 고생했고, 예전에도 대략적인 위치만 듣고 자원을 찾다가 고생한 적이 워낙 많았으니.”

“그리고 이곳에 정말 석유가 매장되어 있어도 문제야.”

“예?”

“알잖아. 본국은 본격적으로 세계 각지에 매장되어 있는 석유를 캐낼 생각이라는 것을. 그러니 이곳에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면 이곳을 본격적으로 개발할 텐데...이런 열대 지역을 개발하기는 쉽지 않거든.”

“아...그건 그렇겠네요.”

김양우는 개발청 관리였기에 열대 지역을 개발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여러 풍토병과 질병들도 문제였고.

그렇기에 김양우가 심의남의 말에 수긍했을 때, 심의남이 다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거기에 석탄의 경우는 현지인들을 고용해 석탄을 캘 수 있지만, 석유는 달라. 석유 시추 현장의 관리나 원유 정제 공방의 운영은 기술 유출 우려 때문에 결국 우리가 맡아야 한단 말이야. 그러니...어쩌면 우리가 이곳에서 근무해야 할 수도 있고.”

심의남이나 김양우는 개발청의 자원 탐사 일을 맡기 전에 새나주의 원유 정제 공방에서 잠깐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를 개발청에서도 모르지 않을 테니 어쩌면 자신들이 이곳에 남아 현장에 배치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심의남이었고, 이런 심의남의 생각에 김양우는 순간 얼어붙었다.

“...맙소사. 듣기만 해도 끔찍한데요? 이렇게 후덥지근한 지역에서 살고 싶지는 않은데...”

보르네오 섬은 적도에 걸쳐 있어 기온도 높은 편이고, 여기에 강수량마저 많아 연중 내내 습한 편이었다.

그러니 필리핀에서도 기후 때문에 힘들었던 김양우는 몸을 부르르 떨었고, 심의남도 더위에 약한 편이었기에 김양우의 반응에 맞장구쳤다.

“그러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새나주의 원유 정제 공방에서 계속 일할 것을 그랬어.”

“그러게요. 본토라 지내기도 좋고...으. 정말 다시 새나주로 가고 싶은데요? 그냥 사직하고 본토로 돌아갈까요?”

김양우의 투덜거림에 심의남이 뭐라 대꾸하기 전에, 앞쪽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이동하던 외무청 관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에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예?”

“물론 이곳이 장난 아니게 후덥지근하긴 한데...저희에겐 냉방 장치가 있잖습니까. 물론 밖에서 일할 때야 조금 힘들긴 하겠지만 말이지요.”

“어?”

“아!”

필리핀의 경우는 석탄이 부족한 편이었기에 충분한 전기를 생산하지도 못하고 있었고, 당연히 냉방 장치를 가동할 생각조차 못 했었지만, 이곳은 달랐다.

이곳을 개발한다는 뜻은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는 뜻이고, 석유만 충분하다면 냉방 장치를 가동할 전기까지 생산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해서 심의남과 김양우는 안도하자, 그런 둘의 반응에 빙긋 웃던 외무청 관리가 앞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보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오. 그래요? 이 근처에 석유가 있다는 말이지요? 그럼 빨리 주변을 확인하도록 하지요.”

심의남은 김양우와 떠드는 사이 목표로 했던 지역에 도착했음을 깨닫고 바로 김양우에게 손짓하며 주변을 둘러보는 현지인들과 합세해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고.

잠시 후 김양우가 웅덩이에 고여 있는 검은 물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저 반대편에 있는 심의남에게 외쳤다.

“어? 선배님! 석유를 발견한 것 같습니다!”

“그래?!”

심의남은 김양우의 외침에 바로 발걸음을 옮겼고, 웅덩이에 고여 있는 검은 물을 확인하고, 일부를 떠서 냄새를 맡은 후 석유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허. 맞네. 이건 석유야. 그럼 정말 이 지역에 석유가 매장되어 있나 보네.”

심의남의 확인에 뒤에 있던 외무청 관리가 심의남을 바라보았다.

“그럼...?”

“예. 바로 본국에 보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외무청에서는 이 지역을 확보하기 위해 움직여주셔야 할 것 같고요.”

“아. 알겠습니다.”

* * *

“뭐? 동남아시아에 파견된 개발청 관리들이 석유를 발견했다고?”

정성국이 집무실을 찾아온 개발청장과 조용한 곰에게 커피잔을 건네주며 방문한 용건을 묻자 개발청장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올라온 석유를 발견했다는 보고를 전했고.

이를 듣고 정성국이 눈을 빛내며 되묻자 개발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전하. 이 보르네오 섬에서 석유를 발견했지요.”

그러면서 개발청장은 가져온 지도를 티테이블 위에 펼치자, 정성국은 동남아시아 지역이 그려진 지도의 중앙에 위치한 보르네오 섬과 그 보르네오 섬 동쪽 해안가에 x자로 표시된 곳의 위치를 확인하고 조금 묘한 표정을 지었다.

“으음. 이곳에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고?”

정성국이 정보기관의 이름을 빌려 보르네오 섬에 석유가 존재한다고 알리기는 했다.

다만 정성국은 전생의 브루나이가 산유국이라는 생각에 이 섬에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고 이야기한 것인데, 개발청 관리들이 석유를 발견한 지역은 브루나이가 아니었기에.

‘흠...뭐 상관없나? 어차피 전생의 인도네시아도 산유국이었으니...’

정성국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개발청장이 정성국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보고에 의하면 석유 일부가 지표면에 흘러나왔을 정도라고 하니 지표면에 가까운 곳에 매장되어 있는 것 같고, 그런 만큼 석유를 채취하는 것도 쉬울 듯합니다. 또한,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곳은 해안가에 가까우니 석유를 운반하기도 수월할 것 같고요.”

지도를 확인해보니 석유가 매장된 지역은 해안가에서 약 50km가량 떨어져 있었기에 굳이 철도를 깔지 않더라도 석유를 수송하긴 쉽겠다고 생각하며 정성국이 입을 열었다.

“호오. 그래? 그럼 바로 이 지역을 확보해 개발을 시작하면 되겠는데?”

이에 개발청장은 슬쩍 조용한 곰을 바라보았고, 정성국과 개발청장이 이야기를 나눌 때는 커피를 마시고 있던 조용한 곰이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헌데 문제가 조금 있습니다.”

“문제? 무슨 문제?”

“네덜란드는 이 동남아시아 지역의 여러 섬들을 장악하거나 현지 토착 세력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만...실제 상황은 조금 다르더군요.”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고개를 갸웃했다.

“다르다고?”

“예. 이번에 석유를 발견한 보르네오 섬 동쪽은 반자르 술탄국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인데, 이 반자르 술탄국의 세력이 생각외로 강합니다.”

“허어. 그래?”

“반자르 술탄국의 중심지인 보르네오 섬 남쪽의 반자르 지역은 땅이 비옥하고, 강수량이 적당해 논농사에 적합한 덕분에 인구도 꽤 많은 편이고, 후추를 재배해 판매함으로써 꽤 부유한 편이거든요. 그렇기에 네덜란드가 몇 번 반자르 술탄국의 후추 무역을 탐내 덤비기도 했지만 깨졌고 그 이후 무역 협정을 체결하며 우호적으로 지냈습니다만...한 10년 전부터 네덜란드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하면서 반자르 술탄국은 네덜란드를 경계하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지금은 사이가 썩 좋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러니 이 지역을 확보하는 데 네덜란드는 도움을 전혀 주지 못하겠지요.”

“으음...”

정성국도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한 유럽 세력이 처음부터 동남아시아 지역 전체를 장악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유럽에서 동남아시아 지역까지는 거리가 워낙 멀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에는 한계가 명확했기에.

해서 처음엔 점령하기 쉬운 지역이나 꼭 장악해야 하는 지역인 향신료 제도의 장악에 집중한 후, 토착 세력들과의 분쟁이나, 내부에서 권력 다툼이 발생했을 때 외교적, 군사적으로 개입해 조금씩 세력을 확장해 나가다가 결국 동남아시아 지역의 토착 세력들을 하나둘 보호국으로 전락시키며 동남아시아 지역 전체를 장악하게 되고.

다만 정성국은 이러한 흐름 자체는 알고 있었지만, 동남아시아 지역의 역사책 등을 읽은 것은 아니었기에 정확한 시기는 몰랐고, 네덜란드 대사는 항상 동남아시아 지역의 대부분이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했으며, 호주 연합에서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하다 접촉한 뉴기니 섬의 원주민들 역시 섬 서쪽은 네덜란드 세력이 가득하다며 호들갑을 떨었기에 네덜란드가 이미 동남아시아 지역의 토착 세력들을 대부분 보호국으로 만들어버렸다고 판단했는데, 조용한 곰의 말을 들어보니 일부 토착 세력들은 아직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북미왕국으로서는 네덜란드의 도움 없이 토착 세력과 협상해 이번에 탐사한 지역을 확보해야 했고 이건 북미왕국으로서는 네덜란드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긴 했다.

다만 정성국은 나쁠 것 없다고 생각했다.

유럽 세력이 이미 동남아시아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면, 북미왕국으로서도 유럽과의 관계 때문에 확장을 자제할 수밖에 없지만, 아직 토착 세력들이 건재하다면 이들과 접촉해 우호적으로 교류하면서 이들을 북미왕국의 동맹 세력으로 끌어들여 유럽 세력의 확장을 막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해서 정성국은 조용한 곰을 보고 명령을 내렸다.

“그렇다면 반자르 술탄국과 정식으로 접촉하게. 해서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이 지역의 할양을 타진해보고 어렵다면 석유 개발권이라도 확보하면 되겠지.”

“알겠습니다. 전하.”

“그리고 동남아시아 지역에 더 많은 외무청 관리들을 파견하게. 동남아시아 지역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란 말일세.”

“그리하겠습니다. 전하.”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이쯤이면 되었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다 네덜란드를 떠올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허풍을 떤 네덜란드를 가만히 놔둘 생각은 아니겠지?”

이에 조용한 곰은 주먹을 불끈 쥐며 대답했다.

“그야 물론입니다. 철저히 네덜란드를 압박해 최대한 많은 것을 뜯어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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