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4화
그동안 새한성에서 진행되던 프랑스와 반프랑스 동맹 간의 협상이 마무리되고 정식으로 종전조약을 체결함에 따라 5년 넘게 계속되었던 전쟁이 끝나자 오스만 제국의 대사는 급히 조용한 곰과의 만남을 청했다.
서유럽에서의 전쟁이 끝난 이상, 에스파냐를 비롯한 일부 국가들은 신성로마제국을 돕기 위해 움직일 것이 뻔했는데, 현재도 전황이 유리한 상황은 아니다 보니 잘못하면 큰일 날 수도 있었기에 북미왕국의 도움이 절실했던 탓이다.
해서 오스만 제국의 대사는 조용한 곰을 만나자마자 기존의 가격보다 비싸게 살 테니 제발 신식 소총을 팔아달라고 요청했지만, 조용한 곰은 역시나 하는 얼굴을 하며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런 조용한 곰의 반응에 오스만 제국의 대사는 어떻게든 조용한 곰의 결정을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해 설득하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 조용한 곰을 보고 절망하며 거의 포기한 기색으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졌다.
”정말 안 되는 겁니까?“
이에 조용한 곰은 예의상 안타깝다는 얼굴을 하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신식 소총의 물량이 부족해 추가로 판매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솔직히 이전에 귀국에 넘긴 신식 소총의 물량도 귀국의 사정 때문에 무리하게 빼서 넘긴 터라 다른 곳의 반발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상황이라...“
”하아...“
북미왕국의 신식 소총 물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고, 그 때문에 예약이 밀려 있으며 신식 소총을 언제 인도받는지도 꽤 예민한 문제라는 것을 아는 오스만 제국의 대사는 조용한 곰의 말에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런 오스만 제국 대사의 반응에 조용한 곰은 조금 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 질문을 던졌다.
“음...그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은 겁니까?”
이 질문에 오스만 제국의 대사는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잠깐 고민했지만, 최대한 오스만 제국의 위기 상황을 강조해야 일말의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최근 도착한 연락선을 통해 전달받은 본국의 소식들을 모두 털어놓기 시작했다.
“...솔직히 썩 좋은 상황은 아니라더군요.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공격으로 포위망은 이미 풀린 상태라 빈을 함락시키려면 폴란드-리투아니아의 병력을 섬멸시키고 다시 빈을 포위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해서 본국에선 철수까지 고려하는 모양입니다.”
아직 오스만 제국은 작열탄이 없을뿐더러, 빈의 성벽은 높고 튼튼했다.
그렇기에 오스만 제국은 빈을 포위하고 물자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빈을 점령하려 했지만,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국왕인 얀 3세가 10만의 병력을 이끌고 빈을 포위하고 있던 오스만 제국군의 후방을 공격했고, 오스만 제국군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 후퇴하면서 포위망이 풀렸다.
그리고 포위망이 풀리자 즉각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일부 병력과 물자들이 빈으로 이동했고.
그러니 오스만 제국군이 빈을 함락하려면, 빈 주변에 주둔한 폴란드-리투아니아를 격파하고, 다시 빈을 포위해 빈 안쪽의 물자가 떨어질 때까지 버텨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
그러니 오스만 제국은 빈 인근에서 신성로마제국군과 폴란드-리투아니아군과 대치 중인 병력의 철수를 고려하고 있었고.
해서 오스만 제국의 대사가 이를 슬쩍 설명하자 조용한 곰은 오스만 제국의 결정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폴란드-리투아니아가 너무 많은 병력을 끌고 왔기에 오스만 제국으로선 철수하는 편이 낫겠지요.”
“예. 헌데 빈의 상황이 알려지고 우리 오스만 제국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으 알려지자 이를 기회로 보고 덤벼드는 나라가 많아서 말입니다. 그러니 이들을 모두 물리치려면 신식 소총이 더 필요한데...”
그러면서 오스만 제국의 대사는 은근슬쩍 조용한 곰을 바라보자 조용한 곰은 고개를 갸웃했다.
“덤벼드는 나라가 많다고요? 신성로마제국과 폴란드-리투아니아 말고도 오스만 제국을 공격하려는 나라가 또 있습니까?”
“많지요. 교황청이 움직였으니까요.”
“하지만 태반은 조그만 소국들이잖습니까. 오스만 제국이 우려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조용한 곰의 대답에 오스만 제국의 대사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일부 국가들은 크게 문제가 없지요. 헌데...러시아 차르국마저 이번 전쟁에 개입할 것 같습니다.”
“예? 러시아 차르국이요?”
예상외의 대답에 조용한 곰이 놀라 오스만 제국의 대사를 바라보며 정말이냐는 듯 눈빛을 보내자 오스만 제국이 바로 입을 열었다.
“정말입니다. 아국이 약세를 보이는 틈을 타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하겠다는 뜻이겠지요.”
“으음...”
생각해보면 러시아 차르국은 북미왕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시베리아 부족 연합의 발호로 막대한 영토를 잃었고, 더는 동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만큼, 영토를 확장하려면 서쪽과 남쪽뿐인데, 현재 오스만 제국은 발칸 반도에 주둔한 신성로마제국과 폴란드-리투아니아를 비롯한 가톨릭 국가들의 병력에 집중할 수밖에 없으니 러시아 차르국으로선 남쪽으로 영토를 넓힐 절호의 기회이긴 했다.
해서 조용한 곰이 오스만 제국의 대답에 러시아 차르국의 속셈을 짐작하고 신음을 흘렸을 때, 오스만 제국의 대사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문제는 아국이 당장 러시아 차르국의 남하를 신경 쓰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아국의 병력이 철수한다면 분명 신성로마제국과 폴란드-리투아니아, 베네치아 공화국 등의 나라들이 집요하게 아국의 병력을 추격하면서 발칸 반도로 진출하려 들 것이 뻔한지라...”
“그러니 이전에 가져간 신식 소총은 모두 발칸 반도 쪽으로 배치할 수밖에 없다는 거군요.”
조용한 곰은 오스만 제국 대사의 말을 듣고 최근 오스만 제국에 넘긴 1만 자루의 신식 소총을 이용하면 신식 소총이 없는 러시아 차르국의 남하 정도는 충분히 저지할 수 있지 않나 싶었지만, 오스만 제국 대사의 말을 들어보니 그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아 이를 언급하자 오스만 제국의 대사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신식 소총을 추가로 1만 자루...아니. 5천 자루라도 어떻게 구할 방법이 없겠습니까. 그 정도만 하더라도 남하하는 러시아 차르국의 병력을 막아낼 수 있을 겁니다.”
“으음...”
조용한 곰이 신음을 흘리며 잠시 생각에 잠기자, 오스만 제국의 대사는 잠시 의아한 얼굴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았다.
오스만 제국의 대사는 조용한 곰이 당연히 신식 소총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할 줄 알았던 것이다.
다만 신식 소총이 아니더라도 북미왕국의 군수 물자를 수입할 수 있다면, 오스만 제국으로서는 나쁠 것이 없었기에 이를 대신 요청할 생각이었고.
헌데 조용한 곰은 자신이 러시아 차르국을 언급하자 관심을 보였고, 이들을 막기 위해 신식 소총을 달라는 자신의 요청을 단칼에 끊지 않고 생각에 잠기자 오스만 제국의 대사는 아직 기회가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곧바로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에 북미왕국이 우리 오스만 제국을 도와준다면, 우리 오스만 제국은 이를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더불어 신식 소총의 대가로 무엇이든 넘겨주겠다고 덧붙이자 생가에 잠겨있던 조용한 곰은 오스만 제국의 대사를 보고 입을 열었다.
“...5천 자루의 신식 소총을 추가로 넘기는 대가로 귀국의 영토 일부를 넘기실 수 있겠습니까?”
“예? 영토요?”
“그러니까...”
* * *
“러시아 차르국이 오스만 제국을 공격할 것 같다고?”
정성국은 갑자기 집무실을 찾아온 조용한 곰에게 커피가 담긴 커피잔을 건네주다가 조용한 곰의 보고에 눈을 크게 뜨고 반문하자 조용한 곰이 답했다.
“예. 신성로마제국과 폴란드-리투아니아를 비롯한 여러 가톨릭 국가들은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모양입니다. 해서 오스만 제국은 이들을 막는데 신경을 쓸 수밖에 없으니 러시아 차르국으로서는 영토를 넓힐 절호의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확실히 러시아 차르국으로서는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할 좋은 기회였다.
더불어 러시아 차르국과 오스만 제국은 국경을 맞대고 있기에 빈말로도 관계가 좋다고 하긴 어려운 사이였고.
그러니 오스만 제국이 여러 가톨릭 국가들을 상대하느라 바쁠 때 함께 공격해 약간의 이득이라도 취하는 것이 당연하긴 했다.
다만 정성국은 걸핏하면 전쟁을 시작하는 유럽 국가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에 중얼거렸다.
“거참. 진짜 유럽은 건수만 있으면 전쟁이로군.”
그리고 이런 정성국의 중얼거림을 들은 조용한 곰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렇지요. 아무튼, 오스만 제국의 상황이 무척 급해졌기에 이를 이용하면 페르시아 만 안쪽에 항구를 건설할 땅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성국은 갑자기 페르시아 만을 거론하는 조용한 곰의 말에 당황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음?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조용한 곰은 오스만 제국의 대사와 만나 나눈 이야기를 그대로 정성국에게 전했고, 정성국은 이를 다 듣고 조용한 곰의 말을 정리하듯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신식 소총 5천 자루를 넘기는 대신, 영토 일부를 넘겨받기로 했다고? 그리고 내가 전에 페르시아 만 주변에 석유가 묻혀있다고 말했던 것이 떠올라 이를 요구했다?”
“그렇습니다. 아국의 배들이 움직이려면 연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오스만 제국도 알고 있기에 항구를 건설할 땅과 이 항구를 유지하기 위한 배후 도시를 건설할 정도의 땅을 내어달라고 하자 조금 고민했지만, 상황이 급한지 결국 수락하더군요. 그러니...”
조용한 곰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흐리자 정성국이 피식 웃으며 조용한 곰을 바라보며 그 말을 받았다.
“기왕 땅을 받는 김에 석유가 매장된 지역을 받아내겠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해서 전하께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곧바로 신식 소총을 넘기고, 페르시아 만으로 개발청 소속의 석유 기술자들을 파견할 생각이고요.”
물론 페르시아 만 유역 전체가 오스만 제국의 땅은 아니다.
페르시아 만 북쪽은 주변 국가들이 페르시아 제국으로 부르는 사파비 제국이, 남쪽은 오스만 제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현지 세력이 장악하고 있었으니.
다만 오스만 제국이 도와준다면 페르시아 만 남쪽의 땅을 얻기는 쉬워 보였고, 그게 아니더라도 오스만 제국의 영토인 전생의 쿠웨이트 지역의 땅을 넘겨받으면 그만이었기에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말에 흥미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페르시아 만 인근에 묻혀있는 석유들은 품질이 무척 좋은 편이었으니까.
거기에 이번 새한성 조약을 중재한 대가로 네덜란드도 아국의 동남아시아 진출을 적극적으로 돕기로 약속했으니 동남아시아와 중동의 유전을 어느 정도 확보하게 되면 석탄을 버리고 그나마 오염물질이 덜 나오는 석유로 완전히 갈아타는 것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고.
아무리 정성국이 석탄을 연소하면서 나오는 오염물질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이 때문에 연구청에서도 이런 오염물질의 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각종 연구를 진행하고는 있지만, 아직 기술의 한계가 명확했으니까.
다만 정성국은 이러다 오스만 제국의 세력이 너무 커지는 것이 아닐까 싶어 조용한 곰을 보고 질문을 던졌다.
“흐음...지금까지 오스만 제국에 넘긴 신식 소총의 물량이 3만 자루인가?”
“그렇습니다. 여기에 5천 자루가 추가되는 거지요.”
“그럼 총 3만 5천 자루인데...이거 잘못하다 오스만 제국이 주변을 정복하겠다고 날뛰는 것 아니야?”
정성국의 걱정에 조용한 곰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을 겁니다. 오스만 제국의 사방이 적이니까요. 고작 5천 자루 더 넘긴다고 해서 오스만 제국이 주변국을 모조리 격파하고 영토를 확장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오스만 제국의 사방이 적이라는 것은 정성국도 잘 알고는 있었다.
다만 신성로마제국을 제외하면 북미왕국과 별다른 관계가 없었고, 당연히 신식 소총도 없었다.
그러니 2만 자루의 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신성로마제국과의 국경에 오스만 제국이 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2만 명의 병사들을 배치한다 하더라도, 남은 1만 5천 명으로 주변국을 충분히 격파할 수 있으리라고 보았고.
허나 조용한 곰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비록 신식 소총의 전투력이 대단하다 하더라도, 몇 배나 많은 병력을 배치하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고, 러시아 차르국이든, 아니면 사파비 제국이든 오스만 제국을 상대하기 위해 다수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만큼, 이 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오스만 제국이 조금 유리하기는 해도, 주변국을 모두 토벌하는 것은 어렵다고 본 것이다.
더불어 이번처럼 오스만 제국이 움직인다면 이를 유심히 살피다가 오스만 제국이 흥하면 견제를, 망하면 더 많은 이득을 얻기 위해 승냥이처럼 달려들 것이 뻔했으니.
해서 조용한 곰이 이를 이야기하자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말에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런가?. 알겠네. 그럼 내가 평화에게 따로 이야기해둘 테니 바로 협상을 진행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