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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669화 (669/850)

669화

포로나이의 집무실에서 한창 왜인 출신 이주민과 관련된 보고서를 확인하던 투로시노는 유구 왕국을 방문했다가 이제 막 복귀한 정일신 3함대 사령관의 방문을 환영하며 물었다.

“그래. 잘 다녀오셨습니까? 유구 섬은 어떻던가요?”

“나중에 은퇴하면 유구 섬에서 살까 잠깐 고민했을 정도로 좋은 섬이더군.”

정일신의 말에 투로시노가 조금 놀랍다는 얼굴을 했다.

정일신은 항상 은퇴하면 새한성에서 살겠다고 이야기했었으니까.

“호오. 그래요?”

“그래. 기후도 괜찮고 경치도 아름답고, 섬의 분위기도 적당히 활기찬 것이 썩 마음에 들어서 말이지. 아. 물론 각종 편의 시설을 생각하면 유구 섬에서 살기야 불편할 것이 뻔해서 바로 생각을 접었지만.”

“하하하.”

그의 말마따나 각종 편의 시설이 존재하는 새한성과 유구 섬의 생활 환경을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기에 투로시노는 웃음을 터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고.

집무실에 커피 향이 가득 차기 시작했을 때, 투로시노가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유구 섬의 개발은 예정대로 진행 중입니까?”

“그렇지. 뭐 자네도 보고서를 통해 대충 상황은 파악하고 있지 않나?”

“그렇긴 한데 보고서와 현장 상황이 또 다를 수 있으니...”

투로시노의 말에 정일신은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 말게. 보고서대로 별다른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으니까. 아마미 군도에서 데려와 고용한 유구인들이 무척 열심히 일하더라고. 덕분에 우리가 사용할 시설들을 벌써 절반이나 건설한 상태야.”

“오. 그렇습니까?”

보고서보다 진행 상황이 조금 빠른 듯했기에 투로시노가 반색하자 정일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해서 예상대로 올해 안에 모든 시설을 다 건설할 수 있을 것 같고...시설 건설이 모두 끝나면 일부는 시설 관리에 투입하고, 일부는 국영 상단에서 고용하는 것도 괜찮아 보이더군.”

“음? 국영 상단이요?”

“그래. 유구인들 중에는 물에 익숙한 친구들이 많더라고.”

갑자기 국영 상단을 거론했기에 뜬금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투로시노는 정일신의 말에 그의 속내를 파악하고 나직한 탄성을 질렀다.

“아. 그러니까 유구인들을 뱃사람으로 고용하겠다는 뜻이로군요?”

“그렇지.”

“뭐 괜찮겠네요. 가뜩이나 선원이 부족해서 난리니까요.”

점차 교역량이 늘어나고, 이를 감당하기 위해 북미왕국의 조선소에서는 열심히 선박을 건조하자, 이제는 선원들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북미왕국에서는 선원들의 대우를 계속 올려주고, 북미왕국의 배는 타국의 배와 비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시설이 좋긴 했지만, 그렇다고 장거리 항해가 만만한 것은 아니었고, 북미왕국에서는 일자리는 넘쳐났기에 선원을 구하는 데 항상 애를 먹고 있었고.

그런 만큼, 이미 고용한 유구인들 가운데 물에 익숙한 이들을 선원으로 고용해 이곳 아시아 지역을 오가는 국영 상단의 배에 태우는 것이 어떻겠냐는 정일신의 제안은 꽤 괜찮아 보여 투로시노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려진 커피를 커피잔에 담아 정일신에게 건네자 정일신은 이를 받아들며 입을 열었다.

“고맙네. 아. 그리고 유구 섬에서 올 때 제주도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거든?”

“재미있는 이야기요?”

정일신은 고개를 갸웃하는 투로시노에게 제주도에 방문했을 때, 동녕국을 방문한 국영 상단의 선장을 통해 알게 된 중국 대륙의 상황을 모두 이야기해주었고, 투로시노는 이를 듣고 두 눈을 번쩍였다.

“호오.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다니까? 최근 동녕국에 잉글랜드 선박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선박들도 줄기차게 드나든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그 선박들이 죄다 화약 무기들만 싣고 온 모양이야. 화약 무기를 동녕국에게 넘기고 비단과 도자기 등의 교역품을 싣고 돌아가는 거지. 그리고 동녕국은 이 화약 무기들을 자기들이 독식한 게 아니라 상당수를 주나라에 넘겼고.”

정일신의 말에 조금 의아했던 투로시노였다.

유럽의 상인들에게 얻은 화약 무기로 전군을 무장시킨다면, 지금 동녕국이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애를 쓰는 절강성의 세력 확장이 수월해질 텐데 굳이 화약 무기를 주나라에 넘길 필요가 있나 싶어서.

다만 화약 무기를 넘겨 무언가 대가를 받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일단 고개를 끄덕인 투로시노가 정일신의 말을 받았다.

“그럼 유럽의 머스킷으로 무장한 주나라 병사들이 결국 강서성의 청나라 병사들을 격파한 겁니까?”

“그렇지. 듣자니 작열탄까지 사용한 모양이더라고.”

“작열탄을요? 유럽에서 만든 작열탄은 성능이 꽤 떨어지는 것으로 아는데...”

유럽에서 만든 작열탄의 위력은 조금 애매했다.

물론 해전에서 사용하기엔 나쁘지 않지만, 육전에서 사용하기엔 위력이 얕달까.

그리고 이에 대한 보고서를 본 적 있는 투로시노가 고개를 갸웃하자 정일신이 어깨를 으쓱했다.

“성능이 떨어져도 포탄 안에 화약이 폭발하는 만큼 위력은 있잖나. 거기에 주나라는 작열탄이 많지 않아서 원형탄과 섞어서 사용한 모양인데...덕분에 청나라 병사들이 더 혼란스러워한 모양이야.”

“아. 일부 포탄은 폭발하니...”

“그래. 덕분에 나중엔 포격 소리만 들려도 진형이 무너졌다더군. 그러니 전투를 제대로 치를 수 있겠어?”

정일신의 말마따나 모든 포탄이 아니라 일부 포탄만 폭발하더라도 병사들은 포탄이 떨어지면 혹시라도 폭발할까 봐 불안할 수밖에 없고, 포탄을 피하겠다고 움직이면서 진형은 흐트러질 수밖에 없으니 제대로 된 전투를 벌이는 것은 어려웠으리라 짐작한 투로시노가 고개를 끄덕이자 정일신이 말했다.

“그래서 강서성으로 진격한 주나라군은 청나라군을 물리치고 북진하고 강서성은 동녕국에게 넘겨준 모양이고.”

“예? 강서성이면 꽤 비옥한 지역인데 왜 이곳을 동녕국에게 넘겨줍니까?”

투로시노가 당황해서 묻자 정일신이 웃으며 대답했다.

“동녕국이 주나라와 정식으로 동맹을 맺은 모양인데, 이때 두 나라의 영토를 정한 모양이더라고.”

그동안 두 나라는 암묵적으로 함께 청나라와 싸웠을 뿐이지 정식으로 외교 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었는데, 이번에 정식으로 동맹을 맺었다는 이야기와 이때 여러 협상을 진행한 것 같다는 정일신의 이야기에 투로시노는 조금 묘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벌써 대륙을 어떻게 나눠 가질지 논의했다는 겁니까?”

“하하하. 그런 모양이야. 한창 기세가 좋으니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지.”

정일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투로시노도 이해 못 할 수준은 아니었기에 수긍하며 말했다.

“그렇긴 하지요. 허면 그때 강서성은 동녕국의 영토라고 정했던 모양이군요.”

“그래. 그리고 정확한 것은 아닌데...광동성, 절강성까지도 동녕국의 영토로 정한 모양이야.”

동녕국을 방문했던 선장이 의외로 마당발인지 꽤 상세하게 정황을 파악해 보고했기에 투로시노는 꽤 놀라면서도, 의외로 동녕국의 영토가 적었기에 의아한 얼굴을 했다.

“음? 그럼 나머지는 다 주나라가 먹고요?”

“그렇지. 물론 건국한 지는 동녕국이 오래되었지만...솔직히 세력 면에선 주나라가 동녕국보다 더 대단하잖아? 그런데 남은 땅을 반으로 나눌 이유가 있나. 그리고 동녕국도 그걸 알기에 그 정도에 만족한 거고.”

동녕국의 병력이 10만이 채 되지 못하는데, 주나라의 병력은 어느덧 50만에 가까울 정도였다.

그러니 동녕국이 동등하게 남은 청나라의 땅을 가져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이를 동녕국도 모르지 않았다.

해서 동녕국은 적당한 수준에서 만족한 모양이라는 정일신의 설명에 투로시노가 이해했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하긴...그건 그렇군요. 아무튼, 이대로라면 청나라는 못 버티겠지요?”

투로시노의 질문에 정일신은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쉽지 않을 것 같아. 솔직히 청나라도 화약 무기가 없지 않은 탓에 유럽에서 넘겨준 화약 무기는 큰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강서성에 주둔했던 청나라군이 그대로 밀린 것을 보면 뭐...”

정일신의 대답에 투로시노는 골치가 아프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음...이거 곤란한데...”

그리고 투로시노의 중얼거림을 들은 정일신은 의아한 얼굴로 투로시노를 바라보았다.

청나라가 망하든 말든 북미왕국으로서는 전혀 상관이 없었으니까.

“곤란하다고? 왜?”

“청나라가 멸망해버리면 평화 조약을 통해 확보한 권리들이 무용지물이 되는 셈 아닙니까.”

그제야 정일신은 투로시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를 깨닫고 입을 열었다.

“아. 개항장 때문에? 글쎄? 그거야 주나라나 동녕국에 따로 이야기하면 되는 것 아닌가? 어차피 이들이 우리의 제안을 거부하진 못할 것 같은데?”

주나라나 동녕국은 북미왕국과의 교역으로 전비 일부를 감당하고 있었기에 청나라가 멸망하고 그 자리를 주나라와 동녕국이 차지하더라도 교역은 계속 유지할 수밖에 없고 개항장 역시 북미왕국이 원하는 대로 지정해주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는 정일신을 보고 투로시노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긴 해요. 헌데 유럽도 청나라와의 통상을 원하고 있었잖습니까. 헌데 청나라는 통상을 거부했고, 그래서 동녕국의 뒤에 붙은 셈이고요.”

“아. 그에 반해 우리는 교역만 할 뿐이지 무기 수출은 거부했지. 그러니 동녕국이든, 주나라든 유럽 국가들 먼저 챙겨줄 거라는 뜻이지?”

“예. 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정성국은 유럽과는 달리 아시아에서는 동맹인 조선이나 시베리아 연합을 제외하면 신식 소총을 판매할 의사가 없었고, 그 때문에 동녕국이나 주나라에서 신식 소총을 팔아달라고 요청했을 때도 이를 거절했었다.

그러나 두 나라는 아무래도 자신들에게 화약 무기를 판매해준 유럽 나라들을 먼저 챙겨줄 수밖에 없었고.

물론 두 나라 모두 화약 무기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나라들이었지만, 당장 사용할 화약과 화약 무기가 부족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투로시노의 추측에 정일신도 조금 골치가 아프다는 얼굴로 말했다.

“끙...일리는 있는데...그렇다고 이제 와서 동녕국이나 주나라에 무기를 판매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그렇죠. 전하께선 아시아에선 조선을 제외하면 신식 소총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하셨으니까요. 다만...”

“다만?”

무언가 묘책이 있느냐는 정일신의 눈빛에 투로시노가 슬쩍 미소지으며 답했다.

“신식 소총은 아니어도 머스킷과 화약을 판매하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그리고 투로시노의 대답에 정일신은 이게 묘책은 아닌 것 같아 고개를 갸우뚱했다.

“음? 이제 와서? 어차피 동녕국이나 주나라는 기세를 탔고, 유럽 각국의 식민지에서도 계속해서 무기와 화약을 동녕국으로 보내고 있는데 과연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일까? 아니. 받아들인다 해도 별다른 혜택을 받진 못할 것 같은데?”

“그렇겠죠. 동녕국과 주나라라면요. 하지만 조선을 통해 청나라로 보낸다면요?”

투로시노의 말에 정일신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어? 청나라를 돕겠다고?”

“예. 전하께서는 중국 대륙을 청나라와 주나라, 동녕국이 삼등분하길 원하고 계시니까요.”

정성국은 청나라, 아니 중국 대륙의 가능성을 잘 알기에 한 나라가 대륙을 일통하는 것을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역사가 뒤틀려 오삼계가 오래 살아남아 주나라가 건재했고, 또 동녕국 역시 세력을 확장하고 있으니, 잘만 하면 중국 대륙을 3등분 할 수도 있겠다 여겼고.

해서 정성국은 투로시노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러한 의향을 슬쩍 밝혔기에, 투로시노는 조선을 움직여 청나라가 무너지지 않게 도울 마음을 먹고 정일신에게 이를 이야기하자 정일신은 잠깐 고민하다 답했다.

“조선에 있는 조총이 꽤 되니까...그거 싹 긁어모아서 청나라로 보내면 청나라도 쉽게 무너지진 않을 거야. 헌데 조선의 상단이 동녕국과 주나라와 교역하고 있기에 조선이 그런 결정을 내리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차후 불이익을 받을 수 있잖아. 물론 우리가 강요한다면야 따르겠지만...”

이에 투로시노는 웃으며 대답했다.

“조선이 먼저 청나라에 화약 무기를 판매한다면 문제가 생기겠지만...청나라가 조선에 충분한 대가를 지급하고 화약 무기를 사들이겠다고 요청한다면 상황은 또 다르겠죠. 거기에 중간에 아국의 상인들을 끼워 넣으면 주나라나 청나라도 별다른 불만을 품지는 못할 겁니다.”

“그건 그렇겠네. 그럼 바로 움직일 텐가?”

정일신의 물음에 투로시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청나라가 위태위태하니 빠르게 움직여야겠지요. 특히 조선도 설득해야 하니까요.”

“하하하. 이거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할까 했는데 그건 어렵겠군.”

“하하하. 이 건을 빨리 끝내고 그때 같이 마시죠.”

“그래. 기다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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