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0화
“이야...이거 정말 멋진데?”
정성국은 궁 안뜰에 놓인 전생의 클래식카와 비슷한 느낌의 자동차 5대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탄성을 내뱉자 이 자동차 근처에서 정성국을 기다리고 있던 박기동이 활짝 웃었다.
“하하하. 그렇죠? 전하께서 탑승하시는 자동차이기에 장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내외부를 장식했습니다.”
“아. 어쩐지 이전에 봤던 자동차와는 전혀 다르다 했더니만...”
베이스가 되는 자동차는 일종의 상용차인데 이걸 개조해서 멋들어진 승용차처럼 만든 장인들의 능력에 정성국이 새삼 감탄하며, 자동차 한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2개의 문을 열었고.
넓은 공간에 1인용 가죽 소파 같은 커다란 의자가 4개 놓여 있는 내부를 확인한 정성국은 다시 한번 감탄사를 토해냈다.
“이야. 안도 무척 넓네?”
베이스가 화물차나 버스에 가깝다 보니 내부 공간이 무척 넓어 정성국이 감탄하자, 뒤에 있던 박기동이 첨언했다.
“거기에 장인이 한 땀 한 땀 바느질해서 만든 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보세요. 끝내줄 겁니다.”
“그래?”
정성국은 박기동의 말에 직접 자동차 안으로 들어가 의자에 몸을 뉘었고.
등을 푹신하게 감싸는 가죽의 질감에 놀라 중얼거렸다.
“와...진짜네? 엄청 편하다.”
그런 정성국의 감탄에 박기동이 자동차 밖에서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죠? 실제 자동차를 운용해보니까, 포장도로는 그나마 덜한데 비포장도로의 경우 진동 때문에 승차감이 썩 좋지 않아서요. 물론 마차도 비슷한 상황이긴 한데, 자동차는 마차보다 빠르다 보니 흔들림이 워낙 심해서 승차감이 더 나빠지더군요. 그래서 이 열악한 승차감을 해결하기 위해 의자에 무척 신경을 썼지요.”
그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다시 의자에 등을 파묻길 몇 번 반복하며 의자의 푹신함을 체감하다 고개를 갸웃했다.
“의자는 무척 마음에 들어. 푹신하고 아늑하고. 그런데...이것만으로 노면에서 오는 충격을 모두 흡수하지는 못할 것 같은데?”
이에 박기동은 역시나 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스승님은 바로 짐작하시는군요. 맞습니다. 해서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바퀴의 개량 연구도 따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바퀴라...”
경운차를 비롯해 각종 기계와 마차 때문에 북미왕국의 바퀴, 정확히는 고무를 씌운 전생의 타이어 기술이 자연스레 발전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정성국이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여기서 더 발전한다 한들 아직 한계는 명확해 보여 정성국이 그것만으로 충격을 다 흡수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하는 얼굴을 하자 박기동은 이를 눈치채고 곧바로 덧붙였다.
“그리고 차륜과 차체가 연결되는 부분에 충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새로운 장치를 고안 중이고요.”
그러면서 박기동이 새로운 장치에 관해 자세히 설명했는데, 정성국은 이를 듣고 눈을 번쩍였다.
박기동이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서스펜션, 한자로는 현가장치라 불리는 자동차 부품의 핵심 중 하나였으니까.
그리고 정성국은 이를 잘 알고 있기에 이번 기회에 은근슬쩍 박기동에게 이야기해주려 했는데, 박기동과 자동차 연구원들은 이미 이 현가장치를 스스로 생각해내고, 개발하고 있었으니 정성국으로서는 무척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오. 그거 괜찮겠다.”
해서 정성국은 박기동의 설명을 듣고 좋은 생각이라며 칭찬해주자, 박기동은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이런 장치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연구 중이긴 한데 이게 그렇게 칭찬받을 만한 발명인가 싶어서.
“어?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래. 물론 그 현가장치로 모든 충격을 흡수할 수야 없겠지만, 여기에 개량된 바퀴와 푹신한 의자까지 더해지면 비포장도로에서도 어느 정도는 탈 만하겠지. 더불어 운전하기도 편할 테고.”
“현가장치라...흠. 완충장치라고 부를 생각이었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군요. 그럼 그렇게 이름 붙이도록 하지요.”
박기동의 대답에 정성국은 피식 웃고 자동차에서 내리며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이건 현가장치가 없는 녀석이지?”
“예. 아직 연구 중이니까요. 다만 이 녀석만큼은 비포장도로에서도 아주 못 탈 녀석은 아닙니다. 차체의 바닥이 이중으로 되어 있고, 그 안쪽에 용수철을 왕창 넣었거든요.”
“호오? 그거 괜찮은 생각인데? 아예 모든 자동차에 그런 방식을 사용하는 것도 괜찮아 보이고 말이지.”
정성국이 흥미를 보이자 박기동이 손을 내저었다.
“어휴. 그럼 단가가 엄청 올라갑니다. 그래서 이번에 가져온 자동차들에만 설치한 거지요.”
“아. 그래?”
자동차를 대량 생산할 생각이니만큼, 생산 비용은 무척 중요했다.
그렇기에 정성국은 모든 자동차에 그러한 장치를 설치하라고 이야기하지는 못했고.
다만 일부 관용차들에 한해서는 생산 비용이 증가하더라도 승차감을 위해 이중 바닥과 용수철을 넣을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싶어 박기동에게 이야기하자, 박기동은 잠깐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말했다.
“흠. 그럼 이것보다는 조금 덜 화려하고 용수철을 일부 뺀 자동차를 몇 대 더 만들지요.”
“그래. 그게 좋겠다. 그보다 양산 준비는 잘 되어가고?”
이미 자동차의 시범 운용은 성공적으로 끝난 만큼, 본격적으로 양산을 해야 할 시기였기에 정성국이 묻자 박기동은 자신만만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그럼요.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일단 자동차 제조 공방의 건설은 순조롭고, 곧 직원들을 고용해 제대로 가르칠 생각입니다.”
“곧? 아직 공방을 건설하기까진 시간이 조금 걸릴 텐데?”
이번 자동차 제조 공방은 워낙 대규모로 짓는 터라, 일부 공방을 건설해 자동차를 생산하면서, 동시에 계속해서 공방을 확장하면서 생산량을 늘리기로 했다.
그렇기에 공방 일부의 건설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 공방을 완공하고 그 공방에서 제대로 자동차를 생산하려면 못해도 반년은 족히 걸릴 듯싶었는데 곧바로 직원들을 모집한다는 것이 의아해 정성국이 박기동에게 묻자 박기동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긴 하죠. 다만 건설 장비 제조 공방이나 동력 자전거 제조 공방, 비행기 제조 공방 등을 운용해보니 아무것도 모르는 직원들이 일에 익숙해지려면 못해도 반년은 넘게 걸리는 터라...미리미리 고용해서 일이 손에 익도록 훈련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물론 어떻게 보면 조금 낭비이기는 한데...”
박기동이 말을 흐리며 정성국의 눈치를 보자 정성국은 잠시 생각해보다 박기동의 제안이 나쁠 것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말했다.
“네 말대로 어떻게 보면 낭비긴 한데...또 돈 조금 더 들여서 생산량을 조금이나마 올릴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
“그렇죠?”
“그래. 그럼 그 부분은 연구청에 맡길 테니 국영 상단과 협의해 알아서 하도록 하거라.”
“예. 그러지요.”
정성국의 허락에 박기동이 기뻐하는 사이, 정성국은 발걸음을 옮겨 앞쪽의 운전석과 연결된 문을 열고 자리에 앉아 운전석에 부착된 운전대를 잡으며 전생에 운전하던 기억이 떠올라 중얼거렸다.
“이거 운전해보고 싶은데...”
이에 박기동은 조금 당황한 얼굴로 정성국을 말리기 위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물론 자동차 운전이 썩 어렵진 않습니다만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요. 스승님?”
그런 박기동의 만류에 정성국은 오히려 불이 붙었는지 박기동을 재촉했다.
“괜찮아. 괜찮아. 이거 시동 어떻게 거는 거냐?”
시동장치가 자동차 외부에 있는지 운전석에 앉아서 열심히 주변을 살펴도 시동장치가 보이지 않아 정성국이 포기하고 박기동에게 묻자, 박기동도 포기한 모양인지 저 뒤쪽에 대기하고 있는 운전사에게 손짓했고.
박기동의 손짓에 운전사가 달려와 자동차 앞쪽에 존재하는 시동장치를 이용해 자동차의 시동을 걸기 위해 노력하자, 정성국이 그 모습을 보고 중얼거렸다.
“흠. 역시 바로 시동이 걸리지는 않는 모양이지?”
“예. 몇 번 저 손잡이를 돌려줘야 합니다.”
“그럼 시동을 켤 때마다 불편하겠네?”
“그렇죠. 특히 날씨가 안 좋으면 더더욱 불편할 거에요. 해서 이 부분도 연구 중입니다.”
정성국은 박기동의 말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다 의자에 붙어 있는 안전띠를 보고 말했다.
“그리고 연구하는 김에 이 안전띠도 추가로 연구해봐라.”
“안전띠를요?”
“그래. 이건 조금 과한 느낌이라...”
지금 자동차 의자에 붙어 있는 안전띠는 x자로 되어 있는 4점식 안전띠로 이 안전띠는 정성국이 검차 탑승자를 위해 고안한 안전띠였다.
그리고 4점식 안전띠는 상체를 의자에 제대로 결박할 수는 있었지만, 답답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정성국은 박기동에게 3점식 안전띠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해 주었고.
박기동은 이를 유심히 듣고 대답했다.
“흠. 그 방식도 괜찮네요. 알겠습니다. 바로 연구에 착수하겠습니다.”
그렇게 안전띠에 관한 이야기가 끝났을 때, 몇 번의 시도 끝에 자동차의 시동을 거는 데 성공한 운전수는 바로 뒤쪽으로 빠졌고, 박기동은 빠르게 보조석에 올라타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허겁지겁 안전띠를 맨 후 정성국에게 자동차의 조작법을 설명했다.
이를 듣고 정성국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정생의 수동 변속기를 탑재한 자동차와 조작법이 거의 비슷했기에.
‘내 기억으로 초창기 자동차들은 조작법이 조금 복잡했었던 것 같은데...이것도 내가 가끔 이런저런 조언을 해준 탓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정성국은 박기동의 말에 따라 가속 발판을 밟고, 조심스럽게 자동차를 운전하자 잔뜩 긴장하고 있던 박기동은 의외라는 듯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어라? 의외로 운전을 잘 하시네요?”
이에 정성국은 전생이 생각나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뭐 어려울 거야 없지. 아무튼, 직접 운전해보니 알겠다. 이거 확실히 잘 만들었네.”
“하하하. 그렇죠?”
“그보다 요샌 자동차 연구에만 집중하는 거냐?”
정성국이 궁궐 외곽의 도로를 따라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박기동에게 질문하자 박기동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가 세세한 부분까지 관여하긴 조금 그렇죠. 전 기관이나 발전소 쪽을 연구 중인데...아. 그러고 보니 곧 보고서가 올라갈 텐데...지열 발전소 연구가 끝났습니다.”
‘끼익!’
“으악! 스승님!”
정성국이 박기동의 대답에 놀라 자신도 모르게 제동 발판을 밟자 자동차는 급제동했고, 이에 박기동이 기겁하자 정성국은 미안하다는 듯 손짓하며 기어를 중립으로 조작하며 말했다.
“아. 미안. 깜짝 놀라서 나도 모르게 제동 발판을 밟았네. 그보다 지열 발전소 연구가 끝났다고?”
“예. 아시다시피 아이슬란드에 지열 발전소를 건설하긴 했는데...이론과는 다르게 쓸모가 없었잖습니까.”
“그랬지.”
덴마크가 아이슬란드를 북미왕국에 넘긴 이후, 정성국은 박기동에게 아이슬란드의 지열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지열 발전소 연구를 맡겼었다.
그리고 박기동과 연구원들은 정성국의 설명을 듣고 꽤 쉽게 지열 발전소를 설계했고.
해서 개발청에서는 즉각 지열 발전소를 건설했는데, 계산과는 달리 지열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해 물을 끓이기 어려웠고, 이 때문에 개발청에서는 아이슬란드 주민들을 위해 부랴부랴 화력 발전소를 건설하고, 발전소를 연구하는 연구원들은 지열 발전소 연구에 다시 뛰어들었다는 사실을 떠올린 정성국이 박기동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박기동이 자신만만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해서 발전소를 연구하는 친구들과 함께 꾸준히 지열 발전소를 연구하고 아이슬란드에 건설했던 지열 발전소를 부분부분 개조하곤 했는데, 드디어 성과가 있습니다.”
“성과라면?”
“드디어 지열을 이용해 물을 끓이고, 그 증기로 회전 기관을 돌려 전기를 생산해낸 거죠.”
지열 발전소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해냈다면, 그동안 실패했던 지열 발전소 개발에 드디어 성공했다는 뜻이었기에 정성국은 탄성을 내질렀다.
“오오! 그럼 이제 아이슬란드에 석탄을 보급할 필요가 없는 거냐?”
“그럼요. 지열을 이용해 아이슬란드 주민들이 사용할 전기를 모두 생산할 수 있게 되었으니 아이슬란드에 건설한 화력 발전소는 가동을 멈춰도 될 겁니다.”
자신만만하게 화력 발전소의 가동을 중지해도 된다고 이야기하는 박기동을 보고 정성국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의 어깨를 몇 번 두드리며 칭찬했다.
“이야...그 정도로 자신 있다는 소리지? 지열 발전소를 개발하느라 정말 고생했다.”
“고생은요. 아. 그리고 지열 발전소가 제대로 가동되는 만큼, 본격적으로 아이슬란드에서 알루미늄을 값싸게 생산할 수 있겠지요.”
정성국이 지열 발전소를 연구하게 한 이유가 바로 지열을 이용해 값싸게 알루미늄을 생산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박기동이 이를 상기시키자 정성국은 크게 웃었다.
“하하하. 덕분에 알루미늄 생산을 위한 수력 발전소는 건설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최근 알루미늄 소모량이 급증해 더 많은 알루미늄 생산을 위해 수력 발전소 건설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정성국이 다행이라는 듯 이야기하자 박기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차라리 지열 발전소를 추가 확장하는 것이 나을 겁니다.”
“그래. 그편이 낫겠지. 그 부분은 네가 개발청과 상의해 진행하도록 하고. 그보다 지금 지열 발전소가 가동되고 있는 것 맞지?”
“예. 가동 중이지요.”
박기동의 대답에 정성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묘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흠...그럼 조만간 구경하러 가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