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1화
정성국이 막 식후의 나른함을 이기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풀기 시작했을 때, 조용한 곰이 집무실에 들어오다 그런 정성국의 행동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몸이 찌뿌둥하신 겁니까.”
“그보단 묘하게 졸려서 말이네. 잠을 몰아내기 위해 잠깐 몸을 움직이고 있었지.”
“아. 그러십니까? 뭐 잠을 몰아내는 데는 적당히 몸을 움직이는 것도 좋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렇긴 하지. 헌데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정성국은 조용한 곰이 언급한 흥미로운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며 빨리 말하라는 듯 조용한 곰을 눈빛으로 재촉하자, 조용한 곰은 투로시노가 올린 중국 대륙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고.
정성국은 유럽 각국이 동녕국과 거래해 화약 무기를 넘겼고, 이 화약 무기가 주나라로 흘러 들어가 결국 주나라가 청나라를 몰아붙이고 있다는 중국 대륙의 현 정세를 듣고 조청전쟁이 끝난 이후 새한성에 있던 유럽 각국 대사들이 청나라를 만만하게 보고 움직이려 한다는 조용한 곰과 푸른 안개의 보고를 떠올리고 중얼거렸다.
“허. 전에 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한 유럽 국가들이 분열된 청나라의 상황을 이용하기 위해 움직인다는 이야기가 있더니만...그게 화약 무기의 판매인 건가?”
“그렇습니다. 전하. 유럽 각국은 동녕국에 화약 무기를 넘기고 비단과 도자기 등을 받아 이득을 챙기고, 주나라와 동녕국이 청나라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중국 대륙을 장악하면 두 나라와 자유롭게 교역하며 추가로 이득을 챙길 속셈으로 짐작됩니다.”
“뭐 유럽 각국이야 오래전부터 청나라와 직접 교역하고 싶어했었으니...그보다 유럽에서는 한창 전쟁 중이면서 동녕국에 팔 화약 무기를 비롯한 물자가 있었다는 것이 놀랍군.”
유럽 각국은 이전부터 청나라와 정식으로 교역하고 싶어 했지만, 청나라는 아쉬울 것이 없었기에, 그리고 동녕국 때문에 해금 정책을 유지했고, 덕분에 유럽 각국은 그동안 밀무역을 통해 비단, 도자기 등을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북미왕국이 등장한 이후, 그리고 북미왕국에서 생산하는 도자기와 비단이 청나라산 교역품보다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아시아 무역의 중요도가 조금 떨어지기는 했지만, 아직 청나라의 물품들을 유럽에 가져가면 충분히 이득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니 유럽 각국이 현재 분열된 중국 대륙의 정세를 확인 후 개입한 것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다만 유럽에서의 전쟁이 5년 넘게 계속되면서 각종 군수 물자가 빠르게 소진되었고, 덕분에 유럽 각국은 식량과 의복 등 각종 군수 물자를 북미왕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었는데, 머스킷이나 대포, 작열탄과 화약 등을 대량으로 동녕국에 넘긴 것은 예상외였다.
특히, 작열탄은 그 위력 때문에 너도나도 쓰려고 하지만, 제작에 손이 많이 가는 터라 생산량이 적어 난리라고 알고 있으니까.
이러한 정성국의 의문에 조용한 곰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저들은 동남아시아 지역에 식민지를 소유하고 있으니까요. 그곳에서 화약 무기를 생산해 판매한 모양입니다. 작열탄까지도 말입니다.”
아시아까지 진출한 나라들은 인근에 식민지를 확보하고 있었고, 이 식민지들을 지키기 위해 자체적으로 화약 무기를 생산하고 있는 만큼 유럽 각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이 식민지에서도 작열탄을 생산할 수 있었다.
유럽에서 생산하는 작열탄은 손이 많이 갈 뿐이지 구조는 비교적 단순한 편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보통의 경우는 반란이나 기술 유출을 우려해 이러한 신무기들은 본국에서 제작해 보내겠지만,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재정이 고갈된 유럽 각국으로서는 무역을 위해 작열탄조차 비싸게 팔아야 하는 상황이었고.
이러한 조용한 곰의 설명에 정성국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덕분에 청나라는 계속 밀리고 있고...이대로 가면 청나라가 멸망할 수도 있으니 투로시노는 청나라를 뒤에서 지원하겠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전하. 청나라가 멸망하면 아국이 확보한 이권이 모두 사라지게 되니 말입니다. 특히, 교주나 상해의 경우 국영 상단에서 투자한 돈이 꽤 되는 만큼...”
북미왕국은 청나라와 협상하면서 산동성의 교주, 강소성의 상해, 절강성의 영파, 복건성의 복주, 광동성의 광주를 개항장으로 지정하고 이 항구에서 자유롭게 청나라 상인들과 거래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
다만 당시에도 복건성은 동녕국에 넘어간 상태였고, 광동성에서는 반란이 일어났으며, 절강성에서는 북진하는 동녕국과 이를 막으려는 청나라 간의 전투가 벌어졌기에 일단은 진출을 보류했고.
그래서 산동성의 교주와 강소성의 상해를 드나들며 교역을 시작했는데, 국영 상단은 청나라와의 교역이 계속 확대될 것을 대비해 석탄 보관소부터 시작해서 교역품을 보관할 창고, 북미왕국 전용의 선착장 등 여러 시설을 건설하는 등 각종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기에 청나라가 멸망하게 되면 북미왕국과 국영 상단이 입게 될 손해는 큰 편이었고, 이를 잘 알고 있는 정성국은 조용한 곰이 말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골치 아프다는 얼굴로 투덜거렸다.
“끙...그래서 우리도 유럽 나라들처럼 청나라에 화약 무기를 판매해 청나라의 멸망을 막아보겠다?”
“예. 투로시노는 이것이 최선이라고 하더군요.”
“흐음...”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설명에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하는 얼굴을 했다.
어차피 주나라든 동녕국이든 북미왕국의 힘을 잘 알고 있는 만큼, 두 나라에 청나라로부터 확보한 이권을 보장해달라고 이야기한다면 충분히 들어주리라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투로시노의 생각처럼 두 나라가 먼저 화약 무기를 제공해 준 유럽 나라들에 편의를 제공할 가능성은 충분했고, 유럽 나라들이 북미왕국에서 막대한 돈을 투자한 항구를 원할 수도 있다는 것이 내심 걸렸다.
더불어 당장이야 아쉬운 상황이니 주나라도, 동녕국도 북미왕국에 굽히겠지만, 청나라가 멸망하고 나면 이들의 태도가 변할 가능성이 컸고.
‘주나라와 동녕국이 대등한 상황이라면 모를까, 투로시노가 보내온 보고서에 따르면 결국 동녕국은 주나라의 속국이 될 수밖에 없어. 그럼 주나라는 기고만장할 테고 시간이 흐르면 아국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테지. 그게 마음에 안든다고 주나라와 다시 전쟁을 벌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차라리 청나라를 유지시켜 세 나라가 적당히 균형을 이루게 만드는 것이 낫겠군.’
그렇게 생각을 마친 정성국이 조용한 곰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확실히 투로시노의 말에도 일리는 있어. 헌데 조선도 보유한 조총이 그리 많지는 않지 않나?”
그동안 북미왕국은 조선의 조총을 주기적으로 사들여 시베리아 부족 연합, 호주 연합, 그리고 남태평양의 원주민 부족에 판매했었다.
여기에 북미왕국의 신식 소총이 조총보다 월등하고, 다른 나라와는 달리 조선은 북미왕국과 특별한 관계라 돈만 있다면 신식 소총을 원하는 대로 수입할 수 있다 보니 조총을 생산할 이유가 없는 터라 조총의 보유량은 많지 않으리라고 짐작한 정성국이었고.
문제는 현재 밀리고 있는 청나라의 사정을 생각해보면 대규모로, 못해도 5만 자루 이상의 조총을 넘겨야 할 텐데 조선에 그 정도 물량이 과연 있을까 싶었고, 해서 이를 묻자 조용한 곰이 빙긋 웃으며 답했다.
“그래도 조선이 보유한 조총의 수량이 꽤 됩니다. 청나라와 전쟁이 시작되면서, 그리고 당장 아국이 신식 소총이 부족해 이를 넘겨주지 못했기에 조선은 만약을 대비해 대량의 조총을 생산했었으니까요.”
“아...”
생각해보니 청나라가 처음 조선을 침공했을 당시, 신식 소총의 주문이 밀려 있었기에 신식 소총은 판매하지 못하고 대신 지원군을 파견했었는데, 조선은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조총을 대량으로 생산했었다는 조용한 곰의 설명에 정성국이 탄성을 지르자, 조용한 곰이 덧붙였다.
“더불어 만주 동부 지역은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기에 맹수들이 꽤 많고, 이 때문에 조선은 만주 동부 지역으로 이주하는 조선인들의 안전을 위해 계속해서 조총을 생산했었습니다. 그러니 조선은 충분한 수의 조총을 보유하고 있고, 이 조총 중 일부를 청나라에 넘기면 될 것 같습니다.”
조선이 충분한 수량의 조총을 확보하고 있다는 조용한 곰의 설명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또 다른 문제를 지적했다.
“헌데 조선이 청나라에 조총을 넘길까?”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는 예전만 못했고, 조청전쟁 이후 조선은 청나라를 무척이나 경계했기에 정성국이 이를 걱정하자 조용한 곰이 자신만만한 미소로 웃으며 답했다.
“투로시노는 조선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고 자신하더군요.”
청나라가 조총으로 무장하는 것을 조선은 경계하겠지만, 그렇다고 청나라가 다시 조선을, 그것도 북미왕국의 동맹인 조선을 절대 공격할 리는 없다는 점과, 지금 주나라와 동녕국이 조선에 우호적인 것도 다 청나라의 신경을 분산시키기 위한 수작일 뿐, 아니었다면 저 오만한 중국인들이 과연 조선에 우호적이겠냐는 것을 말하면 조선에서도 투로시노의 계획대로 움직일 거라는 조용한 곰의 설명에 정성국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흠. 투로시노의 판단이 그렇다면야...알겠네. 그렇게 하게. 다만 청나라에 조총을 대거 지원한다 하더라도 청나라가 그동안 잃은 땅을 되찾진 못하겠지?”
이에 조용한 곰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역시 그런가. 그럼 절강성은 몰라도 복건성이나 광동성에는 결국 개항장을 만들지 못한다는 뜻이니 투로시노에게 말해 추가로 이권을 뜯어내라고 하게.”
북미왕국과 조선이 뒤에서 청나라를 지원한다면, 현 정세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되면 복건성과 광동성에 확보한 개항장은 사라지는 셈이라 청나라의 능력 부족으로 북미왕국이 손해 보는 셈이니 이를 지적하고 또 다른 이권을 챙기라는 정성국의 이야기에 조용한 곰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아. 그렇지 않아도 투로시노가 그 이야기를 하긴 했습니다. 강서성이 넘어간 이상 청나라는 광동성을 잃었고, 덕분에 복건성의 복주와 더불어 광동성의 광주에도 개항장을 만들긴 힘들 것 같다면서 이번에 청나라와 협상하면서 추가로 이권을 뜯어낼 거라고 말입니다.”
“하하하. 역시 투로시노로군.”
굳이 정성국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움직이는 투로시노의 행동에 만족한 정성국은 아시아 지역의 문제는 투로시노에게 일임할 테니 외무청에서도 투로시노를 지원해주라고 명령했고.
조용한 곰은 정성국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인 후 주재를 바꿔서 현재 푸른 안개가 진행하고 있는 프랑스와 반프랑스 동맹 간의 협상이 거의 마무리 되었고, 현재는 조약문을 작성 중이라고 보고하자 정성국은 감회가 새롭다는 듯 중얼거렸다.
“허. 드디어 유럽에서의 전쟁이 끝나는 건가?”
북미왕국이 덴마크의 요청을 받아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를 구매하면서 시작된 유럽의 분쟁이 커져 대프랑스 전쟁으로 확대되었고, 이 대프랑스 전쟁이 5년 만에 끝난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이 혀를 내두르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저었다.
“정확히는 서유럽에서의 전쟁이 끝나는 셈이지요.”
“아. 그러고 보면 빈을 둘러싸고 한창 오스만 제국과 신성로마제국이 전투 중이었지?”
정성국은 지난주에 오스만 제국의 대사와 만나 커피를 마시며 이번 빈 공방전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었기에 조용한 곰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자, 조용한 곰이 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폴란드-리투아니아가 이번 전쟁에 끼어들었지요.”
“어? 폴란드-리투아니아가? 아. 같은 가톨릭 국가라서?”
“그렇기도 하고, 오스만 제국과의 관계도 썩 좋은 편이 아니기에 오스만 제국의 세력 확장을 그냥 두고 볼 리 없지요.”
“아...”
한때 폴란드-리투아니아는 동유럽의 패자로서 발트 해와 흑해까지 영토를 확장할 정도였고, 당연히 오스만 제국과는 티격태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이후 스웨덴과 러시아 차르국, 그리고 오스만 제국의 집중 견제와 계속된 전쟁 덕분에 국력의 한계를 보이고, 1648년 카자크 대봉기가 시작되며 훗날 대홍수라 불리는 국가적 대혼란이 벌어지면서 인구의 1/3을 잃고 막대한 영토를 잃으면서 세력이 확 꺾여버렸고.
그렇기에 폴란드-리투아니아는 오스만 제국의 유럽 진출을 우려할 수밖에 없었고, 빈을 점령한 이후 기고만장한 오스만 제국을 단독으로 상대하기보단, 신성로마제국과 함께 오스만 제국을 상대하면서 피해를 줄이고자 빈 공방전에 개입했음을 정성국이 눈치채자 조용한 곰이 덧붙여 말했다.
“해서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국왕 얀 3세가 직접 10만의 대군을 이끌고 이동해 한창 빈을 포위하고 맹공을 퍼붓던 오스만 제국군을 뒤에서 급습했고...오스만 제국은 꽤 큰 피해를 보았다고 하더군요. 그나마 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병력이 폴란드의 자랑인 기병대를 저지하는 데 성공해서 병력을 어느 정도는 보존할 수 있었지만 말입니다.”
“아...”
정성국은 조용한 곰이 말한 폴란드의 기병대가 그 유명한 윙드 훗사르라는 것을 깨닫고 탄성을 질렀고.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잠시 고개를 갸웃한 조용한 곰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참전 덕분에 분위기는 바뀌었고, 이번 종전 조약이 체결되면, 에스파냐마저 이번 전쟁에 개입할 여지가 있는 터라...오스만 제국의 대사는 어떻게든 이번 협상을 깨기 위해 프랑스 대사를 붙잡고 설득하느라 바쁘다더군요.”
이전까지 오스만 제국의 대사는 프랑스와 반프랑스 동맹의 협상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었다.
이는 대프랑스 전쟁이 끝나고 가톨릭 국가인 에스파냐가 신성로마제국에 지원병력을 보낸다 하더라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고.
헌데 그동안 이를 관망하던 오스만 제국의 대사가 거의 다 완료된 협상을 깨기 위해 프랑스 대사를 설득 중이라고 하니 정성국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때, 조용한 곰이 덧붙였다.
“아. 더불어 아국에는 남은 신식 소총을 빠르게 넘겨줄 것과 추가로 신식 소총을 판매해달라고 요청하고 있고요.”
“끙...”
정성국이 오스만 제국 대사의 요구에 곤란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을 때, 조용한 곰이 진지한 얼굴로 정성국을 바라보며 의견을 제시했다.
“헌데 제가 판단하기에는 추가로 신식 소총을 판매하는 것은 유럽의 이목이 있기에 어렵다고 하더라도, 오스만 제국에 넘겨줘야 하는 신식 소총을 앞당겨서 넘겨주는 것은 괜찮아 보입니다.”
“허. 그 정도로 오스만 제국의 피해가 큰가?”
“일단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고 봐야겠지요. 더불어 다른 유럽 국가들이 신성로마제국을 지원할 테니, 어쩌면 오스만 제국은 역으로 몰려드는 유럽의 군대를 막아내야 할 가능성이 크고요. 그러니 민간에 푸는 신식 소총을 오스만 제국으로 돌리고, 대신 몇몇 이권을 확보하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알겠네. 내가 강평화에게 따로 이야기해둘 테니, 자네가 오스만 제국의 대사와 협상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